• 최종편집 2021-08-0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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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7월은 재산세 납부의 달' 입니다
      7월은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어 많은 사람들이 여름 휴가를 떠나는 달이다. 올해는 휴가를 떠나기 전 우편함을 한 번 들여다 보자. 왜냐하면, 우리 구 재정의 근간인 재산세가 고지되는 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동산을 보유함으로써 여러 가지 세금을 부담하게 되는데 그 중 하나인 재산세는 7월과 9월 재산세(주택), 재산세(건축물), 재산세(토지) 등으로 나누어 부동산 소재지 구(군)청에서 과세한다.  이번 달 7월에는 재산세(주택)와 재산세(건축물)가 고지되는데 많은 납세자들이 궁금해 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재산세 과세방식과 편리한 납부 방법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 드리고자 한다. 먼저, 재산세는 주택, 건축물, 토지 등으로 구분되어 과세된다. 재산세(주택)는 주거용 부동산에 대한 과세로 건축물과 토지를 합산하여 산정한 주택공시가격을 기준으로 1년 세액을 산정한 후 7월과 9월 각각 2분의 1씩 같은 세액으로 나누어 1년에 2번 과세하고, 주거용 이외의 건축물과 그 부속토지에 대해서는 7월에 재산세(건축물)를, 9월에는 재산세(토지)를 과세하며, 지상에 건축물이 없는 나대지, 농지 등의 토지는 9월에 재산세(토지)만 과세하게 된다.  따라서 이번에 고지서가 한꺼번에 2장이 나왔다고 놀라지 마시고 먼저 과세구분을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다음으로, 재산세 과세기준일은 6월 1일이라는 점이다.  재산세는 자동차세와 달리 소유 기간을 날짜로 계산하여 과세하는 것이 아니고 과세기준일 6월 1일 현재 부동산 소유자에게 1년치의 세금이 과세되기 때문에 6월 1일 이전에 매매하였다면 매수자가, 6월 2일 이후에 매매를 하였다면 매도자가 그 해 재산세(7월, 9월)의 납세의무자가 되니 이점을 유념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재산세 납부는 수령한 고지서를 가지고 금융기관을 직접 방문해 납부할 수도 있지만, 무더운 날씨에 편리하게 납부할 수 있는 다양한 납부 방법이 준비되어 있다.  재산세 고지서상에 표기된 가상계좌번호로 손쉽게 송금할 수 있는 무통장 송금 방식이 있고, 고지서가 없더라도 위택스 홈페이지(www.wetax.go.kr)에 접속하여 회원가입을 하면 전국 모든 지역의 지방세 과세내역 확인 및 납부를 할 수 있으며, 또한, 본인의 신용카드를 이용하여 인터넷 납부를 하거나, 직접 은행 CD/ATM(현금자동 입출금기)를 통하여 납부 할 수 있고, ARS자동응답시스템(☎080-788-8080)을 활용해 전화 한 통으로 모든 지방세를 납부할 수도 있다.  주소지를 장기간 비우거나 고지서 수령을 원하지 않는 납세자들은 위택스, 금융앱 등을 통하여 전자고지를 신청하거나, 이용하는 금융기관에서 정기분 지방세의 자동이체를 신청한다면 종이 고지서도 없애고 개인의 정보도 보호하면서 편리하게 지방세를 납부할 수 있다.  이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우리 북구에서는 자동이체, 전자고지 1장당 각 300원의 세액 공제를 하고 있으며, 전자고지와 자동이체를 동시에 신청할 경우 700원의 세액 공제 혜택을 드리고 있다.  무더운 7월, 여름 휴가 떠나기 전 우편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납부기한을 놓쳐서 가산금을 부담하는 일이 없도록 재산세를 잊지 말고 꼬~옥 납부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성실한 납세가 행복한 북구의 시작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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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12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박현정의 북에세이 2] BTS의 거대한 팬덤, '아미'의 파워!
    박현정 작가. 글쓰기가 쉽잖은 일임에도 카카오 브런치 작가, 네이버 북에세이스트로 열정을 쏟아내는 그녀로부터 첵을 매개체로 소통의 시간을 만난다.   쉽게 말해 방탄소년단(BTS)을 거대하게 키운 아미들의 힘을 생각하면 되겠다. 또는 최근 빙그레의 바나나우유나 오리온의 초코파이 정도 좋겠다. 브랜드나 사람 그 어떠한 것이든 존재 자체를 믿고 따르는 힘을 ‘팬덤’이라고 한다. 팬덤을 만드는 5단계 브랜딩 전략에 대해 쓴 멋진 책을 만났다. 바로 오늘 소개할 [스노우볼 팬더밍]이다.        작가는 책에서 ‘스노우볼 팬더밍 서클’을 설명한다. 아미들처럼 브랜드를 지지하고 사랑하며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팬덤을 구축하는 브랜드 전략이다. SNS를 통해 자신이 누구의 팬인지 적극적으로 알리고, 그 유명인 또는 유명브랜드의 상황과 계획을 발 빠르게 전한다. 누구의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사랑의 힘이다.      이 서클에서 작가는 팬덤이 만들어지는 과정 즉 ‘팬더밍’을 설명한다. 지지자들이 활동할 기반을 탄탄하게 다지는 ‘저변 만들기’가 그 시작이다. 이어지는 ‘지지자 발굴 단계’는 지지자를 찾아내는 과정이다. 이어서 발굴한 지지자들과 브랜드, 그리고 지지자들을 연결하는 ‘지지자 연결 단계’, 연결된 지지 세력을 팬으로 키워내는 ‘팬 육성 단계’, 마침내 팬들에게 높은 지위를 건네는 ‘승급 및 보상단계’까지 연결된다. 브랜드와 팬들의 충성심이 대단해지는 건 시간문제다. 팬덤의 존재에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 될 상황이다.       “우리는 고객 경험에서부터 시작해서 테크놀로지로 가야 한다. 거꾸로 해서는 안 된다.” 스티브 잡스가 남긴 말이다. 새로운 기술이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 눈여겨 봐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 고객을 중심으로 생각하라는 말이겠지만, 잘 되는 기업이나 개인은 드물다. 주는 사람 입장의 자신을 먼저 떠올리는 게 인간 본능이다. 받는 사람을 위하라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쉽다면 모두다 마케팅에 성공했을 것이며, 이 책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스노우볼 팬더밍 :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브랜드 팬덤 만들기 (박찬우 지음 / 쌤 앤 파커스 출판사)     많은 기업이 SNS 홍보를 망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구시대적 발상 즉 자신들이 갑이라고 생각하는 관념이 여전히 남은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행사가 오히려 역효과 나는 꼴불견을 우리는 더 이상 이해해주지 않는다. “해시태그를 달고 행사를 인증하세요. 그러면 선물 드릴게요.” 이런 멘트는 고객을 오히려 쉽게 보는 느낌을 준다. 여전히 많은 기업이 고객의 욕구를 알아채지 못한 채 이런 방식의 행사를 기획한다.    본질을 모르는 채 다른 방법만 찾는 안일한 기업은 또다시 다른 SNS 채널을 찾아본다. ‘블로그로 승부 걸 수 없다면 이번에는 인스타그램에 도전하자.’ 식이다. “유튜브가 대세니까.”식으로 트렌드에 휩쓸려 새로운 채널을 개설하는 게 과연 도움이 될까. “이 채널이 우리 기업의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까?”가 고민의 첫출발일 것이다.       예전, 어느 자동차 회사의 모 자동차 4행시 이벤트가 기억난다. ‘OOOO 4행시 이벤트’에서 몇몇이 자동차의 문제점을 말하거나 비난의 글을 달았다. 문제는 관리자가 그 댓글들을 삭제를 해 버렸다. 많은 사람들의 원성을 산 건 당연하다. 고객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은 것이다. 그런 댓글에 재치 있는 답변을 달거나 노력의 여지를 보였다면 어땠을까? 포용력 없는 기업에 사람들은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브랜드 팬덤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셜미디어와 디지털 기술의 진보 덕분에 우리는 멀리 떨어진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너무나도 쉽고 용이하다. 당연히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고객의 힘이 커졌다. 이런 진보된 세상에서는 전 세계적인 팬덤을 형성하는 일이 어렵지만 가능해졌다. 참여와 경험을 중시하는 MZ세대들이 주요 타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마음에 든다면 아주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신인류다.       기업 입장에서 브랜드 팬덤을 활용하면 고객으로부터 전문성이 반영된 솔직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건 정말 기업 입장에서 좋은 일이다. 발전 가능성을 키울 수 있는 기회다. 브랜드 덕후들이 이루어낸 팬덤 문화를 잘 활용한다면 대중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끌어낼 수 있음을 알아채야 한다.   ‘스노우볼 팬더밍 서클’의 5단계를 돌고 나면 그들만의 팬덤 문화가 다른 고객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확장의 선순환을 만들게 된다. 언덕 위에서 굴린 작은 눈송이가 지속되고 반복되면서 커다란 눈덩이가 되는 효과! 처음은 미약하지만 대단한 효과를 발휘하는 힘이다. 이를 위해 개인과 기업은 노력해야 한다. 5단계의 상세한 설명이 궁금한 분은 책에서 꼭 확인하길 바란다.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위력적인 팬덤은 없다. 방탄소년단의 아미들 역시 그런 과정을 겪었다. 장기적 안목으로 브랜드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기업 임직원들이 명확하게 정의된 미션을 공유한다면 브랜드의 가치는 높아진다. 진정성 있게 다가가며 고객의 말을 경청한다면 팬덤 형성은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 변화에 위협을 느끼지 못하거나 그것 자체를 거부하는 브랜드는 살아남기 힘든 시대임을 기억하자.   우리집 두 아들 역시 온라인에서 자기들의 왕국을 만들며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팬덤이라는 단어가 거창해 보이지만, 즐거운 취미생활에 좋아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이 팬덤의 시작이다. 누군가가 나의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유익함을 취한다면 주는 입장에서는 최고의 기쁨이다. 확고한 팬덤 형성을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책을 펼쳐보길 바란다.    ::  박현정 작가 (경북대학교 영어영문학 석사)  ::   툴기획㈜ 대표 부모교육(육아, 독서법 등) 강의 및 컨설팅 독서모임 지도(예비 창업자, 기업가, 학부모) 카카오 ‘브런치 작가’ (http://brunch.co.kr/@booklove) 네이버 블로그 ‘북 에세이스트’ (https://blog.naver.com/jennyphj) 인스타그램 ‘새벽-독서-성장 공간’ (http://www.instagram.com/book_diary_jenny) 인스타그램 ‘홈스쿨링 공간‘ (http://www.instagram.com/military_haha_bro) 페이스북 ‘소통의 공간’ (http://www.facebook.com/jennyphj) 개인 메일 jennyph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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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명작가
    2021-08-04
  • [이경국의 투자이야기 48] 미인에 끌리는 이유
      '이경국의 경제칼럼'을 집필중인 이경국 프리랜서 작가        남성은 파트너가 미인이면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마음이 끌려 간다고 한다. 동물은 수컷을 선택하는 힘은 전적으로 암컷이 쥐고 있다.    덩치도 크고 힘도 좋아야 하겠지만 유전자가 좋은 것을 우선으로 선별한다는 것이다. 암컷은 본성적으로 그것을 인지해 내는 힘이 탁월하다고 하니 기가 막힌다.   전형적인 적자생존의 법칙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눈에 콩깍지가 쓰이게 되어 이를 무시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마련이다.   대체로 여자가 아름다우면 남자는 허벌레 하면서 마음을 무장해제 시겨 버리고 만다.   아름다움에 끌리는 힘은 과히 놀랍다. 얼굴이 아름답다 함은 사실 뼈에 살이 어떻게 붙어 있는 가에 따른 외형의 모습에 불과하다고 필자가 아무리 역설하여도 별로 게의치 않는다.   겉모습에 현혹되어 인생을 그르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맞선도 어렵고 자유연애에 의한 선택 또한 쉽지가 않는 것이다.   배우자의 선택은 전쟁에 나가는 심정으로 해야 하거늘 얼굴만 반듯하면 소풍가는 기분으로 결정해 버리고 만다.   미의 기준도 시대에 따라서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노동력을 중시한 농경사회의 미인은 엉덩이가 컸다.   多産은 노동력과 관련이 있다. 기생도 몸이 풍만하고 엉덩이가 넉넉하게 펑퍼짐해야 인기가 있었다.     과거의 미인은 육체가 풍만하여야 했다.   지금은 영상시대의 특성을 살려서 얼굴이 작아야 한다. 달덩이 처럼 나오는 것을 질색으로 여긴다. 팔등신 미인이 인기가 좋다.   여성은 애기를 낳고 가사를 돌보고 육아를 할 때 가장 아름답다운 모습일 것이다. 요리하는 뒷모습이 아름답다는 것은 문학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팔등신 미인은 多産과는 거리가 좀 있어 보인다. 산후조리에 따라서 다산은 여성의 건강도 좋아지며 부부 금슬 또한 좋아진다고 한다.   여성은 다시 태어나는 효과가 있다. 잘 생긴 이성에게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배우자 선택요건으로 지나치게 강조 하다가 낭패보는 경우는 많다.    시내의 한적한 곳에 작은 분수대가 있다. 필자는 이러한 공간을 찾아 여유를 즐긴다.한 컷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일상의 話頭는 역시 돈노(don't know)이다.    자신의 美를 무기삼아 노력이 부족하며 결국 단물이 빠지면 매력을 상실하여 버리기 때문이다.   경제생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치를 즐기는 여성은 일종의 병적이다. 쇼핑중독증은 마약과 같다.   배우자의 선택, 직업의 선택 그리고 가치관의 선택은 아주 중요한 인생의 3대 선택인 것이다.   배우자의 만남은 하늘이 점지해 주어야 가능하며 적어도 상당한 인연이 닿아야 원만한 결혼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신혼여행지에서 갈라서는 부부는 번갯불에 콩구어 먹듯 겉치레만을 중시하는 부부일 것이다.   실패한 결혼 생활은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마이너스란 사실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잘 알고도 남을 것이다.   인간은 인문학에 눈이 뜨이면 세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聖賢들이 존경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돈이 많다고 존경하지는 않지만 돈을 가치있게 쓰는 사람은 존경을 받기 마련이다.   가치관이 정립이 되어 있지 않는 지도자를 만나면 국민들의 고통은 크다.   따라서 연애는 가볍게 엔조이 위주로 할 수 있겠지만 결혼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선택을 하여야 한다.    결혼은 가정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지대할 것이며, 삶을 송드리째 망가지게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최선의 주의를 다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이경국(프리랜서 작가) 약력   ::    --  대구대학교 경제학과  졸(1974)    --  프리랜서 작가(현)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  사) 국어고전문화원 이사(현) --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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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국의 경제칼럼
    2021-08-02
  • [조 순의 '역사는 미래다' 37] 권력과 아버지의 역할
      대구저널의 기획 연재 '조 순의 역사 콘서트'의 집필을 맡은 조 순 문학박사, 지산학연구소장    조선 제14대 선조(宣祖), 15대 광해군(光海君)은 애초에 왕이 될 수 없는 위치에 있었지만 용상의 자리에 오른 군주이다. 선조의 생부는 중종의 일곱째 아들인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휘:초)으로, 중종과 중종의 후궁인 창빈안씨(창빈안씨(昌嬪安氏, 1499~1549) 소생이다.   선조는 덕흥대원군의 셋째아들로 조선에서 처음으로 방계승통(傍系承統)을 연 군주이고 광해군 역시 후궁의 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지존의 자리에서 신분적인 콤플렉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역사에서 만약은 존재하지 않지만, 선조(宣祖)의 둘째 아들인 광해군(光海君)도 어머니인 공빈김씨(恭嬪金氏)가 만약 오래 곁에 있었다면 아버지로부터 덜 시달림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광해군은 ‘폐모살제(廢母殺弟)’라는 명분으로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폐위된 왕이다.   광해군의 비극은 아버지 선조가 물려준 불안정한 권력 때문이었다. 물론 선조 자신의 출생의 컴플렉스로 인한 것이긴 했지만, 선조 자신이 확고한 의지로 세자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지켜주지 못한 것에서 발생했다.   또 전란 중 분조(分朝: 임진왜란 때 선조가 요동에 망명할 의도로 조정을 갈라 광해군에게 맡긴 소조정(小朝廷))로 인한 굴욕감은 선조에게 광해군에 대한 악감정을 주입했을 가능성이 있다. 기록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선조는 인간을 대하는 도량은 그리 넓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어린 나이에 정통성 없는 즉위가 가져온 당연한 결과이면서도 타고난 품성이 더해졌고, 이로 인해 선조의 신하들에 대한 불신으로 드러났다.     선조 어진 사진 출처 https://blog.naver.com/mgate9009/221641808035    이는 광해군에게도 예외가 아니었고, 이러한 선조의 태도는 광해군에게는 적잖은 상처로 작용했을 것이다.   실로 조선 역대 세자의 행적을 살펴보더라도 누구도 광해군에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물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부왕에게 신뢰를 받지 못했다.   더구나 임란 후 새로 맞이한 인목왕후(仁穆王后)가 적자인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낳은 뒤에는 선조가 서자인 광해군을 대하는 태도는 세자 시절은 물론, 왕이 된 뒤에도 불안정한 권력을 유지하는데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국청(鞫廳)이 열릴 때도 직접 심문에 참여하기도 했고, 무리하게 궁궐 공사에 매달리기도 했다. 부왕 선조가 민생을 염려해 궁궐 건축은 생각지도 않은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였다.   내면으로 다져진 권력의 힘이 약했던 광해군이 외면적인 면에 치중한 것도 왕의 권위를 높여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 선조가 임진왜란 중에도 형들의 생활을 극진히 살피는 등 우애가 깊고 왕실을 우대한 것과 달리 광해군은 왕실 사람들에게 대단히 차갑게 대했다.   이러한 점은 모두 선조가 누린 권력의 안정성과 광해군 권력이 가진 불안정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하기에 만약, 광해군도 선조처럼 안정된 권력을 물려받았다면, ‘폐모살제’의 폐륜을 저지르고, 무모하게 궁궐 공사를 추진했을까? 광해군의 비극은 아버지 선조와 무관하지 않다.   아버지의 우유부단한 결정과 판단의 흐림이 역대 성군(聖君)의 반열에 오를 수도 있던 임금의 재목을 패륜아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태종 이방원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군권(軍權)을 자신이 가지고 뒤를 돌봐주었던 것과 달리, 용렬한 군주 선조는 국가의 안정과 아들의 선정(善政)보다 자신의 체면이 우선이었던 것이기에, 광해군은 권력의 칼날에 늘 노심초사(勞心焦思)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 속에서 아버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 같다.       :: 조 순 문학박사, (사)지산학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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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순의 역사 콘서트
    2021-07-30
  • [이경국의 투자이야기 47] 노후 행복을 위한 몸부림
    '이경국의 경제칼럼'을 집필중인 이경국 프리랜서 작가     결론적으로 인간의 평균수명은 감겁(減劫) 시대이기 때문에 줄어 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수명이 늘어 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지금은 우주의 성.주.괴.공 (成.住.壞.空)으로 살펴보면, 주겁(住劫)에 해당이 된다. 종교적으로 아직은 말세(말법시대)는 아닌 것이다. 구체적인 설명은 생략하고 지금은 住劫 13번째로 수명이 100세 시대이다. 그런데 짧게 보면 수명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기에 장수시대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壽命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五福에도 수명은 빠지질 않는다. 천재는 요절(夭折) 한다느니 미인은 박명(薄命)한다는 말은 수명과 관련이 있는 우리를 씁쓸하게 하는 말이다. 기왕 태어 났으면 시대에 따라 평균수명 만큼은 살고 생을 마감하여야 되지 않을까 싶다. 조선시대 27명의 임금의 평균 수명이 47세였다. 단종은 17세로 가장 짧았다. 영조는 83세로 오래 살았다. 단종의 비(妃) 정순왕후 宋氏는 82세까지 사셨으니 단종 사후에 64년을 더 산 것이다. 장수가 마냥 福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랜 세월을 보낸 정순왕후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장수는 축복(祝福)인가 아니면 재앙(災殃)인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목숨을 두고 장난을 치거나 따지지 말라고 했지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부처님께서 80세에 입멸하셨다. 2700년 전이니 무진 장수를 한 것이다. 조선 중기의 퇴계선생은 70세 까지 사셨다. 활인심방을 이용하여 장수하셨다. 인간은 누구나 장수를 희구하지만 장수가 축복만은 아닐 수 있는 시대가 되다. 정부의 최고의 복지정책은 부채로 현금을 살포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장수시대에 걸맞게 老人이 고독하지 않도록 촛점을 맞추는 것이어야 한다. '어르신'이란 그럴듯한 용어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노인은 일생의 노력을 주름속에 감추고 산다. '노인과 바다'가 어울리지 '어르신과 바다'라고 하면 우선 언어의 맛깔스러운 의미를 상실케 한다. 노인은 생산력이 없는 유휴인력으로 치부해 버린다면 노인의 삶은 생지옥일 것이다. 왜냐하면 늙지 않고 죽는 자는 없기 때문이다. 生老病死의 태어남은 곧 늙어 가는 것을 말하고 있다. 老人은 그 경험이 도서관과 같다고도 한다. 이를 무시하고 노인의 존재를  뒷방신세로 전락시키는 사회는 어둠의 사회일 것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From the cardle to the grave.)는 아기나 노인이나 인간의 생명은 하늘이 내려 준 존엄한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복지의 核이 여기에 있다. 자본주의는 資本이 생명인데 지금은 賤民化 되어가고 있는 것이 문제이긴 하다. 덕수궁 인근 오송(五松) 빌딩앞에 전시되어 있는 조각상 앞에서 한 컷을 남긴 필자의 모습(모든 조각은 아름답다.)   100세 시대이지만 인간은 과소비에 중독된 생활로 인하여 현재의 생활에 취하여 미래를 잃어 버린 삶이다. 노후가 경제적으로 불행해져 버리고 말았다. 잘 나갈 때 그만 인생을 허비하듯 살았을 뿐만 아니라 카드에 익숙하여 지면서 저축을 모르고 살았기 때문이다. 노후에는 요양병원에 갈 여력마져 없어서 쪽방에서 혼자 살다가 고독사에 이르는 경우가 현실로 닥쳐 오고 있다. 어떻게 해야 장수시대에 살아 남을 것인지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본다. 직업 선택이나 취미도 노후를 위한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혼자 살면 행복이 쏟아질 듯 여기는 세상이지만 사실은 부부가 백년해로 (百年偕老)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단다. 病床에서 보내는 장수는 의미가 없으며, 가족에게도 부담이 크다. 기껏 요양원으로 보내져서 창문을 통하여 자녀를 기다리는 삶도 비극이라고 본다. 치매가 따르는 노년은 불행자체다. 필자는 3대가 함께 살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돈만 있으면 세상 일이 다 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바르게 사는 길은 일찍부터 교육이 되어야 바른 길이 보일 것이다. 조상을 받들고 孝를 숭상하던 우리민족의 미풍양속을 깡그리 팽개쳐 버리고 말았다 따라서 조손교육(祖孫敎育)이 중요하다. 밥상머리 교육은 실천이 따르게 하는 바른 교육이다. 문화는 문화전파의 법칙에 따라서 다른 데로 번져 나가기 마련이긴 하지만 자기 나라의 좋은 제도를 버리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일게다. 장수시대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라이프사이클에 따른 철저한 관리와 재산의 포트폴리오 구성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어릴 때부터 노인에 대한 바른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나이가 들어서는 어린이 교육을 하는 것이다. 죽는 순간까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찰이 절실히 필요할 것이다. ''나는 행복하다.'' 를 주문(呪文)처럼 입에 달고 살면 習이 생기게 되어 행복해 지기 마련이다.     ::   이경국(프리랜서 작가) 약력   ::    --  대구대학교 경제학과  졸(1974)   --  프리랜서 작가(현)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  사) 국어고전문화원 이사(현) --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 오피니언
    • 이경국의 경제칼럼
    2021-07-26
  • [박현정의 북에세이 1] 초고령 사회를 준비해야 하는 이유
          박현정 작가. 글쓰기가 쉽잖은 일임에도 카카오 브런치 작가, 네이버 북에세이스트로 열정을 쏟아내는 그녀로부터 첵을 매개체로 소통의 시간을 만난다.    요즘 무슨 사업을 하든 MZ세대를 휘어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SNS 활용이 원활하고 입소문이 빠른 그들의 눈길을 잡아야 하는 것은 어느 업종에서든 인정한다. 그럼에도 나는 오래전부터 실버세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해왔다.   언젠가 맞이할 초고령 사회, 건강한 나이듦을 준비해야...   모바일 서비스가 쉽지 않은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해 거기서 니즈를 파악한다면 어떨까. 가능성이 큰 시장을 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에 가득했는데, 마침 눈에 띄는 책이 있었으니 바로 이 책 [초고령 사회 일본에서 길을 찾다]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늙은 국가가 일본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고령자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현상들이 등장하고 있다. 노인을 위한 편의점이라든가 IT기구 체험장 등이 눈에 띈다. 그에 반해 빈집이 늘어나는 위험한 모습도 보인다.   빈집을 관리하지 않는 집주인에게 정부는 세금의 불이익을 주는 제도도 마련했을 정도다. 시급함과 심각함이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후에는 체감하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답을 찾다]를 읽으면서 얼마나 자주 고개를 끄덕였는지 모른다.   남의 일 같지 않은 심각함에 연필로 줄 치며 열심히 읽었다. 고령사회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그에 따른 일본의 성공사례들이 가득한 책이다. 고령화율이란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다. 그 값이 7%면 고령화 사회라고 하고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가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초고령 사회 일본에서 길을 찾다 (김웅철 지음/ 페이퍼로드 출판사)]   일본이 고령사회가 된 것은 지난 1994년부터다. 고령화사회가 된 이후 벌써 27년이 지났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한국은 어떨까? 우리는 세계 신기록이라는 타이틀을 얻는데 1999년에서 2017년까지 18년이 걸렸다. 저자는 심각한 저출산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원인이라고 말한다.   일본 단카이 세대를 알아보자. 1947년부터 1949년까지 일본에서는 약 680만 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이들은 일본 고도성장기와 쇠퇴기를 함께하며 일본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1958년 개띠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젊은 노인들과 어느 정도 비교가 가능하다.   단카이 세대는 평생을 현역처럼 일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일 없는 무료함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잘 아는 세대다. 시간과 체험을 소중하게 여기는데, 나홀로 여행을 즐기기도 한다. 마지막 가는 길 역시 직접 준비하고 싶어 하는 계획성도 가지고 있다.   이들의 모습이 어색하지만은 않다. 우리나라에 일본의 모습이 상륙하는 게 멀어 보이지 않는다고 [초고령 사회 일본에서 답을 찾다]에서는 말한다. 우리가 맞이해야 할 고령사회의 단면이다. 그런데 조금만 바꿔서 생각해보자. 문제가 있는 만큼 해결할 것도 있을 것이며 거기에 우리의 사업도 가득하지 않을까.   작가는 지역 커뮤니티의 부활에 대해 이야기 한다. 방과 후 교실을 운영하는 뉴타운 고령자의 이야기, 고령자 단지에 대학생들이 찾아오는 이야기, 고령자 가정에 홈스테이를 하는 이야기, 고령자들의 새로운 일자리인 결혼 중매 등의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취미 활동을 활발하게 하면 지역 상품권을 주는 일본, 그런 제도도 좋아 보인다.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는 어르신들에게 바깥 활동뿐만 아니라 집에서라도 뭔가를 하게 해 드려서 그것을 쿠폰으로 발행한다. 생활에 여유를 주는 이런 제도는 우리 역시 받아들이면 좋겠다.   치매 가족의 안식처인 치매 카페이야기, 부족한 간병 인력을 대체하는 노인 인력 이야기, 재택 임종 도우미 이야기, 시골 노모를 지켜주는 가전제품 이야기, 노인의 친구가 되는 감정로봇의 이야기 등 아는 내용이지만 실제 사례를 읽으니 와 닿는 느낌이 신선했고 필요성도 확 느껴졌다. 노인들의 아침 체조를 담당하는 로봇에 대해 처음에는 노인들이 거부감을 느꼈지만, 시간이 흐르자 친숙해져 사람이 리드하는 것보다 더 잘 따라한다는 내용을 읽었을 때는 오히려 사람보다 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우리 역시 음식점에 가서 기계로 주문을 하면 그게 더 편하고 시간도 단축되듯이 말이다.   고독사 보험까지 등장했다. 보안경비회사의 가사대행 서비스, 노인 사회의 펫 신탁 회사, 시니어 민박의 고령화 해소방법, 추억의 다방 부활 이야기 등에서는 고령 인류의 새로운 세상을 엿볼 수 있다. 넓은 주차장과 널찍한 테이블, 푹신한 소파를 갖춘 100석 이상의 다방이 노인들에게 안정감과 여유로움을 준다.   일본 시니어 세대는 해외유학도 많이 간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멈춘 게 아쉬울 뿐, 꿈은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하니 상황이 좋아지면 그들의 희망사항은 날개 돋힌 듯 활기를 띌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걸으며 배우는 워킹 투어도 인기가 있다.   늘어나는 졸혼 역시 빠뜨릴 수 없다. 좋은 관계를 위해 억지로 참고 사는 게 아니라, 부부라는 관계는 유지하되 거리를 두고 사는 모습이 크게 억지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장성한 자식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 선에서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하니 크게 나쁘지는 않다고 본다.   “늙어감을 수용하는 긍정적인 자세를 향노학이라고 한다. 향노학이란 살아가는 과정 그 자체를 늙음으로 향하는 프로세스로서 인식하는 학문이다. 사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늙음을 향해 나아간다. 따라서 모든 연령의 사람들이 향노학의 대상이 되고, 주체가 된다. 한 살부터 향노학학회 회원이 될 수 있다.”   일본 향노학학회의 소개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게 나만은 아닐테다. 초고령 사회에서 노인을 위한 그들만의 시스템과 제도가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모두 만나게 될 우리들의 미래이기 때문이리라.   우리 사회는 ‘젊고 건강한 노인이 되자’며 은연 중에 강요한다. 노인들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을 하고, 보조식품을 먹고, 지식과 커리어를 쌓는다. 좋은 취지에 부합하는 멋진 행동이다. 그러나 인간은 늙음 자체를 거부할 수도 없고 저항 역시 할 수 없다. 나이를 먹으면 당연히 몸은 약해지고 병은 생긴다. 힘은 없어지고 기력도 달린다.   젊고 건강한 노인만이 우대를 받는 세상은 너무나 가혹하다. 돈 없고 힘없는 노인들이 슬프고 외롭지 않게 살 수 있는 세상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역시 나이를 먹을 것이며,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노인의 모습은 우리 앞에 놓인, 언젠가는 가닿을 바로 코앞의 앞날이기 때문이다.   *MZ세대: 198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초에 탄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말     ::  박현정 작가 (경북대학교 영어영문학 석사)  ::    툴기획㈜ 대표 부모교육(육아, 독서법 등) 강의 및 컨설팅 독서모임 지도(예비 창업자, 기업가, 학부모)   카카오 ‘브런치 작가’ (http://brunch.co.kr/@booklove) 네이버 블로그 ‘북 에세이스트’ (https://blog.naver.com/jennyphj) 인스타그램 ‘새벽-독서-성장 공간’ (http://www.instagram.com/book_diary_jenny) 인스타그램 ‘홈스쿨링 공간‘ (http://www.instagram.com/military_haha_bro) 페이스북 ‘소통의 공간’ (http://www.facebook.com/jennyphj) 개인 메일 jennyph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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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명작가
    2021-07-23
  • [조 순의 '역사는 미래다' 36]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 의도와 중화주의
      대구저널의 기획 연재 '조 순의 역사 콘서트'의 집필을 맡은 조 순 문학박사, 지산학연구소장    한국과 가장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중국은 1949년 공산주의화 이후 1992년 우리와 정식수교를 체결했다.   이후 양국은 모두 경제적인 면에서는 2.3위 교역 상대가 될 정도로 경제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한 것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유사(有史)이래 중국으로부터 선진문물을 전해받은 경우도 있지만, 우리가 수난을 당해왔던 시절이 더 길고도 깊다.   고조선(古朝鮮) 시대에 한사군(漢四郡)의 설치, 고구려의 수·당 전쟁(隋·唐 戰爭), 고려· 조선의 공녀문제(貢女問題)를 비롯하여 가까이는 6,25 전쟁까지 우리와는 늘 대척점(對蹠點)에 서 있는 국가이다.    한·중 수교 10주년이었던 해에 중국사회과학연구원(中國社會科學硏究院) 소속 변강사지연중심(邊疆史地硏中心)이 주관한 2002년 2월28일부터 2006년까지 5개년 계획의 프로젝트의 ‘동북공정’은 중국 정부의 승인하에 중국사회과학원과 랴오닝(遼東)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 등 동북 3성이 연합해 추진한 국책사업으로 우리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중국은 치밀한 계산하에 그들의 이익을 위해 한국의 통일 후까지 대비하여 고대 우리의 영역인 고구려· 발해 ·고조선 부여 등을 중국의 지방 정권으로 편입해 유네스코(UNESCO,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등 세계 각국에 홍보해오고 있고, 중국외교부 홈페이지의 한국 소개란에도 고구려를 삭제시키는 역사적 왜곡과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고구려를 고대 중국 동북지방에 있었던 중국의 소수민족의 하나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출처:다음 백과사전)   중국은 '동북공정’ 작업 이전에, 현재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며 티베트 망명정부의 실질적 지도자이며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라마(Dali Lama, 14대)의 나라로 유명한 티베트를 ‘서남공정(西南工程)’이라는 명목으로 1950년 침공하여 1965년 서장자치구(티베트족 자치구, 西藏自治區)라는 이름으로 티베트의 역사와 문화를 중국에 편입시켜 버렸다.   그동안 티베트는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독립운동을 벌여왔지만 한번 무너진 국가는 다시 재기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음을 산교육으로 말해주고 있다.   중국은 북한이 고구려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북한을 한국의 통일이후 북한지역을 중국 영토화하는 것부터 간도 귀속문제( 일본이 1909년에 청나라와 체결한 협약으로, 일본이 남만주의 철도 부설권을 얻는 대신 간도를 청의 영토로 인정한 조약) 차단, 한국의 영향력 차단 등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치밀하게 추진하고 있다.   반만년 가까운 우리 역사를 그들의 야욕에 의해 우리나라의 역사 시간을 2천년 안팎으로 줄이고자 하는 야만적인 행위에, 모든 것을 동원하여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 저들은 우리가 강하게 대응할 때 눈치를 보고 조심하는 습성이 있다.   2013년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習近平)이 제시한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 전략(2014년~2049년)도 세계 경제 중심을 중국이 차지하겠다는 중화주의(中華主義)의 야욕이 깊게 깔려져 있기에 우리는 물론 참여한 주변국이 치밀하게 대응하지 못할 경우, 중국에 경제적으로 예속화되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중국은 그들이 세계중심이고 과거 주변국으로부터 조공을 받는듯한 오만한 자세로 중화주의에 사로잡혀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영역까지 세계를 제패(制霸)하고자 하고 있다.    ‘서남공정’ ‘동북공정’에 이어 ‘일대일로’는 신중화주의(新中華主義)의 시작이다. 지나간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우리 모두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 조 순 문학박사, (사)지산학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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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순의 역사 콘서트
    2021-07-23
  • [이경국의 투자이야기 46] 닭과 계란의 먼저 다툼?
    '이경국의 경제칼럼'을 집필중인 이경국 프리랜서 작가   인간이 살면서 쉼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제대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문제가운데 하나가 닭과 계란의 어느 것이 먼저냐에 대한 논쟁이다. 다만 '닭이 알보다 먼저'라고 말하니 닭이 먼저일 것이란 弄섞인 말은 하고 있다. 그렇다면 닭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질문을 하면 금시 답변이 궁해질 것이다. 과학의 이치상 답이 궁해지기 마련이다. 인류의 시원에 대하여 꿰뚫고 있으면 정답이 바로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필자는 호기심이 많은 편이어서 관심을 지니고 골똘히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우선 장닭이 먼저인지 암탉이 먼저인지에 대한 분별도 덩달아 애매하기 짝이 없다. 이를 과학보다는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살펴보면 어떨까 싶다. '빈곤의 악순환'은 어느 싯점에서 가난의 고리를 끊어 버리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이치와 맥이 상통한다고 본다. 가난과 빈곤은 고리가 서로 물리어져 있기 때문이다. 부지런하여도 일생을 가난속에 사는 경우도 있긴하다. 행복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는 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많이 웃으니 행복해 진다는 논리도 근거는 있다고 본다. 경마, 경륜, 슬롯머신은 투기적 요소가 다분하지만 법적으로 허용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호도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유명절에 국민오락인 고스톱놀이는 윷놀이 보다 더 즐기는 편인데도 위법으로 여긴다. 이는 화투는 합목성(合目性)이 없다는 것 하나 때문이다. 빠찡코는 되고 고스톱은 안되는 이치는 마치 불륜이 모텔에서는 재수 없으면 걸리지만 호텔에서는 비밀이 보장이 되어 괜찮다는 이치와 다를 바 없다고 본다. 코로나 방역에 만원버스와 전철은 가능한데 어찌하여 택시는 2인의 제한인가? 이러한 탁상공론의 국민을 깔보는 행정은 좌경의 극을 달리는 대목이다. 백화점이나 공연장은 모여도 가능하지만 영세 음식점이나 야외 집회는 단속을 한다. 엿장수 가위 같은 고무줄 잣대 적용은 국민의 불신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가난과 역병을 고도의 정치적 술책으로 이를 악용하여 국민을 최면에 걸리게 하는데 문제가 심각하다는 여론이다. 백신접종으로 사망하는 자가 부쩍 늘어나고 있는데도 기저질환 한마디로 끝이다. 어안이 벙벙하여 할 말을 잃게한다. 멀쩡하게 살아 있을 사람이 백신주사를 맞고 사경을 헤매거나 죽음에 이른다면 이는 심각한 일이다. 백신접종률이 목적인가? 어찌 K방역인가? 혹자는 Kill방역이라고 꼬집고 있다. 사실 백신접종 이후 사망자의 수는 대폭 늘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은 양심적인 의사에 불과하다. 죽음이 大를 위한 小의 희생으로 여긴다면 어처구니 없는 처사일 것이다. 달걀이 태양열에 의하여 부화되는 장면을 보았다고 닭보다 알이 먼저라고 우긴다면 그것이 정답일까? 그렇다면 그 알은 하늘에서 떨어 졌는가 아니면 땅에서 솟아 났다는 말인가..... 나는 닭과 알에 대한 시비를 한 칼에 정리한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인간은 死後의 세계를 모르니 現生이 좋다면서 내일을 희망여역으로 여기면서 살아가는 모순의 고등동물이다. 따라서 닭과 알은 한마디로 ''무종말적 일의 연속성(無終末的  一의 連續性)으로 이해를 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풀이를 하면 ''끝이 나지 않는 하나의 지속적인 것''쯤으로 이해하면 될 듯 싶다. 다툴 가치가 전혀 없다는 얘기란 것이다. 청년 일자리가 없다고 난리다. 종소기업은 사람이 부족하다고 한다. 일류대학을 나와서 그러한 곳에서 일을 할 수 없다고 한다. 5D업종에는 주로 외국인 근로자로 대체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숙사도 있고 식당도 구비되어 있다. 사실 이를 악물고 몇 년간 죽을 힘을 다하여 일을 하면서 저축하여 종자돈 (seed- money)만 마련하면 그후는 돈이 잘 굴려가는게 자본주의 속성이다. 그런데도 캥거루 가족이 되어 카드를 긁어 대어 부모신세를 지면서 실업자로 살아가는 놈팽이 고학력자가 많은 사회이다. 결혼도 기피하고 설사 혼인을 하여도 출산을 하지 않는 인구절벽의 기이한 나라가 되고 말았다. 이는 전적으로 정부정책의 빈곤에서 비롯되었다고 필자는 여기고 있다.   덕수궁내에는 반송(槃松)이 여러 그루가 있다. 소나무가 옆으로 부채처럼 자란다. 가지가 많아 바람 잘날이 없을지도 모른다. 7남매를 키우신 어머니 생각에 잠시 숙연해짐을 느끼다.(반송과 필자)   틈새시장을 이용하면 돈벌이 할 곳은 사실 적잖이 있다는 것이다. 닭과 알로 다투지 말고 무슨 일이든 목숨걸고 일하면 길은 열리기 마련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젊은 이들이 낮에는 자고 밤에는 기어 나가서 흥청거리는데 이런 자에게 툭하면 국민의 혈세로 현금을 살포하고 있는 나라이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어려운 일을 하면서 참고 견딘다면 종자돈 여하에 따라서 인생이 확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일정액만 모이면 명문대 출신 수재들이 자금을 불려 줄려고 안간 힘을 쓰면서 대접하기 시작할 것이다. 세상은 그렇다. 처음이 어렵다. 시작이 반이다. 돈은 그 속성이 눈덩이를 굴리는 것과 같다. 그러나 빈손이면 얼굴이 찌그러지고 가슴이 탄다.   이는 자본주의가 남긴 비극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   이경국(프리랜서 작가) 약력   ::    --  대구대학교 경제학과  졸(1974)   --  프리랜서 작가(현)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  사) 국어고전문화원 이사(현) --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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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국의 경제칼럼
    2021-07-19
  • [조 순의 '역사는 미래다' 35] 국민의 해(害)를 제거해준 최무선(崔茂宣) 장군
      대구저널의 기획 연재 '조 순의 역사 콘서트'의 집필을 맡은 조 순 문학박사, 지산학연구소장   임진왜란(壬辰倭亂)의 3대첩인 한산도대첩(閑山島大捷, 1592년) ·진주대첩(晉州大捷, 1차1592년, 2차1593년) ·행주대첩(幸州大捷, 1593년)은 우리 전사(戰史)에 길이 빛나는 전승(戰勝)이며 국민적 자긍심을 일깨워 준 쾌거였다.    이 역사적 사건은 국민 대부분이 역사의 기본지식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승리의 원동력을 제공한 것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200여년 전 한 위인의 피와 땀의 집념어린 노력이 뒷 받침이 되었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의 공은 만세(萬世)토록 백성의 해(害)를 제거하였으며...그 혜택을 생민(生民)에게 입힘이 어찌 적다고 하겠습니까? 관향(貫鄕)인 고을에 사우(祠宇)를 세우고 봄·가을에 본관(本官)으로 하여금 제사를 행하고, 그 자손은 공신으로 칭하여 유죄(宥罪: 죄가 있을 시 용서함)하고 녹용(錄用)하게 하소서”. - 《세조실록》 3권, 세조 2년 3월 28일 정유   "일찍이 말하기를 왜구를 제어함에는 화약(火藥) 만한 것이 없으나, 국내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 《태조실록》 7권, 태조 4년 4월19일 임오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원나라 화약기술자 이원(李元)을 통해 우리 역사상 최초로 화약기술을 익혀 국산 무기화에 성공시킨 위대한 과학자이자 무인(武人)인 그는 국가와 백성들이 왜구의 침략과 노략질로 고통당하던 때에 선견지명으로 화약을 무기로 제조하여 국가의 해(害)를 제거한 명장(名將) 최무선(崔茂宣,1325~1395) 장군이다.   그 위대함에 비하여 그에 대한 고려 시대의 기록은 미비하다 못해 불성실한 것이 사실이다. 정이오(鄭以吾)의 《화약고기(火藥庫記)》에 따르면, 최무선은 중국말을 잘했다고 하고 《세조실록》에는 그가 원나라에 가서 화포 만드는 법을 배워왔다고 하는 등 단편적인 자료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와 함께 전쟁터를 누빈 조선의 창업주(創業主) 이성계(李成桂)에 의하여 되살아났다.     최무선은 1328년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마단리에서 광흥창사(廣興倉使:고려시대 관리들의 녹봉을 관리하는 관청)를 지낸 최동순(崔東洵)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영주(永州, 현 경북 영천)로, 시조는 최한(崔漢)이다.      최무선 초상   1377년(우왕 3) 10월 판사(判事) 최무선이 고려 정부에 건의하여 화약 및 화기(火器)의 제조를 담당하는 화통도감(火筒都監)을 설치하였다.(이것을 설치할 당시 화약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대부분의 관리들은 반대와 시기, 비난을 하였다)   화통도감에서 제조된 각종 화기들은 모두 18가지로, 이 중에서 총포의 종류는 대장군(大將軍)·이장군(二將軍)·삼장군(三將軍)·육화석포(六火石砲:화약을 사용하여 돌을 발사하는 포))·화포(火砲)·신포(信砲)·화통(火筒) 등이며, 화전(火箭)·철령전(鐵翎箭)·피령전(皮翎箭) 등은 발사물, 그 밖에 질려포(疾藜砲)·철탄자(鐵彈子)·천산오룡전(穿山五龍箭)·유화(流火)·촉천화(觸天火)와 로켓무기인 주화(走火) 등을 사용하여 1380년(우왕 8) 가을에 왜선(倭船) 5백여 척이 전라도 진포(鎭浦)에 침입했을 때, 도원수(都元帥) 심덕부(沈德符)·상원수 나세(羅世)와 함께 부원수(副元帥)에 임명되어 참전하였다.   고려군에게 화약이 있는지 모르고 있던 왜구들이 배를 한곳에 집결시키자 화포를 발사하여 배를 모두 격침 시켜 버리자 배를 잃은 왜구 잔당들이 육지로 올라오자 병마도원수(兵馬都元帥)였던 이성계가 여러 장수와 함께 모두 섬멸시켰다.   최영(崔瑩) 장군의 홍산대첩(鴻山大捷, 1376년, 현 충남 부여지역) 이성계의 황산대첩(荒山大捷, 1380년 전라도 지리산 부근)과 함께 왜구격퇴의 3대첩으로 불리는 진포 전투 이후로 왜구의 침략은 점차 사라졌고 백성들은 생업에 종사할 수 있었다.(1383년에 관음포(觀音浦) 전투에서도 120여척의 왜선이 침입하자 격퇴하여 우리 해전사(海戰史)에 길이 빛나고 있다)   최무선은 1395년 4월 19일에 죽음을 앞두고 부인 이씨에게 유언으로 아들인 최해산(崔海山, 1380~1443)이 ‘장성하면 이 책을 주라’면서 화약제조의 비법이 적힌 책을 남겼다고 한다. 부친의 유언을 받들어 아들은 화약 제조법을 습득했고, 이후 1401년(태종 1) 군기시(軍器寺)에 특채되어 화포 개발 실험에 주동적 역할을 했다. (화통도감은 설치 10여년이 지난 고려 창왕 때(1388~1389) 없어지고, 군기시(軍器寺)에 흡수되었다).       최무선 과학관에 전시된 화포    최무선이 발명한 화약과 무기(저서로는 『화약수련법(火藥修鍊法)』 있었으나 不傳)는 그의 아들 최해산을 통해 조선왕조의 중요한 국방기술로 전수되었다. 임진왜란 때 육지에서는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이 조선군을 압도했지만, 해전에서는 조선이 일본보다 화포 기술에서 앞서 있었던 것도 그의 화약제조 덕분이었다.   최무선은 고려조에서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 사후 조선왕조에서 의정부우정승(議政府右政丞) 영성부원군(永城府院君)으로 추증(追贈)되었다.   최무선 가문은 아들 최해산(崔海山)· 손자 최공손(崔功孫)· 증손자 최식(崔湜) 등 4대에 걸쳐 국방관련 업무에 참여하여 국방의 기초를 다지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했던 명문가였다. 국가를 유지하는 중심축인 군사력(hard power)을 통해 구름이 드리워졌던 고려말과 조선(朝鮮)을 건재케 한 그는 위대한 경세가(經世家)였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국가운영의 중심인 경제문제와 국방문제에 자유로울 수 있는 상황인지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의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할 것 같다.     :: 조 순 문학박사, (사)지산학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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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순의 역사 콘서트
    2021-07-16
  • [이경국의 투자이야기 45] 금리인상에 적극 대비를 --
    '이경국의 경제칼럼'을 집필중인 이경국 프리랜서 작가   죽을지경인데 어떻게 금리인상에 대비를 한다는 말인가? 이렇게 아우성을 지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하진 않다. 호랑이 한테 물려가더라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길을 모색해야 할 때가 지금이다. 여러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金利가 오르면 부채가 많은 경우 초죽음에 이른다. 이는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간에 마찬가지다. 자고로 남의 돈을 무섭게 여기라고 했다. 금리가 낮다고 마구 빚을 내어 쓴다거나 제로금리라고 공짜인양 은행돈을 끌어다 써 놓고선 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哭소리가 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본다. 사필귀정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금융기관은 예금을 장려하기 보다는 대출을 많이 하게 고객을 유인했다. 카드가 많으면 신용도가 높은 선진시민으로 여기는 사회풍토이다. 필자는 금융기관에서 평생동안 근무를 하였지만 교통카드 말고는 아예 신용카드가 없다. 바보스럽게 산다고 할지 모르지만 빚이 없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발길이 가볍다. 필자더러 신용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여지껏 없었다. 바위보다 더 무거운 부채로 인하여 가정이 다툼으로 이어지면서 이혼에 이르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돈이 사람을 돌아 버리게 하는 경우는 많다. 이미 韓銀에서는 年內 금리인상을 예고를 했다. 금리를 1%포인트 올리면 주택담보 대출을 받은 자와 자영업자는 각 5조원 씩이나 이자부담이 늘어난다. 5조가 누구집 강아지 이름이냐? 자기 자신이 우주의 주인공인데 사람들은 일이 터지면 남의 탓을 하기 십상이다. 주가와 환율 그리고 금리 등은 어느 정도 예측하면서 살아야 현대인이다. 아무리 공짜라면 양잿물도 큰 것을 먹는다 하지만 금리가 낮다고 공짜인 줄 안다면 크게 착각을 하는 것이다. 금융부채는 처음에는 이자만 내어도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원리금을 동시에 상환하여야 한다. 그 무게를 감당하기가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정부는 또 빚으로 잔치를 할려는 심사다. '재정폭주'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文정권은 사방에 門이 열려져 있는지 北에는 실컷 퍼주고도 욕(辱)은 바가지로 얻어 먹고 있다. 개성공단에 전력을 몰래 퍼다 주는 것은 얼빠진 짓이다. 탈원전으로 견디다 못해 전력요금 인상이 코앞에 와 있는데 북한에 국민몰래 전력을 공급하는 행위는 어떠한 말로 국민을 이해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무슨 약점이 잡히어 그렇게 쩔쩔 매는지 국민들의 의구심은 커져만 간다. 敵國에 관대함은 헌법정신에 어긋 나는데도 야당은 본체 만체 하고 있다. 김정은이 훌륭한 지도자라고 침이 마르게 칭송하는 자가 이 나라를 통치하고 있다는 사실이 맞는지 궁금하다. 금리 인상에 철저히 대비하지 못하고 설마 잘 되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있다가는 엄청스러운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부평초같은 당국의 대책도 의문투성이다. 정책은 붓가는 대로 쓰는 수필과 다르다. 금리는 국민의 재산과 직결이 되어 있어 여의치 못하면 생명과 연결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진력(盡力)을 다 하여야 할 것이다. 금리는 다른 나라도 다 오른다거나 아니면 코로나 핑계만 댄다면 곤란하다. 전임 정부를 탓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지났다는 사실쯤은 지금은 알고 있을게다.   지인들과 '부드러운 빛' 전시회 관람을 하였다. 좌로부터 이원목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회장(작가의 父), 필자, 이한나 작가, 미술연감 창시자 이재운 선생, 이문원 前 (주)풍산 대표, 이선기 前화수회 회장.     금리관리는 전문기관의 건의를 겸허하게 수용하지 않고 오기를 부리다가는 침몰하는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선제대응을 하거나 적어도 국제간 경쟁관계의 우위를 확보하여 기선제압하여 나가야 할 것이다. 최소한의 피해로 기업과 개인이 회생하여 새살이 돋아 날 수 있도록 한다면 코로나 사태이후 경제가 점프 할 수 있는 호기를 맞을 것이다. 이럴 때 흔히 말하는 ''위기는 기회''란 말이 딱 들어 맞을 것이다. 선견이 있는 지도자가 화급히 필요한 절체절명의 싯점이 내년의 대선이다. 금리때문에 기업체나 가계가 무너져 내린다는 것은 큰 댐이 작은 생쥐에 의하여 무너진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교훈이 될 것이다.     ::   이경국(프리랜서 작가) 약력   ::    --  대구대학교 경제학과  졸(1974)   --  프리랜서 작가(현)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  사) 국어고전문화원 이사(현) --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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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국의 경제칼럼
    2021-07-12
  • [조 순의 '역사는 미래다' 34] 조선 최초 통신사 박서생(朴瑞生, ?~ ?)
    대구저널의 기획 연재 '조 순의 역사 콘서트'의 집필을 맡은 조 순 문학박사, 지산학연구소장    오늘날 세계에 많은 나라들이 존재하지만, 문을 닫고 살 수 있는 나라는 미국을 비롯한 극소수의 나라들 밖에는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무역을 통해서 생존이 좌우되는 나라이기에 외교 관계의 중요성이 숙명으로 수용해야 될 정도로 중차대하다.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과는 애증이 심하게 교차한다. 모든 면에서 일본에 뒤진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단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는 조선이 1403년(태종 3)에 명나라로부터 책봉을 받고, 그 이듬해 일본의 아시카가(足利義滿) 장군도 책봉을 받자, 중국·조선·일본 간에는 사대·교린의 외교관계가 성립되었다.   그러자 조선과 일본 두 나라는 대등한 처지의 교린국(交隣國)이 되고, 조선 국왕과 막부장군(幕府將軍)은 양국의 최고 권력자로서 상호 간에 사절을 파견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통신사의 명칭이 처음 나타난 것은 1413년(태종13)이었으나, 이 사행은 정사 박분(朴賁)이 중도에서 병이 났기 때문에 중지되었다.   그 뒤 통신사의 명칭을 가지고 일본에 파견된 사행은 1428년(세종10) 정사(正使) 박서생(朴瑞生) 이하의 사절단으로, 이들의 파견 목적은 장군습직(將軍襲職)의 축하와 전장군(前將軍)에 대한 치제(致祭)였다.   이후 통신사의 파견은 정례화되어 조·일 양국간에 우호교린의 상징으로 조선시대 전기간에 걸쳐 총 20회(조선 전기 8회, 조선 후기 12회)가 이루어졌다. 통신사의 파견 이유나 목적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다소 차이가 있다.   조선 전기의 경우 일본 관계에 있어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왜구 문제였고, 조선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막부장군에게 통신사를 파견했다. 따라서 통신사 파견의 표면적 이유는 왜구 금압(禁壓)의 요청과 우호관계 유지를 위한 장군습직 축하 등 주로 정치·외교적인 목적에서였다.   조선통신사 행렬도   조선 전기 일본 국왕사(國王使: 일본국왕 원씨(源氏)가 조선으로 보낸 사신)의 상경로가 임란 당시 일본군의 침략로로 이용되는 등 피해가 심하자, 조선에서는 일본 국왕사의 상경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뒤 일본국왕사의 파견은 중단되고, 대신 막부장군에 관한 일은 차왜(差倭:외교적인 현안 문제가 있을때마다 임시로 파견된 외교사절)가 대신하게 된다.   조선최초 통신사인 박서생의 호는 율정(栗亭) 관향(貫鄕)이 비안(比安), 자(字)는 여상(汝祥) 이다. 그의 스승 길야은(吉冶隱)으로부터 밤나무 아래에서 학문을 강론하고 배웠으므로 율정이라 호를 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점(漸)이며 무관직 5품관 중랑장(中郞將) 벼슬을 지냈다.   박서생은 생몰년 미상으로 일부에서 제시하는(1371~1436) 것도 있지만 현재까지 박서생에 대한 자료는 병화(兵火)로 인하여 소실되어 생몰년이 부정확하다.   율정은 1401년(태종 1)에 진사시험에 합격하고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428년에는 통신사로 다녀왔다. 일본통신사로 갔을 때 배운 水車의 사용을 조정에 건의하여 농사에 일대 혁신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박서생이 역사에서 유명하게 된 것도 최초의 조선통신사란 점이다. 통신사의 호칭이 다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636년부터인데, 이러한 배경에는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변동이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즉, 명·청의 세력 교체와 그에 따른 중화질서(中華秩序)의 붕괴는 조·일 양국에 새로운 연대감과 탈중화(脫中華)의 교린관계를 구축하게 했다.   따라서 조선 후기의 통신사는 청(淸)을 중심으로 한 책봉체제를 배제하고, 조·일 양국의 독자적인 대등 외교의 수립이라는 외교사적인 의미가 있다.   통신사는 그들이 방문한 곳마다 서화·시문·글씨 등을 많이 남겼으며, 그것은 병풍· 회권(繪卷)· 판화 등의 형태로 만들어져 널리 유행되었으며, 이러한 것들이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통신사들은 국내로 돌아와 일본에서 겪은 견문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조선통신사 행로   신유한(申維翰)의 ≪해유록(海遊錄)≫, 강홍중(姜弘重)의 ≪동사록(東槎錄)≫, 홍우재(洪禹載)의 ≪동사록(東槎錄)≫, 신숙주(申叔舟)의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 조엄(趙曮)의 ≪해사일기(海槎日記)≫, 조명채(曺命采)의 ≪봉사일본시문견록(奉使日本時聞見錄)≫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 기록들은 당시 통신사에 참여한 인물들이 일본에서 경험한 사실들을 일기형식으로 기록하여 남겨 놓은 것으로, 당시 문물교류를 살피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외교로 생존해야 하는 우리 현실에서 국내용(?) 도토리 키재기식 싸움에 여념이 없는 정치판의 후진성을 탈피하지 못하면 냉엄한 국제질서 속에서 미래에 안전을 보장받기 어려울 것이다.      :: 조 순 문학박사, (사)지산학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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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순의 역사 콘서트
    2021-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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