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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30] 제눈에 딱인 안경은ᆢ
이경국 칼럼니스트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가 우주의 주인공이자 살아가는 길도 각자 다르기 마련이다. 이는 세상에 미인만 살고 있다면 결코 행복하지 않는 이치와 같을 것이다. 경쟁하면서 치장을 하고 가꾸는데 미적인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안경의 도수가 같다고 하더라도 남의 안경은 어색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흔히 눈에 꽁깍지가 씌이면 박색도 미인으로 보이며 얼굴이 얽어도 보조개로 보인다고 한다. 콩깍지를 벗겨 버리니 더 아름답다고 하면 방법이 없을 것이다. 인간은 물욕이 강할 뿐만 아니라 집착 또한 끈질기다. 이성간에도 상생관계의 인연이어야 소위 필이 통한다는 것이다. 미스코리아 출신을 본처로 삼더라도 생각보다 그렇게 좋지 않다는 결론이다. 우선 미인박명이고 또 손을 탈까 싶어서 늘 심리가 불안하다고 한다. 남자는 대체로 어느 정도는 의심을 지닌다고 하는데 도를 넘으면 의처증이 발병한다. 그리고 8등신 미인일 지라도 밤살이 때 품에 쏙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다. 옛말에 여자는 품는 맛이 있어야 좋다고 했다. 듣고 보니 그럴듯 하다. 美人은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면 되지 않을까 싶긴하다. 양귀비, 크레오파트라, 황진이는 고전미인이라 엉덩이가 컷다고 한다. 多産이 美의 기준인 시대의 미인상이다. 지금은 영상매체 때문에 얼굴이 조막 만 하여야 소위 화면빨을 잘 받는다고 야단들이다. 입에 당기는 대로 실컷 즐기는 시대이다. 찌는 살을 감당하지 못하여 별짓을 다 한다. 남자는 퇴직을 하고 나면 갈 곳이 없다. 퇴직때까지 직장에서 지낸 세월에 눈치가 9단이다. 모른척 하지만 아내의 눈치는 제대로 살핀다는 얘기다. 살은 찌우기도 쉽지 않지만 빼기는 더 어렵다고 한다. 혹자는 숯가마에서 땀을 빼는 여자를 보고 험담을 하는데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여성은 미가 생명이다. 피부가 아릅답다는 것이 최상의 찬사다. 그러나 남자는 정력에 좋다고 하면 사족을 못 쓴다. 목숨을 걸다 싶이 한다. 그들의 가장 설득력이 있는 말은 '종족번식' 이라고 한다. 할아버지가 종족번식의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될텐데 말이다. 깃털이 다른 새끼리 사랑하는 것을 본 적은 없다. 유유상종이다. 인간도 조건이 비슷한 사람끼리 통한다. 끼리끼리 모여 살기 마련이며 부부도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서 닮아 가면서 산다. 제 눈에 안경이다. 짚신도 짝이 있고 사람도 상대가 있다. 주위에 이러한 부류의 부부를 보면 닭살이 돋는다. 닭은 날개가 강하여 닭살도 큰 편이다. 가금류 가운데 오리와 닭은 속담도 많고 배울점도 많다. 얼굴에 흉터가 보조개로 보인다면 이는 베스트 합궁이 아닐까 싶다. 천생연분을 찾아야지 미를 추구하다 보면 낭패당하기 십상일 것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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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29] 가슴에 핀 감자꽃 추억
이경국 칼럼니스트 감자는 구황작물 (救荒作物)로 4대 식량식물(쌀, 밀, 옥수수, 감자)의 하나이다. 옥수수와 감자는 강원도의 힘을 나타내기도 한다. 소시절에 감자를 캐는 날은 괜히 기분이 들뜨곤 했다. 감자는 흰감자, 자주감자 그리고 분홍감자가 있다. 자주감자에는 자주꽃이 핀다. 흰감자에 분홍꽃이 필리는 없다. 꽃따라 감자의 색깔이 같다. 꽃과 열매는 서로 내통하고 있나 보다. 감자는 눈이 여러개가 있다. 눈을 돌려 내어서 심어야 싹이 나는 것이다. 식물에 눈이 있는 것은 감자가 유일할지 모른다. 감자의 눈은 보는 눈처럼 생기긴 했다. 식량대용으로 감자를 많이 먹었다. 그냥 삶아서 먹거나 이겨서 스푼으로 먹어도 좋다. 그러나 구워서 먹으면 맛이 일품이다. 콩서리 먹듯 입이 시커멍스가 된다. 누나와 서로 쳐다보면서 웃는다. 살짝 태우면 감자의 진미를 느낄 수 있다. 시골의 정지 (부엌)에서 구운 감자의 맛은 캠핑가서 구워먹는 것보다 더 정겹다는 생각이 든다. 정지에서 의자에 반듯하게 앉아서 감자를 굽지 않는다. 쪼그리고 앉아서 감자가 잘 익기를 연신 부지깽이로 뒤적이는데 기다림의 시간은 길게만 느껴졌다. 고구마는 썪으면 쓸모가 없지만 감자는 요긴하게 쓸 수가 있는 채소류이다. 감자떡의 원료가 된다. 고교시절의 눈부신 여고생의 깃은 감자가루로 풀 (가닥꾸리)을 맥여서 다려서 입는다. 멀리서도 얼굴이 희게 보이며 자주색 가방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늘 궁금 했었다. 여고시절의 자주색 가방은 시의 한 귀절마냥 뇌리에 남아 있다. 돌이켜 보면 그 당시가 천상의 시절이었다. 당시 주인집의 딸도 지금은 중년을 넘어 初老의 할미가 되어 있으니 인생은 아무리 별것 아니라 하지만 슬픔을 머금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아무리 좋아했던 사이라도 남의 아내가 되어 세상을 살아 온 것이다. 감자를 함께 구워먹던 소싯적 추억이 아련하게 떠 오를 뿐이다. 비내린 뒤 쌍무지개는 아니었지만 무지개가 사라지듯 청춘도 세월에 앗기고 말아 어떨 때는 향수에 젖어 눈물이 맺힌다. 작은 감자는 옹가지에 담아서 발로 비비면 껍질이 벗겨진다. 못살던 시절의 감자는 귀한 한끼의 식사로 충분하였다. 설탕이 없던 시절에는 사카린이나 소금을 찍어서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분홍감자는 색이 이쁘다. 아마 핑크빛 사랑때문이 아닐까 싶다. 감자는 껍질을 벗기지 않고 삶아서 먹어도 맛이 좋다. 껍질을 벗기는 동안에는 먹고 싶은 것을 잠시 참아야 한다. 뜨거워서 이쪽저쪽 손을 움직여야만 했다. 자주감자는 분이 많아서 맛은 좋으나 더러 아린 맛이 나기도 했다.감자 (감저, 甘藷)는 한자로는 감저이다. 감자탕에는 사실 감자가 몇조각 뿐이다. 순 돼지뼈 뿐이데 이름은 <감자탕> 이다. 돼지감자는 스스로 자란다. 가축인 개와 돼지라는 이름은 좋지 않는데 몽땅 써 먹는다. 개살구, 개떡, 개차반은 물론 욕도 많다. 감자를 소재로한 글은 많다. 권창순 시인의 ''감자''를 소개해 본다. [ 배달후 며칠만인가 / 종이상자를 열어보니 / 두고 온 산골이 그리운지 / 농부가 그리운지 / 서로 부등켜안고 / 눈마다 눈물로 싹을 틔웠구나 ] 곡식은 농부의 발자욱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감지도 농부가 그리위 싹을 틔웠는데 시인의 눈에는 눈물로 보였나 보다. 이렇게 모진 고통을 감내하고 생겨진 감자가 인스턴트 식품때문에 외면을 당하고 있는 시대이다. 주말이나 휴일에 가족이 모여서 감자나 고구마 파티를 열면서 소싯적 얘기를 들려주면 좋으련만 애초에 모이지를 않고 모래알 처럼 각자 사는 세상이니 걱정이 되기는 한다. 감자꽃의 색깔이 세종류이니 올해는 화단에 감자를 심어서 꽃이 피면 글과 함께 팬여러분께 보낼 생각이다. 물론 손주들과 함께 감자얘기로 꽃피울 날을 기대해 본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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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28] 고향은 늘 그리운 곳
이경국 칼럼니스트 고향은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그립다고 했다. 외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향수에 젖어 얼마나 외롭게 지내면서 살까? 고향을 떠나 도회지에서 산 기간이 훨씬 더 길어도 고향은 늘 그립기 마련이다. ''고향땅이 여기서 몇리나 되나?'' 이제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고향도 가기도 쉬울 것이며, 모습 또한 많이 달라져 버리고 말았다. 도회를 닮아져 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고향을 생각하는 習을 쌓아 나가야 할 것이다. 경쟁이 극심한 시대이니 마음이 자꾸만 사악해져 가고 있다. 고향을 생각하는 선한 마음으로 감싸야 된다는 의미이다. 그향은 어머니 품에서 말을 배운 곳이다. 아무리 오랜 기간을 객지에서 살았다고 해도 어머니께 배운 사투리는 그대로 쓰는 경향이 있다. 고향은 추억이 많은 곳이다. 따뜻한 추억은 고향으로부터 나오기 마련이다. 고향이 수몰이 되어 외로워하는 실향민이 주위에 많다. 안동댐과 임하댐이 생긴 탓이다. 흔적없이 사라진 고향이 물속에 잠겨 버렸으니 얼마나 가슴이 저밀까? 그들이 애써 고향을 그리워 하는 詩나 에세이를 읽으면 여간 가슴이 아리지 않다. 서울에서 살아온 기간이 고향에서 살았던 기간보다 두배도 넘었는데도 꿈은 고향에 관한 것 뿐이다. 남산 타워나 청계천은 꿈에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삽작에서 기다리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꿈속에서 자주 보인다. 고향보다 더 정겨운 곳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聖人은 고향에 가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 할 것이다. 오죽하였으면 고향 까마귀만 보아도 반갑다고 했을까? 연어는 머나먼 거리인데도 고향(?)을 찾아가기 위하여 몸부림을 친다. 그리고 그곳에서 몸을 푼다. 산란을 하고 숨을 거둔다. '타향은 싫어 고향이 좋아'란 노래 가사도 있다. 아무리 정이 들어도 타향이 더 좋을리가 있을까..... 지지리 못살던 고향에서 농사일을 하다가 도회에서 성공하여 고향으로 돌아오면 그때는 '농장을 경영한다'는 말이 있다. 부모님곁에 음택(陰宅)을 마련해 두었는데 아내보다 먼저 떠나게 되면 아무래도 1000도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 갈 것만 같다. 그렇다고 아내보다 더 오래 살고 싶지는 않다. 일평생 밥을 한번도 지어 보질 않은 잼뱅이인데 자신이 없다. 고향과 타향이 불이(不異)가 아닐진데 왜 그런지 고향이 좋다. 내 고향 풍산은 평야다. 벼농사와 무배추가 유명하다. 풍산김치는 인기가 좋다. 그리고 고향 율리(栗里) 출신은 모두 객지에서 잘 살고 있다. 지난해 친구들과 식사를 하면서 밤실은 풍수지리로 보아도 좋다고 서로 공감을 한 적이 있었다. 고향은 살던 집과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스며져 있어 생긱만 하여도 눈시울이 붉어 진다. 필자의 고향은 남쪽 바다는 아니지만 어제처럼 고향이 생각속에 남아 있다. 일기를 일찍부터 썼기에 소싯적 기억이 작은 뇌의 분실에 저장이 되어 있어 가끔씩 꺼내어 글을 쓰고 있다. 어려서는 도회지를 동경했었는데 지금은 고향이 그립기만 하다. 그러하다. 고향은 머나먼 남쪽 하늘아래 있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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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27] 신비의 바다 이야기
이경국 칼럼니스트 내륙지방 출신이라 늘 바다를 동경하면서 자랐다. 바다를 처음 접해 본 것이 중학 3학년 때 보이스카웃 단장으로 포항에 갔을 때였다. 조선중기 사상가인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은 이보다 훨씬 더 늦은 나이에 바다를 처음 보고서 경이로움을 글로서 남긴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바다를 단순히 여름한철 바캉스를 즐기거나 고기를 건져 올리는 곳으로만 생각하고 있다면 곤란하다. 바다는 자그마치 지구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비도 바다에 거의 다 내린다. 바다는 또 쉼 없이 움직인다. 힘이 들어서 거품을 뿜어내지는 않을 것이다. 밀물과 썰물이 서로 주고 받으며 파도를 일으켜 낸다. 밀물과 썰물이 아무도 모르게 연민을 느껴 어쩌면 사랑하면서 거품을 남기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파도가 철석철석하는 소리는 누구나 좋아한다. 그리움이 지나쳐 거품으로 그 흔적을 남긴다는 생각이 들면 경외의 마음이 일어난다. 작은 물고기는 어디서 서로 짝을 지어서 새끼를 낳아 代를 이어 나가는지 본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포유류인 고래는 어떻게 염분이 3%나 되는 바다에서 살아가는지 신비롭다. 필자는 바다에서 살던 고래가 육지에서 살다가 다시 바다로 간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바다는 그 속이 어머니 품속같다. 폭풍이 일고 거센 파도가 일지만 바다는 여성인 She로 표현함은 대단한 발상이다. 이는 모든 것을 품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원시인은 하늘은 경배하였고 바다를 동경을 하였을 것이다. 바다는 끝없이 나아가면 낭떨어지라고 소시절에 필자는 원시인처럼 생각을 했다. 그 넓으면서 고마운 바다를 인간이 더렵혀서 지금 바다가 신음을 토해 내고 있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것도 중병상태이다. 소금기가 있는 바닷속에서 기형 물고기가 생긴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지구촌이 쓰레기를 줄이는 노력을 게을리 할 경우 후손들은 호흡이 가쁜 일상이 되고 말 것이다. 바다는 생명의 모태이다. 바다가 신음을 토하면 지구는 통증을 호소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쓰레기 줄이는 일은 인류의 숙제가 되었는데 이는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면서 무리하게 개발한 결과이다. 과소비가 남긴 당연한 부메랑이기도 하다. 냉정하리만치 쓸쓸한 바닷가는 여름한철 몸살을 하리만치 붐빈다. 아침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는다. 만선으로 항구를 찾아 들어오는 어부의 모습은 행복으로 가득차 있다. 필자는 <노인과 바다>를 좋아한다. 그것을 <어르신과 바다>라고 한다고 공경심이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소설의 제목에 감칠맛이 그만 사라져 버리고 만다. 노인이 이렇게 푸대접을 받는 시대는 없었다. 독거노인이 들끓고 있거나 요양원에서 생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晩年의 삶은 고독하기 짝이 없다고 본다. 토인비가 예찬한 우리나라의 대가족제도는 이제는 홀로사는 처연(凄然)한 세상으로 변하고 말았다. 3代가 함께 살고 있는 필자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행하면 가능한데 모두 핑계가 많다. 바다는 인간으로 본다면 낮은대로 임하거나 하심(下心)과 상통하는 포용의 大海임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가난했지만 대대로 자녀를 많이 둔 나라였다. 어찌하여 출산율이 세계에서 꼴찌인 나라로 전락하였으며, 이혼율 또한 창피스럽게도 1위인지 그 요인을 충분히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육지를 아름답게 유지하지 못하는 나라는 바다도 제대로 관리 해 낼 수 없다고 본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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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26 ] 온양민속박물관
이경국 칼럼니스트 실로 오랜만에 다시 찾은 온양민속박물관이다. 안동 출신이신 김원대(2000년 작고)님께서 1978년 설립한 박물관 분위기가 마치 고향에 온 느낌이다. 춘당춘색이 고금동이 아니라 마치 상전벽해의 모습임을 느끼게 하다. 청년 때 본 모습과 장년인 지금 보는 박물관의 모습은 판이하게 다르다. 조만간 다시 찾아가 볼 요량이다. 晩年에 보는 모습은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소시절을 연상하는 모습은 향수를 자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순환발전을 하고 있긴 하지만 때로는 그대로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우선 온양은 따뜻한 곳이다. 마음도 안온하다. 지명에 溫字가 있으면 거의 온천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그러하다. 온양, 온정, 온혜가 그렇다. 그리고 역이름이 '온양온천역'이다. 애써 '온'천이란 말을 넣고 싶었을 것이다. 온양군청을 옮길 때 부지를 회사에서 매입하여 온양지점을 이전하고 회사의 창고로 활용을 했었다. 회사가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렸는데 그 많은 창고의 물건들은 연기가 되어 그만 色이 空으로 변해 버렸는지 모를 일이다. 전철이 온양까지 운행된다는 것은 다행이다. 마치 원족이라도 가는 기분으로 들뜬다. 도착하자 말자 눈에 크게 뜨이는 '백채김치찌개'에서 점심을 해결하였다. 맛이 일품이다. 식후경이어야 만사가 형통되기 마련이다. 함께한 친구도 만족해 햔다. 온양민속박물관은 경로우대의 혜택을 받아 입장료가 1000원이다. 그간 세금을 낸 공을 높이 평가하여 이렇게 할인혜택을 부여해 주는 복지국가이고 선진국인 우리나라다. 먼저 단장된 주위를 샅샅이 둘러보다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하다. 우리 말고는 넓은 공간에 관람객이 없다. 한산함을 즐기니 더욱 좋다. 인간은 떠들썩한 저자거리를 즐겨 찯지만 정적이 머문 산사의 인경소리에 취하기도 한다. '구정아트센터'는 3층인데 전시품의 다양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구정은 설립자 김원대님의 號이다. 이 건물을 건축한 사람은 세계적 천재 건축가 아타미 준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다. 가족과 함께 한번은 꼭 다녀 가길 권해 본다. 소싯적 모습이 떠 올라 필자는 황홀지경에 빠져 드는 기분이다. '농자천하지대본'이란 큰 글씨를 보고 혼절지경으로 몰린 기분이다. 5천년 역사의 가난이었지만 삶의 터전이 農事였다. 천수답이니 순전히 하늘에 의지한다. 70여년 전부터 탈농업이 이루어진 나라이다. 경제성장은 말달리듯 숨가쁘게 뛰었다. 최빈국에서 선진국까지 짚신에서 고급 구두를 신은 기적의 자랑스러운 민족의 저력을 '빨리빨리'란 신조어를 세계시장에 전시하면서 이루어 낸 것이었다. 나열하기 조차 많은 박물관의 농촌 모습들이 필자의 마음을 녹였다.세계의 유명박물관을 거의 관람해 보았지만 내 마음을 감동으로 적신 곳은 온양민속박물관이 유일하다. 외국의 대형박물관은 약소국을 침탈하여 갖다 전시한 문화재가 즐비하다. 약탈은 미개한 모습이지 문화와는 거리가 멀다고 본다. 소싯적 모습이 떠 오르면서 정신없이 바라 본 모습이 필자에겐 과히 충격적이었다. 역시 문화가 있어야 선진국임을 느낀 관람이었다. 그러하다. 문명이 비행기 여행이라면 문화는 기차여행이다. 특히 간이역은 아련한 추억이 깃든 곳이다. 빠른 KTX여행 보다는 느림의 미학을 일깨워 주는 완행이 더 좋다. 기찻길옆 오막살이는 보이지도 않는다. 철로 주변의 애들도 보이지 않는 세상이다. 등잔의 호롱불에 광목천 기저귀로 7~8 남매를 키웠는데 샹들리에 밝은 불 아래서도 아이를 낳지 않는 세상이다. 가슴이 망가진다는 이유로 남편의 손을 기피한다는 탤런트도 있다는 세상이니 그 가슴을 어디에 쓸려는지 묻고싶다. 야박한 세상이다. 다시 찾고 싶은 박물관이다. 올해는 박물관을 두 군데나 관람을 하였다. 특히 모형물이 어찌 그렇게 선남자 선여자로 잘 표현을 했는지 넋을 잃고 바라 보았다. 서설이 퍼 붓는 오후에 관람을 마치고 상경하였다. 체증이 내려간 듯 뻥뚤린 오늘의 민속박물관 관람은 오랜기간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해동이 되어 꽃향기가 진동할 쯤에는 손자 승준(4학년)이와 함께 관람할 생각이다. 명가이드로 승준이가 일생동안 할비와의 추억이 될 수 있게 해설을 할 생각이다. 온양민속박물관! 고향같은 분위기라서 소싯적 생각에 넋을 잃은 관람이었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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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25] 동물의 잠자는 모습들
이경국 칼럼니스트 모든 동물은 잠을 자기 마련이다. 장수시대라고 세상이 시끄럽지만 인간은 일평생 20년을 잠으로 보내고 있다고 한다. 깨어 있는 시간동안 치열하게 움직인다면 잠자는 시간은 평온하다. 때로는 악몽을 시달릴 때도 있을 것이다. 잠은 60조 세포가 쉬는 시간이다. 심장은 움직여야 하고 코는 교대로 숨을 쉬어야 하지만 다른 일체의 장기는 잠자는 시간에 쉬기 마련이다. 인간만큼 마음놓고 수면을 취하는 동물은 없다고 한다. 사자만이 무리를 이루어 걱정없이 잔다고 한다. 동물의 왕이니 위용이 대단하다. 다른 모든 동물은 먹이사슬구조에 희생을 당하기에 깊은 잠에 빠질 수가 없다. 기린은 목도 길고 키도 크지만 선채로 잠시 잠을 자는데 무거운 머리를 어깨에 걸치고 짧게 잔다. 기린은 유일하게 달리는 것과 뒷발질이 무기이다. 누워서 잠을 잔다면 맹수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것이다. 키가 커서 일어 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사자는 동물의 왕임에 틀림이 없다. 수컷이 크게 울면 세랭게티의 모든 동물들은 초죽음 상태로 위축이 되는 것이다. 암컷이 사냥을 하면 수컷이 실컷 먹은 뒤에 암컷이 먹는다. 그리고 수컷 대장은 무리의 암컷과 교미를 수도없이 여러번 한다. 힘이 빠지면 다른 수컷의 공격을 받아 무리에서 쫒기어 난다. 한번도 사냥 경험이 없으니 굶어서 비참하게 말로를 장식한다. 호의호식하면서 숱한 암컷과 즐긴 댓가가 너무나 가혹하다. 인간으로 치면 晩年이 비참하다. 사자는 죽으면 맹독류도 시체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제 몸에서 생긴 사자충이 말끔히 치운다고 하니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하다. 마음놓고 잠자는 동물의 왕도 이러한 비애를 겪어야만 되는 것이다. 조류의 잠자는 모습도 독특하다.대체로 암수 한자웅이 나란히 자면서 경계를 풀지 않는다. 꿩은 지근에 떨어져서 잔다. 장끼가 너무나 화려하여 까투리를 보호하러는 생존전략 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동물은 먹고 교미하고 잠을 잔다. 눈을 뜨고 자거나 눕지도 못하고 서서 자야 하는 동물이 많다. 인간은 직립을 하면서 힘은 얻었지만 남자는 성기의 뼈가 안타깝게도 물렁뼈로 서서히 변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아마 다른 포유류처럼 거시기에 뼈가 있다면 달리거나 걷기에 여간 불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사 그렇다고 치더라도 무진 아쉬운 대목이 있다. 발기부전으로 가슴태우는 남자들 말이다. 잠자리가 무서우니 밤이 겁이 난다는 남자들이 많다고 한다.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피곤한 상태로 저녁을 먹고 앉아 있는데 아내가 욕실에서 샤워를 한다. 며칠만에 합궁을 하고 싶은 욕구가 충돌질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없는 남편은 ''여보 회사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면서 슬그머니 집을 나와서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혼자 마신다. 이는 남자들의 여간 가슴아픈 애환이 아닐 것이다. 모성애로 이를 보담아 주지 않는다면 섹스리스 부부로 안타까운 晩年을 보낼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지는 것이다. 남자는 밤을 정복해야지 두렵게 생각한다면 이러한 비극이 또 있을까 싶다. 통상 잠자리는 섹스를 의미하는데 잠자는 시간이 형벌같은 남자의 괴로움을 어부인(?)들이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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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웍스, 대구 1호 혁신의료기기 지정받아
- 대구시는 지역의 유망 의료기기 스타트업인 ㈜빔웍스(대표 김원화, 칠곡경북대병원 영상의학과 의사)가 개발한 초음파 유방암 실시간 인공지능 진단 시스템 ‘캐디-B(CadAI-B)’가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혁신의료기기 지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캐디-B(CadAI-B)’는 세계 최초로 동적 초음파 영상으로 유방암을 진단하는 인공지능 기반의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로 차별성과 우수성을 인정받아 이번에 식약처로부터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받았다. 기존의 초음파 검사가 의사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해 경험이나 전문성에 따라 진단 편차가 크다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유방암 환자의 초음파 디지털 의료영상 50만 건 이상의 데이터와 최적의 인공지능 모델을 활용한 실시간 판독 영상을 제공함으로써 인공지능의 객관적이고 일관된 진단 환경을 구축해 국내 의료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되면, 인허가 시 다른 의료기기보다 우선해 심사하거나 개발 단계별로 나누어 동시에 심사하는 등 특례가 적용되며, 인허가 후에는 비급여 또는 선별급여로 신속하게 의료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어 혁신 기술 보급과 매출 실현을 앞당길 수 있다. 또한, 「의료기기산업법」에 따른 혁신형 의료기기 기업 인증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앞으로 정부의 R&D/시장진출 지원사업에 참여하거나 정책적 지원 등에 있어서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혁신의료기기 지정제도는 「의료기기산업 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법」의 시행(2020. 5. 1.)에 따라 기술집약도가 높고 혁신속도가 빠른 분야의 첨단 기술의 적용이나 사용방법의 개선 등을 통해 안전성, 유효성을 현저히 개선했거나 할 것으로 예상되는 의료기기에 대해 지정기준의 적합 여부의 평가를 통해 지정하는 제도이며, 현재 전국에는 23개 제품이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돼 있다. 한편, ㈜빔웍스는 경북대학교 의학과, 컴퓨터공학 교수의 공동 연구를 통해 쌓은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2021년에 창업해 유망기술 창업 지원 등 정부 지원과 대구시의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특화지원사업’을 통해 ‘캐디-B(CadAI-B)’ 개발에 성공했고, 내년 상반기에 임상시험을 거쳐 인허가를 받을 예정이다. 이승대 대구시 혁신성장실장은 “이번 혁신의료기기 지정을 시발점으로 지역의 의료기업의 제품이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받을 수 있도록 R&D부터 투자유치까지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을 마련해 글로벌 선도기업 발굴·육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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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웍스, 대구 1호 혁신의료기기 지정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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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7월은 재산세 납부의 달' 입니다
- 7월은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어 많은 사람들이 여름 휴가를 떠나는 달이다. 올해는 휴가를 떠나기 전 우편함을 한 번 들여다 보자. 왜냐하면, 우리 구 재정의 근간인 재산세가 고지되는 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동산을 보유함으로써 여러 가지 세금을 부담하게 되는데 그 중 하나인 재산세는 7월과 9월 재산세(주택), 재산세(건축물), 재산세(토지) 등으로 나누어 부동산 소재지 구(군)청에서 과세한다. 이번 달 7월에는 재산세(주택)와 재산세(건축물)가 고지되는데 많은 납세자들이 궁금해 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재산세 과세방식과 편리한 납부 방법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 드리고자 한다. 먼저, 재산세는 주택, 건축물, 토지 등으로 구분되어 과세된다. 재산세(주택)는 주거용 부동산에 대한 과세로 건축물과 토지를 합산하여 산정한 주택공시가격을 기준으로 1년 세액을 산정한 후 7월과 9월 각각 2분의 1씩 같은 세액으로 나누어 1년에 2번 과세하고, 주거용 이외의 건축물과 그 부속토지에 대해서는 7월에 재산세(건축물)를, 9월에는 재산세(토지)를 과세하며, 지상에 건축물이 없는 나대지, 농지 등의 토지는 9월에 재산세(토지)만 과세하게 된다. 따라서 이번에 고지서가 한꺼번에 2장이 나왔다고 놀라지 마시고 먼저 과세구분을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다음으로, 재산세 과세기준일은 6월 1일이라는 점이다. 재산세는 자동차세와 달리 소유 기간을 날짜로 계산하여 과세하는 것이 아니고 과세기준일 6월 1일 현재 부동산 소유자에게 1년치의 세금이 과세되기 때문에 6월 1일 이전에 매매하였다면 매수자가, 6월 2일 이후에 매매를 하였다면 매도자가 그 해 재산세(7월, 9월)의 납세의무자가 되니 이점을 유념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재산세 납부는 수령한 고지서를 가지고 금융기관을 직접 방문해 납부할 수도 있지만, 무더운 날씨에 편리하게 납부할 수 있는 다양한 납부 방법이 준비되어 있다. 재산세 고지서상에 표기된 가상계좌번호로 손쉽게 송금할 수 있는 무통장 송금 방식이 있고, 고지서가 없더라도 위택스 홈페이지(www.wetax.go.kr)에 접속하여 회원가입을 하면 전국 모든 지역의 지방세 과세내역 확인 및 납부를 할 수 있으며, 또한, 본인의 신용카드를 이용하여 인터넷 납부를 하거나, 직접 은행 CD/ATM(현금자동 입출금기)를 통하여 납부 할 수 있고, ARS자동응답시스템(☎080-788-8080)을 활용해 전화 한 통으로 모든 지방세를 납부할 수도 있다. 주소지를 장기간 비우거나 고지서 수령을 원하지 않는 납세자들은 위택스, 금융앱 등을 통하여 전자고지를 신청하거나, 이용하는 금융기관에서 정기분 지방세의 자동이체를 신청한다면 종이 고지서도 없애고 개인의 정보도 보호하면서 편리하게 지방세를 납부할 수 있다. 이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우리 북구에서는 자동이체, 전자고지 1장당 각 300원의 세액 공제를 하고 있으며, 전자고지와 자동이체를 동시에 신청할 경우 700원의 세액 공제 혜택을 드리고 있다. 무더운 7월, 여름 휴가 떠나기 전 우편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납부기한을 놓쳐서 가산금을 부담하는 일이 없도록 재산세를 잊지 말고 꼬~옥 납부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성실한 납세가 행복한 북구의 시작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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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7월은 재산세 납부의 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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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73] 사이비 종교의 극성
- 이경국 칼럼니스트 우리나라는 다종교 국가이다. 사실 일반 종교와 사이비 종교는 쉽게 구분되기가 쉽지 않다고 본다. 이는 투자와 투기의 차이점이나 불륜과 로맨스처럼 똑 부러지게 구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겹침지대가 있어 보기에 따라서 크게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사이비나 이단종교로 몰아가긴 하지만 신도의 수나 극성스러움의 정도는 장난이 아니다. 우리 민족은 예지력이 강하고 일찍부터 天主 를 믿었다. 우리나라의 대중적인 종교는 불교, 개신교 (기독교), 천주교 (가톨릭), 유교, 천도교, 원불교, 대종교 (단군교) 등이 등록이 되어 있다. 종교는 백화점처럼 그 수가 많다. 세계 80억 명 중에서 종교인구가 84%라고 하니 2중 3중으로 계산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종교 인구는 7~8천 만명에 이른다는 보고서를 본적이 있다. 이는 정통종교에서 파생된 신흥종교에서 사이비 (이단)란 가지를 치고 있는 것이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이 된 나라이니 외국에서 들어온 종교도 무진 많다. 여호와 증인, 몰몬교, 제7안식교 등이 다른 나라에서 수입(?)된 종교이다. 자생적인 좌파가 있듯이 국내에서 자발적으로 생성된 종교도 많다. 국제크리스천연합, 말도 많던 유병언의 구원파 등도 있다. 신천지도 종교명은 좋으나 반감이 드세다. 기독교의 일부가 이탈함에 따른 갈등이 날로 심화되어 가고 있다. 우리민족은 원래 환족(桓族 )으로 유일하게 하느님을 믿은 민족이었다. 하늘을 天主로 믿었다. 사계절이 뚜렸하고 두뇌가 좋아서 종교도 백화점처럼 수도 무진 많으나 그렇지만 종교분쟁이나 종교 전쟁이 없는 나라이다. 이는 신령스러운 일이다. 동양3국 가운데 중국이나 일본은 개신교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였으며, 신도의 수도 극히 미미하다. 이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동리마다 교회가 많다. 신도 확보를 위하여 캠페인도 벌리기도 하며 이는 이웃 교회의 신도를 데려오는 것이어서 마찰이 유발되기도 한다. 특히 '문화전파법칙'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태생된 통일교 (가정연합)는 초창기에는 오히려 국외에서 뿌리를 크게 내렸다. 세계의 평화에 주안점을 두고 있으며 孝를 숭상하고 참부모를 섬기어 하늘의 천국을 땅에서도 이루는 것이 근간이다. 종교는 믿음의 분야이기에 불가사의한 영역에 속한다 신앙촌의 천부교는 박태선이 창시자다. 여의도의 순복음교도 처음에는 이단으로 숱한 수난과 비난의 과정을 겪기도 했다. 무속 신앙도 위력은 대단하다. 정통 신앙으로 칭하지만 우리의 조상대대로 무속신앙에 의지하여 자식을 키워 내었다. 하늘의 칠성을 믿고 삼신을 믿었으며, 음력 2월초에는 장독대위에 정한수를 올리시고 영두할머니께 비셨다. 누가 이를 미신으로 치부하고 자기 종교만을 고급 종교라고 우긴다는 말인가? 신흥종교가 무진 흥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국토에도 신령한 기운이 강하고 민족성에도 神의 氣運 이 많이 흐르고 있다. 인터넷교, 맥아더교, 외계인교 (ET敎)도 있으니 가히 종교 천국임이 틀림이 없다. 대단한 민족이다. 증산교도 줄기차게 뻗어 나가고 있다. 증산교에서 파생된 종파가 많다. 적어도 하나님이 재림을 하시거나 아니면 후천세계의 개벽이 일어난다면 上帝님은 분명히 하늘의 신을 잘 섬기고 있는 우리나라로 하강하심이 틀림 없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그리고 광신도의 결속력이 세계 1위인 북한의 수령교도 있다. 백두혈통이 3대를 이어 오면서 핵을 완성하여 자유우방을 향하여 공갈을 치는 나라이니 종교도 광적이다. 유물론인 북한은 김일성이 영적인 교주이다. 우리민족이 확실히 신령스럽긴 하다. 불가사의하다. 워낙 호기심이 강하여 필자는 고교시절부터 거의 모든 종교의 교리나 실태를 연구해 보았다. 작금의 코로나 역병 으로 문제가 야기된 신천지나 최태민의 영생교도 이단으로 보고 있다. 개신교의 종파인 종말론의 휴거도 우리를 웃기게 했다. 인간이 아둔해서 그런지 진짜 말세라서 그런지 헷가닥 넘어 가는 신도가 많으니 세상이 요지경같다. 나더러 주위에서 '경국교주'라고 하는데 종교를 하나 만들어 볼까 싶다. 이름하여 ''경사스러운 종교국 건설''인 <경국교>다. 물론 弄으로 하는 말이다. 제 종교만을 위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고 설치는 신도나 남의 종교를 무시하는 자세는 무종교인보다 못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다. 짐승이 변으로 영역을 표시하듯 종교인의 수를 많게하여 위세를 부리는 모습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본다. 차라리 宗敎(religion)란 글자의 의미대로 '가르침의 최고'라는 것에 방점을 두고싶다. 宗은 마루 宗字로 '용마루'를 의미하며 집의 가장 높은 곳이다. 사이비(似而非)는 겉은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딴판이다. 가짜 종교에 속으면 몸도 버리고 돈도 앗기는 신세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 국어고전문화원 원장(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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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73] 사이비 종교의 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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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덕의 유럽탐방기 1] "일곱 가족 19명이 환호ㆍ아쉬움 속 유럽을 만끽"
- 김성덕 자유기고가 대학 선후배로 만나 결혼 후 아이들과 함께 27년 넘게 가족모임을 이어온 우리모임은 해외여행으로는 2014년 캄보디아 패키지여행(16명)을 시작으로 2015년 동유럽의 실험여행(21명)을 거쳐 2016년 유럽으로 두 번째 자유여행을 떠났다. 어른 11명,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청소년 8명으로 구성된 일곱 가족 19명은 프랑스, 이탈리아 여행의 일정을 일찍부터 조율하고, 남편 주도로 항공편, 숙소, 기차, 관광지를 예약하고 비행기 탑승권의 오랜 기다림과 인고의 검색으로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 12박 13일의 유럽여행을 떠났다. 그때는 자유여행이 흔한 게 아니어서 이렇게 7가족이, 그것도 여러 연령의 다양한 구성원이 가이드 없이 낯선 나라를 여행할 엄두를 내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개인들의 요구나 취향이 같지 않은 상황에서 한정된 예산으로 여행을 계획하는 것도 모험이었다. 구글 지도를 수백 번 검색하며 여행을 주도한 남편은 안 가보고도 여행을 다 한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고, 고등학교 때까지 아이들을 산으로 바다로 이리저리 끌고 다닌 덕분으로 아이들은 함께 가는 여행에 그저 해맑았다. 오직 여행을 계획하고 이끌어야 하는 남편만이 예민해져 유럽에서의 전쟁을 준비하는 사람마냥 유럽 소매치기들의 사냥감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 모두는 완전 무장(정신적, 육체적)을 해야 했다. 한해 전 아이의 입시 때문에 동유럽여행을 포기했던 나로서는 여행다운 여행을 한다는 설렘으로 가슴이 뛰었던 것 같다. ■ 프랑스에서 4박 5일 2016년 12월 30일 프랑스 파리로 떠난 우리 일행은 아파트호텔 6인실에 3개팀으로 나눠 짐을 풀었다. 12월 31일 3개팀으로 나눠진 우리는 누룽지죽 등 간단한 아침을 먹고 초간단 도시락을 싸서 지하철을 타고 오전부터 베르사유궁전을 하루 종일 뛰어다녔고 오후 5시쯤에야 샹젤리제 거리에 도착했다. 에펠탑이 가장 잘 보인다는 샤이요궁에서 안개가 가득 낀 저녁의 에펠탑은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그 거대한 철제건물이 아름답게 느껴질 줄이야.. 주변에는 에펠탑모형 등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이 많았는데 호객행위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연신 스미마셍~하며 장난을 쳤는데 ”에~ 한국사람이잖아요, 한국에 공부하러 갔었어요. 한국말 알아요“하던 흑인청년과 반가워하며 한국얘기를 즐겁게 나누었던 생각이 난다. 프랑스 개선문까지 한 해 마지막 날이라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인파 속에 광장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그 거대한 흐름 속에 다가올 새해에 대한 희망과 즐거움으로 환호하며 유럽을 만끽했다. 12월 31일 개선문을 보며 파리 샹젤리제 축제의 현장에 있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아이들 사진을 찍어주고 셔터를 눌러대자 한 외국인은 본인을 찍으라며 포즈를 취해 주기도 했고 모르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며 한해의 마지막을 즐기는 이 사람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으로 갑자기 울컥할 만큼 모두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개선문이 있는 샹젤리제 거리는 완전히 개방됐지만 검문 때문에 술과 무기류는 가지고 갈 수 없었다. 우리의 애주가 K선배는 개선문으로 가는 거리 축제를 포기하고 사랑하는 와인을 선택함으로써 축제행렬의 주변인이 되었다. 그해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유럽한파로 추운데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고 아이들을 포함한 일행들과 합류해 숙소를 찾아가야 했기 때문에 새해로 이어지는 축제를 즐기지 못하고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12월 마지막날 지하철이 무료인 걸 모르고 시내로 갈 때는 요금을 계산했고 숙소로 돌아올 때는 차표 없이 돌아왔다). 새해맞이 카운트다운과 화려한 불꽃놀이, 레이저 쇼를 보지 못하고 돌아온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서 와인과 야식, 다음 날 아침, 점심 먹을거리를 사며 우리 일행만의 소소한 즐거움을 나누며 파리에서의 밤을 와인과 이야기로 보낸 게 오래도록 기억난다. 각 집 여성들의 문화적 욕구가 충만했기에 일정은 미술관, 박물관, 문화공간을 최대한 가보는 것으로 코스를 잡았다. 여행 셋째날은 콩코드광장을 거쳐 노트르담 성당, 퐁네프의 다리 등 센강 주변과 오르세미술관(오르세미술관은 새해연휴로 무료였다), 퐁피두 문화센터(외형과 1층만 구경), 센강 유람선까지 너무 빡빡한 일정이었다. 그 탓에 셋째날 밤은 각 구성원의 불만이 폭주해 ‘이건 자유여행이 아니다. 패키지와 뭐가 다른지’에 대한 고민으로 여행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방향을 밤늦도록 격렬히 토로하며 이글이글 불타는 토론의 밤을 보내야 했다. 그 와중에 피곤에 절어 쓰러진 아이들을 다독여 C군(우리집 둘째)의 생일 축하까지 정말 다채롭고도 열정적 밤을 보냈다. 이미 짜여진 일정 속에서 어떻게 하면 모두가 만족하는 자유여행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던 우리는 일정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정을 조금 수정하되 굴직한 일정을 보고 합류하는 방식으로 의견을 모았다. 넷째날, 일부는 콩코드 광장 일대와 센강변을 지나 노트르담 성당을 다시 천천히 둘러보며 오전을 보냈고 일부는 ‘프랑스에 왔는데 몽마르뜨 언덕은 봐야지’ 하며 몽마르뜨로 향했다. 일부는 너무 힘들다며 오전을 숙소에 머물렀고 오후에 루브르박물관으로 합류해 함께 일정을 보냈다. 여러 그림과 조각의 홍수 속에서도 오르세미술관에서 본 밀레의 ‘만종’은 책에서 느낄 수 없었던 고즈넉함에 형언할 수 없는 숙연함을 느낀 것 같다. 아이들의 불만과 반항?도 잦아들었고 나름 각 가정의 요구에 부합한 자유여행이 잡혀가는 듯 했다. 새해 파리의 날씨는 몇십 년 만의 한파가 들이닥치면서 이가 딱딱 부딪힐 만큼 한국보다 더 추운 추위와 싸워야 했다. 유럽한파를 미처 예상못한 우리는 한국서 가지고 온 옷이란 옷은 모두 겹쳐 입고 노숙인 모드로 다녀야 할 정도로 유럽한파를 경험해야 했고 하의로 달랑 바지 하나와 외투만 갖춰 입은 남자아이들은 입을 달달 떨 정도로 한파는 대단했다. 베르사유 정원의 살얼음 낀 넓은 숲은 한파로 일부 관광이 금지됐고 그렇게 둘러보는 정원도 무지 넓어 함께 발돋움을 하며 정원을 뛰어다녔다. 분수가 얼어 고드름이 돼 흘러내리던 그 추운 날의 콩코드광장의 아름다운 분수가 오래도록 파리의 풍경으로 기억에 남는다. 혼자만의 여유로움은 생각할 수 없이 대식구들은 밥을 먹어야 했고 함께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함께 하는 즐거움이 아니라면 고난의 행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화장실을 찾느라 또 사람을 챙기느라 또 길을 찾느라 고생 가득한 여행이기도 했지만 집집마다의 새로운 사연과 에피소드들이 생산되며 새로운 세상을 향한 진한 연대의 여행이기도 했다. 하루종일 머물러도 한도 끝도 없는 루브르박물관의 그림과 조각의 홍수를 끝으로 ‘교과서에서 본 그림을 직접 보니 너무 신기하다’ ‘평생 봐야할 그림을 다 본 것 같다’ ‘그림에 감동한 건 처음이다’ ’너무 많은 그림과 조각으로 이제 그림이 지긋지긋하다‘는 각자의 평가를 끝으로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건너갔다. ■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1박 2일 프랑스에서 4박을 하고 5일째 파리 드골공항을 떠나 베니스 마르코폴로 공항에 도착했을때의 일이었다. A의 케리어가 없다는 거였다. 드골공항 비행기 탑승과정에서 어렵게 구한 비건화장품(동물성원료가 없는 화장품)을 버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맨붕상태로 탑승하면서 공항에 케리어를 두고 온 것이다. 파리 드골공항에 전화를 해 알아봐 줄 것을 요청하고 A는 준비해 간 짐이 없는 상태로 여행을 하게 되었다(결국 케리어는 찾지 못했다..) 게다가 나는 드골공항 응급센터에서 휴식을 취해야 할 만큼 급격히 몸이 안 좋아져 기진맥진한 상태로 겨우 베니스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의 일정이 무리였던 게 틀림없다. 너무나 다행인 것이 베니스의 날씨와 분위기는 파리의 것과 완전 달랐다. 밝고 화사하고 산뜻하고 따뜻한 느낌~~ . 베니스에 도착하자마자 선착장 휴게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수상버스를 타고 숙소인 고르테 노바에 도착했다. 숙소가 마음에 들어 빨간 지붕이 끝없이 보이는 3층 창문에서 하늘과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동화 속 소녀가 된 듯 가슴이 설레었다. 일부는 주변 산책과 장을 보러 나갔고 나는 숙소에 남아 휴식을 취했다. 어릴 때부터의 징크스인지 멀리 여행을 가게 되면 꼭 하루 이틀 아프다. 내 몸은 변화에 적응이 늦나 보다. 일행 중 일부가 숙소에 늦게 도착하게 되면서 아이들 저녁을 간단하게 해먹이고 우리 일행은 부라노섬으로 들어갔다. 배를 타기 위해 걸어가는 해지는 풍경이 어찌나 고즈넉하고 예쁘던지 이국의 저녁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빨갛고 노랗고 알록달록하고 오밀조밀한 예쁜 집들과 섬을 둘러보며 아이들과 사진을 찍으려 할 때엔 금방 어두워져 어두운 사진만 남았다. 기념으로 가면모형 자석을 두어개 사고 낮이었다면 더 예뻤을 섬을 아쉬워 하며 발길을 돌렸다. 담에 다시 오리라 생각하며.. 다음날 일부는 산마르코 대성당으로, 일부는 부라노섬을 둘러보고 산마르코 광장에 모이기로 했다. 남편은 전날 숙소를 찾지 못해 합류하지 못한 사람들을 챙기느라 놓친 부라노섬으로 들어가고 우리 일행은 산마르코 대성당으로 갔다. 입장권을 내고 들어간 성당은 화려했고 프랑스에서 본 노트르담 성당과는 또 다르게 동양적 느낌도 묻어나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보석으로 꾸며진 내부의 작은 박물관도 둘러보며 기념으로 묵주를 하나 샀다. 일행과 합류한 우리는 오랜만에 식당에서 제대로 된 점심을 먹고 가면공예와 유리공예 가게들을 기웃거리며 리알토다리, 탄식의 다리를 찾아다녔다. 곤돌라를 구경하며 여유있게 이리저리 구경하다 피렌체로 가기 위해 약속한 수상버스 정류장에 집결할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일정을 총괄하고 있던 남편의 울그락불그락한 얼굴을 보며 얼른 기다리던 대열에 합류했는데 그렇게 흩어진 아이들과 일행이 다 모이기까지 계획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수상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예약해 놓은 피렌체행 열차(이딸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기차역까지 대부대가 얼마나 뛰었던지... 케리어와 일행들의 숨가뿐 달음박질 속에 베니스가 흔들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베니스에 작별을 고할 틈도 없이 기차를 타고 피렌체로 우리는 달렸다. :: 김성덕 자유기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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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덕의 유럽탐방기 1] "일곱 가족 19명이 환호ㆍ아쉬움 속 유럽을 만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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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72] 귀소본능(歸巢本能)의 놀라움
- 이경국 칼럼니스트 식물은 움직일 수 없으니 귀소할 수 없다. 씨앗이 떨어진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바위를 의지하여 살아가는 소나무를 보면 저절로 감탄이 튀어 나온다. 한참 동안 바라보면서 생명의 신비에 빠져 들면서 외경심에 젖어 든다. 식물도 因과 緣이 닿아야 그 자리에 살게 되는 것이다. 늘 그 자리에 서 있으나 바람이 운동을 시켜주는 셈이다. 인간은 고향을 그리워 하면서 살아 간다. 해외에 나가면 향수때문에 우울증을 앓는다는 사람들이 많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소싯적 어머니 품에서 자란 고향이 어찌 멀리 있다고 잊힐리가 있을까 싶다. 동물가운데 조류나 어류는 상당히 먼 거리를 귀소본능이 있어 찿아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돌아온 백구(白狗)라 하여 흰개는 진도에서 대전으로 팔려갔는데 무려 7개월 동안 수백km를 걸어서 집으로 돌아 왔다고 한다. 개의 충성심은 축생가운데 제일이다. 남한에 진돗개가 있다면 북한에는 풍산개가 있다. 세계최고의 견공들이다. 한동안 풍산개는 人口에 膾炙되어 씁쓰레한 결과를 남기게 했다. 인간의 인성부족과 인문학적 사고부재는 그만 두고라서도 백성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회귀본능을 생각하면 먼저 연어와 철새가 연상될 것이다. 지구의 자기장을 활용한다니 나침반이 있다는 얘기다. 극제비 갈매기는 북극의 툰트라에서 태어나서 성장을 하면 남극까지 날아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는데 왕복 거리가 자그마치 9만 600km라 한다. 누가 새의 연약한 날개라고 말 할 수 있단 말인가? 지구를 2바퀴 이상 난다는 것이다. 인체의 동맥이나 정맥을 펼쳐 놓은 거리이니 상상을 초월하는 거리를 비상한다. 흔히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한다. 북극과 남극이 통함은 극제비 갈매기가 확인해 주는 것이다. 연어의 회귀능력은 감동적이다. 연어회를 즐기는 요인이기도 하다. 代를 이어가기 위하여 그 險路를 이겨내고 本鄕으로 回歸해서는 알을 낳고는 전사하듯 숨을 거둔다. 인간은 계산에 치중하여 혼인도 마다하고 자녀도 낳지 않는 삶의 실태인데 그것이 행복이라 하니 실소를 금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몸이 할 수 있는 일을 자유롭다고 거절을 하는데 이는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누가 일하고 세금을 내고 나라를 지킨다는 말인가? 혼자만 功을 들인다고 천상이나 극락에 이른다는 생각은 엄청난 착각에 불과하다고 본다.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해준 것을 마다하는 것은 사실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못된 행위이다. 과년한 딸이 있으면 부모가 사력을 다하여 혼인에 대한 설득은 하지않고 시대가 그렇다고 맞장구를 치고 있으니 통탄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결국 한 줌의 재를 남기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미천한 존재에 불과하다. 혼인의 거부는 어떠한 핑계도 가당찮은 짓이다. 필자는 적어도 손자 승준이까지는 제사를 지내도록 할 생각이다. 그 이후는 매혼(埋魂)이니 알 도리가 없다고 본다. 손자 승준이는 이번에 초등학교 3학년에 진급하는데 휴대폰이 있어 의사소통을 많이 하고있다. ''잘 알겠습니다. 할아버지!'' 세상에 천금을 주어도 바꾸기 싫은 손자의 이 말에 가슴에 무지개가 피어 난다. 지구에 남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흔적은 자식을 남기는 행위임을 밝히고 싶다. 인간의 삶은 단순한 1회성의 삶으로 마감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결혼은 성스러운 신에게 다가 가는 최소한의 절차인 것이다. 연어가 그 먼길을 몸이 으스러지는 아픔을 감내하면서 회귀하는 것은 알을 낳아서 代를 잇기 위함이다. 할 일을 다하고 나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 싶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 국어고전문화원 원장(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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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72] 귀소본능(歸巢本能)의 놀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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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71] 인류의 종말에 대하여
- 이경국 칼럼니스트 사자성어를 살펴보면 재미가 쏠쏠하다. 전과만큼이나 두꺼운 사자성어 책이 서재에 여러권 있다. 생로병사, 생주이멸, 성주괴공 등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생로병사는 인체의 시작부터 죽는 시점 까지를 말한다. 마음은 늙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 또한 생주이멸의 과정을 거친다. 성주괴공은 우주의 生劫부터 空劫까지이니 그 스케일이 대단하다. 계절의 춘하추동도 같다. 始原을 생각해 보면 생각이 깊어진다. 비가 온다는 것을 생각을 해 본다. 온다는 것은 가야만 올 수있기 때문이다. '오간다'는 것은 미닫이처럼 同時를 나타 내고 있는 한글의 우수성이 돋보이는 용어다. 결국 땅에서 수증기를 하늘에 보내면 인연이 닿아 다시 비로 변하여 지구에 내려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양은 일체 늘어나거나 줄어 들지 않는다. 부증불감을 이미 오래전 반야심경에서 밝혔다. 태초의 물의 양이 지금의 양과 똑 같다는 것이다. 다만 어떤 모습으로 존재 하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추녀끝의 고드름으로 있거나 연인의 눈물로 있거나 아니면 고향의 낙동강으로 존재 하더라도 그 성분은 H2O로 같다. 다만 인간은 육근에 따른 눈앞의 모습에만 국한하여 보거나 아는것 만큼 보이는 것이 문제이긴 하다. 그런데 인류의 종말은 전쟁도 아니고 자연재해인 지진이나 화산폭발도 아니다. 疫病으로 종말이 온다고 하니 이는 결국 전쟁으로 말미암은 세균과 자연파괴에 따른 밸런스가 무너진 결과에 기인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인류의 여러 주의 (ism)가운데 공산주의는 완패한 죽은 이론이 되었다. 아직도 거기에 목을 매는 시대착오적인 사람이 있다. 좌파는 뇌가 한쪽만 발달이 된 기형이다. 그나마 꼬여 있어 탈이 많다. 수정자본주의도 잘못 적용하면 베네스앨라 같은 나라로 전락해 버리고 말 것이다. 애들은 치아가 썪는줄 모르고 사탕을 좋아 한다. 인간도 현금 중독에 빠지면 독인줄 모르고 스며들듯 빠져버리기 십상이다. 위정자는 이런 식으로 장기집권을 획책하고 있다. 세금을 올려서 그 돈을 입맛대로 나누어 주는데도 희죽거리며 표를 던지는 우매한 백성도 많다. 모든 신가운데 눈에 보이는 신은 오직 物神밖에 없기 때문에 현혹되기 쉬운 것이다. 어차피 언젠가는 지구도 종말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인간의 물질적인 풍부함은 결국 영혼의 타락을 가져 오게 하는 것은 자명하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진입하였으나 국민들은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雜宗敎가 성행하여 인간의 영혼을 갉아 먹게 하고 있다. 종교는 인류를 求한다기 보다는 終末을 당기는 역할을 하는데도 인간은 그저 자기 종교에 취하여 지기만의 절대신에게 빠져 있다. 말세가 오기까지는 아직도 하세월이 남아 있긴 하다. 그나마 지구를 아껴야만 인간은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은 성주괴공의 큰 틀에서 보면 主劫 13번째이다. 적어도 49~50억 년은 남아 있다는 계산이다. 수선을 떨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본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 국어고전문화원 이사(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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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71] 인류의 종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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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희의 경영칼럼 4] 개인기업의 효율적인 법인전환
- 신동희 비즈엔경영기술원 대표이사 / 경북대 경영학 석사 경북 ○○시에서 제조업을 운영해오고 있는 ‘L산업’의 대표님은 누구나 어렵다는 시기에도 남부럽지 않을 만큼 회사규모를 알짜기업으로 성장시켜 왔다. 하지만, 향후 회사를 더욱 더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도 세월 앞에 장사 없듯이 대표님 자력으로 더 이상의 회사운영이 버거웠고, 한평생 키워 온 가업을 어떤 방법으로 정리할 것인지 고민이었다. 그동안은 막연하게 생각만 해 오다가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지 못했던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조금 일찍 준비를 했었더라면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여러 고민을 거듭하여 최선의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여기서 고민한 결과는 바로 개인기업을 법인으로 전환하고, 아울러 가업을 승계 하는 작업이었다. 기업이란 영리를 목적으로 재화 또는 용역을 생산 판매하는 생산경제의 단위체로서, 기업활동에 관한 권리/의무의 주체에 따라 법률적인 관점에서 개인기업과 법인기업으로 구분하게 된다. 과거의 자영업에 종사하신 분들은 법인보다는 개인사업자로 창업을 시작한 사례가 많았다. 개인사업자가 전반적으로 법인 대비 기업운영상 편리한 점이 많았고, 반면에 법인은 여러모로 경영상 불편함이 따랐던 것이다. 이후 개인과 법인간 소득세의 차별이 더욱 더 심화되어 절세목적을 위하여 법인을 많이 선호하게 된 것이다. 더불어 국세청에서도 법인전환을 유도하기 위하여 성실실고대상자의 수입금액을 점진적으로 낮추고 있는 실정이다. ‘법인전환’이란 개념적으로는 개인기업주가 기업 경영상 권리/의무의 주체가 되어 경영하던 기업을 개인기업주와는 독립된 법인이 주체가 되도록 기업의 조직형태를 변경하는 것이다. 이렇게 법인전환을 통하여 기업의 유지발전과 기업의 대외신용도 제고, 자본조달의 원활 및 세금의 절감효과를 높일 수 있다. 여기서 절세효과가 가장 큰 법인전환 대상의 개인기업은 ‘성실신고대상자’라 볼 수 있다. 성실신고대상자란 1년간의 수입금액이 업종별로 일정금액 이상인 사업자에 대해 일반적인 종합소득세 신고납부 서류와 기록된 장부, 중빙서류 등을 통해 계산된 사업소득금액의 적정성을 세무사가 확인하고, 그들이 작성한 성실신고확인서를 제출하는 것을 말한다. 이 제도는 2011년부터 도입되어 개인사업자 중 발생하지도 않은 가공경비를 넣거나 매출을 누락하는 등 세금을 탈세하는 경우가 많아서 국세청이 소득이 높은 소득자만이라도 성실신고를 유도하고자 만든 제도이다. 이러한 성실신고 대상 개인기업 오너들은 세무리스크를 감당하고 세율구조가 상대적으로 낮은 법인전환이 지극히 당연지사라 여겨 그 숫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분위기를 뒷받침하고 있다. 표1, 2에서 보듯이 필자가 생각하는 법인전환의 특징을 몇가지로 정리하면, 첫째, 성실신고대상기업중 제조업체는 상당수가 법인전환의 방법을, 도소매업 건설업등은 신규설립의 형태를 선호하였다. 이는 제조업이 타 업종대비 유무형자산의 승계 및 기술력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사업전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 2023년부터 적용될 2022년 세법개정 중에 두드러진 내용이 법인세율 인하이다. 당기순이익 2억까지 9%세율을, 200억 이하는 19%의 세율을 적용하는 내용이다. 사실상 수 많은 중소기업이 9%수준의 법인세율 구간에 많이 몰려있고, 또한 성실사업자의 법인전환을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표1에서 보건서비스업(병원업)의 성실대상비중이 30%를 상회하고 있어서 의료법인의 영리목적이 불가한 이유로 법인설립이 어려운 나머지 임대업으로 우회 법인 설립을 통하여 절세효과를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법인전환의 방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법인전환은 조세특례요건을 충족하는 조세지원을 받는 경우(1.포괄양수도 방식 2.현물출자 방식)와 조세지원을 받지 않는 경우(3.부분사업양수도 방식 4.포괄사업양수도 방식 5.중소기업통합 방식)의 방법으로 구분한다. 일반 사업양도양수에 의한 법인전환은 양도세나 취득세 부담이 없어 개인기업의 법인전환 방법 중에서 가장 간편하고 단순한 방법으로 상법 규정에 따라 법인을 우선 설립한 후, 개인기업을 법인에 양도 양수함으로써 법인전환을 하는 방법이다. 이번에는 일반적으로 많이 활용하고 있는 주식회사 형태의 일반사업양수도 방법의 법인전환에 관하여 간략한 절차를 안내하고자 한다. 첫째, 법인의 설립이다. 발기설립의 절차는 ①발기인 구성 ②정관의 작성 ③주식발행사항의 결정 ④주식총수의 인수 ⑤출자의 이행 ⑥이사,감사의 선임 ⑦이사,감사의 설립경과조사 ⑧검사인의 변태설립사항 조사 ⑨설립등기이다. 둘째, 법인이 설립되면 법인의 대표이사와 개인기업주간의 사업양도양수계약을 체결한다. 계약체결은 신설법인의 사업자등록신청일 이전이어야하고, 양도양수가액의 결정은 개인기업의 결산이 완료되어 자산,부채가 확정되고 고정자산 감정이 마무리되어야 한다. 법인은 사업양수에 대한 주주총회와 이사회의 승인을 필요로 한다. 셋째, 개인기업의 자산을 감정하는 것은 필수적이지는 않지만, 세무상 특수관계인과의 거래로서 공정한 금액을 기준으로 요하며, 부당한 금액으로 거래할시 세무상 부당행위규정을 적용받을 수 있어서 부동산은 감정을, 기타 유형자산은 장부가액으로 양도양수함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넷째, 신설법인은 설립등기후 2개월 이내에 관할세무서에 법인설립신고 및 사업자등록신청을 하여야한다. 통상 개업일의 3일전까지는 마무리 지어야 한다. 다섯째, 개인기업의 결산은 법인전환 기준일(폐업일)로부터 24일 이내에 종료하여야 한다. 이는 전환기준일 당월 말일로부터 25일 이내에 개인기업의 부가세신고와 폐업신고를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주의하여야 할 것은 개인기업의 자산과 부채를 현실화하고, 가지급금과 가수금의 정리, 고정자산의 상각 및 영업권평가와 양도가액결정, 퇴직금과 충당금의 계상, 미지급소득세의 계상를 처리하여야 한다. 여섯째, 개인기업은 사업의 중지 즉, 폐업신고를 관할세무서에 지체없이 하여야한다. 이때 폐업사유를 법인전환으로 기재하고, 양수도계약서도 첨부한다. 일곱째, 개인기업은 전환일이 속하는 과세기간의 개시일로부터 폐업일까지의 과세기간분에 대해 부가가치세 확정신고를 폐업일이 속하는달의 말일부터 25일이내에 신고하여야한다. 마지막으로, 법인으로 양수된 각종 자산과 부채 중 명의가 등록(등재)된 자산부채의 명의를 이전하는 등의 후속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정부의 과세정책에서 종합소득세율은 지속적으로 상향되어 왔고, 2023년 적용될 법인세율은 과표구간별로 1%p씩 인하되어 법인전환시의 절세효과가 한층 높아진 셈이다. 끝으로, 독자가 생각하는 개인기업이 아래의 네가지에 해당되는 경우라면 더 많은 고민을 가지고 법인전환의 결정에 참고가 될 것이다. ①순이익의 지속적인 증가추세와 소득의 종류가 다양하여 종합소득세 부담이 큰 사업장 ②성실신고 확인제도 대상인 개인사업자 ③가업승계를 통한 부의 이전을 필요로 하는 사업장 ④정부 정책자금 및 고용지원 정책을 희망하는 사업장은 적극적으로 법인전환을 재고해도 무방하리라고 판단된다. :: 신동희 비즈엔경영기술원 대표이사 / 경북대 경영학 석사 :: <비즈앤경영기술원은 이런 일을 합니다> - 법인설립 및 중소기업 창업, 청산 관련 서비스업 - 기업 신용평가,신용관리 대행서비스업 - 기업의 인수합병 및 사업양수도에 관한 지원사업 - 정부지원 사업 및 정책자금 지원서비스업 - 기업 재무진단 및 기업신용평가 지원 서비스업 T. 010-9735-9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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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희의 경영칼럼 4] 개인기업의 효율적인 법인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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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70] 어느 노숙자의 하루
- 이경국 칼럼니스트 어쩌면 노숙자(露宿者)라기 보다는 홈리스니스(homelessness)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다. 지하철안 지하도 노숙자 몇 분을 안다. 겨울철에 걷기에 안성맞춤인 곳이 지하도이다. 자그마치 명동에서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역까지 걸을 수 있는 긴 코스이다. 늘 있는 그 자리에 노숙자가 있다. 안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같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얼굴이 익숙하다는 의미다. 그들의 사연이야 오죽 많을까? 한 때 많은 종업원을 거느리던 중소기업 사장도 있다. 모두 자랄 때는 금이야 옥이야 했을 것이다. 집없는 서러움이 얼마나 큰데..... 지금은 무자식이 상팔자인 시대라고 하지만 애기를 주렁주렁 달고 셋방을 구하려면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았던 시대도 있었다. 아주 드물게 노숙자가 탈바꿈하여 성공신화로 보도되기는 한다. 이는 에디슨같은 얘기이다. 어디 에디슨같이 다 될 수 있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필자는 측은지심이 많은 편이다. 노숙자를 보더라고 한참 동안 바라 보면서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아려온다. 그들도 자랄 때는 목욕을 시키면서 우리왕자나 장군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홍역도 거치고 경끼를 하면 바늘로 따 주기를 여러번 했을 것이다. 오매불망 키웠지만 하늘도 무심하지 무슨 罪業이 그리도 무거워 집도 절도 없이 노숙자 신세가 되어서 혹한에 한데 잠을 자면서 고생을 하고 있는지 가슴이 답답할 지경이다. 지하철 한쪽 구석에 보따리가 두개인 노숙자는 약속이 있어 갈 때마다 그 자리에 있다. 앉아 있으면 좋으련만 언제나 선채 있다. 필자는 아주 조심스럽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춥지 않으세요?'' ''괜찮습니다.'' 보이스칼라가 심상치 않다. 그리고는 가만히 있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나는 여러번 그 자리에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을 이었다. 나를 보고 가볍게 웃는다. 아마 오랜만에 사람을 대하고 웃어 보는 듯 느껴지다. 노숙자의 가장 큰 고통은 고독이라고 한다. 어느 누가 말을 걸어 오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이나 어려운 사람의 면전에서 동정하는 말은 상대를 무시하는 것임을 필자는 잘 알고 있다. 마음에 진심을 담아서 대화를 여러 차례 나누어 보았다. 200명이나 되는 중견기업의 사장을 했는데 회사의 경영은 그런대로 하여 왔으나 보증을 잘못서서 그만 부도를 맞았다는 것이다. 집이 넘어가게 되어 가족이 뿔뿔이 산새처럼 흩어져 버렸는데 아내가 먼저 그만 집을 나가 버렸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노숙자로 전락하고 말았는데 이제는 몸도 적응이 되었다고 하면서 긴 한숨을 토한다. 나는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미안하다면서 전해 주었다. 참 궁금한 것이 많았는데 차마 물을 수 없었다. 잠은 침낭안에서 바람이 없는 건물벽에서 자고 점심은 배달시켜 먹고 내어 놓은 그릇의 남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수도 공중화장실에서 고양이 세수를 한다. 목욕은 어디서 하는지 궁금했으나 차마 물어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이제는 빵이나 생수 정도는 지나는 길에 전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숙자는 모든 업보로 이생에 다 갚고 가면 다음 생애는 좋은 곳에 몸을 받아 태어 나겠지만 어렵다고 도망간 아내는 아마 노숙자보다 훨씬 더 힘든 험로역정의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여의도 말 잘하는 양반들! 쓸데없는 싸움질 그만하고 장농속의 안입는 옷이나 챙겨 노숙자를 위하여 작은 보시라도 해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국민을 위한다고 툭하면 입에 달고 살면서 국민의 눈살을 찌프리게 하는 것이 여의도 양반들의 수작이 아닌가 말이다. 똑똑한척 하고 있지만 가치관이 젬뱅이 수준의 하근기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당신들이다. 노숙자의 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당하면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절박함 정도는 알아야 할 것이다. 날씨가 급강하면 노숙자는 잔인한 하늘을 탓할 것이다. 지하도에는 행인이 많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우리 사회는 더 훈훈해질 것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 국어고전문화원 이사(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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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70] 어느 노숙자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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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69] 퇴계의 아름다운 스토리
- 대구저널 칼럼니스트이자 작가인 이경국 씨(국어고전문화원 이사)가 최근 사단법인 국제퇴계학회 스토리텔링 공모에 입상하였다. 퇴계를 추앙하고 그 사상의 계승과 발전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온 그였기에 이번 입상은 차라리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본사에서는 특별히 이경국 칼럼니스트의 수상작을 전해받아 대구춘추에 게재한다. 독자들로 하여금 퇴계의 삶과 숨겨진 안타까움, 그 명성을 더 많이 느껴볼수 있도록...[편집자 주] 이경국 칼럼니스트 우선 중국에 대해 살짝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주자는 중국역사에 기여한 공로는 실로 엄청나다. 공자는 聖人이니까 말할 필요도 없을테지만 주자는 사마천과 함께 중국역사에 영구히 그 이름이 회자(膾炙)될 것이다. 특히 주자는 우리나라에 끼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까지 논어를 중시 여기고 있다. 사서삼경을 주문처럼 다루고 있기도 하지만 주요구절은 외우다 싶이 한다. 四書는 잘 알다싶이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인데 주자는 예기 49편 가운데 대학과 중용을 떼어 내어 四書로 만든 장본인이다. 사서 가운데 中庸을 마지막으로 공부하는데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팔만사천경의 불교도 중도(中道)를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 글자는 中道나 中庸의 글자야 두 글자로 아주 쉽지만 그 의미는 우주를 포함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퇴계는 주자학에서 성리학으로 진전된 학문을 퇴계학으로 가일층 발전시켜 儒學을 완성시킨 東方의 공자로 일컬어지는 위대한 학자이다. 人多安東이라 함은 지리적인 위치가 좋아서 인재가 배출되는 곳을 의미함은 아닐 것이다. 안동은 내륙의 산악지대로 자고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입에 풀칠 하기에 척박한 지역이었다. 퇴계는 여의치 못한 형편인데도 후학을 배출한다는 一念으로 '계상서당'을 고향에 설립하였다. 배우려는 생도가 많고 서당이 좁아서 자리를 옮겨 '도산서당 을 짓기로 작심을 한다. 현대용어로 자금조달(?)이 여의치 못하여 3년에 걸쳐서 겨우 완공을 하게 된다. 선생께서 크게 만족하셨다고 한다. 얼마나 좋아 하셨는지 아마 신혼의 단칸방에서 처음으로 내 집을 마련한 부부를 생각하면 그 마음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도산서원을 갈 때마다 필자는 도산서당에 오래 머무르면서 깊은 상념에 빠져들기도 한다. 이는 서울에서 유일게 남아 있는 신촌기차역을 가보면 금시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옛날의 콧구멍 만한 역사를 그대로 두고 있다. 그 뒷편에 위치한 현대판 기차역은 시쳇말로 삐까삐까하다. 신.구의 모습은 발전의 모습을 한 눈에 보여주는 역사의 현장이다 문화의 이어져 옴을 같은 공간에서 느끼게 하는 정겨운 모습이다. 필자는 서대문은 위치상으로는 서방정토이며, 신촌기차 역사는 그 어떠한 문화재 못지 않게 의미가 있다는 주장을 하고 싶다. 한번 보면 많은 생각이 저절로 따르기 마련이다. 핀트가 옆길로 나가다. 각설하고, 퇴계의 사후에 제자들은 도산서당의 뒷편에 도산서원을 짓게 된다. 이것이 우리나라 서원의 표상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서원이 무려 9개나 등재가 되어 서원의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영남에는 도산서원 등 6개나 된다. 충청과 호남지역에 3개 밖에 되질 않는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된서리를 맞았기 때문이다. 영남의 서원은 퇴계와 도산서원의 덕을 톡톡히 보았을 것이다. 퇴계학은 학맥상으로는 학봉 김성일과 서애 유성룡 그리고 사숙 제자인 정약용으로 분류되는 3대 학맥이 있다. 위기지학의 철학으로 무수한 인재를 배출하여 많은 동량을 배출하였다. 나라에 기여케 한 인류의 큰 스승이 퇴계선생이시다 퇴계는 소싯적에 갑자사화가 일어났다. 물론 너무 어려서 모르고 지낸 사화였을 것이다. 어쨌든 무오사화를 제외한 사대사화를 직접 다 살면서 겪으셨다. 선비가 정치로 인하여 입게되는 士禍는 우리나라의 골치아픈 당쟁으로 이어져 지금도 여야의 파당의 모습을 보노라면 숨이 막힐 지경이고 가슴이 답답하다. 퇴계의 형 온계 이해는 당정에 휩싸여 죄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곤장을 맞고 산수갑산으로 귀양가던 중 그 다음날 양주에서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충청감사로 있을 때 일어 난 일 때문이었다. 모함이 활개를 치던 모습을 보면 인간은 성악설에 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없다. 조선 중엽에 송재 이우와 조카 온계 이해, 퇴계 이황이 대과에 급제하였다. 삼숙질이 과거에 급제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짐작을 하고도 남을 것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방의 작은 고을 경상도 청송의 眞寶李氏(나중에 眞城李氏)가 급속도로 전국단위의 양반으로 급부상이 되어진 것은 삼숙질이 과거급제가 계기마련이 되었던 것이다. 퇴계는 조정에서 국사를 논하는 것 보다는 향리에서 인재를 기르는 후학에 마음을 두고 있었다. 이는 당시 조정의 당쟁 등의 영향도 없지는 않았다고 보여진다. 타고난 성품과 어머니 춘천박씨의 높은 벼슬에 오르지 말라는 당부의 말씀에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보여진다. 이를 평생동안 실천한 퇴계이다. 얼마나 많은 저술과 시와 편지를 남기셨는지 놀라운 일이다.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인본사상을 손수 펼치신 분이시다. 이는 정비석의 '명기열전' 에 잘 묘사되어 있다. 논픽션을 바탕으로 픽션이 가미된 재미있는 퇴계에 관한 얘기다. 그는 '퇴계소전'과 '퇴계일화'란 책도 남기었다. 이은식 박사의 '기생 문학으로 말하다'에도 두향의 얘기가 나온다. 최인호의 '유림'에도 퇴계와 두향이의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교수신문에 ''혹애(惑愛)퇴계, 사랑을 하다.''란 인문학 소설이 연재가 되기도 했다. 당시 기생은 등급이 있었다. 관기는 좋게는 비서요. 바하적인 표현으로는 시중을 드는 몸종(?)정도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긴하다. 동서고금의 위대한 성자와 현인이 거쳐갔지만 당대에 퇴계선생만큼 존경을 많이 받은 인물은 없다고 감히 생각한다. 여러 임금께서 퇴계의 인품을 중히 여기면서 조정에 머물기를 바랐다. 조정의 대신들도 퇴계를 하나같이 존경하였다. 백성들도 퇴계를 흠모하였으니 이렇게 모든 이로부터 존경을 받은 분은 세계사에도 흔치 않는 일이다. 이는 마지막 퇴계의 귀향하는 모습에 잘 드러나 있다. 그 과정이 재현되어 역사의 생생한 체험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필자도 동참하여 조상의 자랑스러운 모습에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퇴계는 매화를 가장 사랑한 선비셨다. 생전에 98편의 매화시를 남기셨으며, 93편을 직접 엮어서 '매화시첩'을 내기도 하셨다. 혹자는 매화를 단양군수 때 두향이를 지칭한다고 하나 이를 뒷받침 할만한 자료는 찾기가 쉽지 않다. 단양군수로 10개월 남짓한 기간이었는데 당시 혼자의 몸으로 관직을 보셨다. 가족과 떨어져 살았던 것이다. 부인과 자식의 사별도 그때였다. 당연히 두향이와 시를 읊으면서 시름을 달랬을 가능성은 높다고 본다. 두향이와 戀情을 생각할 수 있긴 하겠지만 퇴계의 인품과 두향이의 가야금과 시에 매료되어 마음이 통하지 않았을까 싶긴 하다. 두향의 이름은 두보의 杜字에 향기 香字라 한다. 詩聖인 두보만큼이나 많은 시를 퇴계는 남겼다. 퇴계가 풍기군수로 전보되자 두향은 기적에서 탈퇴하고 말았다. 오직 퇴계만을 흠모한다는 증표가 아닐까? 450여년 전의 일인데 다소의 픽션이 가미 되었다 한들 확인할 도리는 없을 것이다. 기생도 세 등급이 있다. 정성을 다하여 모신 기생은 역사에 남아 있다. 퇴계와 두향, 서화담과 황진이, 양귀비와 당현종의 얘기는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훈훈하게 한다. 당시에는 1처 2첩의 제도였다. 첩은 지금의 몰래 사랑하는 애첩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두명의 첩이 가능했으며, 본처(?)가 시기하면 칠거지악에 걸리었으니 법적인 보호장치도 마련되었던 남성우위의 시대였다. 당시의 사회상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두향의 묘를 직접 이전한 族親으로 부터 상세한 얘기는 들었지만, 아직 산소를 찾아 술한잔 올리지 못하여 아쉽기 짝이 없다. 묘의 이장은 소설가 정비석의 권유로 당시 단양군수기 옮긴 것이다. 충주댐으로 인하여 물에 잠기게 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배를 타고 건너야하는 불편이 따른다. 퇴계는 남긴 귀중한 유물이 무척 많다. 우선 도산서원은 국민이면 다 안다. 서울의 퇴계로도 가장 많이 알려진 도로이다. 퇴계로에 작은 공원을 조성하여 매화를 심고 싶은 것이 필자의 작은 소망이다. 그리고 남산에는 동상이 많은데 퇴계像에는 자주 가는 편이다. 인자한 풍모에 선비모습이다. 지폐에 퇴계의 모습과 뒷면의 그림이 있다. 1000원 권이다. 혹자는 화폐단위가 높을수록 존경하는 인물로 알고 있는데 그러하진 않다. 세계 모든 나라의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저가권에 있다. 중국만이 지폐에 모택동일색일 뿐이다. 우리나라는 화폐의 유통량은 1000원권 지폐가 가장 많고 발행은 5만원 권이다. 저금리 시대라 금고에 보관하면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자고로 돈은 은행으로 집중하여 기업이 저리의 자금조달로 운용자금화 하여야 자금의 선순환을 이루는 것이다. 지금은 자금흐름이 동맥경화에 걸리어 혈액순환이 잘 되질 않고 있는 형국이다. 주자이래 천년에 한 명이 나온 분이 퇴계선생이다. 공자는 최근 중국이 공자학회를 만들어 의도적으로 세계에 알리고 있지만 퇴계학회는 일찍이 전세계에 전파되어 있었다. 일본에 끼친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친한파가 대다수 퇴계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다. 이는 시대를 초월한 인본정신이 투철한 영향이 아닐까 싶다. 일례를 한 가지만 들자면, 손주 느리가 출산을 했는데 젖이 모자라 애기의 목숨이 위기에 처했다. 당시 향리 도산에서 일하는 몸종인 노비도 애기를 낳았는데 서울로 불러 젖을 먹여도 가능했지만 퇴계는 남의 자식의 생명도 똑같게 중히 여기시어 편지를 보내어 판단하게 하였다. 결국 손자는 다음 해에 목숨을 거두고 말았던 것이다. 이보다 더 감동적인 휴면스토리가 있을까? 이는 역지사지를 몸소 실천한 휴머니즘을 꽃피운 일화가 아닐까 싶다. 퇴계와 관련된 이러한 스토리의 얘기는 무수히 많다. 시골에서 며느리가 버선을 지어 보내면 작은 빗과 편지로 고마움을 표하였다. 잘 알려진 얘기지만 퇴계는 봉화금씨와 사돈을 맺었다. 당시 양반이라 하면서 금씨집안에서 퇴계를 여간 홀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괄시를 크게 받았던 셈이다. 퇴계는 전혀 개의치 않고 문중의 반대를 설득하여 며느리로 맞이하였던 것이다. 며느리는 죽어서 남편곁으로 가질 않고 퇴계의 묘소아래 묻어 달라고 하여 지금 산소가 그곳에 있다. 필자는 퇴계묘소를 참배하면서 며느리 봉화금씨의 산소에서 읖하여 한참동안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생전에 잘 모시지 못하여 사후에 시중을 들고 싶다는 말씀은 감동 그 자체가 아닐까!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 고귀한 정신에 산소에 엎드려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시공을 초월한 인간승리의 감동같았다. 일생을 통하여 79번의 사직서를 낸 것도 기록이다. 68세에 17세 어린 선조에게 성학십도를 전하고 낙향하여 다음 해에 돌아가셨다. 성학십도는 퇴계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유가의 사상을 10개의 도표로 표현한 세기의 걸작이다. 퇴계의 사상이 30% 정도 가미되었다고 보여지며 중국의 성리학을 간단명료하게 요약한 것으로 선조임금을 위하여 각고의 노력으로 완성한 역작이다. 필자는 마지막 10도인 '숙흥야매잠도'는 오래전부터 실행에 옮기려고 애쓰고 있는 편이다. 새벽에 깨어서 잠자리에 들때까지 퇴계선생을 닮아 가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다. 제10도는 전적으로 퇴계의 사상을 집약한 것이다. 성학십도는 한 마디로 '하늘은 말이 없고 도(道)는 형상이 없다.' 일 것이다. 이는 우주가 있기 전에 이미 마음이 있었다는 이치와 다를 바 없다. 그리고 꽃이 생기기 전에 이미 색깔이 있었다는 이치와도 상통할 것이다. 성학십도는 어떻게 이렇게도 잘 간추린 도표인지 기가 막힌다. 얼마나 훌륭한 제왕학의 지침서인지 경외심을 느끼게 한다. 퇴계는 주역에 심취하여 소가죽끈이 세번이나 끊어지도록 공부를 하다가 그만 건강을 잃기도 하였다. 워낙 건강에 철저를 기하고 활인심방을 실천하시어 70세까지 사셨으니 장수한 셈이다. 선생께서는 앉아서 죽음을 맞는 소위 '족탈좌망'을 하셨으니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수행이 높은 스님도 어려운 자세를 취한 것이다. 이는 김성한의 동아일보 연재소설에 이마란 작자가 앙심을 품고 퇴계를 해꼬지 할려고 도산서당까지 갔으나 퇴계의 앉은 모습에서 광택이 나서 그만 넙죽 절을 했다는 표현이 있다. 부처님은 뒤에서 후광이 비친것과 같은 이치다. 4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퇴계를 그리워하고 존경하고 있다는 것은 그 의미가 크다고 본다. 당시만 하여도 한글은 여자만이 쓰는 뒷글인 언문이었다. 그러나 퇴계는 백성이 쉽게 부르고 노래의 뜻을 살리기 위하여 도산12곡 을 한글로 지으셨던 것이다 지금 이 노래로 박사학위를 받은 분이 있으며 CD까지 나와서 인기리에 불리워지고 있다. 노래의 작사자는 이황으로 되어 있어서 웃음이 절로 나온다. 영문으로 노래가 나왔으니 퇴계야말로 시공을 초월하여 21C에 빛을 발하는 위대한 역사적인 인물이리는 생각이다. 우리나라는 교육의 부재인지 존경하는 인물란에는 다른 나라 사람을 많이 쓰고 있다. 에디슨, 나폴레옹, 링컨, 처칠 등...... 우리나라의 위인이 많다는 사실을 교육으로 바로 잡아야 할 화급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손주에게 퇴계선생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해 주어서 서슴없이 존경하는 인물란에 적고 있다. 이는 3代가 한집에 사는 커다란 장점중의 하나이다. 조손(祖孫) 교육을 생활속에서 실행에 옮기고 있다. 그리고 퇴계의 후손 가운데 노벨문학상을 최초로 수상하길 꿈꾸어 본다. 성인이나 선진국은 한 세기에 걸쳐서 한 명씩 한 나라씩 배출되어 진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국운이 들어와 86년부터 그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제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에 진입하였으니 세계의 리더국으로 그 위용을 과시할 날이 도래할 것이다. 이는 세계사의 큰 흐름으로 나라 중심이 로마제국에서 대영제국을 거쳐서 현재 미국이 지구상의 리더국을 자임하고 있다. 이제 그 운이 서서히 우리나라로 옮겨지고 있는 추세이다. 한글이 인터넷 시대에 인기가 대단하다. 아마 이도(세종대왕의 이름)문자로 영어를 밀어내고 세계의 공용어가 될 것으로 예측되기도 한다. 퇴계를 얘기함에 있어서 이기일원론이니 이기이원론은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고봉 기대승과의 관계, 권씨부과의 에피소드 등은 생략했다는 것을 밝힌다. 그러나 그톡록 애지 중지하던 손자 안도(安道)에 대해서는 조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나 손자는 자식과는 다른 애정이다. 아마 자식 을 키울때는 철이 들지 않았지만 손주는 경험과 여유가 생겨서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내리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손자는 겸상도 가능하고 수염을 당겨도 이쁜 것은 아무래도 같이 살 날이 적다는 마음작용 때문이 아닐까 싶다. 참으로 슬픈 얘기다. 퇴계의 큰아들이 준이고 준의 큰아들이 안도이다. 아버지 준의 초상을 치루고 몸을 돌보지 않아 안도도 죽게 된다. 그리고 안도의 동생 순도 같은해 죽게 되었으니 퇴계의 인생에서 얼마나 큰 비극이었을까 상상할 수가 있다. 안도가 죽자 부인 안동권씨는 막내시동생 영도의 아들을 양자로 들여 결혼을 시킨후 자살을 한다. 일련의 죽음에 따른 공허를 어떻게 이겨 낼 수가 있었을까. 남편이 죽은후 23년을 제대로 먹지도 않았다고 한다. 퇴계는 70세까지 사셨으니 생전의 가족사는 숱하게 애를 태웠다고 보여진다. 사단법인 박약회는 퇴계의 인본사상을 중심으로 '행복아카데미'를 개최하고 있다. 도덕재무장운동처럼 하나의 작은 밀알이 되어 세계인의 인문과학과 인성에 크게 기여하리라 믿는다. 그 중심에 퇴계학이 자리잡고 있음은 자명하다고 확신한다. 퇴계의 예던 길을 걷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도산서원을 찿아 들고 있다. 인간은 위인이나 성인을 닮기 위하여 부단히 애써야 할 것이다. 퇴계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필자는 家訓을 '精進'으로 정하고 공부를 하고 있으나 아둔하기 짝이 없어 늘 제자리 뛰기만 답습하고 있다. 代를 이어서 뭔가 이루고 싶지만 세상이 변하여 눈에 보이는 物神은 추종하나 윤리나 도덕은 멀어져 가는 세상이니 퇴계의 성학정신에 점화하기란 쉽지 않아 걱정이 태산같다. 하늘은 말이 없다고 했는데 우리나라가 지구상의 리더국으로 영화를 향유할 때 퇴계의 학문이나 사상이 밑천이 되어 그 가치를 빛내게 될 것임은 확신한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 국어고전문화원 이사(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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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69] 퇴계의 아름다운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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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68] 호기심이 평생을 가다
- 이경국 칼럼니스트 호기심이 유별나게 많은 사람이 있다. 필자도 그러한 부류에 속하는 편이다. 이는 사물에 관해서도 해당이 되지만 이성에 대하여 더 강한 편이다. 책을 가까이 하면서 나름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는 편인데도 그리 쉽게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음양은 우주의 시작이요 끝인 것이다. 이를 축소하여 남녀로 생각을 제한해 본다. 상생관계는 자석처럼 시도 때도 없이 당기지만 상극사이는 소태를 씹은 듯하고 충(衝)이 자주 발생한다. 원진살의 경우는 서로가 동거자체가 피곤의 연속이다. 방향이 서로 다른데 잡아 당기니 힘이 들고 피곤한 삶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외형으로는 자식을 낳고 사는 모습이 평온하게 보이지만 내면의 고충은 다른 사람은 짐작조차 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아주 소싯적에 나는 여자 아이의 오줌누는 모습에 대한 호기심이 컸었다. 생김새가 다른 사실에 대한 생각을 골똘히 하였다. 그리고 사춘기 무렵에는 애기가 어떻게 좁은 産道를 통하여 세상에 나오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산도가 좁다는 것은 짐작하여 알게 된 사실이었다. 학교의 성교육은 그저 정자와 난자의 얘기만 하다가 끝난다. 물론 요즘은 진전이 조금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왜 부랄이 서로 크기가 다른지에 대한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해 주는 사람이 어릴 땐 아무도 없었다. 지금은 명쾌하게 설명을 하면 박수를 넘어 갈채를 보낸다. 이는 호기심이 없으면 궁금함 자체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태양에서 밝음과 어둠을 동시에 보내주고 있다. 높은 산에 깊은 계곡이 있댜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있다면 호기심은 어느 정도 해소가 될 것이다. 높은 산과 깊은 바다도 거의 높낮이가 비슷하고 밀물과 썰물도 자연의 큰 사랑으로 보인다. 암수는 다르다. 우선 들고 나옴의 요철(凹凸)이 다를 뿐이지만 기능은 같다고 보면 될 것이다. 진공모유의 오묘함에 눈이 뜨이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 호기심은 세밀한 관찰력이 있어야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저변에 음양의 힘이 있음을 살피는 관찰력이 생명이 아닐까 싶다. 사람은 저마다 호기심 천국의 세계를 지니고 있으면 그것이 젊게 살아가는 비결이라는 셩각이 든다. :: 이경국 칼럼니스트 약력 :: -- 대구대학교 경상대학 경제학과 졸업(1974) -- 프리랜서 작가(현)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 사) 국어고전문화원 이사(현) --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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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68] 호기심이 평생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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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67 ] 덧정이 없다는 표현
- 이경국 칼럼니스트 ''덧정이 있다''는 말은 잘 쓰여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덧정이 없다'는 말은 더러 쓰인다. 언뜻 생각하면 안동지역 방언같이 보이는데 표준어다. 만정이 뚝 떨어진다는 뜻이다. 그간의 있는 정에다 없는 정까지 보태서 떨어지니 정이 가혹하긴 하다. 정은 들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떼기는 더 어렵다고 본다. 고부사이에 앙숙으로 평생을 보내었으나 마지막 가는 길에 병상에서 시어머니가 며느리더러 ''내가 성격이 괴팍하여 너에게 너무 속상하게 했는데 미안하다. 에미야! 그만 풀어라'' 이 한마디 말에 속에 맺힌 앙금이 화로위에 떨어지는 함박눈처럼 금시 녹아 버리고 만다. 시어머니가 죽으면 가장 서럽게 우는 상주가 며느리다. 애증이 켠켠이 쌓인 것들이 마지막 길에 녹아 내리니 서러움이 북받쳐 오르는 것이다. 정은 무섭다고 한다. 애정과 다르다. 남자가 연인에게 끌리는 마음과는 다른 감정일 것이다. 계륵(鷄肋) 같은 사이가 있다. 뭔가 2% 정도 부족하여 괜찮은 상대가 있으면 언제라도 보내주고 싶은 관계를 말한다. 그런데도 여의치 못하여 계속 만나다 보면 그만 정이 들어 버리기 마련이다. 편한 사이로 관계가 진전이 되는 것이다. 덧정이 없다는 것은 별리를 작정하고 의도적인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본다. 배신의 순간이 닥치면 후회막급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애별이고(愛別離苦)를 설파 하셨다. 사랑은 이별이라는 큰 고통을 수반한다는 이치다. 호사다마라 했다. 복권에 당첨이 되어서 들떠 있는 차에 아내가 말기암 환자로 밝혀져서 차라리 복권에 걸리지 않은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살다보면 정이라고는 고갈이 되었는지 마른 장작같은 사람도 있다. 연인사이에 어머니같은 사랑을 느끼게 되면 사랑은 그만 천길 물속으로 빠지는 듯 정이 깊어져 버린다. 동물의 새끼는 적당한 시기가 되면 어미곁을 떠난다. 목숨을 걸고 보호하던 어미도 스스로 갈 길을 열어 준다. 그리고 돌아서서 수컷을 받아들여 이내 교미하여 새끼를 배는 것이다. 그 본성은 이성을 밝히는 인간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동물은 새끼를 낳지 못하면 죽음이 닥친다는 절박함에 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듯 보인다. 인간은 죽으면서도 자식 걱정이 되어 눈을 편히 감을 수 없다. 정이란 끈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젊은이는 자식에 대한 사랑의 일부만 부모님께 효를 한다면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혼자 자란듯 여기지만 자식을 키워 보면 그 어려움을 뒤늦게 느끼게 된다. 그때는 이미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세상이다. 학창시절 배운 ''子慾養而親不待'' 구절이 맴돈다. 영어로는 ''A son wants to serve his father. but his father won't wait'' 인데 느낌은 다른듯 하나 의미는 같다. 인생에서 가장 크게 후회를 하는 때이다. 부모는 하늘과 같은 존재이기에 생시에는 그 고마움을 모르고 지내기 십상이다. 덧정없는 세상보다는 정이 넘치는 세상이 좋을 것이다. 이는 부부사이나 연인간에도 같지 않을까 싶다. 누구나 날 두고 떠나 가는 자가 있다면 정까지 몽땅 가지고 가는 세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한 세상이다. :: 이경국 칼럼니스트 약력 :: -- 대구대학교 경상대학 경제학과 졸업(1974) -- 프리랜서 작가(현)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 사) 국어고전문화원 이사(현) --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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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67 ] 덧정이 없다는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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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66] 동성애 시비에 대하여
- 이경국 칼럼니스트 동성애는 동성(同性)끼리 사랑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성이 아닌 존재와 섹스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고대부터 유래된 잘못된 만남이긴 하다. 우선 음양의 논리에도 상반될 뿐만아니라 요철의 구조에도 배치되는 행위이다. 구약의 레위기에도 등장을 한다. 인간이 서로 좋아하는 것이야 인지상정이긴 하지만 남녀가 만나서 가정을 이루이서 代를 이어 나가는 것은 자유이전의 지구에 태어난 인간본연의 책무이다. 동성애로 노정되고 있는 사회문제는 심각하다. 미국의 동성부부의 가정이 120만가구라한다. 물론 주마다 법이 다르다. 우리나라도 동성연애자가 양성화 되어 해마다 '퀴어축제'가 백주대낮에 버젓이 열리고 있다. 이는 성문화를 해체하는 비윤리적 행위다. 동성애자의 자유를 박탈한다면서 저항하고 있다. 이렇게 서로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서 갈등이 심화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반려동물과 결혼하여 법적인 보호를 받고 있는 나라가 있는데 동성간의 결혼을 반대하기란 여간 난감하지 않을 것이다. 반려견과 혼인을 하면 주례사는 어떻게 할 것이며,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2세가 태어나면 인간인지 동물인지도 여간 궁금하지 않다. 대체로 동성간에도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따로 있어 질투심은 이성간 못지 않다고 하니 좀 웃기는 일이긴 하다. 여성끼리는 기구를 이용하여 섹스를 즐기며 아마 혀와 손을 다양하게 사용할 것이다. 반면 남자끼리는 애널섹스 (항문성교)를 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전립선을 자극하면 짜릿하며 남자는 사정으로 마무리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동성애를 이해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병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 좋아하니 법적인 제재는 하지 않더라도 양성화시키거나 축제를 허용하여 반라(半裸)의 차림으로 길거리를 활보하면 청소년들이 떼를 지어 구경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종의 기원을 따지기 전에 34억 축생가운데 태생(胎生)은 아기를 낳는데 동성은 불가하기 때문이다. 특히 종교인의 반대가 극심하다. 동물도 수사자와 암호랑이 사이에 '라이거'가 생기긴 하지만 거기서 명은 끝나는 것이다. 새끼를 낳지 못한다. 반대의 경우인 '타이곤'도 마찬가지다 동성애자가 부지기수로 확산이 되면 결국 지구는 종말을 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동성에는 말세의 증후로 보는 것이다. 원시시대에 동성애가 등장하고 있으니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로 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등이 가려운데 자기의 손으로 긁는 것보다는 남이 긁어 주면 더 시원하다는 것으로부터 동성애자를 이해한다면 접근은 가능하다고 본다. 만약 지기의 딸이나 아들이 어느날 결혼 대상자와 가족간 상견례를 하는데 동성을 데리고 나온다면 오케이를 하겠는가? 기절하여 그 자리에서 자빠져 버릴 것이다. 선진국에서 즐기는 애널섹스는 에이즈균의 전파가 극심하며 성병에도 많은 문제가 따른다고 한다. 이성간에는 끌림이 있고 체취가 있는 신의 최고의 걸작품인데 이를 외면하고 동성애로 결혼까지 하여 만약 자녀를 입양하게 된다면 많은 사회문제가 발생될 것이다. 동성애자도 수틀리면 이혼을 한다. 동성애자들은 자유나 권리만 외치지 말고 동성동본조차 혼인을 금했던 우리나라의 미풍양속을 생각히고 뇌가 꼬이지 않는 바른 생활을 하는 것이 인류평화에 기여하는 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동성애는 그 수가 적건 많건 간에 역주행이나 만취운전과 같은 사회의 암적 존재인데 좌경때문에 급속증가 하고 있는 추세이니 바른 안내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인간은 삼라만상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혼인은 이성간에 하여 가정을 이루어서 자녀를 생산하여 지상에서 화평을 누리지 못한다면 천상에 갈 생각은 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 이경국 칼럼니스트 약력 :: -- 대구대학교 경상대학 경제학과 졸업(1974) -- 프리랜서 작가(현)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 사) 국어고전문화원 이사(현) --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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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66] 동성애 시비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