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조순의 '역사는 미래다' 23] 화랑정신, 삼국유사의 출발점, 청도 운문사

조순 문학박사, 지산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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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4.23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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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저널의 기획 연재 '조 순의 역사 콘서트'의 집필을 맡은 조 순 문학박사, 지산학연구소장

 

사찰의 새벽은 예불과 함께 사방의 정적을 깨우는 것으로 시작된다.  

 

원광법사(圓光法師) 보양대사(寶壤大師) 일연선사(一然禪師) 등 시대를 초월하는 승려들이 머물다간 청도 운문사(雲門寺)는 원광법사에 의해 화랑(花郞) 추항(箒項)과 귀산(貴山)에게 세속오계(世俗五戒)가 전해지고, 일연선사의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서술이 시작된 곳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삼국유사》는 군위 인각사(麟角寺)에서 시작되고 마무리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바로 그 시작은 운문사(雲門寺)였다.  

 

운문사는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 있는 호거산 자락에 있다.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아있는 형상에 자리 잡고있는 이 사찰은 560년(신라 진흥왕 21)에 어느 신승(神僧)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풍수상으로 배산임수(背山臨水)가 기본인 건물의 배치에서 운문사는 특이하게 호거산(虎踞山)을 마주 보며 위풍당당(威風堂堂)하게  자리하고 있다.

      

운문사는 본래 다섯 개(동쪽: 가슬갑사, 서쪽: 대비갑사, 남쪽: 천문갑사, 북쪽:소보갑사, 중앙:대작갑사)의 갑사 중 하나로 대작갑사(大鵲岬寺)라 하였다.

 

오갑사(五岬寺)가 창건된 시기는 신라의 불교중흥과 삼국통일  준비에 박차를 가하던 때다.  주변에 화랑의 훈련장을 설치하여 통일의 대업을 이루었던 화랑정신의 발상지로서도  운문사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보양대사에 의해 2차 중창되면서 작갑사라 고쳐졌다.  후삼국 통일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보양대사에 대한 공으로  왕건이 운문선사(雲門禪寺)라는 사액을 내리고 토지 500결을 하사한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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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오백전

 

삼국유사 보양이목(寶壤梨木,보양스님과 배나무이야기) 가운데  승려 보양에 대한 기록인 보양전에도 그의 고향과 성씨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그의 신분이 분명하지 않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삼국유사 보양 이목조에 나오는 이야기다.

 

보양이 불법 공부를 하고 돌아올 때 서해의 용왕이 금빛 비단의 가사 한 벌을 주고  용왕의 아들로 하여금 그를 모시도록 하면서 "작갑(鵲岬)에 절을 짓고 살면 적병을 피할 수 있고 몇 해가 지나면 불법을 보호하는 임금(왕건)이 나와서 어지러운 삼국을 평정할 것이다" 하였다.

 

이 이야기는  운문사가 왕건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알려주고 왕건이 지원한 경제적 기반을 토대로 운문사가 대찰로서 일어서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운문사라 이름 지은 것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당나라 때의 고승 운문문언(雲門文偃)을 기리기 위함인데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나면서 갈파했다던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란 말에 대하여 "자기 앞에서 다시 한번 그런 소리를 하면 다리를 분질러 버리겠다"고 한 괴짜 승려였던 그를 위해서였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다간 선승들의 모습이 호방하다 못해 시공을 초월한 모습이 연상된다.  

 

운문사 입구의 소나무길은 도심의 일상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어머니 품속 같은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경내에는 신라 말기의 석조여래좌상(보물제317호), 그 좌우에 있는 사천왕석주(보물제318호) 삼층석탑(보물제678호), 비로전(보물제835호) 등을 비롯하여 30여 동의 건물이 있다.  

 

특히 나한을 모신 오백전은 영천 은해사(銀海寺) 거조암영산전(居祖庵靈山殿, 국보 제14호)에 모셔져 있는 오백나한과 음미해보면서 살펴보는 것도 관람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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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처진 소나무

 

 또 운문사에 천연기념물 제180호로 지정된 처진 소나무는 400여년이나 된 나이를 가졌으면서도 아직도 푸르른 청년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이 소나무는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인의 술인 막걸리 25말을 물과 섞어서 1년에 두 차례 마시면서 이 절의 상징적인 수호목(守護木)으로 서 있다.   

 

운문사는 현재 우리나라 최대의 비구니 강원으로 해방 이후 한때 대처승(帶妻僧)이 거주하기도 하였으나 1950년대 교단 정화 이후 비구니스님들의 전문강원으로 개설, 1987년 승가대학으로 개칭되었다.

 

1997년 비구니 강사를 양성하는 전문교육 기관으로  국내 첫 승가대학원(僧伽大學院)으로 개설되어 비구니스님들이 공부에 정진하고 있다.

 

 운문사는 원광법사에 의해 추항과 귀산에게 전해진 〈세속오계〉로 화랑정신의 발원지이면서, 고려 충렬왕이 일연선사를 1277년부터 81년까지  운문사 주지로 임명해 《삼국유사》의 집필이 시작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정신문화가 흐려지고 있는 이 시대에 유구한 역사가 살아있는 운문사를 다녀옴도 좋을듯하다.

 

 

:: 조 순 문학박사, ()지산학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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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

좋은 정보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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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금

쳐진 소나무는 반송 소나무라 하지요.
격조높은 글 많이 배우며 잘 읽고 있습니다.
健勝, 健筆 하시길 두손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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