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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의 '역사는 미래다' 29] 김삿갓이 주는 여유와 해학의 멋

조순 문학박사, 지산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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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6.05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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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저널의 기획 연재 '조 순의 역사 콘서트'의 집필을 맡은 조 순 문학박사, 지산학연구소장

 

♬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 흰구름 뜬 고개 넘어가는 객이 누구냐 / 열두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 술 한 잔에 시 한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   

 

조선 철종 때 방랑시인 김삿갓의 삶을 유행가 가사에 담아 현재까지도 공허한 남자들 가슴 한켠에 애잔하게 다가와 사랑을 받고있는 노래이다.

 

 또 이 노래는  한 전직 대통령이 개사해서 구수하게 부른  최고 애창곡이기도 하였다.

 

천재시인이며, 제도권에서 벗어난 일탈자이며, 방랑자로 일생을 살았던 김병연(金炳淵, 1807~1863).

 

당시 서민들은 그의 시에 울고 웃었다. 그는 1807년 3월13일 경기도 양주에서 김안근(金安根)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 본명은 병연(炳淵), 자는 성심(性深), 호는 난고(蘭皐)이며, 일명 김립(金笠) 또는 김삿갓 이라 불렸다. 그의 운명은 1811년(순조11)에 일어났던 홍경래(洪景來)의 난으로 인해 송두리째 바뀌어 버렸다.  

 

당시 그의 조부였던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 난 때 투항한 죄로 멸족을 당하다시피 되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김병연이 강원도 영월에서 치러진 백일장에서 장원급제 하였으나, 당시 백일장(白日場)의 시제(試題)가 홍경래 난 때 투항한 선천부사(宣川府使)였던 그의 조부 김익순을 꾸짖고, 그와 반대로 결사 항전하여 죽은 가산군수(嘉山郡守) 정시(鄭蓍)의 충절을 찬양해 장원급제하여 집으로 돌아왔으나, 과거시험의 시제를 묻던 어머니로부터 김익순이 그의 조부라는 말을 듣고 그 충격으로 인해, 조상을 욕하고 급제했던 자신을 죄인이라 하여, 붓을 꺾고 일생동안 삿갓을 쓰고 주유천하(周遊天下) 하면서, 세상을 풍자하고 비판했다고 전해지는 사실인데, 위의 내용은 주로 소설에 나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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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묘

 

그러나 1925년에 간행된 조선시대 인물에 대한 기록 등을 담은, 대동기문(大東奇聞)에는 이와 다른 사실을 전하고 있다. 김삿갓의 실력에 미치지 못한 평안도 일대에서 활동하던 시인 노진(魯禛) 이라는 사람이 김삿갓을 조롱하기 위해 지었다고 전하고 있다. 

 

김삿갓이 22세부터 방랑의 길을 걷는데, 백일장 시험을 치를 때는 자신의 조상이 누구인지 당시의 나이로는 몰랐을 리 없을 것이다.

 

또 김병연은 관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당시 서울의 세도가 집안의 인물들과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어울리다가 나중에 자신의 신상이 탄로 나서 그들로부터 배척당하자, 더 이상 자신의 신분 상승이 불가함을 깨닫고, 한동안 고뇌하다가 방랑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아들 익균(翼均)이 아버지를 찾아서 몇 번 상봉하여 귀가를 애원했지만, 그때마다 아들을 따돌리고 전국을 유랑하다가 전라도 동복(화순) 땅에서 운명하였다. 그의 묘소는 강원도 영월에 있으며 1987년에 시비가 세워졌다.

 

김병연은 시를 짓는데 있어서도 천재적 자질과 함께 당시의 한시의 격식을 깨뜨린 시를 많이 지어 조선의 한시가 김병연에서 망했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이십수하삼십객(二十樹下三十客, 스무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  

 

사십촌중오십식(四十村中五十食, 망할 놈의 마을에서 쉰 밥을 주네)  

 

인간기유칠십사(人間豈有七十事,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다 있는가)  

 

불여귀가삼십식(不如歸家三十食, 집에 돌아가 설익은 밥 먹는 것이 낫겠네)  

 

집 떠나면 고생이고 서러움이 많은 것인데, 어느 고을에서 푸대접당한 것을 숫자를 가지고 절묘하게 시를 지어 경탄을 자아내고 있다.  

 

전국을 다니면서 수많은 양반들과 시를 주고받으며 시사를 풍자, 조롱하고 또한 객수를 달래기 위해(?) 기생 가련(可憐)을 비롯한 수많은 여인들과의 로맨스도 풍류남아의 멋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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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과의 답사는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다. 점선 속 얼굴이 필자다.

 

단천(端川)에서의 곱단이와 하룻밤의 정을 나누면서 처녀의 그것을 의심스러워 허탈한 마음으로 곰방대를 물고 담배연기를 뿜으며 시를 지었다.

 

모심내활(毛深內闊) 털이 깊고 속이 넓으니

필과타인(必過他人) 필시 타인이 지나갔구나

 

영민한 곱단이가 김삿갓의 어깨너머로 보며 자신의 순결을 의심하는 김삿갓에 대응하여

 

후원황률불봉탁(後園黃栗不蜂坼) 뒷동산의 밤은 벌이 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벌어지고

 

계변양류불우장(溪邊楊柳不雨長) 시냇가의 버드나무는 비가오지 않아도 잘 자란다.

 

곱단이가 위의 시로 천하의 김삿갓에게 KO패(?)를 안겨줬다.  

 

은근과 끈기로 살아온 우리 선조들은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그 속에서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는 해학과 풍자를 통해 주변을 감동시키고, 언어의 품격을 잃지 않았다.

 

 

 

:: 조순 문학박사, ()지산학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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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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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금

비통한 삶을 멋지게 승화시킨 방랑 김삿갓 모두가
부러하는 재치 만점의 풍류시인 이셨죠.

요즘처럼 권력의 눈먼 뻔뻔한 위정자들 뭘보고 배우는지
모르겠습니다. 최소한의 수치심은 알아야 인간일 수 있다하지 않을까? 묻고 싶네요.

고맙습니다.
재밌게 읽으며 좋은 글에서 배움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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