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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의 '역사는 미래다' 100] 四物과 四勿
대구저널의 기획 연재 '조순의 역사 콘서트'의 집필을 맡은 조순 문학박사, 지산학연구소장 절에 가면 불전사물(佛殿四物)이 있다. 절에서 아침저녁 예불 때 치는 네 가지 불구(佛具)로 범종(梵鐘), 법고(法鼓), 운판(雲板), 목어(木魚)가 있다. 범종은 지옥 중생, 법고는 육지 중생, 목어는 어류 중생, 운판은 허공 중생을 제도한다. 아침저녁으로 사찰에서 울려 퍼지는 범종 소리는 소음에 찌든 중생들의 영혼을 위로해준다. 스님들이 심(心)자를 그리며 두드리는 법고 소리는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남을 일깨워준다. 선비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네 친구가 있다. 서책(書冊), 차(茶), 조랑말, 양식 서너 말이다. 서책은 고인(古人)과의 대화를 통하여 자신을 성찰, 삶의 지혜를 터득한다. 천재 여류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의 ‘한가할 때 고인의 책을 보라(閒見古人書)’ 유묵(遺墨)은 그것을 대변하는 것 같다. 차는 무슨 차든 간에 그 향기로 하여 마음이 흐뭇해진다. 〈박현서, 다화의 서정〉 산 높고 물 맑은 나라/ 땅이 신령스런 인걸의 나라/ 고려의 늙은이가 산에 살면서/ 불로장생의 선다(仙茶)나 마시리 〈목은 이색,1328~1396〉 차는 서양인에게 이국 정서의 반향을 불러 일으킨다. ‘역설의 대가’ 칭호를 받은 영국의 소설가 체스터튼(Chesterton,G.K, 1874~1936) 은 ‘정(正)과 부정(不正)의 노래’에서 차는 ‘동양의 신사’라고 하였다. 조랑말은 힐링을 함께하는 신선의 도구이다. 자유로운 여행은 곧 자연과 일체 되는 순간을 만끽하기에 선비들은 말을 타고 산수를 유람하면서 입산 기록인 ‘유산록(遊山錄)을 남기기도 하였다. 북송(北宋)의 유학자 정이(程頤,1033~1107)가 지은 잠언(箴言, 교훈과 경계가 되는 짧은 경구)에 사물잠(四勿箴)이 있다. 보는 것(시잠, 視箴), 말하는 것(언잠, 言箴), 듣는 것(청잠, 聽箴), 행하는 것(동잠, 動箴), 곧 사물잠을 말한다. 사람은 이 네가지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됨됨이가 드러난다.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하지도, 듣지도, 행하지도 말라는 이 말은 현시대에 이르러 전설 속의 문구가 되어가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사방이 닫혀있다. 언론이 닫혀있고, 국회가 닫혀 있고, 경제가 닫혀있고, 사람들 마음이 닫혀 있다. 개언론(開言論, 언론이 제자리를 찾아야 하고), 개국회(開國會, 국회가 초당적인 열린 자세로 환골탈태 해야하고), 개경제(開經濟, 경제가 회복되어야 하고), 개국민(開國民, 국민 마음이 하나로 열려야 한다) 우리 대한민국은 늘 위기를 기회로 돌파해 나가는 예지와 역동성을 가진 민족이다. :: 조순 문학박사, (사)지산학연구소장 :: [조순의 역사콘서트 '역사는 미래다' 연재를 마치며...] 독자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미족한 글에 아낌없이 성원해 주신 대장금 님 이경국 님 등 애독자 여러분께 고맙고 송구한 마음 간직하면서, 2년간 매주 써온 100회 원고를 끝으로 일단 제 글을 마무리합니다. 앞으로 구상하는 기획으로, 여러분과 만남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조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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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의 '역사는 미래다' 99] 태극(太極)
대구저널의 기획 연재 '조순의 역사 콘서트'의 집필을 맡은 조순 문학박사, 지산학연구소장 우리나라 국기를 태극기라 한다. 붉은색의 陽과 푸른색의 陰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음양의 상대(相對), 만물의 생성을 지속해 가는 궁극적 실재로서의 태극을 도상화(圖像化)하여 만들었기에 태극기는 우리나라를 상징한다. 태극은 우주의 본체로서 천지가 아직 열리지 않고 음양의 이기(二氣)가 나누어져 있지 않은 때를 말하고, 이것이 나누어져 양의(兩儀, 음양)→사상(四象, 음양을 태음 태양 소음 소양으로 구분한 것)으로 이것이 하늘에 있으면 원형이정(元亨利貞, 역학에서 말하는 天道의 네 원리로 사물의 근본이 되는 원리) 이요, 때에 있으면 춘하추동(春夏秋冬)이요, 방위에 있으면 동서남북(東西南北)이요, 사람에 있으면 인의예지(仁義禮智)이다. 태극의 신화적 배경은 모든 창조 신화에서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천지개벽 직전의 혼돈과 무정형(無定形)의 상황으로 우주란(宇宙卵, Cosmic Egg)이라 표현하며 이는 우주 및 사물의 근원을 상징한다. 태극이라는 용어는 역경(易經)의 계사(繫辭) 上에 나오나 문양은 그려져 있지 않다. 이것을 주돈이(周敦頤)가 '태극도설'에서 문양화하고, 우주를 형성하는 음양의 두 원기(元氣)를 그림으로 풀어 만물의 발전 이치를 밝혔다. 그러나 태극의 도형과 관념은 그 이전부터 있었고 활용되어 왔다. 고구려의 벽화 사신도(四神圖)의 현무도(玄武圖)는 음양상화(陰陽相和)의 이치를 나타낸 것이며, 민간에서는 액막이의 부적으로 사용되었고, 경주의 감은사지(感恩寺址) 유적의 석각(石刻)에도 태극도형(太極圖形)이 보인다. 청동기 시대의 동경(銅鏡),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토되는 둥근 거울은 그 자체가 태극이다. 고려시대 동경(銅鏡) 장식에도 용 2마리와 여의주가 각각 조각되어 있고, 여의주를 태극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독립문에도 태극기의 원형이 중심에 조각되어 있고 네 귀에 팔괘가 보인다. 하늘, 때, 방위, 사람은 각자 위치에 있을 때 조화를 이루며 상생한다. 하늘의 운기를 어지럽혀 기상이변과 재해가 끊이지 않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구분 점이 없어 사람과 동식물이 고통과 변형되어가고 있다. 자기 자신을 모르고 천방지축으로 사람들이 날뛰니 세상이 조용한 날이 없다. 문명의 이기(利器)가 우주의 질서와 법칙을 어기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모든 것이 원인 없는 결과가 어디 있겠는가! 태극은 하늘이다. 한국인의 기상이 그 속에 있다. 가을 하늘을 쳐다보며 노래 불러보자.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펄럭입니다~. :: 조순 문학박사, (사)지산학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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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의 '역사는 미래다' 98] 난초(蘭草)
대구저널의 기획 연재 '조순의 역사 콘서트'의 집필을 맡은 조순 문학박사, 지산학연구소장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에 수로왕(首露王)이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 허황옥(許黃玉)과 그 일행을 맞이할 때 난초로 만든 마실 것과 혜초(蕙草)로 만든 술로 대접했다는 기록에서도 보이듯, 난초의 청초함과 그윽한 향내는 오래전부터 시인 묵객 등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래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 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느니라 가람 이병기의 '난초' 일부분이다. 사군자 중 하나인 난초는 대나무(竹)가 남성적이라면 여성적인 것에 많이 비유되어 왕비가 거처하는 곳을 '난전(蘭殿)' 미인의 침실을 '난방(蘭房)'이라고 한다. '蘭'자를 파자해보면 艸(풀 초)+ 門(문 문)+ 柬(고를 간)이니 향초 중에서 고른 명문의 귀녀(貴女)라는 뜻이 된다. 유교에서 "군자는 덕을 닦고 도를 세우는데 있어서 곤궁함을 이유로 절개나 지조를 바꾸는 일이 없다." 『주역』에서도 마음이 착하여 나와 서로 잘 맞으면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二人同心 其臭如蘭) 고 하여 난초를 군자의 덕과 선인(善人)에 비유하였다. 중국의 『본초경(本草經)』에도 난초를 기르면 집안에 상서롭지 못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막아주고, 잎을 달여먹으면 해독이 되며 오래도록 마시면 몸이 가뿐해지고 노화 현상이 없어진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난초 그림을 벽사(闢邪)의 의미로 집안에 걸어두고 염원하였다. 난초는 자손의 번창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충청도와 경기도 지역에는 '꿈속에서 난초가 대 위에 나면, 그 집에 식구가 늘어나고 자손이 번창하며, 난초 꽃이 피면 미인을 낳는다.' 는 말이 전한다. 서양에서 난초의 명칭은 그리스어 'orchis'에서 유래 되었는데 남성의 고환(睾丸)을 가리킨다. 난초의 구근(球根)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 난초는 여성과 호화로움을 상징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난초는 'long purples'도 남성을 상징한다. 난초는 동서양에서 남성 여성 모두를 나타냄과 동시에 정신적인 완성, 순결을 말하며 이상적인 인간상을 보여준다. 오늘 아침에 때 묻은 나를 돌아보며, 베란다에서 향을 전해오는 난초를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 조순 문학박사, (사)지산학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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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의 '역사는 미래다' 97] 호가호위(狐假虎威)
대구저널의 기획 연재 '조순의 역사 콘서트'의 집필을 맡은 조순 문학박사, 지산학연구소장 자신의 신분에 대한 콤플렉스(complex)가 심한 사람일수록, 타인의 위세를 이용하여 자신을 내세우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본다. 소위 호랑이의 힘을 배경으로 여우가 위세를 부리는 것이다. 호가호위 고사(故事)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초나라(楚國)의 재상(宰相) 소해휼(昭奚恤)에 대한 것이다. 당시 북방의 여러 나라가 소해휼(昭奚恤)을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에 초나라 선왕(宣王)이 북방(北方)의 나라들이 왜 소해휼(昭奚恤)을 두려워하는지 강을(江乙)이라는 신하(臣下)에게 묻자, 강을(江乙)이 대답하기를 " 호랑이가 여우 한 마리를 잡았는데, 잡아먹히게 된 여우가 말하기를 나는 하느님으로부터 백수(百獸)의 왕(王)으로 임명(任命)되었는데. 만일 나를 잡아먹으면 하느님(天帝)의 명령(命令)을 어긴 것이 되어 천벌(天罰)을 받을 것이다. 내 말을 못 믿겠으면 나를 따라와 봐. 나를 보면 어떤 놈이라도 두려워서 달아날 테니, 어리석은 호랑이는 여우의 말을 듣고 따라갔습니다. 과연 만나는 짐승마다 모두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짐승들은 여우 뒤에 있는 호랑이를 보고 달아난 것이지만, 호랑이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즉 북방(北方)의 여러 나라가 소해휼(昭奚恤)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사실 북방의 제국들은 소해휼(昭奚恤)의 뒤에 있는 전하(殿下)와 초나라의 강군(强軍)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꾀 많은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업고 가는 우화(寓話) 그림 호가호위(狐假虎威,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부리듯 남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림)하는 사람들을 보면 주변인들을 비롯하여 사돈의 팔촌까지의 신분을 망라하면서 이른바 정치인, 단체장, 언론인, 법조인, 기업인 등 유명인들을 들먹이고, 심지어 조상의 관직까지 내세운다. 권력의 끄나풀을 부여잡고 있는 무리들이, 천문학적인 나랏돈을 도둑질하고도 뻔뻔하게 나오고, 진짜가 아닌 가짜가 판치는 것은 뒤에서 봐주는 폐쇄적인 그들만의 카르텔이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이 권력자들을 향해 기세도명(欺世盜名, 세상을 속이고 헛된 명성을 도둑질 함)하는 무리라고 비판한, 추상같은 꾸짖음이 이 시대에 더없이 필요한 것 같다.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추고 가면(假面)으로 살아가면 도대체 누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처럼 내세우지 말고,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아들은 아들답게)처럼, ~ 답게 살자. 그것이 진짜다. :: 조순 문학박사, (사)지산학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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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의 '역사는 미래다' 96] 故宅과 古宅의 차이
대구저널의 기획 연재 '조순의 역사 콘서트'의 집필을 맡은 조순 문학박사, 지산학연구소장 세월의 무게는 연륜이라는 계급장이 따라 다닌다. 오래된 사찰건물이나 양반가의 고택은 세월이 지날수록 고색창연한 멋이 우러난다. 아무리 좋은 집이라도 사람이 거주해야 오래 보존할 수 있다. 사람이 사는 공간인 만큼 사람과 집은 서로 기운이 맞아야 하고, 주인의 행적에 따라 상호 간 수명이 좌우된다. 집의 역사는 선사시대 혈거 주거지가 우주의 모상(模像)이며, 일부 동굴주거지는 아기집과 원형성을 같이하고 있는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500년간의 조선 역사에서 의․식․주를 나누어 지역별로 살펴보면, 기호지방은 옷으로(衣), 호남지방은 음식으로(食), 영남지방은 집으로(住) 멋을 뿜어내었다. 특히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에 이러한 모습은 도드라지게 나타났다. 기호지방은 권력을 잡았기에 관복(官服)으로 위세를 드러내었고, 영남지방은 벼슬길에 나가는 길이 거의 막혀 양반의 체면 유지는 자연스레 집을 통해 드러났다. 호남은 물산이 풍요로웠기에 음식문화의 발달과 예술을 하는 인사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전국에서 고택은 영남지역이 여타지역보다 많이 남아있다. 특히 경주 안동 영주 등의 지역에서, 대표적인 건물들이 현재까지 문화유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청송 송소고택, 영조 때 만석꾼이었던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지은 집 안내판에 보면 고택(古宅)이라 쓴 곳도 있고, 고택(故宅)이라 쓴 곳도 있다. 고택(古宅)은 직접 살았던 집을 말하고, 고택(故宅)은 직접 살지는 않았지만, 연고가 있는 집을 말한다. 전국 명소의 고택은 그 집에 사는 주인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그대로 나타난다. 경주 최부자집은 12대에 걸쳐서 만석꾼, 청송의 송소고택(松韶古宅)도 9대에 걸쳐서 만석꾼이 나왔다. 모두 적선(積善)을 통해 이웃이 어려울 때 함께 한 명문가이다. 반대로 적불선(積不善)한 부자는 모두 사회 혼란기에 피화를 당하여 흔적조차 없어졌다. 고택은 단지 오래된 집의 개념을 넘어 한국의 전통의 건축미학과 더불어 집주인의 역사적인 행적에 따라 빛과 그림자로 구별되었다. 지난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담긴 고무신 지나간 세월 속에 선조의 묵향(墨香)과 차향(茶香)이 함께하는 고택에서,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답사를 하면 얻는 게 없다. 주인과 하룻밤을 같이 묵으며 집안의 내력과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 보면 왜 이 집이 명문가로 존속 되어 왔는지 알 수 있다. 저녁노을 연기 나는 굴뚝을 바라보며, 고택에서의 하루 쉬어감은 정신없이 살아온 오늘의 현대인들에게 힐링의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사람이 너무 편한 것만 찾다 보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 조금 불편함 속에 감사함을 배우는 고택체험을 통해, 선조들의 손때 묻은 서책과 책 내음은 영혼을 맑게 할 것이다. 필자는 현재 서원교육을 위해 경북 영천시 대창면에 있는 도잠서원(道岑書院) 주변 정비사업을 하고 있다. 향후 전국은 물론 외국인들에게, 선현들이 교육했던 그 공간에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어떻게 살아갈지를 함께 고민하며 해결하고, 체험하는 장이 되길 염원하면서 2년 후 그날이 오길 기대하고 있다. :: 조순 문학박사, (사)지산학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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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의 '역사는 미래다' 95] 팔, 구월의 세시풍속(歲時風俗)
대구저널의 기획 연재 '조순의 역사 콘서트'의 집필을 맡은 조순 문학박사, 지산학연구소장 농경사회의 풍속으로 해마다 농사력(農事曆)에 맞추어 관례(慣例)로서 행하여지는 전승적 행사 중 추석이 든 8월과 단풍놀이를 하는 9월은 어떤 달보다 풍요로움과 여유로움이 깃든 달이다. 모든 곡식의 결실이 맺어지는 8월에는 하늘과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 음력 8월 상정일(上丁日)에는 각 지방에서 유생들이 문묘에서 봄에 이어 가을 석전제(釋奠祭, 음력 2월과 8월에 공자를 모신 文廟에서 先聖, 先師에게 지내는 제사)를 지낸다. 관학(官學)인 성균관과 향교에서 상정일(초정일)에 지내고, 사학(私學)인 서원에서는 중정일(中丁日)에는 사액서원(賜額書院)에서 하정일(下丁日)에는 비사액서원(非賜額書院)에서 묘우(사당)에서 배향(配享) 된 선사(先師)에 제사를 지낸다. 15일 중추절은 가을을 초추(初秋) 중추(仲秋) 종추(終秋)로 나누어 음력 8월이 중간에 든 데서 붙은 이름이다. 또 '한가위' 또는 '추석(秋夕)'이라 하여 절사(節祀)를 지내고, 조상의 산소에 가서 성묘를 한다. 『삼국사기』 「유리왕조」에 음력 7월16일부터 매일 길쌈을 하여 8월15일에 그 성과의 많고, 적음을 살펴 진 쪽에서 술과 음식을 내어 이긴 자를 축하하고 가무를 하며 각종 놀이를 하였는데 이를 '가배'라 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추석 행사를 가락국(駕洛國)에서 유래되었다고 하였다. 이 날은 송편·시루떡·토란단자· 밤단자를 만들어 먹는데 대표적인 음식이 '송편'이다. 송편을 잘 빚으면 시집을 잘 간다고 하여 처녀들은 손자국을 내어가며 예쁘게 만들었다. 현대는 대다수 가정에서 기계로 대량생산 된 송편을 사서 차례상에 올리니 예쁜 손길의 정성이 사라진 모습이다. 이래저래 후손들은 살기 바쁘다는 핑계와 경제적이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모습에서 우리 모두 조상의 존재를 자꾸 멀리한다. 한가윗날 밤에 마을의 부녀자들 수십 명이 넓은 마당에 모여 둥글게 서로 손을 잡고서 강강수월래 춤(1966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을 추는데, 목청이 좋은 사람이 가운데 서서 '산아산아 추영산아/ 놀기좋다 유달산아'하고 노래 부르면'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라고 받아 부르며 춤을 춘다. 또 추석을 전후하여, 시집가면 보기 어려운 딸을 보기 위하여 시집과 친정집의 중간지점에서 어머니와 딸, 또는 안사돈끼리 만나서 가지고 온 음식과 선물을 주고 받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며 하루를 보내는 '반보기(일명, 中路相逢)'가 있다 9월 행사 중 9월 9일은 중양절(重陽節)이라 하여 삼월삼짇날 강남에서 온 제비가 다시 강남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각 가정에서는 부녀자들이 제철 음식으로 '화채(花菜)'를 만들어 먹으며, '국화전(菊花煎)'도 부쳐 먹는다. 또 '풍국(楓菊)놀이'라 하여 선비들은 음식을 장만해 교외 산야(山野)에 가서 시를 짓고 자연의 기운을 받으며 하루를 즐긴다. 오늘의 단풍놀이는 시를 짓는 대신에 전국의 휴게소에서 전세 관광버스, 들로 산으로 울긋불긋한 남․녀등산복 색깔로 절정을 이룬다. 자연에서 호연지기를 기르고 계절의 흐름에 순응하며 살아온 우리 선조들, 먹을거리는 부족하였을지언정 여유와 풍류는 더없이 앞서간 위인들이었다. :: 조순 문학박사, (사)지산학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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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의 '역사는 미래다' 100] 四物과 四勿
- 대구저널의 기획 연재 '조순의 역사 콘서트'의 집필을 맡은 조순 문학박사, 지산학연구소장 절에 가면 불전사물(佛殿四物)이 있다. 절에서 아침저녁 예불 때 치는 네 가지 불구(佛具)로 범종(梵鐘), 법고(法鼓), 운판(雲板), 목어(木魚)가 있다. 범종은 지옥 중생, 법고는 육지 중생, 목어는 어류 중생, 운판은 허공 중생을 제도한다. 아침저녁으로 사찰에서 울려 퍼지는 범종 소리는 소음에 찌든 중생들의 영혼을 위로해준다. 스님들이 심(心)자를 그리며 두드리는 법고 소리는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남을 일깨워준다. 선비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네 친구가 있다. 서책(書冊), 차(茶), 조랑말, 양식 서너 말이다. 서책은 고인(古人)과의 대화를 통하여 자신을 성찰, 삶의 지혜를 터득한다. 천재 여류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의 ‘한가할 때 고인의 책을 보라(閒見古人書)’ 유묵(遺墨)은 그것을 대변하는 것 같다. 차는 무슨 차든 간에 그 향기로 하여 마음이 흐뭇해진다. 〈박현서, 다화의 서정〉 산 높고 물 맑은 나라/ 땅이 신령스런 인걸의 나라/ 고려의 늙은이가 산에 살면서/ 불로장생의 선다(仙茶)나 마시리 〈목은 이색,1328~1396〉 차는 서양인에게 이국 정서의 반향을 불러 일으킨다. ‘역설의 대가’ 칭호를 받은 영국의 소설가 체스터튼(Chesterton,G.K, 1874~1936) 은 ‘정(正)과 부정(不正)의 노래’에서 차는 ‘동양의 신사’라고 하였다. 조랑말은 힐링을 함께하는 신선의 도구이다. 자유로운 여행은 곧 자연과 일체 되는 순간을 만끽하기에 선비들은 말을 타고 산수를 유람하면서 입산 기록인 ‘유산록(遊山錄)을 남기기도 하였다. 북송(北宋)의 유학자 정이(程頤,1033~1107)가 지은 잠언(箴言, 교훈과 경계가 되는 짧은 경구)에 사물잠(四勿箴)이 있다. 보는 것(시잠, 視箴), 말하는 것(언잠, 言箴), 듣는 것(청잠, 聽箴), 행하는 것(동잠, 動箴), 곧 사물잠을 말한다. 사람은 이 네가지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됨됨이가 드러난다.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하지도, 듣지도, 행하지도 말라는 이 말은 현시대에 이르러 전설 속의 문구가 되어가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사방이 닫혀있다. 언론이 닫혀있고, 국회가 닫혀 있고, 경제가 닫혀있고, 사람들 마음이 닫혀 있다. 개언론(開言論, 언론이 제자리를 찾아야 하고), 개국회(開國會, 국회가 초당적인 열린 자세로 환골탈태 해야하고), 개경제(開經濟, 경제가 회복되어야 하고), 개국민(開國民, 국민 마음이 하나로 열려야 한다) 우리 대한민국은 늘 위기를 기회로 돌파해 나가는 예지와 역동성을 가진 민족이다. :: 조순 문학박사, (사)지산학연구소장 :: [조순의 역사콘서트 '역사는 미래다' 연재를 마치며...] 독자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미족한 글에 아낌없이 성원해 주신 대장금 님 이경국 님 등 애독자 여러분께 고맙고 송구한 마음 간직하면서, 2년간 매주 써온 100회 원고를 끝으로 일단 제 글을 마무리합니다. 앞으로 구상하는 기획으로, 여러분과 만남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조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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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의 '역사는 미래다' 99] 태극(太極)
- 대구저널의 기획 연재 '조순의 역사 콘서트'의 집필을 맡은 조순 문학박사, 지산학연구소장 우리나라 국기를 태극기라 한다. 붉은색의 陽과 푸른색의 陰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음양의 상대(相對), 만물의 생성을 지속해 가는 궁극적 실재로서의 태극을 도상화(圖像化)하여 만들었기에 태극기는 우리나라를 상징한다. 태극은 우주의 본체로서 천지가 아직 열리지 않고 음양의 이기(二氣)가 나누어져 있지 않은 때를 말하고, 이것이 나누어져 양의(兩儀, 음양)→사상(四象, 음양을 태음 태양 소음 소양으로 구분한 것)으로 이것이 하늘에 있으면 원형이정(元亨利貞, 역학에서 말하는 天道의 네 원리로 사물의 근본이 되는 원리) 이요, 때에 있으면 춘하추동(春夏秋冬)이요, 방위에 있으면 동서남북(東西南北)이요, 사람에 있으면 인의예지(仁義禮智)이다. 태극의 신화적 배경은 모든 창조 신화에서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천지개벽 직전의 혼돈과 무정형(無定形)의 상황으로 우주란(宇宙卵, Cosmic Egg)이라 표현하며 이는 우주 및 사물의 근원을 상징한다. 태극이라는 용어는 역경(易經)의 계사(繫辭) 上에 나오나 문양은 그려져 있지 않다. 이것을 주돈이(周敦頤)가 '태극도설'에서 문양화하고, 우주를 형성하는 음양의 두 원기(元氣)를 그림으로 풀어 만물의 발전 이치를 밝혔다. 그러나 태극의 도형과 관념은 그 이전부터 있었고 활용되어 왔다. 고구려의 벽화 사신도(四神圖)의 현무도(玄武圖)는 음양상화(陰陽相和)의 이치를 나타낸 것이며, 민간에서는 액막이의 부적으로 사용되었고, 경주의 감은사지(感恩寺址) 유적의 석각(石刻)에도 태극도형(太極圖形)이 보인다. 청동기 시대의 동경(銅鏡),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토되는 둥근 거울은 그 자체가 태극이다. 고려시대 동경(銅鏡) 장식에도 용 2마리와 여의주가 각각 조각되어 있고, 여의주를 태극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독립문에도 태극기의 원형이 중심에 조각되어 있고 네 귀에 팔괘가 보인다. 하늘, 때, 방위, 사람은 각자 위치에 있을 때 조화를 이루며 상생한다. 하늘의 운기를 어지럽혀 기상이변과 재해가 끊이지 않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구분 점이 없어 사람과 동식물이 고통과 변형되어가고 있다. 자기 자신을 모르고 천방지축으로 사람들이 날뛰니 세상이 조용한 날이 없다. 문명의 이기(利器)가 우주의 질서와 법칙을 어기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모든 것이 원인 없는 결과가 어디 있겠는가! 태극은 하늘이다. 한국인의 기상이 그 속에 있다. 가을 하늘을 쳐다보며 노래 불러보자.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펄럭입니다~. :: 조순 문학박사, (사)지산학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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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의 '역사는 미래다' 99] 태극(太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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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의 '역사는 미래다' 98] 난초(蘭草)
- 대구저널의 기획 연재 '조순의 역사 콘서트'의 집필을 맡은 조순 문학박사, 지산학연구소장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에 수로왕(首露王)이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 허황옥(許黃玉)과 그 일행을 맞이할 때 난초로 만든 마실 것과 혜초(蕙草)로 만든 술로 대접했다는 기록에서도 보이듯, 난초의 청초함과 그윽한 향내는 오래전부터 시인 묵객 등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래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 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느니라 가람 이병기의 '난초' 일부분이다. 사군자 중 하나인 난초는 대나무(竹)가 남성적이라면 여성적인 것에 많이 비유되어 왕비가 거처하는 곳을 '난전(蘭殿)' 미인의 침실을 '난방(蘭房)'이라고 한다. '蘭'자를 파자해보면 艸(풀 초)+ 門(문 문)+ 柬(고를 간)이니 향초 중에서 고른 명문의 귀녀(貴女)라는 뜻이 된다. 유교에서 "군자는 덕을 닦고 도를 세우는데 있어서 곤궁함을 이유로 절개나 지조를 바꾸는 일이 없다." 『주역』에서도 마음이 착하여 나와 서로 잘 맞으면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二人同心 其臭如蘭) 고 하여 난초를 군자의 덕과 선인(善人)에 비유하였다. 중국의 『본초경(本草經)』에도 난초를 기르면 집안에 상서롭지 못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막아주고, 잎을 달여먹으면 해독이 되며 오래도록 마시면 몸이 가뿐해지고 노화 현상이 없어진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난초 그림을 벽사(闢邪)의 의미로 집안에 걸어두고 염원하였다. 난초는 자손의 번창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충청도와 경기도 지역에는 '꿈속에서 난초가 대 위에 나면, 그 집에 식구가 늘어나고 자손이 번창하며, 난초 꽃이 피면 미인을 낳는다.' 는 말이 전한다. 서양에서 난초의 명칭은 그리스어 'orchis'에서 유래 되었는데 남성의 고환(睾丸)을 가리킨다. 난초의 구근(球根)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 난초는 여성과 호화로움을 상징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난초는 'long purples'도 남성을 상징한다. 난초는 동서양에서 남성 여성 모두를 나타냄과 동시에 정신적인 완성, 순결을 말하며 이상적인 인간상을 보여준다. 오늘 아침에 때 묻은 나를 돌아보며, 베란다에서 향을 전해오는 난초를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 조순 문학박사, (사)지산학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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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의 '역사는 미래다' 98] 난초(蘭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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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의 '역사는 미래다' 97] 호가호위(狐假虎威)
- 대구저널의 기획 연재 '조순의 역사 콘서트'의 집필을 맡은 조순 문학박사, 지산학연구소장 자신의 신분에 대한 콤플렉스(complex)가 심한 사람일수록, 타인의 위세를 이용하여 자신을 내세우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본다. 소위 호랑이의 힘을 배경으로 여우가 위세를 부리는 것이다. 호가호위 고사(故事)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초나라(楚國)의 재상(宰相) 소해휼(昭奚恤)에 대한 것이다. 당시 북방의 여러 나라가 소해휼(昭奚恤)을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에 초나라 선왕(宣王)이 북방(北方)의 나라들이 왜 소해휼(昭奚恤)을 두려워하는지 강을(江乙)이라는 신하(臣下)에게 묻자, 강을(江乙)이 대답하기를 " 호랑이가 여우 한 마리를 잡았는데, 잡아먹히게 된 여우가 말하기를 나는 하느님으로부터 백수(百獸)의 왕(王)으로 임명(任命)되었는데. 만일 나를 잡아먹으면 하느님(天帝)의 명령(命令)을 어긴 것이 되어 천벌(天罰)을 받을 것이다. 내 말을 못 믿겠으면 나를 따라와 봐. 나를 보면 어떤 놈이라도 두려워서 달아날 테니, 어리석은 호랑이는 여우의 말을 듣고 따라갔습니다. 과연 만나는 짐승마다 모두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짐승들은 여우 뒤에 있는 호랑이를 보고 달아난 것이지만, 호랑이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즉 북방(北方)의 여러 나라가 소해휼(昭奚恤)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사실 북방의 제국들은 소해휼(昭奚恤)의 뒤에 있는 전하(殿下)와 초나라의 강군(强軍)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꾀 많은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업고 가는 우화(寓話) 그림 호가호위(狐假虎威,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부리듯 남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림)하는 사람들을 보면 주변인들을 비롯하여 사돈의 팔촌까지의 신분을 망라하면서 이른바 정치인, 단체장, 언론인, 법조인, 기업인 등 유명인들을 들먹이고, 심지어 조상의 관직까지 내세운다. 권력의 끄나풀을 부여잡고 있는 무리들이, 천문학적인 나랏돈을 도둑질하고도 뻔뻔하게 나오고, 진짜가 아닌 가짜가 판치는 것은 뒤에서 봐주는 폐쇄적인 그들만의 카르텔이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이 권력자들을 향해 기세도명(欺世盜名, 세상을 속이고 헛된 명성을 도둑질 함)하는 무리라고 비판한, 추상같은 꾸짖음이 이 시대에 더없이 필요한 것 같다.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추고 가면(假面)으로 살아가면 도대체 누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처럼 내세우지 말고,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아들은 아들답게)처럼, ~ 답게 살자. 그것이 진짜다. :: 조순 문학박사, (사)지산학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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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의 '역사는 미래다' 97] 호가호위(狐假虎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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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의 '역사는 미래다' 96] 故宅과 古宅의 차이
- 대구저널의 기획 연재 '조순의 역사 콘서트'의 집필을 맡은 조순 문학박사, 지산학연구소장 세월의 무게는 연륜이라는 계급장이 따라 다닌다. 오래된 사찰건물이나 양반가의 고택은 세월이 지날수록 고색창연한 멋이 우러난다. 아무리 좋은 집이라도 사람이 거주해야 오래 보존할 수 있다. 사람이 사는 공간인 만큼 사람과 집은 서로 기운이 맞아야 하고, 주인의 행적에 따라 상호 간 수명이 좌우된다. 집의 역사는 선사시대 혈거 주거지가 우주의 모상(模像)이며, 일부 동굴주거지는 아기집과 원형성을 같이하고 있는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500년간의 조선 역사에서 의․식․주를 나누어 지역별로 살펴보면, 기호지방은 옷으로(衣), 호남지방은 음식으로(食), 영남지방은 집으로(住) 멋을 뿜어내었다. 특히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에 이러한 모습은 도드라지게 나타났다. 기호지방은 권력을 잡았기에 관복(官服)으로 위세를 드러내었고, 영남지방은 벼슬길에 나가는 길이 거의 막혀 양반의 체면 유지는 자연스레 집을 통해 드러났다. 호남은 물산이 풍요로웠기에 음식문화의 발달과 예술을 하는 인사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전국에서 고택은 영남지역이 여타지역보다 많이 남아있다. 특히 경주 안동 영주 등의 지역에서, 대표적인 건물들이 현재까지 문화유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청송 송소고택, 영조 때 만석꾼이었던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지은 집 안내판에 보면 고택(古宅)이라 쓴 곳도 있고, 고택(故宅)이라 쓴 곳도 있다. 고택(古宅)은 직접 살았던 집을 말하고, 고택(故宅)은 직접 살지는 않았지만, 연고가 있는 집을 말한다. 전국 명소의 고택은 그 집에 사는 주인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그대로 나타난다. 경주 최부자집은 12대에 걸쳐서 만석꾼, 청송의 송소고택(松韶古宅)도 9대에 걸쳐서 만석꾼이 나왔다. 모두 적선(積善)을 통해 이웃이 어려울 때 함께 한 명문가이다. 반대로 적불선(積不善)한 부자는 모두 사회 혼란기에 피화를 당하여 흔적조차 없어졌다. 고택은 단지 오래된 집의 개념을 넘어 한국의 전통의 건축미학과 더불어 집주인의 역사적인 행적에 따라 빛과 그림자로 구별되었다. 지난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담긴 고무신 지나간 세월 속에 선조의 묵향(墨香)과 차향(茶香)이 함께하는 고택에서,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답사를 하면 얻는 게 없다. 주인과 하룻밤을 같이 묵으며 집안의 내력과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 보면 왜 이 집이 명문가로 존속 되어 왔는지 알 수 있다. 저녁노을 연기 나는 굴뚝을 바라보며, 고택에서의 하루 쉬어감은 정신없이 살아온 오늘의 현대인들에게 힐링의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사람이 너무 편한 것만 찾다 보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 조금 불편함 속에 감사함을 배우는 고택체험을 통해, 선조들의 손때 묻은 서책과 책 내음은 영혼을 맑게 할 것이다. 필자는 현재 서원교육을 위해 경북 영천시 대창면에 있는 도잠서원(道岑書院) 주변 정비사업을 하고 있다. 향후 전국은 물론 외국인들에게, 선현들이 교육했던 그 공간에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어떻게 살아갈지를 함께 고민하며 해결하고, 체험하는 장이 되길 염원하면서 2년 후 그날이 오길 기대하고 있다. :: 조순 문학박사, (사)지산학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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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의 '역사는 미래다' 96] 故宅과 古宅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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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의 '역사는 미래다' 95] 팔, 구월의 세시풍속(歲時風俗)
- 대구저널의 기획 연재 '조순의 역사 콘서트'의 집필을 맡은 조순 문학박사, 지산학연구소장 농경사회의 풍속으로 해마다 농사력(農事曆)에 맞추어 관례(慣例)로서 행하여지는 전승적 행사 중 추석이 든 8월과 단풍놀이를 하는 9월은 어떤 달보다 풍요로움과 여유로움이 깃든 달이다. 모든 곡식의 결실이 맺어지는 8월에는 하늘과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 음력 8월 상정일(上丁日)에는 각 지방에서 유생들이 문묘에서 봄에 이어 가을 석전제(釋奠祭, 음력 2월과 8월에 공자를 모신 文廟에서 先聖, 先師에게 지내는 제사)를 지낸다. 관학(官學)인 성균관과 향교에서 상정일(초정일)에 지내고, 사학(私學)인 서원에서는 중정일(中丁日)에는 사액서원(賜額書院)에서 하정일(下丁日)에는 비사액서원(非賜額書院)에서 묘우(사당)에서 배향(配享) 된 선사(先師)에 제사를 지낸다. 15일 중추절은 가을을 초추(初秋) 중추(仲秋) 종추(終秋)로 나누어 음력 8월이 중간에 든 데서 붙은 이름이다. 또 '한가위' 또는 '추석(秋夕)'이라 하여 절사(節祀)를 지내고, 조상의 산소에 가서 성묘를 한다. 『삼국사기』 「유리왕조」에 음력 7월16일부터 매일 길쌈을 하여 8월15일에 그 성과의 많고, 적음을 살펴 진 쪽에서 술과 음식을 내어 이긴 자를 축하하고 가무를 하며 각종 놀이를 하였는데 이를 '가배'라 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추석 행사를 가락국(駕洛國)에서 유래되었다고 하였다. 이 날은 송편·시루떡·토란단자· 밤단자를 만들어 먹는데 대표적인 음식이 '송편'이다. 송편을 잘 빚으면 시집을 잘 간다고 하여 처녀들은 손자국을 내어가며 예쁘게 만들었다. 현대는 대다수 가정에서 기계로 대량생산 된 송편을 사서 차례상에 올리니 예쁜 손길의 정성이 사라진 모습이다. 이래저래 후손들은 살기 바쁘다는 핑계와 경제적이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모습에서 우리 모두 조상의 존재를 자꾸 멀리한다. 한가윗날 밤에 마을의 부녀자들 수십 명이 넓은 마당에 모여 둥글게 서로 손을 잡고서 강강수월래 춤(1966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을 추는데, 목청이 좋은 사람이 가운데 서서 '산아산아 추영산아/ 놀기좋다 유달산아'하고 노래 부르면'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라고 받아 부르며 춤을 춘다. 또 추석을 전후하여, 시집가면 보기 어려운 딸을 보기 위하여 시집과 친정집의 중간지점에서 어머니와 딸, 또는 안사돈끼리 만나서 가지고 온 음식과 선물을 주고 받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며 하루를 보내는 '반보기(일명, 中路相逢)'가 있다 9월 행사 중 9월 9일은 중양절(重陽節)이라 하여 삼월삼짇날 강남에서 온 제비가 다시 강남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각 가정에서는 부녀자들이 제철 음식으로 '화채(花菜)'를 만들어 먹으며, '국화전(菊花煎)'도 부쳐 먹는다. 또 '풍국(楓菊)놀이'라 하여 선비들은 음식을 장만해 교외 산야(山野)에 가서 시를 짓고 자연의 기운을 받으며 하루를 즐긴다. 오늘의 단풍놀이는 시를 짓는 대신에 전국의 휴게소에서 전세 관광버스, 들로 산으로 울긋불긋한 남․녀등산복 색깔로 절정을 이룬다. 자연에서 호연지기를 기르고 계절의 흐름에 순응하며 살아온 우리 선조들, 먹을거리는 부족하였을지언정 여유와 풍류는 더없이 앞서간 위인들이었다. :: 조순 문학박사, (사)지산학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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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의 '역사는 미래다' 95] 팔, 구월의 세시풍속(歲時風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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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의 '역사는 미래다' 94] 언어(言語)의 위력과 품격
- 대구저널의 기획 연재 '조순의 역사 콘서트'의 집필을 맡은 조순 문학박사, 지산학연구소장 수년 전에 KBS 여자아나운서실에서 두 병에다 하얀 쌀밥을 넣어놓고 실험을 하였다. 한쪽 병에는 '사랑한다' '예쁘다'하고 한쪽 병에는 '밉다' '더럽다'라고 한 결과 1주일이 지나자 긍정의 말을 한 병은 하얀 곰팡이가, 부정적인 말을 한 병에는 시커먼 곰팡이가 핀 모습이 방영되었다. 모 대학 교수가 강단에 있을 때는 관상이 부드럽고 인자스러운 모습이었는데, 정치에 입문, 국회의원을 수년간 하더니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언론에 나올 때마다 상대를 비방하고 고성을 지르더니 인상이 아주 추한 모습으로 변한 모습을 보았다. 언어에는 신비스러운 영(靈)이나 주술적인 힘(呪力)이 깃들어 있다. 고구려 건국자 주몽(朱蒙)이 동부여에서 망명할 때 엄체(淹滯, 또는 蓋斯水)에 이르러 물을 건널 수 없어서 채찍으로 하늘을 가리켜 탄식하면서 말하길, "나는 하느님(天帝)의 손자요, 하백(河伯, 고구려 건국설화에 나오는 물의 신)의 외손자이오. 난을 피하여 이곳에 이르렀으니, 황천후토(皇天后土, 하늘의 신과 땅의 신)는 나를 어여삐 여겨 은혜를 베푸소서" 하고 활로 물을 치자,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놓아주어 무사히 물을 건넜다. 신라 제33대 성덕왕(聖德王) 때 순정공(純貞公)의 부인 수로(水路)가 해룡에게 납치되었을 때, 어떤 노인이 "뭇사람의 말을 쇠도 녹인다고 하였으니 바닷속 방생(傍生, 새․ 짐승․ 벌레․ 물고기 등 온갖 동물들)이 어찌 뭇사람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여럿이 바닷가에서 지팡이를 두드리며,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일제히 소리 질러 부르니, 용이 수로부인을 보내 주었다. 경북 예천에 있는 말 무덤(言塚), 말의 삼감을 상징한다 말은 행실의 기본이므로 말을 삼감이 사람의 행실의 주요한 잣대이다. 조선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仁粹大妃)가 지은 『내훈(內訓)』에 '바깥말을 문 안에 들이지 말고, 집안 이야기가 밖에 나가지 않도록 하며, 말은 잘 골라서 하되, 궂은 말은 삼가 다른 사람에게 싫은 감정을 주지 마라. 말을 삼감이 으뜸의 행실이니라.' 『예기(禮記)』에 '군자는 말이 없고 소인은 말이 많다.' 공자도 '말을 그럴싸하게 꾸며 듣기 좋게 하고 낯빛을 꾸미는 사람으로서 어진 이는 드물다.' 하였다. 말의 품격이 떨어지고 저속한 말이 난무하는 언어 혼탁시대에 살고 있다. 언(言)은 혼자 하는 말이고, 어(語)는 상대와 말을 하는 것이다.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이야 자유이겠지만, 상대와 말을 할 때는 늘 삼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혀 밑에 죽을 말 있다." 왜 우리 선조들께서 말에 신(愼)을, 눌(訥)을 호(號)와 자(字)로 사용하여 경계하였는지 알 것 같다. 새해에 덕담을 주고받는 것도 말에 영적인 힘이 있어서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김수환 추기경 말씀처럼 "남의 말 좋게 하자." :: 조순 문학박사, (사)지산학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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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의 '역사는 미래다' 94] 언어(言語)의 위력과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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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의 '역사는 미래다' 93] 점복(占卜)
- 대구저널의 기획 연재 '조순의 역사 콘서트'의 집필을 맡은 조순 문학박사, 지산학연구소장 인간은 미래에 대하여 미리 알고 싶어 하는 기본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인간세계는 앞날을 알 수 없는 불확실하고 불안한 미래를 예측하기 위하여 점복이 성행하게 되었다. '점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문화의 정도와는 상관없이 어느 민족 할 것 없이 발달 되어왔다. 회의문자(會意文字)인 점(占)은 복(卜)과 구(口)로 이루어진 글자로 갑골문(甲骨文), 금문(金文), 설문해자(說文解字)에도 자형(字形)이 모두 같다. '점(卜)'자는 귀갑(龜甲, 거북의 등딱지)이나 수골(獸骨, 짐승 뼈) 를 태울 때 나타난 금(兆文)을 본뜬 상형문자이고, 구(口)는 구술한다는 의미이다. 즉 거북의 등딱지 짐승의 뼈를 태우고 난 후 나타난 모양을 보고 길흉을 점을 쳤다. 신화(神話)에서 인간은 초자연적인 현상과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미래를 주술의 힘을 이용하여 신의 뜻을 파악하여 그에 따라 행동하던 고대인의 사고와 미래에 대하여 알고 싶어하는 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이것을 전문적으로 담당한 사람이 고구려에서는 무(巫) 또는 사무(師巫), 신라에서는 일관(日官), 백제에서는 일자(日者) 무자(巫者) 라 하여 국가의 앞날과 자연재해 등을 점쳐서 대비하였다. 고려에서도 국가적 차원에서 천문(天文), 역수(曆數), 측후(測候), 각루(刻漏)를 담당한 태사국(太史局)과 점복을 담당하는 태복감(太卜監)을 두었고 조선에서도 서운관(書雲觀)을 두고 천문, 지리, 역수, 점산(占算)을 두고 관장하였다. 서거정(徐居正)은 『필원잡기(筆苑雜記)』에서 "무녀가 능히 귀신의 말로써 지나간 일과 장차 닥쳐올 일을 모두 알아맞힌다." 고 하였고 성현(成俔)도 『용재총화(慵齋叢話)』에서 "무당이 공중에서 소리가 나게 하여 지난 일을 모두 알아맞힌다."하였다. 무속에는 신령(神靈)이 점복자(占卜者) 몸에 강림하여 미래의 길흉을 점쳐주는 신탁점(神託占)과 살미(撒米, 쌀을 던져 길흉화복을 점을 침), 척전(擲錢, 동전을 던져 앞면 뒷면을 보고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 돈점), 신장(神將)대 등 기물에 신령이 빙의(憑依)토록 하여 점치는 신시점(神示占)이 있다. '점복'은 농경사회의 풍년과 흉년에 대하여 점을 치는데 전문가는 '무(巫)'라고 하며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농민은 '점복자'로 불리워졌다. 농점(農占), 농사점(農事占), 농가점(農家占)은 농민들이 자연과 기후의 변화를 보고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풍흉을 예견하였다. '설날'이 한 해의 시작이므로 대설(大雪)이면 오곡이 풍작이지만, 축재(畜災)가 있고 과일은 흉작, 비가 와서 땅이 질면 농사가 풍년이고, 북동풍은 오곡이 풍등하고, 북서풍은 대수(大水)가 날 예조(豫兆)라 하였다. 인간이 판단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신에게 의지하여 구하는 신탁(神託)은 동양에서는 샤먼이, 서양에서는 그리스의 델포이 신전의 무녀들이 담당하였다. '무속신앙'은 동․서양 모두 나약한 인간의 한계를 신에게 의지하여 구원받고자 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의 하나이다. 이러한 문화적인 현상을 뒤로한 채 미신이라고 터부시하는 것 역시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교회에서 하나님, 절에 가서 부처님 찾듯이 있는 그대로 보면 된다. 세상은 늘 오지랖 넓은 몇몇이 함부로 재단하기에는 너무 광대하다. :: 조순 문학박사, (사)지산학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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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의 '역사는 미래다' 93] 점복(占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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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의 '역사는 미래다' 92] 무궁화(無窮花)
- 대구저널의 기획 연재 '조순의 역사 콘서트'의 집필을 맡은 조순 문학박사, 지산학연구소장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애국가에 등장하는 우리나라의 국화(國花) '무궁화' '무궁화' 라는 말이 문헌에는 16세기 초부터 등장한다. 한자어에는 '무궁화'가 아닌 '목근화(木槿花)'로 나온다. 즉 '목근화〉 무긴화〉 무깅화〉 무궁화'의 형태로 변음(變音)된 후, 한자음을 맞추어 '무궁화(無窮花)'로 표기되었다. 무궁화의 종류는 200종 이상이며, 꽃 하나하나는 하루 만에 지지만 전체적으로는 끊임없이 피고 새로 이어 피는 무궁한 영화의 나무이고, 꽃말은 끈기, 섬세한 아름다움이다. 우리 민족이 은근과 끈기의 민족이기에 우리나라 꽃으로 삼은 것이다. 무궁화는 억겁의 세월에 비유하면 하루살이이기에 인생에 있어서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고 늘 겸양의 자세를 일깨워 준다. 중국에서는 목근(木槿) 조개모낙화(朝開暮落花) 화노옥증(花奴玉蒸) 번리초(藩籬草) 순영(舜英)훈화초(薰華草) 등으로 불리며 최상급의 미인을 상징했다. 학명(學名)이 'Hibiscus syriacus L.'인 무궁화는 속명이 'Hibiscus'로 이집트의 히비스신(Hibis神) 을 닮아 '히비스神'처럼 아름답다는 뜻이다. 영어명칭인 'rose of sharon'도 샤론에 피는 장미 역시 무궁화의 아름다움을 극찬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불교적인 입장에서 연꽃을 가장 거룩하고 아름다운 꽃으로 생각하는데, 무궁화를 나무에 피는 연꽃이라 비유한다. 지봉유설(芝峯類說)에 인용한 고금주(古今注)에 군자국(君子國, 중국이 우리나라를 일컫던 말)은 지방이 천 리인데 무궁화 꽃(木槿花)이 많다. 고려 예종(睿宗) 때 근화향(槿花鄕), 우리나라를 근역(槿域)이라 하는 것 역시 무궁화와 연관이 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태극기 대신 무궁화가 상징성을 가졌고, 1907년에 윤치호(尹致昊)가 애국가의 후렴에 썼고, 동아일보에서 '조선 국화 무궁화 내력'을 게재하였고,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가 국수(國粹) 운동을 일으킬 때 무궁화를 국화로 주창하여 무궁화가 우리나라의 상징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무궁화는 태극기와 함께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한국인의 혼이다. 무궁화는 번식력이 강하고 수줍고 결백한 꽃으로, 국가가 영원히 뻗어남과 자손의 장성함을 드러내는 꽃이다. 무궁화의 대표 품종 백단심(白丹心)은 무구청정(無垢淸淨), 진홍빛 화심(花心)은 태양처럼 붉고 뜨거운 마음과 겨레 얼을 상징한다. 〈상훈법〉에 의거 하여 1949년 8월 15일 대통령령으로 제정, 공포되고, 1973년 1월25일 법률로 개정된 대한민국 최고의 훈장인 무궁화 대훈장이 있다. 이는 대통령에게 수여되는 훈장으로 대통령의 배우자 우방국 원수 및 그 배우자, 우리나라의 발전과 안전보장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전직 우방원수 및 그 배우자에게 수여한다. 라고 되어있다. 상과 훈장은 개인과 단체할 것 없이 더 없는 영예로움이다. 자기가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추천하는 것이 상식이고 기본이다. 타인이 추천하더라도 몇 번 사양하는 것이 최소한의 염치이며 양식이 있는 도이다. 자신이 추천하고 자신이 대한민국의 최고훈장을 받은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전직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민의 심정이 어떠했는가 싶다. :: 조순 문학박사, (사)지산학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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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의 '역사는 미래다' 92] 무궁화(無窮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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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의 '역사는 미래다' 91] 얼굴(容)
- 대구저널의 기획 연재 '조 순의 역사 콘서트'의 집필을 맡은 조순 문학박사, 지산학연구소장 신(神)의 위대함을 인정하는 것 중에서 얼굴이 닮은 사람은 있을지라도 똑같은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다. 국어에서 얼굴에 대한 정의에서 중세와 현대에 차이를 보인다. 중세에는 모습, 형체, 틀을 나타내는데, 현대는 안면, 낯의 의미를 가진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상론(相論)'에서 "대개 버릇된 것이 오래되면 그 성질도 나날이 옮겨지는데, 그 마음속에 있는 것이 성실하면 외면(外面)에도 나타나게 된다. (성어중 형어외,〈誠於中 形於外〉,마음속에 정성스러움이 있으면 반드시 겉모양으로 나타남) 사람이 그 상이 변한 것을 보고는 '상이 이와 같은 연고로 그 버릇이 저와 같다' 하니 아아 그것은 틀린 말이다." 사서인(士庶人)이 상법을 믿으면 그 업(業)을 잃게 되고, 경대부(卿大夫)가 상법을 믿으면 그 벗을 잃게 되고, 임금이 상법을 믿으면 그 신하를 잃게 된다.라고 하였다. 공자(孔子)도 얼굴로써 사람을 취하지 말라고 경계하면서, 자우(子羽,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으로 얼굴이 아주 못생겼으나, 學行이 훌륭하였다.)의 예를 들었다. 그러나 신화 속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지혜와 용기를 바탕으로 용모도 뛰어났다. 박혁거세(朴赫居世)는 용모가 단정했고 동천(東泉)에서 씻자 광채가 났다. 김수로왕(金首露王)은 얼굴이 용(龍)과 같아 중국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와 같고, 눈썹이 팔자로 채색이 달라 요임금과 같고 눈동자가 겹으로 되어 순임금과 같았다. 옛 미인의 얼굴에 대한 조건은 첫째, 둥글게 잘 다듬어진 검은 눈썹과 희고 고운 살빛, 둘째, 맑고 젖어있는 가는 눈, 셋째, 탐스럽고 붉으며 작은 입술, 넷째, 적당히 둥글고 불그레한 뺨,다섯째, 흰 살결과 희고 고른 이 등이다. 미인은 얼굴 각 부분의 조화, 색감, 크기의 구성이 잘 맞아야 미인으로 정한 것 같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필자는 사람이 많이 있는 곳을 다닐 때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본다. 그 얼굴에는 그 사람의 직업군과 삶의 이력이 담겨있다. 공자와 정약용은 상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 것을 경계하고 있고, 시대에 따라 미인과 상에 대한 기준이 다르지만, 필자는 대략 상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과 직업이 십중팔구 짐작하게 된다. :: 조순 문학박사, (사)지산학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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