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2-09(월)

[강호성 칼럼 24] 客窓寒燈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강호성 前 세계사이버대학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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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6.01.19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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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독일판, 클라라와 브람스의 음악같은 사랑'

청마(靑馬)유치환(柳致環)과 정운(丁芸)이영도(李永道)의 사랑이야기는 한국 문학사에 한획을 그은 아름다운 연애사건(?)이다. 
 
이토록 애틋하고 간절한 사랑놀음이 또 있을까?

청마는 그가 숨지기 전까지 20년 동안 무려 5,000통의 연서(戀書)를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정운에게 보냈다.

유치환(1908~1967)은 경남 거제에서 태어나 통영에서 자랐고, 1931년 23살 때 '문예 월간'에 <정적>이란 시로 등단했으나, 일제의 검속 대상을 피해 만주로 올라가, 형의 농장일을 돕다가 해방이 되자 통영으로 돌아와 통영여중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영도(1916~1976)는 경북 청도에서 군수를 지낸 부잣집에서 태어나, 21살에 결혼하여 딸 하나를 낳고 살던 중 남편이 폐결핵으로 사망하자 홀로 살다 1945년 가을 통영여중에 가사교사로 부임하면서 유치환과의 운명적인 조우(遭遇)가 시작되었다.

이들은 서른 일곱과 스물 아홉의 나이로, 같은 통영여중에 근무하면서 서로에 대한 연정(戀情)이 뭉개구름 처럼 피어 올랐고, 누구보다도 뜨거운 가슴의 청마였지만, 유교적 가풍( 家風)에 길들여진 청상과부(靑孀寡婦) 정운은 그 전통적 규범을 깨뜨릴 수 없었기에, 고통 속에서 헤맬 수 밖에 없는 가슴 앓이 사랑으로 살아가야 했다.

유치환은 부산 남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할 당시인 1967년 2월 13일 저녁, 예총 일로 문인들과 어울린 후 집으로 돌아가다 시내버스에 치어 59세에 사망하면서 정운과의 20년간의 끝 모르던 사랑이야기는 막을 내리고 만다.

두사람 간 수천통의 편지 속에 남겨진 가장 대표적인 시가 바로 청마의 '행복'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어디 우리나라 뿐이었겠는가?
 
서양 음악사에 깊고도 아련한 선율로 남아 있는 '클라라와 브람스'의 사랑이야기도 마치 한 곡의 아름다운 음악 같다고나 할까. 이보다 더 멋진 세레나데(serenade)가 또 어디 있으랴!

브람스(Johannes Brahms : 1833~1897)가 클라라(Clara Schumann : 1819~1896)를 처음 만난 것은 그가 스무살 무렵이었다. 당시 클라라는 이미 유명한 피아니스트였고, 또한 슈만(Robert Schumann:1810~1856)의 아내 로서 명성을 얻고 있었다.

슈만은 젊은 브람스를 만나보고 그의 음악을 높이 평가하며, 그를 음악계에 소개했고, 클라라 또한 남편 곁을 지키면서 브람스의 내면을 들여다 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브람스는 클라라를 음악의 뮤즈(Muse: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9명의 학문과 예술의 여신)로, 삶의 등대로 여겼다고 한다.

브람스는 클라라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클라라. 하지만 그 사랑은 음악 속에서만 살아야 합니다!"
 
클라라는 워낙 빼어난 미모와 기품 있는 태도에, 음악적 재능까지 특출했기 때문인지, 일찌감치 14살 무렵부터 9살 연상인 로베르트 슈만과 사귀기 시작했는데, 이를 눈치 챈 부친의 만류에도 불구 하고 1840년 21살의 나이에 슈만과 결혼하게 된다.

이는  공교롭게도 시대는 달라도 정운 이영도 역시 클라라와 같은 21살의 나이에 결혼했던 것이다.

클라라와 브람스는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서로의 음악과 인생을 나누게 되었고, 다만 어떤 순간에도 그 경계를 허물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브람스는 독신으로 살았고, 클라라 역시 남편 슈만이 죽은 이후에도 브람스를 '영혼의 친구'로 간직하며 살게 된다.

브람스는 슈만이 양극성 장애(조울증) 로 입원해 있을 때도 슈만의 가정을 돌보면서 클라라와 아이들을 지원 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브람스와 클라라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 좋은 감정을 품게 되었고, 서로 편지를 주고 받으 면서 존경과 애정을 담았다고 한다.

그뒤, 슈만이 죽은 뒤 두사람은 수십년간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서로의 음악에 대해 공유하고 응원 하게 되는데, 이를 두고 음악사학자들 사이에서도 두사람의 관계가 '깊은 우정이었는지, 연애였는지' 에 대해 논란이 되기도 하지만, 브람스는 클라라를 '내 영혼의 빛'이라고 부르 면서 애정 표현을 서슴치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람스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클라라와의 관계를 소중히 여겼다는데, 아쉽게도 슈만 사후 몇년간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는 불태워지고 없고, 일부만 남아 있는 편지에서 이들의 사랑이 깊은 신뢰와 애정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브람스의 음악에는 클라라에 대한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특히 그중 <인터메초 OP, 118-2>는 세간에서도 공공연하게 '브람스의 러브레터'라 할 정도로 클라라에 대한 애틋함이 묻어나는 곡이다.

클라라 역시 브람스의 음악을 누구 보다 잘 이해했고, 곡이 나올 때마다 제일 먼저 연주했다고 한다.
 
클라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 음악은 말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깊이에 이르러 있군요! 당신의 마음이 그대로 흐르고 있어요!"

이들의 사랑은 끝내 닿지 못했기에, 더욱 절절했고, 가슴 깊이 음악인의 내면에 녹아 있는 듯하다.

브람스는 그의 63번째 생일에 베이스 성부와 피아노를 위한 <4개의 엄숙한 노래 Vier ernste Gesänge>를 완성 했는데, 이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에서 가져 온 가사로, 모든 세속적인 일의 허망함을 다루면서 근심과 고통의 구원자로서 죽음을 맞이하는 비관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다 한다.

다만,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서 가사를 따온 마지막 노래에서 브람스는 사랑의 힘을 열광적으로 찬양했는데, 이 작품은 병세가 심각해진 클라라 슈만에 대한 사려 깊은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무렵 브람스는 이렇게 말한다.
 
가장 친한 벗(그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인 그녀와의 만남은, 브람스에게 "가장 커다란 풍요와 가장 고귀한 만족을 가져다 준, 생애 최고의 아름다운 경험"이었다고 했는데, 이 말은 그녀를 잃게 될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나 할까.

결국 1896년 5월 20일, 클라라는 죽음을 맞았는데, 브람스가 그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무리하게 밤 열차로 가려고 했지만, 공교롭게도 열차를 놓치는 바람에 장례식 참석을 포기하고, 클라라가 남편 슈만과 나란히 묻힌 본(Bonn) 으로 갔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 이후 브람스 역시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을 자주 찾아야 했으며, 심각한 건강 상태에도 불구하고 오르간을 위한 <11개의 합창 전주곡 Eleven Chorale Preludes> 곡을 작곡했는데, 그 마지막 곡은 판타지아 <오 세상이여, 나는 그대를 떠나야만 하네, O, Welt, ich muss dich lassen>이다.

브람스는 그 이듬해인 1897년 3월, 연주회에 마지막 모습을 드러낸 후 4월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음악이 아니었다면 결코 표현될 수 없을 법한 두사람의 감정, 음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사랑보다 더 진솔한 고백!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한번도 '사랑' 이라고 불리지 않았지만, 그 절제된 감정이입 그 자체가 오히려 더 숭고한 사랑의 결정체가 아니었을까?

작금의 세태에는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있고, 막장 드라마가 독버섯처럼, 마약과도 같이 공공연하게 번지고 있다. 이 모두가 사랑과 믿음이 없는 불신의 소산일 것이다.

성경에서도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 했다.
 
그렇다! 그 많은 사랑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사랑은 역시 나라 사랑일 것이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지난 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선구자의 노래가사처럼, 오로지 나라사랑, 겨레사랑 애국심으로 해란강가를 누비던 고귀한 선열들!
 
올 한해 우리 사회 전반에 사랑의 향기가 이른 아침 물안개처럼 자욱하게 피어나길 고대해 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현듯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대중가요의 가사는 왜 또 그렇게 오버랩 되는지!

'클라라와 브람스', 그리고 '청마와 정운의' 플라토닉하고도 절제된 종류의 사랑 또한 많아지기를 갈망해 봄은 필자만의 과욕일까?
 
 
    ::   강호성  세계사이버대학 총장   ::

 

 - 행정학 박사

 -  한민대학교  부총장

-   한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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