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성 칼럼 27] 客窓寒燈 -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세기의 말실수!
강호성 前 세계사이버대학 총장
<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세기의 말실수! >
'구 동독 통일사회당 대변인 귄터 샤보프스키의 기자회견을 보며'
독일 통일! 그것은 정말 기적과 같았고, 분단국가인 우리에겐 너무나 부러운 일이자, 꿈같은 소망의 역사이다.
독일 통일에는 두가지 사건이 발단이 된다.
먼저 독일 통일의 초석을 다진 사람으로 평가되는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1913-1992)전 서독 수상의 동방정책 이다.
그는 1970년12월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해, '유대인 게토 희생자'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나치 만행에 대해 온몸으로 사죄한 것으로 유명하다.
다른 이유로는 1985년 구 소련 공산당 서기장인 미하일 고르바초프(Michail Sergeyevich Gorbachev)의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개혁)' 와 '글라스노스트(Glasnost개방)' 정책에 의해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 들이 점차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도입하게 되었지만, 유독 동독만 홀로서기에 나선 것이 동독민들의 원성을 산 것이 되어, '라이프치히'에서 시작된 시위가 확산 일로가 된 것이다.
당시 동독 공산당 서기장인 에곤 크렌츠(Egon Rudi Ernst Krenz)는 당 중앙위원회에서 시위 확산에 따른 개혁의 일환으로 1989년 11월 9일, "여행 허가에 대한 출국 규제완화"에 대해 법령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법령은 즉시, 바로 출국 규제가 완화된다는 파격적인 선언으로 돌변하여 유명세를 타게 된다.
당시 휴가에서 막 돌아온 사회주의통일당(집권당)의 대변인인 '귄터 샤보프스키(Günter Schabowski:1929-2015)'가 18시에 이 법안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기로 하고, 크렌츠 서기장으로부터 서류를 받아 기자회견장으로 갔던 것이다.
이 새로운 법령의 내용은, "외국 여행 시 조건(여행 목적, 친척 등)을 제시하지 않고 신청할 수 있으며, 경찰의 여권 등록 부서는 모두 출국 비자를 지체없이 발급하도록 지시한다.
또한 국외 이주에 대해서 동서독 국경 혹은 동서 베를린 장벽을 포함하여 모든 국경 출입소에서 출국이 인정된다."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사실은 이 법률이 중앙위원회의 승인과 내각에서의 결의를 거친 뒤, 그리고 국경 경비를 강화한 뒤에야 비로소 발효되는 것인데, 휴가에서 막 돌아온 대변인 샤보프스키는 이미 다 결의가 된 것으로 착각하고 말았다.
기자회견이 끝나자, 맨 앞줄에 있던 독일의 '빌트'지 기자가 "이 시행령이 언제부터 발효되는가?" 라고 질문했는데, 원래는 11월 10일 아침에 발효될 예정이었으나, 샤보프스키가 가져온 서류에는 날짜가 명기되어 있지 않아, 샤보프스키는 아무 생각없이, "당장, 지체없이(sofort, unverzüglich)!"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하여 샤보프스키의 답변을 믿은 기자들은 일제히,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긴급뉴스를 전세계에 타전하게 된다.
뉴스를 본 수천명의 동독인들은 즉시 서독으로 가는 검문소로 향했고, 동독의 국경 경비병들은 몰려드는 사람들의 거센 요구에 밀려, 우왕좌왕 하다, 결국 서독으로 가는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이후, 서독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늘어 나면서 동독 정권은 빠르게 무너졌고, 동독과 서독은 이듬해인 1990년 10월 3일, 결국 통일에 합의하게 된다.
정치인 샤보프스키의 말실수 한마디가 28년간 독일을 양분했던 것 중의 하나인 베를린 장벽을 붕괴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통일이 된 후 독일 정부는 샤보프스키에게 과거 '베를린 장벽을 넘으려던 동독인 다수를 총살'해도 된다는 정책을 시행한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하여 1999년 12월에 수감하였다가, 10개월 후인 2000년 9월에 사면된 후 석방되었다.
그후 샤보프스키는 자신의 도의적인 책임과 죄책감 등으로 인해 언론에 노출되지 않은 채 여생을 보내다 2015년11월 1일, 86세를 일기로 사망하여,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만다.
정치인의 말실수!
최근 국내의 어떤 신뢰도 여론조사 에서, 정치인의 신뢰도가 최하위권 이라는 성적표를 내놓은 바 있다.
위정자들의 입은 무겁고, 신중해야 한다.
조령모개(朝令暮改:중국 전한 문제文帝 때의 신하인 조조晁錯가 올린 상소문 논귀속소論貴粟疎에 실린 글로, 법령이 일정하지 않음을 역설한 글)나, 조변석개(朝變夕改)식의 말뒤집기나, "뻔뻔스런 모르쇠!"식의 말투는 결국 국민적 실망과, 정치에 대한 불신을 확산시키게 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듯이, 다수의 국민들은 위정자들의 처신에 의해 세뇌 당하기도 하고, 또 각성의 계기로 삼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은 자신의 말실수에 앞서, 스스로 신독(愼獨:남이 보지 않는 곳에 혼자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하여, 말과 행동을 삼감)의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 강호성 前 세계사이버대학 총장 ::
- 행정학 박사
- 前 한민대학교 부총장
- 前 한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