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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국의 대구춘추 133] 생각으로 기분 좋아지는 사람
    이경국 칼럼니스트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면서 살짝 흥분의 기운을 고조시키는 사람이 있다. 물론 평소 우호적인 에너지 축적이 되어 있다가 순간 발산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동안 만이라도 연인이 되어 마음껏 향유하고 싶으나 이러한 일에 익숙하지 못하여 생각에만 머무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역할분담으로 일일 연인이 되어 무슨 말이든 속삭일 수 있다면 이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청량제같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랑은 하나라고 흔히 말을 하지만 어떻게 인생사에서 단선의 외길만이 있을 수는 없다고 본다. 이럴 때는 나이가 많아도 좋고 적어도 관계가 없다고 본다. 하루동안 가장 좋은 대화를 하고 헤어지는 순간에 까맣게 잊어 버리고 귀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후는 달콤한 짧은 순간을 추억하면서 지낸다. 억지로 말을 한다면 순간접착 같은 현상이 아닐까 싶다. 사랑은 현실적으로 소유나 집착이 따르기 때문에 대자유의 세계를 구가하는 마음은 쉽지가 않다고 본다. 머리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이러한 기상천외의 발상을 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어쩌다가 이러한 엉뚱한 생각을 해 보면서 입가에 웃음을 지니어 보기는 한다. 일종의 이루지 못하는 사랑이다. 4월의 계절에 어떤 情人이 달빛에 옷을 적시면서 창문을 노크한다는 말인가? 인생사 더러 일탈의 순간이 오히려 정도를 걷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기는 하다. 사랑은 용기가 우선이다. 그릭고 여자의 노(no)는 남자의 예스(yes)란 사실을 설사 알고 있더라도 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인연이 닿아야 하는 용기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구에 머무는 가장 가치있는 삶은 결국 사랑에 있다고 본다. 다만 외형으로 나타나는 불륜이란 덫이 있기에 몰래하는 사랑은 고단할 뿐이다. 유사이래 지고지순한 사랑보다는 얽히고 설킨 사랑의 점유상태가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랑은 순풍을 따라 오솔길을 걷다가 옹달샘에서 청량한 물을 마시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격랑의 파고를 이겨내는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는 댓가가 은밀한 사랑으로 현화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도덕이나 윤리는 양심에 각인된 인간만의 세계이다 의식주 가운데 의(衣)를 먼저 두는 이유이다. 오랜기간 인간은 털없는 원숭이로 살았다. 직립이란 고단한 자세는 옷을 입고 사는 엉청난 변화에 치부를 가리게 된 것이다. 호기심은 문화의 발전을 기하긴 했지만 빈부의 격차처럼 사랑에도 빈익빈  부익부의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똑같은 몰래 사랑도 최고급 호텔은 비밀이 보장되고 있지만 소위 서민들은 모텔이나 여관은 쉽게 들통이 나는 경우와 같다고 본다. 몰래하는 사랑을 들먹이는 것은 그것이 빙산의 보이지 않는 부분인데 누구나 남자의 바지속을 잘 모르기 때문에 거론해 보는 것이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많을수록 세상은 훈훈해 진다는 이치를 눈여겨 볼 일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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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6
  • [이경국의 대구춘추 132] 눈물의 진정한 의미
    이경국 칼럼니스트   악어같은 거짓 눈물이 아니라면 눈물은 진심을 말하고 있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슬피우는 딸의 눈물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위선의 웃음은 있지만 거짓 눈믈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악어의 눈물도 인간은 이해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많이 웃으라고 권하고 있지만 필자는 진솔한 눈물의 의미를 강조하고 싶다. 인간은 일평생 70여일을 웃지만 16개월을 운다고 한다.  최근 조사에는 웃는 시간이 89일 정도란다. 좋아서 웃는 시간이 늘어났다기 보다는 수명이 연장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가 눈물을 많이 흘리기 마련이다. 약자의 무기일지 몰라도 남자가 한 달에 1.4회인데 여자는 무려 5.3회 눈물을 흘리니 말이다. 고교시절에 배운 ''옥용적막누난간 (玉容寂莫淚欄干)''이 압권이다. ''옥같은 얼굴에 눈물이 그렁 그렁''이다. 미인의 눈물은 수정보다 아름답다. 옥은 예나 지금이나 귀하다. 금이야 옥이야는 우연이 생긴 말이 아니다. 이 시는 백거이의 장한가 (長恨歌)의 한 소절이다. 현종과 양귀비와의 사랑을 읊은 노래다. 우리나라는 어느 임금이 당현종과 양귀비처럼 사랑을 했으려나?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사랑일까? 당시에 국제결혼을 하였으니..... 우리민족은 눈물이 많다. 약소국가이고 사계절이 뚜렸하여 심성이 착한 탓이 아닐까 싶다. 시대가 바뀌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서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도 전보다 울지를 않는다. 눈물은 창피한게 아니다. 일본은 원의 민족이라 잘 울지를 못한다. 무사는 칼을  앞세우기에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나리는 성리학을 퇴계학으로 꽃을 피운 文의 나라이다. 자연 눈물이 많은 한의 민족이다. 따라서 男兒는 울지를 못하게 했다. 평생 3번만 울라고 했다. 태어날 때, 부모님이 세상을 뜨실 때, 그리고 세번째는 나라를 잃을 때가 아닐까 싶다. 총선결과 웃어야지 만약 울게 되는 처지에 놓이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 거짓 웃음은 뇌가 속지만 눈물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칠정에 속한다. 너무 기쁘면 눈물이 나고 너무나 슬프면 헛웃음이 나오는게 인간이다. 동물은 웃지를 못하지만 삶은 돼지는 웃고 있다. 아마 고사를 지내는데 인간이 절을 할뿐만 아니라 입에다 고액을 물리니까 감읍하여 웃을 것이다.사실은 약물 처리를 하여 웃게 만든다고 한다. 이는 죽은 돼지를 웃기게 하는 일이다. 살아서는 하늘 한번 보지도 못하고 먹이를 주는 주인의 얼굴도 못 본 돼지이지만 냄새로 알아 차린다고 한다. 팔려가는 날은 돼지는 외마디 고함을 지르면서 눈물을 흘리는장면을 소싯적에 본 적이 있다. 돼지는 두뇌도 좋고 깨끗한 가축이다. 팔려가는 돼지를 보고 몇번이나 울었던 적이 있다. 돼지는 집을 떠나기 싫어서 울고 필자는 정든 돼지가 팔려가는 모습을 보고 울었다. 눈물의 극점은 역시 연인과 별리의 눈물일 것이다. 눈물방울을 엮어서 情人의 영창에 달아 놓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싶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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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7
  • [이경국의 대구춘추 131] 꽃향기 보다 짙은 풀냄새
    이경국 칼럼니스트   식물의 전체를 놓고 본다면 역시 꽃이 가장 화려하면서 짙은 향기도 풍긴다. 벌과 나비를 유인할려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면서 짙은 향내까지 발산을 한다. 번식을 하기 위한 절박함일 것이며, 또한 代를 이어 나가려는 몸부름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마치 꽃이 인간을 위해 꽃을 피우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기 십상이다. 코를 자극하는 냄새는 꽃마다 다르다. 그러나 풀냄새의 그윽함은 꽃향기 못지 않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이는 소싯적 농촌에서 자랐던 기억을 생각하면 풀냄새가 아련히 그대로 스친다. 삿갓하나 놓으면 딱 맞을 마당에 자라나는 풀냄새를 잊지 않고 지내고 있으니 이는 무척 다행한 일이 아닐 수없다. 이름이 없는 풀을 그냥 잡초라 한다. 야생화가 각광을 받기 시작하면서 잡초도 관심을 지니게 되었다. 잡초는 번식력이 강하다. 논밭뚝이나 언덕은 잡초가 지켜 주기에 그 혜택은 실로 크다고 본다. 인간이 고마움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굽은 나무가 산을 지켜내고 있다''는 이치와 같다. 인간사회도 같다. 미인은 박명이다. 손을 많이 탄다는 의미이다. 신경을 과하게 쓰면 단명한다. 천재는 요절하기 쉽다. 적응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머리를 믿고 노력이 부족하며 인간관계가 서투르기 마련이다. 자연의 조화는 실로 대단하다. 호미로 잡초를 캐내어 뿌리를 햇볕에 말리어야 되는데 비라도 내리면 집초는 소생을 한다. 질긴 생명력에 혀를 내두르게 한다. 안개꽃처럼 잡초는 무더기로 꽃을 피우기도 한다. 그렇게  하여야만 작은 벌을 유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식물도 살 궁리는 다 하고 있는 것이다. 작다고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면 곤란하다. 맛으로는 홍어가 미각의 최정수이듯 풀냄새를 제대로 알아야 자연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풀의 매력에 푹 빠져 보고 싶다. 어쩌면 이름없는 온갖 잡초들이 지구를 지키는 파수꾼일지 모른다.   서로 얽히어서 홍수에 떠 내려가는 흙을 보호해 주고 있다. 법정스님의 잔잔한 속삭임이 가슴을 적시게 한다. 오두막에 가는 길옆의 풀을 베어 내면서 ''풀아! 미안하다. 여기는 너희들이 있을 인연이 아닌가 보다.'' 이렇게 대화를 하고 베어 낸다는 것이다. 생명의 존귀함을 깨친다 는 것은 인간의 고귀한 사랑의 감정이 없다면 불가능할 것이다. 과일과 풀은 냄새가 다르다. 어쩌면 인공향수보다 더 끌리는 힘이 있다고 본다. 다만 동물세계에서 인간은 이성간 體臭가 가장 좋다고 한다. 이는 서로 극진한 사랑이 있을 때 얘기다. 어느 한쪽이 戀情이 멀어지면 당연히 군둥냄새가 풍길 것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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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1
  • [이경국의 대구춘추 130] 제눈에 딱인 안경은ᆢ
    이경국 칼럼니스트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가 우주의 주인공이자 살아가는 길도 각자  다르기 마련이다. 이는 세상에 미인만 살고 있다면 결코 행복하지 않는 이치와 같을 것이다. 경쟁하면서 치장을 하고 가꾸는데 미적인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안경의 도수가 같다고 하더라도 남의 안경은 어색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흔히 눈에 꽁깍지가 씌이면 박색도 미인으로 보이며 얼굴이 얽어도 보조개로 보인다고 한다. 콩깍지를 벗겨 버리니 더 아름답다고 하면 방법이 없을 것이다. 인간은 물욕이 강할 뿐만 아니라 집착 또한 끈질기다. 이성간에도 상생관계의 인연이어야 소위 필이 통한다는 것이다. 미스코리아 출신을 본처로 삼더라도 생각보다 그렇게 좋지 않다는 결론이다. 우선 미인박명이고 또 손을 탈까 싶어서 늘 심리가 불안하다고 한다.    남자는 대체로 어느 정도는 의심을 지닌다고 하는데 도를 넘으면 의처증이 발병한다. 그리고 8등신 미인일 지라도 밤살이 때 품에 쏙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다. 옛말에 여자는 품는 맛이 있어야 좋다고 했다.  듣고 보니 그럴듯 하다. 美人은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면 되지 않을까 싶긴하다. 양귀비, 크레오파트라, 황진이는 고전미인이라 엉덩이가 컷다고 한다. 多産이 美의 기준인 시대의 미인상이다. 지금은 영상매체 때문에 얼굴이 조막 만 하여야 소위 화면빨을 잘 받는다고 야단들이다. 입에 당기는 대로  실컷 즐기는 시대이다. 찌는 살을 감당하지 못하여 별짓을 다 한다. 남자는 퇴직을 하고 나면 갈 곳이 없다. 퇴직때까지 직장에서 지낸 세월에 눈치가 9단이다. 모른척 하지만 아내의 눈치는 제대로 살핀다는 얘기다. 살은 찌우기도 쉽지 않지만 빼기는 더 어렵다고 한다. 혹자는 숯가마에서 땀을 빼는 여자를 보고 험담을 하는데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여성은 미가 생명이다. 피부가 아릅답다는 것이 최상의 찬사다. 그러나 남자는 정력에 좋다고 하면 사족을 못 쓴다. 목숨을 걸다 싶이 한다. 그들의 가장 설득력이 있는 말은 '종족번식' 이라고 한다. 할아버지가 종족번식의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될텐데 말이다. 깃털이 다른 새끼리 사랑하는 것을 본 적은 없다. 유유상종이다. 인간도 조건이 비슷한 사람끼리 통한다. 끼리끼리 모여 살기 마련이며 부부도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서 닮아 가면서 산다. 제 눈에 안경이다. 짚신도 짝이 있고 사람도 상대가 있다. 주위에 이러한 부류의 부부를 보면 닭살이 돋는다. 닭은 날개가 강하여 닭살도 큰 편이다. 가금류 가운데 오리와 닭은 속담도 많고 배울점도 많다. 얼굴에 흉터가 보조개로 보인다면 이는 베스트 합궁이 아닐까 싶다.   천생연분을 찾아야지 미를 추구하다 보면 낭패당하기 십상일 것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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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5
  • [이경국의 대구춘추 129] 가슴에 핀 감자꽃 추억
    이경국 칼럼니스트   감자는 구황작물 (救荒作物)로 4대 식량식물(쌀, 밀, 옥수수, 감자)의 하나이다. 옥수수와 감자는 강원도의 힘을 나타내기도 한다. 소시절에 감자를 캐는 날은 괜히 기분이 들뜨곤 했다. 감자는 흰감자, 자주감자 그리고 분홍감자가 있다. 자주감자에는 자주꽃이 핀다. 흰감자에 분홍꽃이 필리는 없다. 꽃따라 감자의 색깔이 같다. 꽃과 열매는 서로 내통하고 있나 보다. 감자는 눈이 여러개가 있다. 눈을 돌려 내어서 심어야 싹이 나는 것이다. 식물에 눈이 있는 것은 감자가 유일할지 모른다. 감자의 눈은 보는 눈처럼 생기긴 했다. 식량대용으로 감자를 많이 먹었다. 그냥 삶아서 먹거나 이겨서 스푼으로 먹어도 좋다. 그러나 구워서 먹으면 맛이 일품이다. 콩서리 먹듯 입이 시커멍스가 된다. 누나와 서로 쳐다보면서 웃는다. 살짝 태우면 감자의 진미를 느낄 수 있다. 시골의 정지 (부엌)에서 구운 감자의 맛은 캠핑가서 구워먹는 것보다 더 정겹다는 생각이 든다. 정지에서 의자에 반듯하게 앉아서 감자를 굽지 않는다. 쪼그리고 앉아서 감자가 잘 익기를 연신 부지깽이로 뒤적이는데 기다림의 시간은 길게만  느껴졌다. 고구마는 썪으면 쓸모가 없지만 감자는 요긴하게 쓸 수가 있는 채소류이다. 감자떡의 원료가 된다.   고교시절의 눈부신 여고생의 깃은 감자가루로 풀 (가닥꾸리)을 맥여서 다려서 입는다. 멀리서도 얼굴이 희게 보이며 자주색 가방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늘 궁금 했었다. 여고시절의 자주색 가방은 시의 한 귀절마냥 뇌리에 남아 있다. 돌이켜 보면 그 당시가 천상의 시절이었다. 당시 주인집의 딸도 지금은 중년을 넘어 初老의 할미가 되어 있으니 인생은 아무리 별것 아니라 하지만 슬픔을 머금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아무리 좋아했던 사이라도 남의 아내가 되어 세상을 살아 온 것이다.   감자를 함께 구워먹던 소싯적 추억이 아련하게 떠 오를 뿐이다. 비내린 뒤 쌍무지개는 아니었지만 무지개가 사라지듯 청춘도 세월에 앗기고 말아 어떨 때는 향수에 젖어 눈물이 맺힌다. 작은 감자는 옹가지에 담아서 발로 비비면 껍질이 벗겨진다.   못살던 시절의 감자는 귀한 한끼의 식사로 충분하였다. 설탕이 없던 시절에는 사카린이나 소금을 찍어서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분홍감자는 색이 이쁘다. 아마 핑크빛 사랑때문이 아닐까 싶다. 감자는 껍질을 벗기지 않고 삶아서 먹어도 맛이 좋다. 껍질을 벗기는 동안에는 먹고 싶은 것을 잠시 참아야 한다. 뜨거워서 이쪽저쪽 손을 움직여야만 했다. 자주감자는 분이 많아서 맛은 좋으나 더러 아린 맛이 나기도 했다.감자 (감저, 甘藷)는 한자로는 감저이다. 감자탕에는 사실 감자가 몇조각 뿐이다. 순 돼지뼈 뿐이데 이름은 <감자탕> 이다. 돼지감자는 스스로 자란다. 가축인 개와 돼지라는 이름은 좋지 않는데 몽땅 써 먹는다. 개살구, 개떡, 개차반은 물론 욕도 많다. 감자를 소재로한 글은 많다. 권창순 시인의 ''감자''를 소개해 본다. [ 배달후 며칠만인가 / 종이상자를 열어보니 / 두고 온 산골이 그리운지 / 농부가 그리운지 / 서로 부등켜안고 / 눈마다 눈물로 싹을 틔웠구나 ] 곡식은 농부의 발자욱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감지도 농부가 그리위 싹을 틔웠는데 시인의 눈에는 눈물로 보였나 보다. 이렇게 모진 고통을 감내하고 생겨진 감자가 인스턴트 식품때문에 외면을 당하고 있는 시대이다. 주말이나 휴일에 가족이 모여서 감자나 고구마 파티를 열면서 소싯적 얘기를 들려주면 좋으련만 애초에 모이지를 않고 모래알 처럼 각자 사는 세상이니 걱정이 되기는 한다. 감자꽃의 색깔이 세종류이니 올해는 화단에 감자를 심어서 꽃이 피면 글과 함께 팬여러분께 보낼 생각이다. 물론 손주들과 함께 감자얘기로 꽃피울 날을 기대해 본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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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8
  • [이경국의 대구춘추 128] 고향은 늘 그리운 곳
    이경국 칼럼니스트   고향은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그립다고 했다. 외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향수에 젖어 얼마나 외롭게 지내면서 살까? 고향을 떠나 도회지에서 산 기간이 훨씬 더 길어도 고향은 늘 그립기 마련이다. ''고향땅이 여기서 몇리나 되나?'' 이제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고향도 가기도 쉬울 것이며, 모습 또한  많이 달라져 버리고 말았다. 도회를 닮아져 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고향을 생각하는 習을 쌓아 나가야 할 것이다. 경쟁이 극심한 시대이니 마음이 자꾸만 사악해져 가고 있다. 고향을 생각하는 선한 마음으로 감싸야 된다는 의미이다. 그향은 어머니 품에서 말을 배운 곳이다. 아무리 오랜 기간을 객지에서 살았다고 해도 어머니께 배운 사투리는 그대로 쓰는 경향이 있다. 고향은 추억이 많은 곳이다. 따뜻한 추억은 고향으로부터 나오기 마련이다. 고향이 수몰이 되어 외로워하는 실향민이 주위에 많다. 안동댐과 임하댐이 생긴 탓이다. 흔적없이 사라진 고향이 물속에 잠겨  버렸으니 얼마나 가슴이 저밀까? 그들이  애써 고향을 그리워 하는 詩나 에세이를 읽으면 여간 가슴이 아리지 않다. 서울에서 살아온 기간이 고향에서 살았던 기간보다 두배도 넘었는데도 꿈은 고향에 관한 것 뿐이다. 남산 타워나 청계천은 꿈에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삽작에서 기다리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꿈속에서 자주 보인다. 고향보다 더 정겨운 곳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聖人은 고향에 가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 할 것이다. 오죽하였으면 고향 까마귀만 보아도 반갑다고 했을까? 연어는 머나먼 거리인데도 고향(?)을 찾아가기 위하여 몸부림을 친다. 그리고 그곳에서 몸을 푼다. 산란을 하고 숨을 거둔다. '타향은 싫어 고향이 좋아'란 노래 가사도 있다. 아무리 정이 들어도 타향이 더 좋을리가 있을까..... 지지리 못살던 고향에서 농사일을 하다가 도회에서 성공하여 고향으로 돌아오면 그때는 '농장을 경영한다'는 말이 있다. 부모님곁에 음택(陰宅)을 마련해 두었는데 아내보다 먼저 떠나게 되면 아무래도 1000도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 갈 것만 같다. 그렇다고 아내보다 더 오래 살고 싶지는 않다. 일평생 밥을 한번도 지어 보질 않은 잼뱅이인데 자신이 없다. 고향과 타향이 불이(不異)가 아닐진데 왜 그런지 고향이 좋다. 내 고향 풍산은 평야다. 벼농사와 무배추가 유명하다. 풍산김치는 인기가 좋다. 그리고 고향 율리(栗里) 출신은 모두 객지에서 잘 살고 있다. 지난해 친구들과 식사를 하면서 밤실은 풍수지리로 보아도 좋다고 서로 공감을 한 적이 있었다. 고향은 살던 집과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스며져 있어 생긱만 하여도 눈시울이 붉어 진다. 필자의 고향은 남쪽 바다는 아니지만 어제처럼 고향이 생각속에 남아 있다.   일기를 일찍부터 썼기에 소싯적 기억이 작은 뇌의 분실에 저장이 되어 있어 가끔씩 꺼내어 글을 쓰고 있다. 어려서는 도회지를 동경했었는데 지금은 고향이 그립기만 하다. 그러하다. 고향은 머나먼 남쪽 하늘아래 있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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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춘추
    2024-03-11
  • [이경국의 대구춘추 127] 신비의 바다 이야기
    이경국 칼럼니스트   내륙지방 출신이라 늘 바다를 동경하면서 자랐다. 바다를 처음 접해 본 것이 중학 3학년 때 보이스카웃 단장으로 포항에 갔을 때였다. 조선중기 사상가인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은 이보다 훨씬 더 늦은 나이에 바다를 처음 보고서 경이로움을 글로서 남긴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바다를 단순히 여름한철 바캉스를 즐기거나 고기를 건져 올리는 곳으로만 생각하고 있다면 곤란하다. 바다는 자그마치 지구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비도 바다에 거의 다 내린다. 바다는 또 쉼 없이 움직인다. 힘이 들어서 거품을 뿜어내지는 않을 것이다. 밀물과 썰물이 서로 주고 받으며 파도를 일으켜 낸다. 밀물과 썰물이 아무도 모르게 연민을 느껴 어쩌면 사랑하면서 거품을 남기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파도가 철석철석하는 소리는 누구나 좋아한다. 그리움이 지나쳐 거품으로 그 흔적을 남긴다는 생각이 들면 경외의 마음이 일어난다. 작은 물고기는 어디서 서로 짝을 지어서 새끼를 낳아 代를 이어 나가는지 본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포유류인 고래는 어떻게 염분이 3%나 되는 바다에서 살아가는지 신비롭다. 필자는 바다에서 살던 고래가 육지에서 살다가 다시 바다로 간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바다는 그 속이 어머니 품속같다. 폭풍이 일고 거센 파도가 일지만 바다는 여성인 She로 표현함은 대단한 발상이다. 이는 모든 것을 품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원시인은 하늘은 경배하였고 바다를 동경을 하였을 것이다. 바다는 끝없이 나아가면 낭떨어지라고 소시절에  필자는 원시인처럼 생각을 했다. 그 넓으면서 고마운 바다를 인간이 더렵혀서 지금 바다가 신음을 토해 내고 있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것도 중병상태이다. 소금기가 있는 바닷속에서 기형 물고기가 생긴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지구촌이 쓰레기를 줄이는 노력을 게을리 할 경우 후손들은 호흡이 가쁜 일상이 되고 말 것이다. 바다는 생명의 모태이다. 바다가 신음을 토하면 지구는 통증을 호소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쓰레기 줄이는 일은 인류의 숙제가 되었는데 이는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면서 무리하게 개발한 결과이다. 과소비가 남긴 당연한 부메랑이기도 하다. 냉정하리만치 쓸쓸한 바닷가는 여름한철 몸살을 하리만치 붐빈다. 아침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는다. 만선으로 항구를 찾아 들어오는 어부의 모습은 행복으로 가득차 있다. 필자는 <노인과 바다>를 좋아한다. 그것을 <어르신과 바다>라고 한다고 공경심이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소설의 제목에 감칠맛이 그만 사라져 버리고 만다. 노인이 이렇게 푸대접을 받는 시대는 없었다. 독거노인이 들끓고 있거나 요양원에서 생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晩年의 삶은 고독하기 짝이 없다고 본다. 토인비가 예찬한 우리나라의 대가족제도는 이제는 홀로사는 처연(凄然)한 세상으로 변하고 말았다. 3代가 함께 살고 있는 필자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행하면 가능한데 모두 핑계가 많다. 바다는 인간으로 본다면 낮은대로 임하거나 하심(下心)과 상통하는 포용의 大海임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가난했지만 대대로 자녀를 많이 둔 나라였다. 어찌하여 출산율이 세계에서 꼴찌인 나라로 전락하였으며, 이혼율 또한  창피스럽게도 1위인지 그 요인을 충분히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육지를 아름답게 유지하지 못하는 나라는 바다도 제대로 관리 해 낼 수 없다고 본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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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4
  • [이경국의 대구춘추 126 ] 온양민속박물관
    이경국 칼럼니스트   실로 오랜만에 다시 찾은 온양민속박물관이다.    안동 출신이신 김원대(2000년 작고)님께서 1978년 설립한 박물관  분위기가 마치 고향에 온 느낌이다. 춘당춘색이 고금동이 아니라 마치 상전벽해의 모습임을 느끼게 하다. 청년 때 본 모습과 장년인 지금 보는 박물관의 모습은 판이하게 다르다.   조만간 다시 찾아가 볼 요량이다. 晩年에 보는 모습은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소시절을 연상하는 모습은 향수를 자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순환발전을 하고 있긴 하지만  때로는 그대로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우선 온양은 따뜻한 곳이다. 마음도 안온하다. 지명에 溫字가 있으면 거의 온천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그러하다. 온양, 온정, 온혜가 그렇다. 그리고 역이름이 '온양온천역'이다. 애써 '온'천이란 말을 넣고 싶었을 것이다. 온양군청을 옮길 때 부지를 회사에서 매입하여 온양지점을 이전하고 회사의 창고로 활용을 했었다. 회사가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렸는데 그 많은 창고의 물건들은 연기가 되어 그만 色이 空으로 변해 버렸는지 모를 일이다. 전철이 온양까지 운행된다는 것은 다행이다. 마치 원족이라도 가는 기분으로 들뜬다. 도착하자 말자 눈에 크게 뜨이는 '백채김치찌개'에서 점심을 해결하였다. 맛이 일품이다. 식후경이어야 만사가 형통되기 마련이다. 함께한 친구도 만족해 햔다. 온양민속박물관은 경로우대의 혜택을 받아 입장료가 1000원이다. 그간 세금을 낸 공을 높이 평가하여 이렇게 할인혜택을 부여해 주는 복지국가이고 선진국인 우리나라다. 먼저 단장된 주위를 샅샅이 둘러보다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하다. 우리 말고는 넓은 공간에 관람객이 없다. 한산함을 즐기니 더욱 좋다. 인간은 떠들썩한 저자거리를 즐겨 찯지만 정적이 머문 산사의 인경소리에 취하기도 한다. '구정아트센터'는 3층인데 전시품의 다양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구정은 설립자 김원대님의 號이다. 이 건물을 건축한 사람은 세계적 천재 건축가 아타미 준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다. 가족과 함께 한번은 꼭 다녀 가길 권해 본다. 소싯적 모습이 떠 올라 필자는 황홀지경에 빠져 드는 기분이다. '농자천하지대본'이란 큰 글씨를 보고 혼절지경으로 몰린 기분이다. 5천년 역사의 가난이었지만 삶의 터전이 農事였다. 천수답이니 순전히 하늘에 의지한다. 70여년 전부터 탈농업이 이루어진 나라이다. 경제성장은 말달리듯 숨가쁘게 뛰었다. 최빈국에서 선진국까지 짚신에서 고급 구두를 신은 기적의 자랑스러운 민족의 저력을 '빨리빨리'란 신조어를 세계시장에 전시하면서 이루어 낸 것이었다. 나열하기 조차 많은 박물관의 농촌 모습들이 필자의 마음을 녹였다.세계의 유명박물관을 거의 관람해 보았지만 내 마음을 감동으로 적신 곳은 온양민속박물관이 유일하다. 외국의 대형박물관은 약소국을 침탈하여 갖다 전시한 문화재가 즐비하다. 약탈은 미개한 모습이지 문화와는 거리가 멀다고 본다. 소싯적 모습이 떠 오르면서 정신없이 바라 본 모습이 필자에겐 과히 충격적이었다. 역시 문화가 있어야 선진국임을 느낀 관람이었다. 그러하다. 문명이 비행기 여행이라면 문화는 기차여행이다. 특히 간이역은 아련한 추억이 깃든 곳이다. 빠른 KTX여행 보다는 느림의 미학을 일깨워 주는 완행이 더 좋다. 기찻길옆 오막살이는 보이지도 않는다. 철로 주변의 애들도 보이지 않는 세상이다. 등잔의 호롱불에 광목천 기저귀로 7~8 남매를 키웠는데 샹들리에 밝은 불 아래서도 아이를 낳지 않는 세상이다. 가슴이 망가진다는 이유로 남편의 손을 기피한다는 탤런트도  있다는 세상이니 그 가슴을 어디에 쓸려는지 묻고싶다. 야박한 세상이다. 다시 찾고 싶은 박물관이다. 올해는 박물관을 두 군데나 관람을 하였다. 특히 모형물이 어찌 그렇게 선남자 선여자로 잘 표현을 했는지 넋을 잃고 바라 보았다. 서설이 퍼 붓는 오후에 관람을 마치고 상경하였다. 체증이 내려간 듯 뻥뚤린 오늘의 민속박물관 관람은 오랜기간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해동이 되어 꽃향기가 진동할 쯤에는 손자 승준(4학년)이와 함께 관람할 생각이다. 명가이드로 승준이가 일생동안 할비와의 추억이 될 수 있게 해설을 할 생각이다. 온양민속박물관! 고향같은 분위기라서 소싯적 생각에 넋을 잃은 관람이었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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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춘추
    2024-02-25
  • [이경국의 대구춘추 125] 동물의 잠자는 모습들
    이경국 칼럼니스트   모든 동물은 잠을 자기 마련이다. 장수시대라고 세상이 시끄럽지만 인간은 일평생 20년을 잠으로 보내고 있다고 한다. 깨어 있는 시간동안 치열하게 움직인다면 잠자는 시간은 평온하다. 때로는 악몽을 시달릴 때도 있을 것이다. 잠은 60조 세포가 쉬는 시간이다. 심장은 움직여야 하고 코는 교대로 숨을 쉬어야 하지만 다른 일체의 장기는 잠자는 시간에 쉬기 마련이다. 인간만큼 마음놓고 수면을 취하는 동물은 없다고 한다. 사자만이 무리를 이루어 걱정없이 잔다고 한다. 동물의 왕이니 위용이 대단하다. 다른 모든 동물은 먹이사슬구조에 희생을 당하기에 깊은 잠에 빠질 수가 없다. 기린은 목도 길고 키도 크지만 선채로 잠시 잠을 자는데 무거운 머리를 어깨에 걸치고 짧게 잔다. 기린은 유일하게 달리는 것과 뒷발질이 무기이다. 누워서 잠을 잔다면 맹수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것이다. 키가 커서 일어 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사자는 동물의 왕임에 틀림이 없다. 수컷이 크게 울면 세랭게티의 모든 동물들은 초죽음 상태로 위축이 되는 것이다. 암컷이 사냥을 하면 수컷이 실컷 먹은 뒤에 암컷이 먹는다.   그리고 수컷 대장은 무리의 암컷과 교미를 수도없이 여러번 한다. 힘이 빠지면 다른 수컷의 공격을 받아 무리에서 쫒기어 난다. 한번도 사냥 경험이 없으니 굶어서 비참하게 말로를 장식한다. 호의호식하면서 숱한 암컷과 즐긴 댓가가 너무나 가혹하다. 인간으로 치면 晩年이 비참하다. 사자는 죽으면 맹독류도 시체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제 몸에서 생긴 사자충이 말끔히 치운다고 하니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하다. 마음놓고 잠자는 동물의 왕도 이러한 비애를 겪어야만 되는 것이다. 조류의 잠자는 모습도 독특하다.대체로 암수 한자웅이 나란히 자면서 경계를 풀지 않는다.   꿩은 지근에 떨어져서 잔다. 장끼가 너무나 화려하여 까투리를 보호하러는 생존전략 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동물은 먹고 교미하고 잠을 잔다. 눈을 뜨고 자거나 눕지도 못하고 서서 자야 하는 동물이 많다. 인간은 직립을 하면서 힘은 얻었지만 남자는 성기의 뼈가 안타깝게도 물렁뼈로 서서히 변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아마 다른 포유류처럼 거시기에 뼈가 있다면 달리거나 걷기에 여간 불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사 그렇다고 치더라도 무진 아쉬운 대목이 있다. 발기부전으로 가슴태우는 남자들 말이다. 잠자리가 무서우니 밤이 겁이 난다는 남자들이 많다고 한다.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피곤한 상태로 저녁을 먹고 앉아 있는데 아내가 욕실에서 샤워를 한다. 며칠만에 합궁을 하고 싶은 욕구가 충돌질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없는 남편은 ''여보 회사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면서 슬그머니 집을 나와서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혼자 마신다. 이는 남자들의 여간 가슴아픈 애환이 아닐 것이다. 모성애로 이를  보담아 주지 않는다면 섹스리스 부부로 안타까운 晩年을 보낼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지는 것이다. 남자는 밤을 정복해야지 두렵게 생각한다면 이러한 비극이 또 있을까 싶다. 통상 잠자리는 섹스를 의미하는데 잠자는 시간이 형벌같은 남자의 괴로움을 어부인(?)들이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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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7
  • [이경국의 대구춘추 124] 추억속의 고드름
    이경국 칼럼니스트   고드름을 생각하면 추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동요 '고드름'은 한편의 시를 연상케 한다. 수정고드름은 너무나 아름답다. 발을 엮어서 각시방 영창에 달아 놓고 싶다. 소싯적에는 공해가 없어서 고드름이 유리알 처럼 맑았다. 초가집 지붕 추녀끝에 달린 고드름은 운치도 좋았다. 폭포가 얼면 마치 고드름이 얼음기둥처럼 보였다. 도회지에서는 고드름 보기가 쉽지 않다. 동심이 사라진 세상이 되어 살벌한 모습으로 변하고 말았다. 눈을 돌리면 세상은 아름답기 짝이 없는데도 감수성이 예민한 중학생이 돌로 여성의원을 가해하는 모습을 보니 누군가 시켰다는 느낌이 순간 들었다. 고드름읕 보고 있으면 동굴속 종유석 생각이 난다. 울진에서 군생활을 할 때 할아버지께서 손자를 보실려고 먼길을 면회오셨다. 갓을 쓰시고 두루마기 차림인 전형적인 안동의 양반차림이셨다.   평해의 월송정과 울진 성류굴을 구경시켜 드렸다. 그때는 잘 몰랐었는데 손자 승준이를 보니 할아버지 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동해의 바다도 보여드리고 한치회도 사드렸다. 여행을 오신듯 대접을 잘 해 드렸다. 현재만이 중요하다고 떠들어 대는 세상이지만 필자는 과거의 추억을 무척 소중히 여기고 있다. 고드름은 물줄기가 거꾸로 얼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삭막하지 않겠다 싶다. 詩語을 잊고 산다면 세상이 건조하여 멋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문고리를 만지면 쩍하고 손이 붙고 말았던 시대의 고드름은 낭만이었다. 엄동설한은 대단한 추위였다. 군불을 지핀 방안은 식구들이 가득했었다. 자연속에서 즐길 수 밖에 도리가 없는 유년시절이었다. 고드름을 따다가 먹었으니 그 추억이 아련하다. 전자게임이 없었으니 사금 파리로 놀았던 시절이 정서적으로 좋았다. 소설에도 나오지만 이웃집 순이와 엄마아빠 하면서 놀 때 유독 오줌누는 모습에 호기심이 많았다. 물론 Pissing과 다른 유아기의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고드름을 따다가 오색으로 물을 들인후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카톡팬에게 보내면 모두가 좋아할 것이다. 고드름 모습에 넋이 앗기어 혼절지경에 이르면 글을 쓰고 싶어진다. 계절마다 고유한 모습이 유혹을 하지만 추녀에 매달린 고드름의 추억을 잊을 수 없다. 초가집이 흘리고 말았으니 추녀가 있을턱도 없고 고드름이 생길턱도 없어져 버린 나의 살던 고향이다. 녹아서 내리거나 어떨 때는 고드름으로 떨어진다. 지금은 초가집은 민속촌에 가야만 겨우 구경을 할 수가 있다. 그립다. 살던 시골의 초가집 추녀끝에 매달린 고드름이......           --고드름 삼행시--      고-고향을 부르는 추녀끝  고드름  /  드-드높이 날던 하늘의  방패연 / 름-름은 어려워 그냥 름으로.....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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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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