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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91-마지막] 주막(酒幕)에 대한 추억
이경국 칼럼니스트 흔히 주막은 문패도 없고 번지수도 없다고 말한다. 삿갓하나 놓으면 딱 맞을 땅도 주인이 있으면 이름이 있기 마련인데 말이다. 문패는 없을지 모르겠지만 번짓수는 당연히 있다. 소싯적 필자의 시골은 큰밭, 굴밭, 변달밭, 팽나무논 등으로 이름이 있었다. 대체로 주막은 촌부들의 시름을 달래는 사랑방 같은 곳으로 장날에 만나서 거나하게 한잔 하는 곳이다.안주거리는 보잘 것 없어도 시끌벅쩍한 대화로 힘든 농사일의 수고를 잊는 날이었다.지금은 전국적으로 주막은 거의 사라져 버렸는데 경북 예천에 있는 삼강주막(三江酒幕)은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는 명소이다.고향에서 지근에 있는 이 주막은 주소가 예천군 인데 일부(화장실?)는 안동시로 되어 있다니 재미있는 번지다. 숱한 얘기를 지니고 있는 주막으로 유명하며 관광명소이기도 하다.애환이 서려있는 이 주막은 정이 넘치는 곳이기도 하다.주막의 주인은 한글을 전혀 몰랐으나 자기만의 표기로 외상을 관리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客이 그 주막을 이용했을까?주모를 두고 질펀한 농을 건네기도 하고 쌈지주머니에 돈이 없어도 외상이라고 큰소리를 쳤던 인심이 넉넉했던 시절의 모습이 느껴진다.얼큰한 탁주 한 사발에 세상 시름은 사라지고 부러울게 없어진다. 사실 술은 명약이기도 하지만 과하면 독약이나 극약이 되기도 했다. 주막에서 마시는 잔에는 애환이 담겨져 있다. 포장마차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필자도 술이 조금 강한 편에 속한다. 술은 각박한 세상을 일시 잊게 해 주는 마력(魔力)이 있어서 좋다.지난해 장수1위는 술이라고 UN에서 공식 발표를 했다. 깜짝 놀랐다. 부족한듯 마시면 천하제일의 명약이다. 술은 술술 마시더라도 결국 자제력을 잃기 쉽다.젓가락 장단에 조금은 슬픈 트롯 메들리로 정겹게 부르던 < 니나노>가 사라진 세상이다. 그때가 좋긴 했었다. 애환을 달래 주면서 노래하는 여인들의 절박한 신세타령은 눌물짓게도 하였다.주막집 아줌마는 온동리 남정네의 연인이었다.세상을 온통 디지털로 살기에는 너무나 각박 하다. 스마트폰으로 하는 약속보다는 담너머로 신호를 보내면 달빛에 젖어서 눈치를 봐 가면서 나오던 갑순이의 모습이 더욱 정겨웠던 시절이 좋았다. [ 이번 글로 긴 여정의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2020년 9월 1일부터 2025년 5월 26일까지 5여년의 기간에 총 247회의 칼럼을 집필하였습니다. 어줍잖은 제 글을 때로는 열독과 애독으로 아껴 주신 <대구저널>의 모든 애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해외에 계신 많은 작가분들의 향수를 달래어 준다는 얘기는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습니다. 돌이켜 보니 너무나 긴 세월이었습니다. 원고 청탁에 한번도 늦은 적이 없었으니 스스로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구저널의 이현식 대표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正道를 지키는 지역 언론으로 더욱 발전하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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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90] 가슴에 뜨는 남모르는 무지개
이경국 칼럼니스트 무지개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필자는 무지개는 물론이고 쌍무지개도 좋아합니다.한때 <무지개동자>로 부르시던 장박사님은 고인이 되셔서 하와이 가족묘지에 안치되어 있는데 한번 찾아 뵙기가 쉽지가 않습니다.창랑 장택상 총리의 따님이시니 정치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무진 많이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무지개는 '레인보우'이니 마른 하늘에는 생겨날 수는 없습니다. 색깔도 7가지로 육안으로 구분할 수가 있습니다. 쌍무지개는 그 색깔이 무지개와 반대로 나타납니다.무지개의 보이지 않는 색깔의 의미를 알아야만 무지개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봅니다.귀한 것은 스쳐 지나기 마련입니다. 첫사랑이 그러하고 무지개도 그러하다고 봅니다.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일생동안 뇌의 작은 분실에 저장이 되어 가끔씩 씁쓰레한 웃음속에서 떠 오를 것입니다.소싯적에 무지개는 작게 보였는데 지금은 한 눈에 볼 수가 없을 정도로 크기도 합니다. 해마다 무지개도 조금씩 자라는가 봅니다.가수 이용복은 무지개를 볼 수는 없었지만 가슴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눈을 감으면 저 멀리서'' 제목이 <그 얼굴에 햇살을>인데 차라리 <무지개 타고 오네>가 좋을 듯 합니다.아마 맹인가수이니 앞이 보이지는 않지만 얼굴에 햇살을 받고 싶어서 부른 노래가 아닐까 싶습니다.헬렌 캘러는 <3일만 볼 수 있다면>에서 감동적인 것을 남기었습니다. 얼마나 세상의 빛과 그리고 무지개가 보고 싶었겠어요. 눈물이 나는 대목입니다.건강한 모습의 몸을 어머니께 받았는데도 세상에는 불효자 많습니다. 며칠 동안 비가 내리면 무지개는 뜨지 않습니다.소나기가 내리고 쨍하게 태양이 보일 때 무지개가 뜨면 감동적으로 다가 옵니다.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운데 그저 많이 가질려는 욕심이 앞서 너무나 지저분한 모습입니다.소욕지족(少慾知足)의 청빈으로 살아 가면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울 것입니다.어떤 연유로 제게 무지개동자로 부르면서 이쁜 명함도 새겨 주셨는데 그 많은 명함도 간 곳 없이 사라져 버렸으며, 장박사께서는 향년 90세에 떠나 셨습니다.일본 여행을 가서 필자는 크게 호강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의 재벌이 초대를 했는데 동행을 했기 때문 입니다.무지개는 오래 머무르지 않기에 더욱 아름답게 보입니다. 달을 보고 詩作을 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떨어지는 운석(雲石) 에는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비싸기 때문입니다.천민자본주의가 꽃을 피우고 있는 시대이니 눈에 보이는 물신(物神)에 혹(酷)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릅니다.무지개는 소망을 담고 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연인간에 인연이 다하거나 아니면 오해로 인하여 갈라선 처지 일지라도 석삼년까지 기별을 막히게 한다면 너무나 가혹할 것입니다.누군가 무지개를 보면서 마음을 되돌리어 곁으로 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비단구두를 신거나 무지개를 타고 온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아니면 달빛에 젖은 채로 찾아도 마냥 반기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을 것입니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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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89] 보리밭의 추억들
이경국 칼럼니스트 보리밭은 연상되어지는 것들이 무척 많기 마련이다. 물론 농촌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추억이 있을 턱이 없을 것이다. 논에서 경작하는 벼와 밭에서 재배하는 보리는 어렵던 시절이나 지금도 우리민족의 主食으로 삼았던 귀하고도 귀한 식량이다. 과식하여 사우나나 찜질방에서 땀을 빼는 현대인은 배고파 허리가 휜 그때의 세상을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없으니 역사는 강건너 저 편의 일이 되고 말았다. 푸른 보리싹을 훑어서 풀떼기 죽을 써 먹던 시절은 눈물겨운 일이다. 가장 넘기가 힘든 고개는 <깔딱고개>가 아닐 것이다. 바로 <보리고개> 였다. 그러나 지금은 <청보리 축제>로 온통 난리법석을 떠는 세상이 되었다. 가곡 <보리밭>을 눈을 지긋이 감고 들어 보면 소시절의 추억이 금시 곁으로 다가와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축제와 향락에 깊이 빠져들면 근로를 기피하고 더 짜릿한 감각세계를 갈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망국의 조짐이 나타나면 지도자가 필요한데 그들이 주지육림에 빠져 버리면 나라가 망해 버린 경우가 많았다. 인류의 역사는 대체로 그렇게 망했다. 전쟁보다는 향락과 역병으로 소멸이 되었으니 무서운 일이다. 지나친 퍼주기식 포플리즘은 국가가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권력은 이를 암암리에 정책이라면서 백성을 속인다. 우민한 백성은 속으면서 몇푼의 돈으로 그만 깊은 수렁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보리밭을 보면 생각이 많이 난다. 보리피리와 보리의 에이즈인 깜북이 병이 떠 오른다. 여인숙도 귀한 시절엔 보리밭에 숨어서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마루밑에 잠자고 있는 애꿎은 개만 부짓깽이로 주인에게 혼나기도 했던 추억이 스친다. 당시의 개는 개취급을 받았던 때였다. 아버지와 마당에서 도리깨로 보리타작을 할 때면 부자간의 장단은 대단하였다. 보리의 깔끄래기(까끄라기의 방언)는 찬물로 등물을 하여야 했다. 아버지 등물을 많이도 해 드렸고 아버지께서도 저의 등을 밀어 주셨다. 지금은 이런 사랑은 간 곳 없이지고 그저 아버지의 지갑만 넘 보는 못된 사회가 되고 말았다. 유산을 노리는 자녀가 너무나 많은 시대이다. 아! 그립다. 땡볕에서 보리 타작을 하던 추억의 색채는 밀레의 그림을 연상시키게 한다. 아버지께서는 멀리서 어머니와 함께 증손주인 승준이와 승아 그리고 라은이의 자라나는 모습을 보시고 흐뭇해 하고 계실 것이다. 보리타작을 할 무렵에는 보릿짚으로 여치집을 만든다. 한낮이 되면 여치의 울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맥향(麥香)일렁이는 보리밭을 보면서 막연한 청운의 꿈이 크기만 했는데 돌이켜 보면 추억이 남달리 많은 편이었다. 가난으로 찌든 시절의 보리밥의 추억은 가슴이 아픈 기억이지만 지금은 <청보리축제>로 연인들이 모여드는 세상이다. 최빈국에서 최정상의 부유한 나라가 되었는데 어떠한 지도자와 국민이 허리가 휘어지게 일을 했는지는 역사의 교훈으로 남겨져야 할 것이다. 보리의 모습과 벼는 완전히 다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보리는 고개를 바짝 쳐들고 만다. 벼는 따뜻한 계절에 못자리에서 태양을 보면서 자란다. 그러나 보리는 엄동설한의 혹한의 밭에에서 고생을 해야하는 작물이다. 아마 그러한 보상으로 태양을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을까 싶다. 보리밥은 대나무 그릇에 담아서 밥쁘제 (보자기의 방언) 로 덮어서 파리가 앉지 못하게 한다. 냉수에 말아서 풋고추를 찍어서 자그마치 5000년을 견디었던 우리민족의 아픈 역사이기도 하다. 과소비로 휘청거리면 살림은 기울어 지기 마련인데 저축보다는 소비를 엔조이하듯 즐기는 세태이니 걱정이 따른다. 현대인은 건강식이라고 꽁보리밥을 찾기는 하고 있지만 보리에 대한 추억을 모르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보릿고개는 시골 뒷산의 고개가 아니다. 우리 민족의 피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는 미아리고개 같은 <눈물의 고개> 이다. 그러나 이제는 두 고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보릿고개는 축제의 마당이 되었으며, 미아리 고개는 온갖 꽃이 피는 희망의 고개로 변하였다. 보리로는 맥주를 만든다. 쌀로는 쌀막걸리를 만든다. 보리와 쌀의 깊은 의미를 되새겨 보았으면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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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88] 서방질과 계집질
이경국 칼럼니스트 어미(語尾)에 질字가 들어가면 조금은 깔아서 보는 비하적인 느낌이 든다. 사(師, 士)字에 비하여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비속어는 변화가 많이 되었다. 차장은<안내양> 으로 부르는데 무인시대 인지라 안내양을 보기가 쉽지 않다. 숙박하는 곳이 무인이라니 세월의 격세지감을 느낀다. 한 때 주소를 기록하는데 한군데는 틀리게 적는다는 친구의 말에 박장대소 했던 기억이 난다. 고속도로가 생기자 말자 안내양을 보기 위하여 일부러 고속버스를 타 본 사람도 있었다. 스튜디어스와는 육지를 달리는 초고속 버스의 안내양은 그 느낌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식모는 <가정부>로 불러지게 되었다. 처가댁에는 오래 함께 살던 가정부가 있었는데 시집을 보낼 때 아내와 똑 같이 혼수를 해 준 기억이 난다. 나더러 형부라 부르던 마음씨 고운 아가씨가 지금은 연락조차 두절이 된 상태다. 직업에 질字를 붙이면 비하적인 표현이다. 갑질도 기분이 접히는 단어이다. 특히 <서방질과 계집질> 은 아내와 남편이 있지만 외간 다른 짝과 바람을 피운다는 것이다. 님자는 본래 바람을 피우는 존재이다. 종족보존을 빌미로 여기고 있는데 그럴 듯한 핑계에 할 말을 잊어 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여성은 바람 나기가 쉽잖은 일인데 ''홧김에 서방질을 해 버린다''고 한다. 이는 남편이 평소에 애를 태우기 때문에 견디지 못하여 그만 앙값픔을 하기 위하여 즉흥적으로 저질러 버리는 행위가 아닐까 싶다. 대체로 학창시절 가슴에 담아 두었던 동창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한 때 옛 친구를 찾아주는 '동창사이트'가 불티가 나게 인기가 있었다. 이는 꽃뱀에게 당하는 사기를 미연에 방지 하겠다는 믿음이 선행 되기 때문일 것이다. 계집질이나 서방질은 가정의 울타리가 허물어지는 행위다. 따라서 각자의 단속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홧김에 저질러 버리는 행위는 후회가 따르기 마련이다. 어머니께서는 참을 忍字를 세번 생각하라고 당부하셨다. 그리고 객지에서는 ''단도리를 잘하여야 한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이는 노자의 '도덕경'이나 테스형의 ''너 자신을 알라''보다 필자에게 훨씬 더 마음에 와 닿기도 하며, 큰 영향을 주신 어머니셨다. 어머니께서 남긴 명문어록(?)의 말씀이 많으시다고 아내도 몇번이나 얘기를 한다. 금과옥조같은 말씀이셨다. 몇가지 얘를 든다면, 어머니는 키가 작으신 편이었으나 7남매 모두 키가 큰 편이다. 누군가 그러한 것을 말했나 보다. 어머니의 명답으로 샹대를 압도하셨다. 세상에 ''키가 크다고 하늘의 별을 딸 수도 없으며, 키가 작다고 개미한테 코를 물린 사람도 없다''고 하신 것이다. 아무리 별을 따기 위하여 달에 먼저 이른다 하더라도 별을 딸 수가 없을 것이다. 장대가 그렇게 길 수 없다. 닉슨대통령과 등소평이 만나서 등소평의 키가 어깨에도 미치지 못하니 눈치빠른 등소평이 말하기를 ''하늘에서 보면 자기가 더 크다''고 했다. 때로는 한 마디의 위트나 유머로서 상대의 양코 (서양인의 높은 코)를 팍 죽이는 지혜가 필요 하다고 본다. 인간의 자존심은 때에 따라서는 사소한 일에 상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도회로 나가서 돈을 벌어서 귀향하면 '농장을 경영한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사실 농사면 어떻고 농장경영이면 어떻다는 말인가? 일상이 지루하다고 일탈을 해 보고 싶겠지만 正道의 길이 아니라면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게 될 것이다. 성난다고 바위를 차도 안될 것이다. 홧김에 <서방질>도 같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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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87] 여성의 가슴 사이는 좁다
이경국 칼럼니스트 아무리 건장한 여성 일지라도 가슴 사이는 좁다. 이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면서 애기가 한쪽 손으르 다른 젖꼭지를 만지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모유를 먹이는 것이 가장 좋은데 분유의 편리함을 선택하고 있는 세상이다. 인성의 기초는 여기서 허물어 지고 만다. 소젖을 먹이면 고무 젖꼭지와 가슴의 젖 꼭지는 실로 엄청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도 34억 축생 가운데 인간의 産道가 가장 좁기 때문에 아기와 어머니가 교감이 많이 되는 순간이라 한다. 제왕이 하던 재왕절개 수술을 지금은 누구나 하고 있다. 더러 수중 분만으로 통증을 줄이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기는 하다. 무통주사로 분만시 통증을 없애게 하니 출산의 고통이 옛과 다르다. 인류는 출산을 하면서 애기가 죽거나 산모가 죽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시대는 왕비의 생명을 앗아 가기도 했다. 명의도 소용이 없었다. 사실 여성의 저고리는 남자가 도저히 입을 수 없다. 인체는 신의 명품이긴 하지만 여성의 가슴은 단순한 성기능의 유방과 다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자주 고름 입에물고 입만 빵긋하면서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여성은 천사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 설사 여성의 손은 일을 많이 하여 거북등같이 거칠게 보인다 해도 천사의 손 (angel-hand) 으로 손색이 없다고 본다. 모든 여성은 어머니의 모습을 품고 있다. 그렇게 생각해야 평화가 유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History'로 남성으로 대우를 해 주지만 노도가 일고 쓰나미를 일으키는 험한 바다를 여성인 'She'로 표현한 것은 의미가 크다고 본다. 바다는 생명의 모태이다. 천혜의 혜택을 인간에게 줄 뿐만 아니라 3%의 염분으로 부패를 방지 하고 소금은 황금 만큼이나 귀하기 때문이다. 어머니 성품을 닮아서 강물은 바다에 이르면 압록강이니 낙동강이니 다투질 않는다. 어머니는 가슴이 좁지만 세상을 품기에 넓기만 하다. 사랑이 좋아서 세상은 사랑타령을 많이 하고 있지만 필자는 <어머니> (엄마)란 단어를 <사랑> 보다 우위에 두고 싶다. 그리고 모성애를 능가할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의 본성도 무진 강하다. 산불이 나면 꿩은 새끼와 함께 불에 타서 죽는다. 어미는 새끼를 두고서 날아가 버리지 않는다. 이보다 짙은 감동은 어쩌면 인간 사회도 드문 일일 것이다. 도덕, 도의, 바른 생활을 배우고 종교를 믿고 살고 있지만 인간만이 자식을 버린다. 이역만리 해외입양을 시켜버리기도 한다. 미혼모이거나 바리지 않는 출산이면 멀리 보내어 흔적을 지워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인연줄을 끊어 버린다고 죄책감 없이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양심이 없다면 금수(禽獸)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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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86] 밤에만 피는 꽃들
이경국 칼럼니스트 꽃은 거의 낮에 핀다. 태양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며 벌과 나비를 유혹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아예 해바라기는 태양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 키도 가장 큰 편이다. 태양과 더 가까이 하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달빛이 좋아서 밤에만 피는 꽃이 있다. 박꽃과 달맞이 꽃이 대표적이다. 달맞이는 아예 달을 연인처럼 섬기는 모습이다. 이름자체가 '맞이 한다'는 것이다. 박꽃은 역시 초가 지붕위에 피어야 운치가 있어 보인다. 草家가 사라져 버렸으니 제비도 오지 않고 운치있는 박꽃도 볼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흰색은 백설기 색이기도 하며, 어쩌면 춘향의 허벅지도 박꽃같이 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밤에 피는 꽃은 거의 흰색이다. 아마 벌, 나비, 나방의 눈에 쉽게 뜨이게 하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이 아닐까 싶다. 꿀을 취하여 가지만 않는다. 암술과 수술을 중개하여 꽃가루를 전달하여 代를 이어 나가게 도와 준다. 아무리 못생긴 꽃이라드 빠뜨리지 않는다고 하니 감동적이다. 야심한 밤에 피는 꽃은 의외로 많다. 야래향, 선인장, 재스민, 치자나무, 목련, 꽃담배 등이 夜花이다. 흰색이니 알리기도 쉽겠지만 향기도 짖게 풍긴다. 낮에는 꽃이 닫히는 특성이 있다. 특히 야래향(夜來香)은 향기가 짙을 뿐만아니라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애잔한 생각이 들면서 먼저 간 친구가 보고 싶어진다. 주현미가 부른 노래가 압권이다. 나방이나 박쥐도 꽃가루를 옮기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文人은 밤을 좋아하고 밤꽃을 좋아한다. 이제는 달을 보고 시를 쓰지 않는 시대이다. 인간이 달을 정복(?) 하고 부터는 달보다는 떨어지는 운석(隕石)의 가치에 신경을 쓰고 있다. 이태백이 지하에서 통곡(痛哭)을 할지 모를 일이다. 夜花는 흰색이거나 노란색이다. 그리고 자기만의 짙은 향으로 중개를 유인하는 것이다. 주고 받으면서 상생을 통하여 윈윈하는 자연의 조화로운 모습을 보노라면 괜히 숙연해 지면서 경외감이 인다. 조기 대선에는 숱한 비방과 험악한 언어가 등장할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고 역지사지 하라는 배려의 마음은 정치판에서는 아예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로지 권력에만 혈안이 되어 상대를 죽이고 싶은 생각이니 그들은 천상에 가는 것은 애시당초 포기 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파스칼이 갈파한 지상은 꿏이 있어서 아름답다 했다. 천상의 별은 공해로 볼 수 조차 없는 세상이다. 가슴의 사랑조차 고갈이 되어 건조하니 여간 답답지가 않다. 정치인에게는 아예 文.史.哲이 없다. 특히 역사관이 없으니 목전의 이익에만 정신이 쏠려 있는 지경이다. 대통령 후보자가 콩나물 시루의 콩나물처럼 고개를 들이 밀고 있는데 일종의 후보공해다. 흥행으로 관심을 높인다고 하는데 웃기는 일이다. 야심한 밤에 피어나는 꽃을 보면서 선한 기운이 들도록 심성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그들의 급선무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꽃은 지구촌 어디에서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피운다. 열사의 사막에서도 선인장을 꽃피워 전갈과 벗을 하고 있으며, 엄동의 혹한에도 설중매가 피어 인간에게 감동을 전해 주고 있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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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00] 허공속의 그미
- 이경국 칼럼니스트 허공에는 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무수한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다. 인간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거의 그 속은 비워져 있기 마련이다. 인체도 주요 부위는 비워져 있다. 머리, 뼈, 위, 창자 등 속은 비워져 있다. 色이 곧 空이란 것이다. 여기서 색은 눈에 보이는 일체의 물체를 일컷는 말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수학적으로는 미적분, 과학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나 질량불변의 법칙을 들이 대어야만 할 것이다. 佛法으로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다. 이는 바위와 공기가 같다는 이치다. 마치 몸과 마음을 같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육안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같다는 의미이다. 사랑도 종교도 결국 하나란 것이다. 마음은 우주가 생기기 전에 이미 있었다고 필자는 늘 주장하고 있다. 마치 꽃이 있기 전 이미 색깔은 존재하였다는 것처럼 말이다. 허공에 낙서를 하여도 그미에게 닿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여 본다. 그미는 그녀와 같은 뜻이지만 詩적인 묘미가 있기에 자주 쓰고 있다. 음양이 없으면 세상은 존재 의미를 상실하고 말 것이다. 태양은 빛도 있지만 동시에 그림자도 있기 마련이다. 산과 계곡의 의미는 남녀의 들고 나옴의 이치와 같다. 음양은 둘도 없이 조화롭지만 탈이 나면 칠흑같은 어두움이 생기는 속성이 있다. 부부가 토닥거리면서 사는 이치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가 만연할 때 집콕을 하고 있는데 친구가 급한 전화를 했다. 아내와 끝장을 내다시피 다투 었다면서 SOS를 요청해 온 것이다. 저질러 놓고 돌아서서 해결책을 찾는 인간의 본성을 반성이라 하질 않는가? 종교로는 회개나 참회로 강조하고 있다. 필자가 정신과 의사도 아니고 더군더나 카운셀러도 아닌데 말이다. 20여 분을 조용히 듣기만 했는데 고맙다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카운셀러는 상대의 말을 귀담아 들어 주면서 편만 들어 주면 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긴하다. 말을 하여야 풀리는 존재가 인간이다. 특히 여성이 더 심한 편이다. 위의 논리를 잠간 얘기를 하긴 했다. 칼로 물배기 싸움인데도 때론 상처가 깊어지는 것이 부부다툼이다. 부부간에 촌수가 무촌이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아내를 ''손님처럼 평생 여겨야 된다''고 퇴계 선생께서 일찍이 말씀하셨다. 한 이불을 쓴다고 마구 대하면 충(衝)이 생기기 마련일 테니까.... 화를 내면 무수한 뇌세포가 파괴된다. 재생이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결론은 참아야 하는데 되풀이 되는 습관에 익숙해 있으니 인간은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존재임이 틀림이 없다고 본다. 허공의 의미를 깨치면 마음이 느긋해 진다. 짧은 생인데 一體인 부부간에 다툴 시간이 어디 있을까 싶다. 독서삼매경에 빠지면 雜念이 去하고 正念이 來한다. 상대를 버리는 마음으로 떠났든 두고 싶은 마음으로 가 버렸든 간에 情人이 지구상에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것이 행복이라 여긴다면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싶다. 모두가 허공속에 살다가 떠나는 존재들인데 자꾸만 곁에 두고 싶은 욕망 때문에 오늘날 우리사회는 사악함으로 가득하다. 온갖 종교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최고라고 거품을 무는 것도 자기종교에 대한 일종의 스스로에 대하 갈애(渴愛)일 것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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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00] 허공속의 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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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99] 행복예찬에 대한 소견
- 이경국 칼럼니스트 현대인에겐 행복은 사랑만큼이나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용어로 자리를 잡았다고 본다. 삶은 행복하기 위함에 목적을 두고 있다. 幸福은 ''다행 行字에 복 福字''이다. 본래 행운이란 용어를 쓴 우리민족이다. 이상하게 행운을 요행으로 여기면서 행복이란 어휘를 부쩍 많이 쓰게 된 것이다. 어차피 인간은 '운칠기삼'이나 '운수대통'이란 사자성어를 무척 좋아하고 있다. 행복이란 용어는 쓰기 시작한지는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다. 영국의 철학자 밴덤이 공리주의를 주장하면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일본에서 번역이 되면서 생겨진 용어가 행복이다. 당시 일본에서도 행운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행복이란 용어는 없었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福字를 붙혀서 행복이란 용어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福字를 파자(破字)해 보면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밭을 바라 본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소박함을 내포하고 있는 글자이다. 복은 짓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님은 너무나 자명하다. 따라서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가 바른 인사법이다. 조복(造福)을 하라는 의미이다. '해피 버쓰데이 투유'는 행복과 행운을 동시에 기원하는 세계인이 가장 많이 부르는 생일축하노래다. 행복에 대한 노래는 너무나 많다. 저음가수 문주란은 '첫사랑 순정'에서 ''즐거웠던 그 시절 행복했던 그 옛날 너와 나의 사랑은 가슴속에 새겨 놓고'' 에도 행복이 나온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첫사랑이라 했던가! 그러나 첫사랑 순정은 일생동안 뇌의 작은 분실에 저장되어 추억으로 머물고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노래를 하모니카로 연주하여 갈채를 많이 받은 적이 있다. 행복을 전공한 사람의 얘기는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가 중요하다고 한다. 자주 느끼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행복하다고 하질 않는가? 인문학의 최고 강좌인 박약회 (회장 이용태)의 ''행복 아카데미''는 틈만 나면 ''나는 행복하다''를 주문처럼 되뇌이어야 긍정적인 사고를 지니게 되어 행복해 진다는 논리다. 행복이 스치는 바람에 있다고 하더라도 가만히 있으면 지나가 버리기 마련이다. 설날의 복조리가 자취를 감추었다. 그야말로 복조리는 학생들이 잡비를 마련하는 기회였다. 잊혀져 가는 우리의 아름다운 유산을 회복시키는 것은 복을 짓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름에 福字를 많이 쓰고 있으나 이는 성함에 써서는 안되는 글자다 대략 불용문자가 128字나 된다. 대표적인 글자가 福福字와 나라國字다. 따라서 필자는 거래은행의 인감에는 나라國字를 쓰지 않고 있다. 직장동료도 福字를 고쳐서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행복은 워낙 많이 쓰고 있으니 행운도 더러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행복의 절정의 순간이 따로 있지는 않을 것이다. 순간이지만 빈번하게 느끼는 것이 행복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행복도 습관이 되어 있어야만 자주 느끼기 마련이다. 불행의 요소가 있다면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행복을 느끼는 요소이기도 하다. 인생! 고해의 바다요. 험로역정의 일상이니 행복으로 덮어야 될 운명에 처한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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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99] 행복예찬에 대한 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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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98] 칠석에 스치는 상념(想念)
- 이경국 칼럼니스트 누구나 일년에 한번 생일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생일을 모르는 경우도 있긴하다. 견우와 직녀는 일년에 딱 한번 만나서 정을 나눈다. 칠석에만 만나는데 올해는 이달 22일이다. 누구나 칠석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우선 하늘에서 비를 내리는지 살펴 보았을 것이다. 견우와 직녀의 만나는 순간 포옹의 눈물 그리고 작별의 순간에는 석별의 눈물이 비가 되어 내린다 했다. 이맘 때면 까치와 까마귀가 오작교를 만들기 위하여 하늘로 올라가고 실제 없는지 살펴 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몽고 2차 침입 때 공민왕은 노국공주와 함께 안동으로 피신을 하였다. 진데를 밟을 쌔라 처녀들이 놋다리를 만들어 노국공주를 건너게 했던 것이다. 놋다리행사를 보면 은하수에 놓여진 오작교 생각이 떠 오른다. 은하수에서 까치와 까마귀가 오작교를 만들어 견우총각과 직녀처녀가 건너게 하는 가교역할을 하는 것이다. 까막까치의 희생정신이 대단하다. 전설이나 동화가 사라진 시대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산타클로즈도 요즘 애들은 속지를 않고 선물에만 신경을 쓴다니 너무나 현실적이다. 달속의 하얀 쪽배도 계수나무도 은도끼도 사라져 버린 시대에 그저 달에서 떨어지는 운석(隕石)의 크기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시대이다. 돈이 제법 되는 모양이다. 견우와 직녀도 이제는 만나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지 모른다. 그간 주식투자로 재산이 불어 났는지? 아직도 사랑이 여전한지? 다이어트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이러한 세속 얘기로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을까 싶다. 견우는 머리에 무스를 바르고 야한 티를 걸치고 나왔을지 모를 일이다. 직녀의 구멍난 청바지에 배꼽티를 걸치고 만나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견우와 직녀는 누구일까? 화두(話頭) 처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필자가 견우라면 직녀는 누구일까? 부부는 늘 함께 있으니 견우와 직녀같은 애틋한 사랑은 없다고 본다. 부부는 원래 그러한 무덤덤한 존재다. 전생에 원수이어서 이생에 화해하라고 짝이 되었는데 대다수 더 멀어진 웬수가 된다고 하니 ''삶은 별것 아니다.''란 말이 떠 오른다. 이는 고인이 되신 대학시절 소설가 서석달 교수님의 단편소설 ''엽사전''에 나오는 얘기다. 칠석에 남자들은 울고 싶다고 한다. 울 수 있는 공간조차 없는게 현재 남자의 입장이다. 나이들면 남자는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여 직녀를 꿈꾸면서 지내고 싶을지 모른다. 칠석이 다가오니 소싯적 견우직녀의 생각이 마치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다. 인간세계의 선남선녀가 바로 견우와 직녀일 것이다. 직녀는 베를 잘 짰지만 옥황상제의 딸이었다 . 옥황상제는 하늘을 지배하는 천황이 아니던가? 견우는 목동이니 요즘의 카우보이다. 하늘나라에는 신분의 차이가 인간사회와 달라 없을 것이다. 그나마 견우와 직녀는 영원히 만날 수 있을테지만 까치와 까마귀는 해마다 사역(使役)으로 홍역을 치루니 안타까울 뿐이다. 칠월칠석의 견우와 직녀의 만남은 아름다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슬픔을 지닌 우리들의 영원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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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98] 칠석에 스치는 상념(想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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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97] 대구저널 칼럼 연재
- 이경국 칼럼니스트 대구저널과 인연이 닿아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한지가 벌써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2020년 9월부터 그 다음해 9월까지 56회에 걸쳐서 주로 경제에 관한 내용인데 주식에 대한 기고를 한 바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쓰는데 가난한 집에 제사 돌아오듯 일주일은 빠르게 다가 오더군요. 필자가 20년 넘게 증권업에 종사하면서 당시 주가에 대한 기고를 신문이나 잡지 등에 많이 하였습니다. 저널의 컬림내용도 지나고 보니 주가 예측을 그나마 제대로 한 것으로 생각이 되어집니다. 2021년 10월부터는 일상속의 에세이를 주로 기고해 오고 있는데 벌써 100회가 되어 갑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지나고 보면 늘 부끄럽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새색시가 첫날 밤 옷고름 푸는 신랑에게 보여주는 그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생활속의 수필은 그때마다 이슈화 된 사안을 정하여 쓰기 때문에 속편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간 어줍잖은 필자의 칼럼을 애독하여 주신 대구저널의 팬 여러분께 지면을 통해서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해 드립니다. 늘 글을 정독하시고 주옥같은 댓글로 감동을 주시는 '대장금'님께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명의뿐만 아니라 댓글에서 짙은 香을 풍기니 필자로서 무척 행복한 일이기도 합니다. 칼럼을 읽고 개인적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팬분도 적잖습니다. '신언서판'이라 하여 글은 書에 해당이 됩니다. 옛날 문집을 남기었으나 지금은 출간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현대인들은 신문을 읽으면서 지저분한 기사에 성질을 내지만 어쩌다 배달이 늦으면 몇번이나 나가서 챙기는 습성이 있다고 봅니다. 언론은 무관의 제왕이라하여 그 중요함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독서와 메모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선진국은 독서량이 많습니다. 둔필승총(鈍筆勝聰)이라하여 ''천재의 기억력보다 둔재의 메모가 낫다''는 것입니다 메모는 무서운 힘을 발휘 합니다. 일기를 쓰는 자는 대체로 필력이 좋습니다. 필자의 손자는 초등학교 3학년인데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인성에 대한 조손간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여기어 3代가 한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드문일이라고 주위의 칭송이 자자합니다. 인간은 그저 아파트 평수와 통장잔고가 행복의 기준인양 생각하는데 이는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욕지족의 일상이 더없는 행복이요, 위없는 만족한 삶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메모를 할 수도 있지만 메모노트에 쓰는 습관을 들이면 참으로 깊이가 있어 보입니다. 한번 정도 칼럼을 쉬어 간다는 의미에서 독자 제위께 감사의 글이 그만 잔소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칼럼을 쓸수 있게 지면을 제공해 주신 대구저널의 이현식 대표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정도언론을 주창하는 언론인으로 저널이 더욱 발전하여 그 위용이 대구.경북은 물론 전국적으로 확산되길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필자도 양질의 칼럼으로 애독자 여러분께 다가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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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97] 대구저널 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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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96] 서해 갯벌의 세계유산가치
- 이경국 칼럼니스트 평소에 갯벌이나 늪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편이다. 환경과 생태계에 대하여 나름 연구를 하다 보니까 관련 논문을 많이 읽게 되어 애착이 생기게 되어졌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서천, 고창, 신안, 보성, 순천 등 4개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물론 몇해 전 일이다. 자연유산으로는 2007년 제주화산 섬과 용암굴에 이어서 두 번째다. 습지보호구역으로 27종의 철새가 머무는 지역이다. 바다의 갯벌이 1m가 조성이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이 걸린다고 한다. 밀물과 썰물도 인간 모르게 주야로 사랑을 하면서 거품을 토해 내고 있는가 보다. 그 남긴 흔적이 갯벌일지도 모른다. 참으로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동해에는 갯벌이 생기지 않는다. 바다도 깨끗하게 보존하는 의식이 필요한데 돈만 아는 시대이니 갯벌이 눈에 들어오기란 쉽지가 않을 것이다. 동해는 천혜의 맑은 바다이다. 서해는 갯벌이 있어 소금이 난다. 남해는 섬이 많아 다도해라 불린다. 삼면의 바다는 각기 다르게 우리의 민족을 보듬어 온 세월이 자그마치 5천년이다. 물론 환단고기로는 9천년이 넘는 역사다. 자연을 제대로 유지시켜 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필자는 평소 종교의 교리에 자연환경을 파손 하거나 쓰레기를 양산하는 자는 천국이나 극락의 근처에 얼씬도 못한다는 구절이 없는데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다행히 불교는 살생을 신도오계의 첫번째로 여긴다. 2700년 전부터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육식을 금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같이 전국이 찜통같은 더위가 지속된다면 후손들은 피부는 검게 변할 것이며 땀구멍의 수도 늘어갈 것이다. 기후를 다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생태계가 무너져 내린다는 것은 우주의 괴(壞)를 의미한다. 괴겁후에는 空劫의 긴 시간을 겪어야 또 다시 成劫이 시작될 것이다. 원시시대로 인류는 다시 시작이 된다는 것이다. 갯벌의 자연문화유산 지정을 계기로 대대적인 홍보와 계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그 당시 기껏 코로나 확진자 숫자로만 하구한 날 국민을 볶아대고 말았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이러한 갯벌지역에 太陽狂(?)같은 엉터리 시설은 설치하지 말아야 했었다. 서해안의 갯벌이나 우포늪은 우리의 환경을 유지하는 보고다. 늪은 물이 맑아 바닥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간에게 필요한 양질의 산소를 제공한다. 다양하게 얽히어 있는 늪의 매력에 대한 인간의 성찰이 요구되는 싯점이다. 늪이나 갯벌은 육안으로 보기에는 아름답지 않으며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지저분하게 보일 수도있다. 그러나 인간에게 주는 혜택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세상에는 양지와 음지가 공존하지 어느것 하나로는 존재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동해와 서해는 맑거나 깨끗하다는 등 분별의 대상이 아니다. 누구나 가슴에 품어야 할 귀중한 우리의 바다일 뿐이다. 왜냐하면 엄청난 해양자산의 보고이다. 올해는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가 찜통 더위를 경험하고 있으며 무서운 자연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무분별한 욕망이 과소비를 유발하여 당하고 있는 일종의 대삼재같은 현상이 아닐까 싶다. 돌이켜 자성하지 않으면 인류는 엄청난 재난을 당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이 재치기와 감기를 앓듯이 자연도 함부로 다루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객기를 부린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우주는 과학으로만 접근하여 실마리를 풀어 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불가사의한 영역은 인간의 힘으로는 역부족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늪과 갯벌은 인간이 가까이 하여야 하는 어머니 품속이다. 갯벌은 바다도 아니요, 그렇다고 육지도 아닌 겹침지대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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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96] 서해 갯벌의 세계유산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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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95] 역대대통령의 화폐가치는 ?
- 이경국 칼럼니스트 우리나라의 12명의 역대 대통령의 인물과 인격 그리고 국가와 국민들에게 기여한 공적을 기준으로 화폐로 그 가치로 환산한 결과가 있다. 이는 주가의 지수도 기준을 정해야 짐작을 할 수 있는 이치와 같을 것이다. 종합주가지수는 1980년 1월 4일 100을 기준으로 하였다. 물론 사람을 돈으로 그 가치를 따질 수는 결코 없다고 본다. 누구나 생명은 귀하고 형언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명은 천부적이면서 고유하다. 가정형편이 어려울 때 입을 덜기 위하여 식모살이를 보내는 경우는 있었다. 돈을 받고 자녀를 팔아 넘기는 경우는 최근에 부쩍 성행을 하고 있다. 집단자살을 하는 경우는 저승길에 동반하여 두려움을 덜기위한 심보다. 앞이 캄캄하고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으면 죽고 싶은 마음의 충동을 참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12명의 대통령 가운데 가장 높은 가치평가를 받은 5명과 가장 낮은 대통령 5명을 살펴 보면, 박정희 1억, 이승만 8천, 박근혜 5천, 전두환 3천, 최규하와 노태우가 각 1천만원이다. 낮게 평가 된 대통령은, 문재인 1원, 장면 1만원, 김대중 10만원, 노무현 1백만원 등이다. 어느 누가 평가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대통령을 겪어 본 필자의 입장에서 다소 수긍이 가기는 한다. 두 명이 남았는데 김영삼과 이명박은 각각 5백만원이다. 미심쩍은 부분이 없진 않으나 문제인의 1원은 야박한듯 여겨지겠지만 어쩌면 마이너스 즉, 일본말로 '아까지'로 표현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나마 거짓이 없는 공약이라고는 '처음보는 세상을 만든다'는 약조 하나 뿐이다. 누가 원고를 썼는지 취임사는 거짓말 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필자는 처음부터 믿지를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생각이 없었으나 나라를 삽시간에 비참하게 거덜 내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질 못했다. 김대중이 노무현보다 저가의 평가는 좀 의외다. 대북지원으로 핵개발의 단초를 제공해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국민의 입장에서 건국을 하고 잘 살게 한 이승만과 박정희는 부동의 1.2 위가 될 것이다. 이는 역사에 확연히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 혹자는 국립현충원의 이승만 묘지를 파헤친다고 악담을 했는데 벼락을 조심하여야 할 것이다. 그는 이 나라 헌법하에 살아 갈 가치가 없는 족속이다. 박정희 묘소에 쇠말뚝을 박은 역적들은 일제가 우리나라의 민족정기를 끊어 버리기 위한 쇠말둑을 도처에 밖은 행위보다 훨씬 악독한 소행이 아닐 수 없다. 문은 국민을 인민으로 여긴 자로 가치가 전무하다 싶이 평가가 되었을 것이다. A4용지 읽는 대통령의 모습을 전세계에 각인시켜 놓은 국격저하의 모습이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다. 재임 당시 K--방역의 K는 '코리아'인데 당시에 '가짜'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었다. 실물의 가치가 1원이란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위정자는 국가의 먼 장래를 보고 투자를 하면서 국민여론을 결집시켜 나가야 한다. 목전의 표를 위한 표퓰리즘 정치로 나라의 곳간을 텅비게 하였으며 부채더미는 수미산보다 더 쌓이게 하였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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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95] 역대대통령의 화폐가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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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94] 청소에 대한 고찰
- 이경국 칼럼니스트 누구나 청소는 귀찮아 하는 속성이 있다고 본다. 밥상을 차려서 먹을 때는 좋지만 설겆이는 억지로 해야하는 주부들의 심정을 남자들은 쉽게 이해 하지를 못하는 실정이다. 사실 이치대로 따진다면 썩지 않으면 존재가 불가능한 것이 세상이다. 지구상의 하루에 인간이 버리는 쓰레기의 총량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필자는 40여 년간 집앞 길을 아침마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덤으로 건강이 좋아 짐을 느낀다. 일반적인 쓰레기 말고 코로나 3년 간에는 버려진 마스크가 많았다. 기호품이라고 들쌀을 대는 담배꽁초를 함부로 어디든 버린다. 유치원에서 배운 것을 어른이 되어도 지키지 않으니 인성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세상의 한 단면이다. 시민 모두가 주위를 깨끗이 치운다면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수도가 될 것이다. 다행히 지하철과 공중화장실은 그야말로 깨끗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세계최고 수준이 아닐까 싶다 필자는 주위를 깨끗이 정리하는 것은 성격탓도 있긴 하지만 고교 때 담임 선생님께서 ''청소는 지구의 한 모퉁이를 깨끗하게 치운다는 마음으로 하라''는 세익스피어의 얘기를 들려 주셨기 때문이다. 晩秋에 사람들은 단풍놀이로 들떠 있지만 청소부는 가로수의 낙엽때문에 고생이 심한 때이다. 그러나 매일 떨어지는 낙엽을 쓸어 버리면 청소부가 나무를 이긴다고 한다. 지장보살은 지옥의 문에서 한 사람도 지옥에 가지 않을 때까지 교화하고 설법을 한다고 했다. 가능하다고 믿고 싶다. 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기에 불가능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금 육지는 중병에 걸려 있으며 바다는 신음을 토해내고 있다. 인간이 개발이란 미명하에 환경을 파손한 결과 지구를 병들게 한 결과다. 인간만큼 과식을 하는 畜生은 없다. 주야장천 먹어대니 애꿎은 위가 탈이 가장 많이 난다. 길거리에 뚱보가 많이 보인다. 많이 먹고 적게 움직인 결과이다. 생태계의 파괴는 심각하다. 최소한의 쓰레기 배출로 지구가 앓고 있는 몸살을 조속히 치유하여야 한다. 음식점에서 휴지를 두 장이상 쓰는 경우가 드물다. 그리고 손수건을 평생동안 지니고 다닌다. 유익하며 물자절약에 많은 도움도 된다. 두루마리 휴지를 마구 감아서 슬쩍 닦고선 던져 버린다. 나무는 오랜기간 자라야만 휴지의 원료가 된다. 아껴쓸 수 밖에 없는 까닭이다. 선진국에 진입한 우리나라는 아직도 공과 사의 개념이 약하다. 정치분야가 가장 낙후되어 있다. 뱉어내는 거친 언어는 쓰레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세계 일등국으로 우뚝 서기 위하여 환경을 잘 보존하여 후손에게 물려 주어야 한다. 소중한 자원을 곳감 빼 먹듯 해 버리면 후손들은 고통을 크게 당할 것이다. 절약정신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한 방울의 물이 모여서 태평양을 이루거늘 왜 '나하나 쯤'이라고 생각하고 마구 버리는지 자성이 필요한 싯점이다. 쓰레기를 덜 만들어 내면서 지구를 깨끗이 하는 자세가 절실하게 요망되는 때이다. 호랑이는 제몸의 상처를 아픈데도 불구하고 혀로 핥아서 치유한다. 아파서 경끼를 하고 있는 지구를 방치 한다는 것은 인간이 장수는 하지만 병을 달고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피라미드의 낙서에 ''일평생 번 돈을 의사에게 다 갖다 바친다''는 문구를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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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94] 청소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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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93] 산행이 주는 행복감
- 이경국 칼럼니스트 흔히 등산이라고 말하는데 필자는 산행이라는 용어를 즐겨쓰는 편이다. 산을 정복한다는 표현도 여간 맘에 들지 않는다. 정복은 무슨 정복ᆢ 산은 늘 제자리에서 그러려니 사계절을 버티고 있는데 인간의 발길이 닿았다고 정복한다는 표현은 자연에 대한 겸허한 마음을 벗어난 일종의 만용(彎勇)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전문 산악인은 아니지만 아마추어로 산을 느끼는 감각은 절정으로 여기고 싶다. 산은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오르려면 힘이 들기 마련이다. 높낮이는 인간의 분별에 따른 구분에 불과하다. 확실히 요산요수(樂山樂水)가 맞다는 생각이 최근 부쩍든다. 필자는 지자(知者) 보다는 인자(仁者)에 가깝다. 어진자가 많으면 지저분한 세상이 훨씬 맑아질 것이다. 여러 산행모임에 동참하고 있지만 族親모임인 '진성이씨 서울화수회'산하 '眞李山友會'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책임을 맡고 있기에 매월 인원수, 산행코스, 간식준비, 식당예약 등 챙겨야 할 일들이 의외로 많다. 인간이 기어 다니다가 직립을 하면서부터 변화가 크게 일어 났다. 만물의 영장으로 우뚝 선 것은 서서 걸으면서 손을 사용했기에 가능 하였다고 본다. 걷지 않으면 살아 있는 송장이 인간이다. 평생 지구의 두 바퀴 반을 걸어야만 건강유지는 말할 것도 없고 오복의 하나인 죽을 때 고종명 (考終命)이 가능하다고 한다. 지구 두 바퀴 반의 길이는 인체의 동맥과 정맥의 길이와 같다. ''걷지 않으면 서지도 못한다.'' 산행은 ''두 다리가 고생하면 다른 다리가 호강한다.'' 이는 필자의 속칭 어록(語錄)에 있는 말이다. 워낙 여러번 인용하여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 죽을 때의 아픔, 창자가 꼬이는 고통, 여자의 산통, 암환자의 통증 등은 인간의 4대 아픔이라 했다. 그런데 죽을 때 아프지 않고 소리소문 없이 잠자듯 죽을 수 있는 것은 많이 걸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생사는 오를 때와 내릴 때가 있기 마련이다. 오르기는 힘들지만 내려 오기는 거저 먹기다. 등산이 그러하다. 어쩌면 밤살이의 남자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반환점을 지나면 세월의 속도가 다르다. 세월의 빠름을 실감 한다. 일년이 마치 학창시절 방학 한철같이 빠르다. 쏜살같이 지나 버린다. 종점이 가까이 오면 짐을 챙기듯 죽음이라는 무거운 그림자가 기웃거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들보다 손주가 이쁜 것은 누가 뭐래도 손주는 함께 사는 기간이 짧기 때문 이라는 주장을 팔자는 하고 있다. 산행은 남자들의 晩年의 무덤같은 질병인 전립선비대증이나 전립선암을 예방할수 있는 가장 좋은 운동이다. 한 때는 어차피 내려올 산을 무엇하러 힘들게 올라 가느냐고 객기를 부린 적이 있었다. 철이 들지 않은 탓이다. 게으른 자는 노후에 침상에서 머물다가 생을 마감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오늘도 내일도 걸어야만 한다. 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발을 움직이지 않으면 머리가 무디어 진다. 眞李산우회의 7월 산행은 경기도 파주에 있는 최영장군의 묘소와 그 일대를 답사하였다. 혹서의 주말임에도 19명(여성5명)이 동참하였다. 화수회 현 회장과 전 회장도 오셨다. 사무국장도 전.현직 3명이 동참했는데 이는 쉽잖은 일이다. 학창시절 최영장군의 묘소에는 풀이 나지 않으며 최씨는 고집이 세다고 배웠다. 이번이 초행이었다. 산행과 답사를 겸하였으니 그야말로 꿩줍고 꿩알줍고 꿩꼬리까지 파는 일거삼득의 기회가 된 셈이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이는 최영의 말이 아니라 부친이신 최원식이 아들에게 당부한 말인 것이다. 최영장군의 묘소 바로 위에 아버지의 묘가 있어 여간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역사에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위화도 회군은 후회스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번 답사는 족친 이은식 박사께서 직접 가이드와 해설을 하여 주시어 일행 모두 얻은 바 크다면서 흡족해 한다. 누구나 일상속의 다리품을 많이 팔아서 만년(晩年)의 건강생활을 향유 했으면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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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93] 산행이 주는 행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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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92] 청포도의 계절 7월
- 이경국 칼럼니스트 청포도가 익어 가는 7월이다. 물론 이때의 7월은 음력이다. 7월하면 우리민족은 이육사의 청포도를 연상하기에 음력이나 양력을 들먹일 겨를이 없다. 안동에는 이육사 문학관이 있고 '264청포도 와인'도 팔고 있다. 지난해 진성이씨 서울화수회의 기로회(耆老會)에서 다녀왔다. 물론 시조묘소와 우리나라에만 있는 종택(宗宅)에도 들러 보았다. 이육사는 眞城李氏로 시인이자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獄)에서 그만 생을 마치신 분이다. 필자는'眞李'의 脈을 잇는 후손으로서 부끄럼 없이 살도록 애쓰고 있다. 그러나 늘 제자리 뛰기만 하고 있어 여간 안타깝지가 않다. 우리나라 姓氏가운데 우리 眞李 家門에서 독립운동가가 가장 많이 배출이 되었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서울화수회에서 국장의 일을 맡아 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우리 일가의 곧게 사는 모습을 보고 감동읕 받은 적도 있다. 퇴계선생은 주자학에서 성리학을 거쳐 퇴계학으로 마무리한 인류의 큰 스승으로 지금도 세계에 빛을 발하고 있는 분이시다. 이 혼탁한 21C의 세상은 퇴계의 '敬思想''으로 바로 잡을 수 있다는 하바드 대학의 강좌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 큰 틀에서 볼 때, 자본주의는 수정자본주의를 거쳐 왔으나 지금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2차대전 이후 케인지안학파의 소비중심의 경제가 결국은 과소비에 의한 생태계의 파괴를 가져올 수 밖에 없게 된 것이었다. '소비가 미덕'이란 메스콤 광고에 중독이 되어 절약정신이 신음을 토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나라마다 잘 살려는 복지정책이 권력자의 애꿎은 수단으로 전락하여 그만 휘청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든 개인이든 저축은 커녕 마이너스 통장과 재정지출에 따른 과소비로 인한 모습이 절정에 닿아 있다. 다행히 인기가 덜하더라도 재정건전정책을 펼치겠다고 尹정부는 공언을 하였다. 최근에 6.25가 중국과 미국의 전쟁이라고 뜬금 없이 헛소리를 한 자가 있다. 물은 길따라 흐르고 나무는 결따라 자르라 했거늘 자금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현기증을 일게 한다. 청포도가 익어가는 7월은 더위도 절정을 이룬다. 색(色)은 존재이기도 하며 색깔의 중요성은 크다고 본다. 청(靑)포도가 아니고 흑포도였다면 시는 감각을 잃어버릴 것이다. 감자꽃은 흰색, 분홍색, 자주색 등 세가지다. 꽃을 보면 땅속의 감자를 알수가 있다. 자주색 꽃은 자주 감자가 열린다. 분이 가장 많으나 아리기도 하다. 감자는 몸이 썪어서도 인간에게 기여를 한다. 가다꾸리(?)는 중학시절 여학생의 깃(애리)을 빳빳하게 하여 아름답게 보이게 했다. 올해는 알알이 틀어 박히듯 맺힌 청포도에서 향내를 풍기는 7월이 되리라 확신한다. 모두가 식탁위 은쟁반에는 하이얀 모시수건을 준비해 두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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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92] 청포도의 계절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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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91] 육체의 소중한 가치
- 이경국 칼럼니스트 인간은 몸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조금은 천시하는 경향도 없잖아 있다. 정신을 앞세우다 보면 몸의 가치를 등한시 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몸을 자산으로 여기면서 심하게 드러내는 경우도 없지 않는 세상이다. 외형적인 미의 모습은 자산이기도 하며 수단으로 많이 활용하고 있는 세상이다. 몸이 밑천이어서 최초의 직업도 몸을 파는 것이었다. 흔히 인체를 소우주라 불리는 것은 마땅한 이유가 있다. 몸은 겉으로 행위자체 이기에 때로는 비난의 대상이 되며 고통을 수반하기도 한다. 실존은 무거운 짐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몸은 아파 보면 주인공으로부터 제대로 대접을 받는다. 몸이 아프면 세상이 귀찮아질 수 밖에 없다. 정신도 따라서 혼미해 진다. 병상(病床)에서의 시간이 얼마나 무료하고 답답할까 가끔씩 생각해 본다. 필자는 여지껏 병상에서 보낸 날이 없었으니 짐작만 할 뿐이다. 사실 이는 보통 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다. 건강을 잃어보고 나서 몸을 아끼면서 운동에 진력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 몇십배의 시간과 공을 들이지만 아프기 전에 비하여 효과는 거의 없다. 현대인은 예방건강을 등한시 하고 있다. 건강은 평소에 저축하듯 아끼면서 보살펴야 한다. 산행인구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산은 자연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천혜의 곳이다. 정상을 오르기 위하여 거친 숨을 몰아 쉬면서 앞사람의 엉덩이만 보면서 산행하는 사람이 많은데 일종의 습관탓으로 보인다. 산행은 정상을 밟기 위한 행위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인증샷을 남기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다. 꼭대기를 밟는다면 만족에 따르는 성취감은 크다고 본다. 자연과의 대화는 산행으로 체득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휴(休)는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 있는 형상이다. 적어도 자연과 일체가 되어야 산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고 본다. 몸이 보여주는 언어는 인간의 특징이다. 춤도 몸으로 말하는 동작이다. 雲雨의 情 또한 몸이 가장 좋아하는 유희다. 다만 인간은 좋아하면서 숨기려는 묘한 양면이 있다. 흰색이 화려한 색채이듯 사랑동작이 가장 황홀하면서도 진솔한 동작이 이닐까 싶다. 몸은 좋으면 스스로 우주의 가장 아름다운 音을 토해낸다. 신비가 뿜어내는 天音(?)의 소리는 감히 필설로 표현 할 수 없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어떠한 하모니도 이런 자연스러운 인간의 소리를 앞설 수는 없을 것이다. 한 마디로 더 좋은 음이 없다는 것이다. 소리의 극치다. 누구나 그 순간이 音의 경지가 아닐까 싶다. 자연의 바람소리와 그미의 목소리 그리고 신음의 탄성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다고 본다. 따라서 인간은 천상이나 극락보다 지구에서 삶을 더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필자가 늘 강조하는 부분이다. ''來世에 어디에 태어나길 바라느냐고?'' 염라대왕이 묻는다면 지체없이 지구라고 말하고 싶다. 서방정토에 갈 수가 있는데도 수행이 많은 스님은 願生으로 지구를 선택한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육도를 윤회하는 인간은 지구에서의 삶이 가장 좋다는 생각이다. 어느 곳이 별과 꽃이 있고 남녀간의 사랑이 있댜는 말인가? 청빈을 즐기면서 情人을 절대적으로 여긴다면 지구는 천상보다 좋지 않을까 싶다. 가장 사랑하는 단어는 어머니요.좋은 정은 '운우의 정'일 것이며, 그리운 곳은 '바로 여기'일 것 이다. 이보다 더 간절히 바라고 싶은 것이 있을까? 표현을 아껴서 그러하지 이성간 건강한 체취는 냄새 가운데 으뜸일 것이다. 지구가 이렇게 좋은 별인데 인간의 과욕으로 인하여 육지는 물론 바다까지 신음을 토해내고 있다. 사실 덜 먹고 덜 파괴 하고 지내는 소욕지족이 큰 철학임을 깨쳤으면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우주의 잔여가 49억년 이라고 한다. 찰라가 75분의 1초인데 그 사이에 마음은 3000번이나 움직인다고 하니 명상으로 관리하지 않고서는 마음을 다스리는 다른 방법은 없다고 본다. 그릇과 음식은 별개의 것이지만 몸과 마음은 일체인데 주인공에 따라서는 분리하여 살기에 세상이 시끄럽다고 본다. 욕망의 제어는 소욕지족만이 명약이 아닐까 싶다. 火宅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결코 아파트 평수나 통장잔고가 행복을 가져다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돈을 밝히다 보니 사회가 천민(賤民)스럽게 타락해 버렸다. 환경이 그러하고 생각이 하근기(下根氣)에 머물고 있어 여간 안타깝지가 않다. 여러 연구결과 돈은 행복과 무관하다는 사실임을 다시 한번 밝혀두고 싶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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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91] 육체의 소중한 가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