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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91-마지막] 주막(酒幕)에 대한 추억
이경국 칼럼니스트 흔히 주막은 문패도 없고 번지수도 없다고 말한다. 삿갓하나 놓으면 딱 맞을 땅도 주인이 있으면 이름이 있기 마련인데 말이다. 문패는 없을지 모르겠지만 번짓수는 당연히 있다. 소싯적 필자의 시골은 큰밭, 굴밭, 변달밭, 팽나무논 등으로 이름이 있었다. 대체로 주막은 촌부들의 시름을 달래는 사랑방 같은 곳으로 장날에 만나서 거나하게 한잔 하는 곳이다.안주거리는 보잘 것 없어도 시끌벅쩍한 대화로 힘든 농사일의 수고를 잊는 날이었다.지금은 전국적으로 주막은 거의 사라져 버렸는데 경북 예천에 있는 삼강주막(三江酒幕)은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는 명소이다.고향에서 지근에 있는 이 주막은 주소가 예천군 인데 일부(화장실?)는 안동시로 되어 있다니 재미있는 번지다. 숱한 얘기를 지니고 있는 주막으로 유명하며 관광명소이기도 하다.애환이 서려있는 이 주막은 정이 넘치는 곳이기도 하다.주막의 주인은 한글을 전혀 몰랐으나 자기만의 표기로 외상을 관리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客이 그 주막을 이용했을까?주모를 두고 질펀한 농을 건네기도 하고 쌈지주머니에 돈이 없어도 외상이라고 큰소리를 쳤던 인심이 넉넉했던 시절의 모습이 느껴진다.얼큰한 탁주 한 사발에 세상 시름은 사라지고 부러울게 없어진다. 사실 술은 명약이기도 하지만 과하면 독약이나 극약이 되기도 했다. 주막에서 마시는 잔에는 애환이 담겨져 있다. 포장마차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필자도 술이 조금 강한 편에 속한다. 술은 각박한 세상을 일시 잊게 해 주는 마력(魔力)이 있어서 좋다.지난해 장수1위는 술이라고 UN에서 공식 발표를 했다. 깜짝 놀랐다. 부족한듯 마시면 천하제일의 명약이다. 술은 술술 마시더라도 결국 자제력을 잃기 쉽다.젓가락 장단에 조금은 슬픈 트롯 메들리로 정겹게 부르던 < 니나노>가 사라진 세상이다. 그때가 좋긴 했었다. 애환을 달래 주면서 노래하는 여인들의 절박한 신세타령은 눌물짓게도 하였다.주막집 아줌마는 온동리 남정네의 연인이었다.세상을 온통 디지털로 살기에는 너무나 각박 하다. 스마트폰으로 하는 약속보다는 담너머로 신호를 보내면 달빛에 젖어서 눈치를 봐 가면서 나오던 갑순이의 모습이 더욱 정겨웠던 시절이 좋았다. [ 이번 글로 긴 여정의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2020년 9월 1일부터 2025년 5월 26일까지 5여년의 기간에 총 247회의 칼럼을 집필하였습니다. 어줍잖은 제 글을 때로는 열독과 애독으로 아껴 주신 <대구저널>의 모든 애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해외에 계신 많은 작가분들의 향수를 달래어 준다는 얘기는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습니다. 돌이켜 보니 너무나 긴 세월이었습니다. 원고 청탁에 한번도 늦은 적이 없었으니 스스로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구저널의 이현식 대표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正道를 지키는 지역 언론으로 더욱 발전하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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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90] 가슴에 뜨는 남모르는 무지개
이경국 칼럼니스트 무지개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필자는 무지개는 물론이고 쌍무지개도 좋아합니다.한때 <무지개동자>로 부르시던 장박사님은 고인이 되셔서 하와이 가족묘지에 안치되어 있는데 한번 찾아 뵙기가 쉽지가 않습니다.창랑 장택상 총리의 따님이시니 정치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무진 많이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무지개는 '레인보우'이니 마른 하늘에는 생겨날 수는 없습니다. 색깔도 7가지로 육안으로 구분할 수가 있습니다. 쌍무지개는 그 색깔이 무지개와 반대로 나타납니다.무지개의 보이지 않는 색깔의 의미를 알아야만 무지개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봅니다.귀한 것은 스쳐 지나기 마련입니다. 첫사랑이 그러하고 무지개도 그러하다고 봅니다.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일생동안 뇌의 작은 분실에 저장이 되어 가끔씩 씁쓰레한 웃음속에서 떠 오를 것입니다.소싯적에 무지개는 작게 보였는데 지금은 한 눈에 볼 수가 없을 정도로 크기도 합니다. 해마다 무지개도 조금씩 자라는가 봅니다.가수 이용복은 무지개를 볼 수는 없었지만 가슴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눈을 감으면 저 멀리서'' 제목이 <그 얼굴에 햇살을>인데 차라리 <무지개 타고 오네>가 좋을 듯 합니다.아마 맹인가수이니 앞이 보이지는 않지만 얼굴에 햇살을 받고 싶어서 부른 노래가 아닐까 싶습니다.헬렌 캘러는 <3일만 볼 수 있다면>에서 감동적인 것을 남기었습니다. 얼마나 세상의 빛과 그리고 무지개가 보고 싶었겠어요. 눈물이 나는 대목입니다.건강한 모습의 몸을 어머니께 받았는데도 세상에는 불효자 많습니다. 며칠 동안 비가 내리면 무지개는 뜨지 않습니다.소나기가 내리고 쨍하게 태양이 보일 때 무지개가 뜨면 감동적으로 다가 옵니다.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운데 그저 많이 가질려는 욕심이 앞서 너무나 지저분한 모습입니다.소욕지족(少慾知足)의 청빈으로 살아 가면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울 것입니다.어떤 연유로 제게 무지개동자로 부르면서 이쁜 명함도 새겨 주셨는데 그 많은 명함도 간 곳 없이 사라져 버렸으며, 장박사께서는 향년 90세에 떠나 셨습니다.일본 여행을 가서 필자는 크게 호강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의 재벌이 초대를 했는데 동행을 했기 때문 입니다.무지개는 오래 머무르지 않기에 더욱 아름답게 보입니다. 달을 보고 詩作을 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떨어지는 운석(雲石) 에는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비싸기 때문입니다.천민자본주의가 꽃을 피우고 있는 시대이니 눈에 보이는 물신(物神)에 혹(酷)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릅니다.무지개는 소망을 담고 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연인간에 인연이 다하거나 아니면 오해로 인하여 갈라선 처지 일지라도 석삼년까지 기별을 막히게 한다면 너무나 가혹할 것입니다.누군가 무지개를 보면서 마음을 되돌리어 곁으로 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비단구두를 신거나 무지개를 타고 온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아니면 달빛에 젖은 채로 찾아도 마냥 반기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을 것입니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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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89] 보리밭의 추억들
이경국 칼럼니스트 보리밭은 연상되어지는 것들이 무척 많기 마련이다. 물론 농촌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추억이 있을 턱이 없을 것이다. 논에서 경작하는 벼와 밭에서 재배하는 보리는 어렵던 시절이나 지금도 우리민족의 主食으로 삼았던 귀하고도 귀한 식량이다. 과식하여 사우나나 찜질방에서 땀을 빼는 현대인은 배고파 허리가 휜 그때의 세상을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없으니 역사는 강건너 저 편의 일이 되고 말았다. 푸른 보리싹을 훑어서 풀떼기 죽을 써 먹던 시절은 눈물겨운 일이다. 가장 넘기가 힘든 고개는 <깔딱고개>가 아닐 것이다. 바로 <보리고개> 였다. 그러나 지금은 <청보리 축제>로 온통 난리법석을 떠는 세상이 되었다. 가곡 <보리밭>을 눈을 지긋이 감고 들어 보면 소시절의 추억이 금시 곁으로 다가와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축제와 향락에 깊이 빠져들면 근로를 기피하고 더 짜릿한 감각세계를 갈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망국의 조짐이 나타나면 지도자가 필요한데 그들이 주지육림에 빠져 버리면 나라가 망해 버린 경우가 많았다. 인류의 역사는 대체로 그렇게 망했다. 전쟁보다는 향락과 역병으로 소멸이 되었으니 무서운 일이다. 지나친 퍼주기식 포플리즘은 국가가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권력은 이를 암암리에 정책이라면서 백성을 속인다. 우민한 백성은 속으면서 몇푼의 돈으로 그만 깊은 수렁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보리밭을 보면 생각이 많이 난다. 보리피리와 보리의 에이즈인 깜북이 병이 떠 오른다. 여인숙도 귀한 시절엔 보리밭에 숨어서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마루밑에 잠자고 있는 애꿎은 개만 부짓깽이로 주인에게 혼나기도 했던 추억이 스친다. 당시의 개는 개취급을 받았던 때였다. 아버지와 마당에서 도리깨로 보리타작을 할 때면 부자간의 장단은 대단하였다. 보리의 깔끄래기(까끄라기의 방언)는 찬물로 등물을 하여야 했다. 아버지 등물을 많이도 해 드렸고 아버지께서도 저의 등을 밀어 주셨다. 지금은 이런 사랑은 간 곳 없이지고 그저 아버지의 지갑만 넘 보는 못된 사회가 되고 말았다. 유산을 노리는 자녀가 너무나 많은 시대이다. 아! 그립다. 땡볕에서 보리 타작을 하던 추억의 색채는 밀레의 그림을 연상시키게 한다. 아버지께서는 멀리서 어머니와 함께 증손주인 승준이와 승아 그리고 라은이의 자라나는 모습을 보시고 흐뭇해 하고 계실 것이다. 보리타작을 할 무렵에는 보릿짚으로 여치집을 만든다. 한낮이 되면 여치의 울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맥향(麥香)일렁이는 보리밭을 보면서 막연한 청운의 꿈이 크기만 했는데 돌이켜 보면 추억이 남달리 많은 편이었다. 가난으로 찌든 시절의 보리밥의 추억은 가슴이 아픈 기억이지만 지금은 <청보리축제>로 연인들이 모여드는 세상이다. 최빈국에서 최정상의 부유한 나라가 되었는데 어떠한 지도자와 국민이 허리가 휘어지게 일을 했는지는 역사의 교훈으로 남겨져야 할 것이다. 보리의 모습과 벼는 완전히 다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보리는 고개를 바짝 쳐들고 만다. 벼는 따뜻한 계절에 못자리에서 태양을 보면서 자란다. 그러나 보리는 엄동설한의 혹한의 밭에에서 고생을 해야하는 작물이다. 아마 그러한 보상으로 태양을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을까 싶다. 보리밥은 대나무 그릇에 담아서 밥쁘제 (보자기의 방언) 로 덮어서 파리가 앉지 못하게 한다. 냉수에 말아서 풋고추를 찍어서 자그마치 5000년을 견디었던 우리민족의 아픈 역사이기도 하다. 과소비로 휘청거리면 살림은 기울어 지기 마련인데 저축보다는 소비를 엔조이하듯 즐기는 세태이니 걱정이 따른다. 현대인은 건강식이라고 꽁보리밥을 찾기는 하고 있지만 보리에 대한 추억을 모르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보릿고개는 시골 뒷산의 고개가 아니다. 우리 민족의 피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는 미아리고개 같은 <눈물의 고개> 이다. 그러나 이제는 두 고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보릿고개는 축제의 마당이 되었으며, 미아리 고개는 온갖 꽃이 피는 희망의 고개로 변하였다. 보리로는 맥주를 만든다. 쌀로는 쌀막걸리를 만든다. 보리와 쌀의 깊은 의미를 되새겨 보았으면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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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88] 서방질과 계집질
이경국 칼럼니스트 어미(語尾)에 질字가 들어가면 조금은 깔아서 보는 비하적인 느낌이 든다. 사(師, 士)字에 비하여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비속어는 변화가 많이 되었다. 차장은<안내양> 으로 부르는데 무인시대 인지라 안내양을 보기가 쉽지 않다. 숙박하는 곳이 무인이라니 세월의 격세지감을 느낀다. 한 때 주소를 기록하는데 한군데는 틀리게 적는다는 친구의 말에 박장대소 했던 기억이 난다. 고속도로가 생기자 말자 안내양을 보기 위하여 일부러 고속버스를 타 본 사람도 있었다. 스튜디어스와는 육지를 달리는 초고속 버스의 안내양은 그 느낌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식모는 <가정부>로 불러지게 되었다. 처가댁에는 오래 함께 살던 가정부가 있었는데 시집을 보낼 때 아내와 똑 같이 혼수를 해 준 기억이 난다. 나더러 형부라 부르던 마음씨 고운 아가씨가 지금은 연락조차 두절이 된 상태다. 직업에 질字를 붙이면 비하적인 표현이다. 갑질도 기분이 접히는 단어이다. 특히 <서방질과 계집질> 은 아내와 남편이 있지만 외간 다른 짝과 바람을 피운다는 것이다. 님자는 본래 바람을 피우는 존재이다. 종족보존을 빌미로 여기고 있는데 그럴 듯한 핑계에 할 말을 잊어 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여성은 바람 나기가 쉽잖은 일인데 ''홧김에 서방질을 해 버린다''고 한다. 이는 남편이 평소에 애를 태우기 때문에 견디지 못하여 그만 앙값픔을 하기 위하여 즉흥적으로 저질러 버리는 행위가 아닐까 싶다. 대체로 학창시절 가슴에 담아 두었던 동창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한 때 옛 친구를 찾아주는 '동창사이트'가 불티가 나게 인기가 있었다. 이는 꽃뱀에게 당하는 사기를 미연에 방지 하겠다는 믿음이 선행 되기 때문일 것이다. 계집질이나 서방질은 가정의 울타리가 허물어지는 행위다. 따라서 각자의 단속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홧김에 저질러 버리는 행위는 후회가 따르기 마련이다. 어머니께서는 참을 忍字를 세번 생각하라고 당부하셨다. 그리고 객지에서는 ''단도리를 잘하여야 한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이는 노자의 '도덕경'이나 테스형의 ''너 자신을 알라''보다 필자에게 훨씬 더 마음에 와 닿기도 하며, 큰 영향을 주신 어머니셨다. 어머니께서 남긴 명문어록(?)의 말씀이 많으시다고 아내도 몇번이나 얘기를 한다. 금과옥조같은 말씀이셨다. 몇가지 얘를 든다면, 어머니는 키가 작으신 편이었으나 7남매 모두 키가 큰 편이다. 누군가 그러한 것을 말했나 보다. 어머니의 명답으로 샹대를 압도하셨다. 세상에 ''키가 크다고 하늘의 별을 딸 수도 없으며, 키가 작다고 개미한테 코를 물린 사람도 없다''고 하신 것이다. 아무리 별을 따기 위하여 달에 먼저 이른다 하더라도 별을 딸 수가 없을 것이다. 장대가 그렇게 길 수 없다. 닉슨대통령과 등소평이 만나서 등소평의 키가 어깨에도 미치지 못하니 눈치빠른 등소평이 말하기를 ''하늘에서 보면 자기가 더 크다''고 했다. 때로는 한 마디의 위트나 유머로서 상대의 양코 (서양인의 높은 코)를 팍 죽이는 지혜가 필요 하다고 본다. 인간의 자존심은 때에 따라서는 사소한 일에 상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도회로 나가서 돈을 벌어서 귀향하면 '농장을 경영한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사실 농사면 어떻고 농장경영이면 어떻다는 말인가? 일상이 지루하다고 일탈을 해 보고 싶겠지만 正道의 길이 아니라면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게 될 것이다. 성난다고 바위를 차도 안될 것이다. 홧김에 <서방질>도 같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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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87] 여성의 가슴 사이는 좁다
이경국 칼럼니스트 아무리 건장한 여성 일지라도 가슴 사이는 좁다. 이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면서 애기가 한쪽 손으르 다른 젖꼭지를 만지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모유를 먹이는 것이 가장 좋은데 분유의 편리함을 선택하고 있는 세상이다. 인성의 기초는 여기서 허물어 지고 만다. 소젖을 먹이면 고무 젖꼭지와 가슴의 젖 꼭지는 실로 엄청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도 34억 축생 가운데 인간의 産道가 가장 좁기 때문에 아기와 어머니가 교감이 많이 되는 순간이라 한다. 제왕이 하던 재왕절개 수술을 지금은 누구나 하고 있다. 더러 수중 분만으로 통증을 줄이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기는 하다. 무통주사로 분만시 통증을 없애게 하니 출산의 고통이 옛과 다르다. 인류는 출산을 하면서 애기가 죽거나 산모가 죽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시대는 왕비의 생명을 앗아 가기도 했다. 명의도 소용이 없었다. 사실 여성의 저고리는 남자가 도저히 입을 수 없다. 인체는 신의 명품이긴 하지만 여성의 가슴은 단순한 성기능의 유방과 다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자주 고름 입에물고 입만 빵긋하면서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여성은 천사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 설사 여성의 손은 일을 많이 하여 거북등같이 거칠게 보인다 해도 천사의 손 (angel-hand) 으로 손색이 없다고 본다. 모든 여성은 어머니의 모습을 품고 있다. 그렇게 생각해야 평화가 유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History'로 남성으로 대우를 해 주지만 노도가 일고 쓰나미를 일으키는 험한 바다를 여성인 'She'로 표현한 것은 의미가 크다고 본다. 바다는 생명의 모태이다. 천혜의 혜택을 인간에게 줄 뿐만 아니라 3%의 염분으로 부패를 방지 하고 소금은 황금 만큼이나 귀하기 때문이다. 어머니 성품을 닮아서 강물은 바다에 이르면 압록강이니 낙동강이니 다투질 않는다. 어머니는 가슴이 좁지만 세상을 품기에 넓기만 하다. 사랑이 좋아서 세상은 사랑타령을 많이 하고 있지만 필자는 <어머니> (엄마)란 단어를 <사랑> 보다 우위에 두고 싶다. 그리고 모성애를 능가할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의 본성도 무진 강하다. 산불이 나면 꿩은 새끼와 함께 불에 타서 죽는다. 어미는 새끼를 두고서 날아가 버리지 않는다. 이보다 짙은 감동은 어쩌면 인간 사회도 드문 일일 것이다. 도덕, 도의, 바른 생활을 배우고 종교를 믿고 살고 있지만 인간만이 자식을 버린다. 이역만리 해외입양을 시켜버리기도 한다. 미혼모이거나 바리지 않는 출산이면 멀리 보내어 흔적을 지워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인연줄을 끊어 버린다고 죄책감 없이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양심이 없다면 금수(禽獸)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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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86] 밤에만 피는 꽃들
이경국 칼럼니스트 꽃은 거의 낮에 핀다. 태양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며 벌과 나비를 유혹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아예 해바라기는 태양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 키도 가장 큰 편이다. 태양과 더 가까이 하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달빛이 좋아서 밤에만 피는 꽃이 있다. 박꽃과 달맞이 꽃이 대표적이다. 달맞이는 아예 달을 연인처럼 섬기는 모습이다. 이름자체가 '맞이 한다'는 것이다. 박꽃은 역시 초가 지붕위에 피어야 운치가 있어 보인다. 草家가 사라져 버렸으니 제비도 오지 않고 운치있는 박꽃도 볼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흰색은 백설기 색이기도 하며, 어쩌면 춘향의 허벅지도 박꽃같이 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밤에 피는 꽃은 거의 흰색이다. 아마 벌, 나비, 나방의 눈에 쉽게 뜨이게 하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이 아닐까 싶다. 꿀을 취하여 가지만 않는다. 암술과 수술을 중개하여 꽃가루를 전달하여 代를 이어 나가게 도와 준다. 아무리 못생긴 꽃이라드 빠뜨리지 않는다고 하니 감동적이다. 야심한 밤에 피는 꽃은 의외로 많다. 야래향, 선인장, 재스민, 치자나무, 목련, 꽃담배 등이 夜花이다. 흰색이니 알리기도 쉽겠지만 향기도 짖게 풍긴다. 낮에는 꽃이 닫히는 특성이 있다. 특히 야래향(夜來香)은 향기가 짙을 뿐만아니라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애잔한 생각이 들면서 먼저 간 친구가 보고 싶어진다. 주현미가 부른 노래가 압권이다. 나방이나 박쥐도 꽃가루를 옮기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文人은 밤을 좋아하고 밤꽃을 좋아한다. 이제는 달을 보고 시를 쓰지 않는 시대이다. 인간이 달을 정복(?) 하고 부터는 달보다는 떨어지는 운석(隕石)의 가치에 신경을 쓰고 있다. 이태백이 지하에서 통곡(痛哭)을 할지 모를 일이다. 夜花는 흰색이거나 노란색이다. 그리고 자기만의 짙은 향으로 중개를 유인하는 것이다. 주고 받으면서 상생을 통하여 윈윈하는 자연의 조화로운 모습을 보노라면 괜히 숙연해 지면서 경외감이 인다. 조기 대선에는 숱한 비방과 험악한 언어가 등장할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고 역지사지 하라는 배려의 마음은 정치판에서는 아예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로지 권력에만 혈안이 되어 상대를 죽이고 싶은 생각이니 그들은 천상에 가는 것은 애시당초 포기 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파스칼이 갈파한 지상은 꿏이 있어서 아름답다 했다. 천상의 별은 공해로 볼 수 조차 없는 세상이다. 가슴의 사랑조차 고갈이 되어 건조하니 여간 답답지가 않다. 정치인에게는 아예 文.史.哲이 없다. 특히 역사관이 없으니 목전의 이익에만 정신이 쏠려 있는 지경이다. 대통령 후보자가 콩나물 시루의 콩나물처럼 고개를 들이 밀고 있는데 일종의 후보공해다. 흥행으로 관심을 높인다고 하는데 웃기는 일이다. 야심한 밤에 피어나는 꽃을 보면서 선한 기운이 들도록 심성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그들의 급선무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꽃은 지구촌 어디에서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피운다. 열사의 사막에서도 선인장을 꽃피워 전갈과 벗을 하고 있으며, 엄동의 혹한에도 설중매가 피어 인간에게 감동을 전해 주고 있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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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90] 가난속 5000년 우리민족
- 이경국 칼럼니스트 우리나라의 긴 역사는 가난으로 점철(點徹)이 되었다. 국토는 좁고 농업은 천수답에 의존한 숙명적인 민족의 근성탓이 컷다고 보인다. 그러나 얘기를 하다보면 모두가 자기 집에는 장농속에 금송아지가 몇 마리씩 있고 조상 대대로 머슴을 두고 산 것처럼 말을 한다. 조용히 듣고 있다가 몇 번을 되뇌이면 필자는 바로 자세를 고정하고 우리나라의 옛살림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을 한다. 본래 민족자본이 전무하고 산이 많은 나라여서 어쩔 수 없이 배를 굶기 십상인 나라였다. 가뭄이나 장마가 심한 해는 장리(長利)쌀로 제사를 지내는 경우도 많았다. 이율이 높은 고리대였다. 여자들은 하루에 두끼 식사도 제대로 못했으며, 늘 배고픔을 참아 내었기 때문에 노년에는 허리가 굽었다. 농경사회의 노동력은 큰 자산이었다. 그 어려운 생활에도 자식은 생기는 대로 다 낳았다. 그것이 경쟁이었다. 자식은 많고 식량은 적은 전형적인 가난한 살림을 하면서 어머니들은 대대로 살아 오셨다. 자그마치 5000년이란 긴 세월을.... 박정희로 인하여 당대에 이렇게 잘 살게 되었다. 지금 북한을 보라! 그곳이 그렇게 좋다면 여기서 떠들지 말고 조용히 북으로 가라고 종용을 하고 싶다. 가난하여 제대로 먹지를 못하면 애미가 젖이 나오지 않아 유아사망율이 높았다. 퇴계의 증손자도 그래서 죽었다. 그것도 조정에서 벼슬을 하고 있을 때다. 몸종이 애기를 낳아 젖을 같이 먹게 할 수도 있었지만 인본사상이 투철한 퇴계선생은 이를 만류했다. 수 백년이 지난 지금도 그를 존경하고 흠모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휴머니즘은 시대와 무관한 敬思想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物神에 의한 물질만능의 세상이고 돈에 눈 멀어 있다고 하더라도 인본에 대한 본연의 모습이 사라지면 천민으로 살아 갈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인간이 물욕에 집착하면 천하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아파트가 없어 혼인을 기피하는 시대란다. 사실 사랑에 눈이 가려지면 단칸방도 좋아야 그것이 인문학적 사고인 것이다. 현대인은 눈에 콩깍지가 쓰이질 않는지 얕은 엔조이는 즐기지만 힘든 출산은 거부한다. 덩달아 그렇게 되도록 하는 모습이다. 역경을 딛지 않고 문화의 꽃을 피울 수도 선진국의 삶을 향유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천신이 보우하사 당대에 짚신에서 최고의 구두를 신은 나라가 되었다. 땅에서 이룬 한강의 기적이요 인류역사에 처음 있는 일에 하늘도 놀라지 않을까 싶다. 일본이 선진국에서 중진국으로 미끌어져 내렸다. 저개발국가에서 급속으로 선진국에 진입하다 보니 압축성장에 따른 부작용도 많이 노정되고 있다. 아끼는 정신이 사라졌고 소비의 미덕만을 강조하는 세상이다. 하늘과 바다와 공기는 우리세대만의 것이 아니다. 잘 보존하여 후손에게 물러줄 의무가 있는 것이다. 득지본유(得之本有) 실지본무(失之本無)는 너무나 당연하다. ''얻었다고 하나 본래 있었던 것이고, 잃었다 하나 본래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누구나 빈손으로 떠나는 공평함이 있어 크게 억울하지 않은 세상이다. 수의에 주머니가 크다거나 관이 넓다고 죽은 자가 알턱이 없다. 다만 산자의 자기위안은 있을 것이다. 공수래는 진리다. 금은보화를 무덤에 갖고 가거나 칠보로 단장한 음택이 사자(死者)에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평소 아끼던 서재에서 가족이 보는 가운데 크게 통증을 느끼지 않으면서 소위 고종명 (考終命)을 맞이 하는 것이 지구와 인연을 맺어 한생을 살다가 작별하는 의미가 크지 아닐까 싶다. 세계인을 조사해 본 결과 돈으로는 행복을 느끼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결론을 도출해 내었다 한다. 눈에 보인다고 物神에 현혹되어 있고 남편의 돈세는 소리에 행복을 느끼는 부부가 많다는 세상이라는데 셀 돈이 없으니 그저 다툼으로 얼룩진 세태로 바뀌어 버린 모습이 여간 씁쓸하지 않다. 가난의 5000년 역사를 뒤적이고 싶진 않더라도 역사를 바로 알고 그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저력있는 민족의 꽃을 피우면서 위없는 복락을 향유할 것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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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90] 가난속 5000년 우리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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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89] 우주심(宇宙心)에 대하여
- 이경국 칼럼니스트 우주에는 수많은 종류의 氣기 흐르고 있다. 눈에 보일 턱이 없다. 天氣와 地氣는 말할 것도 없고 인간은 공기와 곡기(穀氣)로 살아간다. 본성이나 본능은 사람과 동물에게 저절로 깊이 심어져 있는 듯 보인다. 우주가 하나의 인드라망(그물코)으로 이루져 있다는 사실은 신비롭기 짝이 없다. 한반도에서 나비의 날개짓이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는 태풍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론이 소위 '나비효과 (butterfly effect)' 이다 세계의 가장 큰 정자 은행이 미국의 맨허턴에 있다. 보관하고 있는 대롱속의 정자가 흐느적 거리는 것을 관리자가 발견을 했단다. 아무리 관찰을 하여도 어떠한 이상징후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어 연구원이 정자의 기증자에게 연락을 해 보았더니 시카코에서 교통 사고를 크게 당했다고 한다.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은 우주의 기나 아니면 천륜을 이해하여야 알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인간이 잘 모르는 분야가운데 식물도 소리를 내고 위기에 처하면 신음을 토해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명이 막바지에 이르면 소나무는 힘에 겨울 정도로 솔방울이 많이 맺힌다. 번식을 많이 할려는 나무의 몸부림인 것이다. 그리고는 장렬히 고사하고 만다. 대추나무에 염소를 메어 두면 그해는 대추가 많이 달리는 이치와 같다. 식물도 이럴진데 인간이 한 눈을 팔아 혼외자식을 낳는 이치도 그 내면에는 종족보존이란 뭔가 있다는 느낌이 스친다. 무우를 칼로 자를 때의 소리를 인간의 음성으로 바꾸어서 실험을 하여 보니 그 순간 '아야!'라고 외친다는 것이다. 워낙 신통하여 필자는 여러번 글을 쓴 적이 있다. 고무나무를 전기톱으로 자르면 옆에 있는 다른 나무들이 사시나무 떨 듯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으시대거나 성서의 창세기를 인간 잣대로 해석하여 저지르는 모순이 너무나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생명이 있는 모든 동물의 생명도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법정스님의 말씀이 늘 잔잔한 감동으로 가슴에 남아 있다. 강원도 오두막에 살 때 길가의 풀을 낫으로 베면서 ''정말 미안하다. 너는 인연이 아닌가 보다.'' 이렇게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지만 核을 만들어 인명을 위협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원흉이기도 하다. 인간만 없다면 ''자연은 그야말로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환경파괴를 넘어서 생태계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극의 얼음이 녹아 내리면 지구는 열이 치솟아 후끈거리기 마련일 것이다. 핵개발을 위하여 안간 힘을 쓰고 있는 북에게 자금을 지원하면서 말로는 비핵화를 주장한다면 이는 국민을 두번 속이는 꼴일 것이다. 북한은 적이 우리나라 임을 노골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主敵을 국방백서에서 빼 버리고 북한에 으시대던 정권도 한 때 있었다. 인간이 자제력을 잃거나 핵보유로 자유우방에 대하여 공갈을 치고 있지만 천우신조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수해나 한해로 기아에 빠져들게 하거나 아니면 역병이 만연하여 고통을 겪게 할 것이다. 어쩌면 댐의 둑이 범람하는 큰 재앙이 닥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가도 선업을 이루지 않고 인류에 대한 죄업이나 악업으로 일삼는다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역병으로 인류를 심판을 하는 마지막 순간에 크게 당한다고 생각하여야만 한다. 설사 이러한 일들이 방편(方便)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선하게 살아야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우주의 기를 거역 하거나 인륜을 저 버리는 국가는 소멸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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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89] 우주심(宇宙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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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88] 저질언어가 판치는 세상
- 이경국 칼럼니스트 어휘는 만들어서 유포되는 것이 아니다. 필요에 따라 생성이 되어서 자연적으로 구축이 되었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古語로 남거나 아니면 소멸하고 마는 것이다. 억지로 단어에 님字를 붙히면 높힘 말이 된다고 믿고 있다. 이는 잘못 쓰이는 어법이다. 대통령은 그 자체가 큰大字에 위엄이 있는 領字다. 많이 거느린다 는 의미이다. '님字'의 꼬리표가 없어도 충분하다. 사족도 아니고 님이란 말을 홍수처럼 쏟아내는 시대이다. 을지문덕장군님이라고 하지 않는 경우와 같다. 퇴계나 율곡으로 칭하여도 족한데 퇴계선생님이나 율곡선생님이라고 애써 부르는 경우는 어법에 어긋난다. 선생님이 아니다. 선생이 극존칭이기 때문이다. 공자, 노자, 순자 등의 子字는 최고의 존경을 표한다. 우리나라는 子字존칭을 붙히는 세분이 있다. 퇴계와 율곡 그리고 송시열이다. 진성이씨 門中에서는 퇴계를 李子라고 쓰지 못하게 한다. 겸양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宋子는 무리하게 쓰는 듯 보인다. 아버지 어머니라는 어휘보다 더 존칭은 세상에 없다. 그런데 아버님 어머님으로 불러야 존경의 의미가 있다고 여긴다. 배운 사람들조차 그렇게 쓰고 있다. 다만 며느리는 시어른께 당연히 아버님 어머님이라 해야 옳다. 언어는 주류가 있고 보조표현을 하는 말이 따로 있다. 정상인이 아니면 장애인이 맞는 표현이다. 정상인을 비장애인이라고 하는데 이는 언어의 곡해가 아닐까 싶다. 의미가 있으면 그냥 의미이고 없으면 무의미인 것이다. 유의미란 말은 실제 필요가 없는데 그렇게 쓰고 있다. 신문마다 대통령님 이라는 딱지를 붙히는데 꼴보기 싫다. 이는 아부의 표현에 불과할지 모를 일이다. 언어는 사람의 人格을 나타낸다. 나라도 國格이 있다. GDP만으로 국가를 비교하는 시대는 지났다. 21세기의 가장 언어의 격이 낮은 나라는 당연히 북한이다. 트집과 공격으로 일관되어 있다. 언어체계는 김씨일가를 유지하기 위한 공격성이 은연중에 생겨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북한에는 욕설을 연구하는 별도의 기관이 있다고 한다. 文에게 퍼부은 '삶은 소대가리'란 욕은 여시같은 김여정의 입으로 토해내긴 했지만 기관에서 연구한 욕설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이러한 욕설연구 기관이 있는 나라는 북한이 유일하다. 左傾의 언어는 거칠기 짝이 없다. 당연히 노조측의 말씨가 투쟁 일변도이고 거칠기 마련이다. 따라서 사위나 며느리를 볼려면 언어의 격을 보면 좋다. 건강을 알고 싶으면 북한산을 4시간 산행을 함께 해보면 알 수가 있다. 호랑이 담배피울 적 코리타분하다고 하면 할 말이 없긴하다. 시집가는 처녀의 가장 좋은 혼수는 건강이다. 시집가서 사랑받는 일은 자녀를 많이 낳는 일인데 세상이 변하여 ''왜 아기를 낳느냐?''고 항변하는 시대이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만은 아니다. 품격이 있어야 한다. 대체로 아나운서가 다른 분야의 방송인 보다 격이 높게 보이는 것은 그런 이치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감동이 살아 있어야 한다. '노인과 바다'를 '어르신과 바다로' 바꾼다면 감흥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노인은 공경의 대상이지 말을 바꾼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노인이란 말은 비하적 표현이 아닌 보통명사다. 노인이란 말이 어때서? 어르신이 높힘말인가? 老人의 경험은 도서관과 같다고 하지 않는가? 언어는 격에 맞게 사용하여야 하며 특히 방송용어에 비속어를 쓰는 것은 제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은 가장 바른 말이고 높힘의 표현이다. 사위란 놈이 아버님 어머님이라 부르는 꼴을 보면 역겹기 짝이없다. 더 친숙해 보인다나..... 장모님이라 해야 맞다. 사위는 반자식이라 했다. 옛것을 다 버리고 서양의 영향을 받다 보니 뒤늦게 자성을 하기 시작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신언서판(身言書判) 가운데 언어가 두번째 이다. 말은 가려서 쓰고 바르게 쓰는 습관을 어려서부터 길러 주어야 할 것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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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88] 저질언어가 판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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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87] 봉화마을의 '워낭소리' 이야기
- 이경국 칼럼니스트 필자가 농촌출신이다 보니 다큐로 유명한 봉화마을의 '워낭소리' 에 대하여 여러번 글을 쓴 적이 있다. 친구가 영상을 보내 와서 다시 한번 감회에 젖어 본다. 이는 가슴을 따뜻하게 하여주는 시골의 풍경이 경쟁에 찌들어 살아 가고 있는 도회인의 가슴에 옹달샘 같은 청량함을 느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할아버지와 소는 벌써 저 세상으로 떠나 지금은 봉화의 어느 공원에 나란히 잠들어 있다. 40살의 나이에 소는 죽었다. 인간의 나이로 치면 초고령이다. 30여 년을 반려로 의지 하면서 살았던 소가 떠나면서 할아버는 의지할 것을 상실한 말년의 삶이었다. 할아버지는 어느날 정든 소를 팔기 위하여 걷기조차 힘든 소를 몰고 먼 길을 걸어서 우시장에 이른다. 늙었다고 싼값으로 매매할려는 상인도 맘에 들지 않았지만 소가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는 광경을 보고는 노인은 소를 도저히 팔지 못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힘들지만 소도 돌아 오는 길은 발길이 가벼운 느낌이다. 당시 산촌에서 수 백만원은 정말 큰 돈이었다. 그러나 노인은 소가 평생 지내던 우사(牛舍) 에서 조용히 눈을 감으면 뒷산 양지바른 언덕에 묻기로 작정을 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인간과 가축간의 사랑이 눈물겹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소는 가축이지만 식구(食口)로 여겼던 우리 민족이었다. 삼시 세끼를 같이 먹고 외양간이 따로 있기도 했지만 마굿간이 부얶안에 있어서 함께 살았다. 혹한을 피하기 유한 자구책이었다. 평생 인간을 위하여 일만 하다가 결국 도살장으로 끌리어 가는 소의 마지막 길은 너무나 가엽고 비참한 모습이다. 눈물을 흘리면서 버티는 모습을 보면 가슴을 저미게 한다. 동서양 공히 백정(白丁, buther)은 천한 직업으로 여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래 버릴게 없는 것은 동.식물을 불문하고 등급으로 정일품의 반열에 올리고 싶다. 가축으로는 으뜸이 소다. 이광수의 우덕송(牛德頌)은 너무나 감동적이다. 소는 버릴게 하나도 없는 동물이다. 고기는 먹고 가죽으로는 구두를 만들고 하찮은 털은 벽을 바르는데 쓰였다. 불교의 불전사물(佛殿四物) 가운데 법고(法鼓)는 북을 말한다. 소가죽으로 만드는데 한면은 숫소가죽으로 다른 면은 암소의 가죽으로 만드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나무는 소나무이다. 소나무는 나무의 제왕(帝王)이다. 아카시아가 소나무의 천적으로 서로 상극관계이다. 가장 좋아하는 민족의 나무가 소나무다. 꽃중의 꽃은 무궁화가 아니라 모란이다. 화투장의 6월의 목단열을 김지미라 일컷는 것은 그 의미가 있다. 목단은 부귀화 (富貴花)로 통한다. 그리고 김지미는 아름다운 배우이기도 하지만 여성으로서 일생을 가장 이상적으로 남자를 번갈아 가면서 살았던 여성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4대 절세미인을 ''침어낙안, 폐월수화(沈漁落雁, 閉月羞花)''라 한다. 서시나 왕소군 그리고 초선이나 양귀비 등은 김지미보다 아름다웠을지는 모르겠으나 모두 비운의 생을 살았다. 김지미의 화려한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삶이 아닐까 싶다. 워낭소리(Old Partner)는 좋은 작품이었으나 주변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다큐였다. 관객 수는 300만 명에 육박하였고 봉화란 조그만한 도시가 널리 알려진 계기가 되기도 했다. 주인인 최원균 할아버지는 다큐의 촬영이 힘이 드셨나 보다.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것이 할머니 잔소리이고 두 번째가 워낭소리 감독인 이충렬이라 했으니 말이다. 산촌의 고요한 마을이 전국에서 몰러드는 관광객으로 말미암아 한동안 몸살을 치루었단다. 필자는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니지만 워낭소리의 주인공인 할아버지와 ''집으로''의 영화 주인공 할머니를 결코 잊을 수 없다. 그 모습은 우리들의 부모님의 모습이요. 할아버지와 할머니 모습이기 때문이다. 누가 주름진 얼굴과 부르튼 손을 보고 흉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담아 둔다면 그것이 희망으로 작용이 될 것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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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87] 봉화마을의 '워낭소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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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86 ] 부부 인연의 소중함
- 이경국 칼럼니스트 수많은 이성가운데 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7000겁 이상의 인연이 닿아야 가능하다고 한다. 일심동체이긴 하지만 너무나 가깝고도 멀어서 同體라는 이유로 寸數마저 없다. 無寸은 가깝지만 돌아서면 머나먼 타인이 되어버린다. 국가로는 가깝고도 먼 곳은 북한과 일본이다. 북한은 동족이면서 종자가 다른 主敵이다.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나라는 가까운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일본은 우리민족에게 인접국이지만 큰 피해를 안겨 주었다. 세계사가 그러하다. 영토를 넓히려는 욕심은 가까운 나라가 손쉽기 때문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이 우리나라를 우뚝서게 한 우방국이다. 지정학적으로 멀리 있어서 유리한 경우이다. 무학대사의 無學은 배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 배워서 더 배울게 없다는 것이다. 부부도 촌수로는 그런 느낌이 들긴한다.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왜 하필 당신만을 사랑하고 이렇게도 애를 태우나''가 부부다. 아마 콩깍지가 씌여서 장점만 부각이 되었다고 본다. 몸에 점이 어디에 있는지 부부는 다 안다. 속살도 아낌없이 드러내 보여주는 사이는 부부밖에 없을 것이다. 코로나가 성행하던 기간에 친구들의 전화나 메시지가 부쩍 늘었다. 잘은 몰라도 방콕하는 시간이 많아서 아내옆에 가고 싶은데 반응이 시큰둥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 한때는 어부인들이 옥식기에 밥을 담아 아랫목 이불속에 넣어 두고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면서 대문까지 들락날락 했을 것이다. 살아보니 남자라는 중생(?)도 별것 아니며 애기같다는 것도 알아 차렸을 것이다. 필자가 심리학 전공과 무관하지만는 雜學에 밝다는 의미로 문의를 한다고 여겨진다. 주식도 심리작용으로 등락이 교차되는 경우가 많다. 부부관계는 심리가 크게 작용되는 것이다. 남자들은 모든면에 조급하다. 특히 밤살이는 제 욕심을 채우면 돌아 누워서 코를 골기 마련인데 이 장면에서 정념이 떨어진다고 아내들은 하소연한다. 동물취급을 받는 기분이란다. 발기력이 약한 남편의 입장에서는 오래 흥분을 끌고 가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는 사실을 여성들도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고 본다. 이 갭을 잘 메꾸어 나가는 부부는 대체로 궁합이 맞다고 한다. 부부는 죽어서도 합장을 하거나 쌍봉을 한다. 세상에 어느 누구와 죽어서 나란히 음택에 함께 들어 갈 수가 있다는 말인가? 따라서 부부는 미우나 고우나 서로 아껴야 한다. 愛憎을 동시에 지니고 살아가는 부부는 설사 수가 틀리더라도 함께 가도록 노력해야지 헤어짐을 비상으로 여겨야 한다. 최소한 측은지심이 사라져 버리지 않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웃 아줌마보다 못한 존재로 남는게 부부다. 부부가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갈라서는 경우가 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다. 이혼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자랑하듯 하는 TV프로도 있다. 둘만의 의사소통도 이럴진데 여야가 대화나 협치를 바란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다고 본다. 한쪽은 사팔뜨기 눈이다. 우이독경이고 마이동풍이다. 흔히 부부사이는 부부만 안다고 한다. 무슨 사유가 그렇게 많다는 말일까? 인연의 소중함을 모르면 측은지심마져 사라져 버릴 것이다. 부부가 남이 되는 이유이다. 따라서 부부는 일체가 아니라 별개의 이체인데 노력하여 일체가 되도록 하는 과정으로 생각하는 것이 마음편한 일이 아닐까 싶다. 인연의 소중함을 깨친다면 부부는 미워함은 일종의 죄악이 된다고 여겼으면 좋을듯 싶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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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86 ] 부부 인연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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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85] 감꽃도 꽃이려나
- 이경국 칼럼니스트 감꽃은 생김새가 다른 꽃과 판이하게 다르다. 작은 그릇같다. 크기가 작아서 그렇지 초롱을 엎어 놓은 모습이다. 감꽃이 한창 피었다가 落花가 된다. 물론 아직은 시간이 더 지나야 한다. 꽃은 피는데 감꽃은 생긴다는 말이 어울릴 듯 하다. 소싯적을 생각하면서 입에 넣어 씹어 보니 쌉쓰레한 맛으로 금시 추억이 오롯이 떠 오르게 한다. 올해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 맛으로 과거를 소환해 본다. 우리집 마당에 한 그루가 있고 집주위에 돌아 가면서 세 그루가 있다. 물론 3그루는 주인이 다르다. 어릴적 감꽃은 주전부리로 가장 좋은 간식이었다. 감꽃이 떨어지면 그 자리에 감이 맺힌다. 꽃이 져야만 열매가 맺히는 자연의 질서에는 어긋남이 없다. 세상이치는 참으로 오묘하다. 열매는 씨앗를 품고 있다. 꽃이나 열매는 결국 씨앗을 남기려는 과정인 셈이다. 감꽃이 지면 처음에는 소녀의 젖망울같이 볼록하게 자리를 잡는다. 중학시절에 감나무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동리의 갑순이가 산뜻하게 차려입고 지나 가는게 아닌가! 당시 사춘기라서 아무말도 못하고 호미자루를 감나무를 향하여 높히 던져 버렸다. 좋아하고 있다는 무언의 행동을 그렇게 표현 할 수 밖에 없었던 순진한 시절이었다. 물론 그녀는 남의 아내되어 슬하에 남매를 두었으나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어딘지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무덤을 찾아 막걸리 한 잔을 올리고 싶은 생각이다. 나무 가운데 감나무는 글을 쓸 소재가 무진 풍부하다. 서리가 내리면 주홍색을 뿜어 내면서 수확철임을 알린다. 그 모습은 절정(絶頂)을 알리듯 주위를 환하게 밝히다. 올해도 수컷매미는 감나무에서 목청껏 암컷을 유혹할 것이다. 감나무에는 벌레는 없지만 매미는 허용을 하는가 보다. 감꽃에는 타닌성분이 있어 떫다. 이러한 떫은 초록의 몽우리에서 어떻게 그토록 달콤한 홍시의 향취를 풍기게 하는지 신비롭기 짝이 없다. 지금은 감꽃이나 찔레의 순을 꺾어 먹을 줄 모르는 시대이다. 올해도 옆집 아파트의 감은 거두질 않아 여느해 처럼 필자가 따야만 할 것 같다. 마당에 떨어진 감꽃을 쓸면서 ''낙환들 꽃이 아니라 쓸어 무삼 하리오.''란 시조가 스친다. 감꽃은 꽃이 아닌듯 한데 분명 꽃이다. 감꽃을 실로 꽤어 목걸이를 만들어 놀던 시절을 생각해 보면 역시 그때의 순박한 시절이 좋았다. 인정이 많으면 사회도 훈훈하다. 꽃반지를 만들어 동무에게 준다거나 손톱에 봉선화로 물들이던 시절의 낭만이 사라진 시대이다. 지금은 누가 감꽃을 주어서 먹을 것이며, 찔레의 순을 꺾어 먹겠는가? 산에 오르면 잔대와 빼기(?)를 캐어서 씻지도 않고 쑤봉에 썩 닦아서 먹으면 무척이나 달콤했다. 돌사탕 한 알을 입에 넣으면 16km의 사십리 거리를 차는 달리지만 사탕은 그대로였다. 어쩌면 아끼는 절약정신은 그때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소비는 결코 미덕이 아니다. 자원을 고갈시키는 상술임을 뒤늦게 깨치기 시작한 것이다. 껌을 누나와 씹다가 벽여 붙혀 두었다가 다음날 다시 떼어서 씹는데 누나의 것은 하얀데 내것은 검었던 기억이 나는데 아마 손으로 만져서 그랬을 것이다. 올해도 감꽃을 먹으면서 소싯적 느꼈던 미각을 음미해 하면서 아름다운 추억에 흠뻑 젖어보고 싶다. '꽃중의 꽃'은 무궁화가 아니라 모란꽃(牡丹) 이다. 모란은 '꽃중의 왕'이라 하여 화중왕 (花中王)이라 한다. 그러나 필자는 향취(香臭)는 나지 않지만 맛이 독특한 모양과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감꽃을 '꽃중의 왕'이라 여기고 싶은 마음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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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85] 감꽃도 꽃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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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84] 어버이날의 소중함
- 이경국 칼럼니스트 지난 주에 어버이날이 지나갔다. 소싯적에는 '어머니날'이었다. 아버지는 그냥 묻히어 넘어가 버린 셈이다. 어머니날이 더 정감이 갔다. 어차피 아버지는 어머니와 한 속(?)이고 거기에 속하는 존재라고 믿었다. 아버지는 한 가정의 城主였지만 어깨가 자꾸만 좁아지기 시작한 세태다. 아버지는 엄부(嚴父)라 하여 가정의 령(令)을 세위야 했다. 어머니는 자모(慈母)라 하여 경상도에서는 사이를 가깝게 하기 위하여 존대말 조차 쓰지 않는다. 어머니는 그 의미가 크고도 높다. 할머니를 '할미'라고 부르는데 '할'은 '한'으로 크다는 뜻이고 '미'는 어머니란 의미이다. 자비(慈悲)는 '사랑과 비심'이니 참으로 그 뜻이 깊은 말이다. 인간은 누구할 것 없이 어머니를 통하여 세상에 나오게 되었으니 가장 가까운 사이가 어머니다. 작은 정자 하나를 받아 애기를 품고서 무려 280일 동안 대신 숨을 쉬어 주면서 자식을 위한 존재가 어머니시다. 여성은 美가 생명인데 자녀를 낳고 기르는 동안에는 그런 것은 아예 염두에 두질 않으신다. 神은 공평하게도 산후에 더 좋은 피부와 건강을 산모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세월은 지금 처가의 장인, 장모도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른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극진한 존칭이다. 제발 언어의 격을 제대로 사용했으면 좋겠다. 슬하에 손주가 자라고 있으니 '어버이 날' 의 감회가 남다르기 마련이다. 올해는 손자가 직접 종이를 접어서 만든 카네이션을 선물을 주었다. 손녀는 사진을 찍어서 오래 보관할 수 있게 만들어 왔다.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해요!''란 말에 기분이 좋다. 비싼 화분이나 카네이션 생화보다 의미가 크다고 본다. 며느리 둘이 손주에게 교육시킨 그 마음이 갸륵하여 기쁨이 넘친다. 어린이 날과 어버이 날의 중간인 일요일에 슬하의 9명이 모여 식사를 하면서 가족애를 다졌다. 필자는 인간의 제1의 신은 '어머니' 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버지는 어머니에 포함이 되어 있다. 이때만은 모름지기 부모님께서는 일체이신 셈이다. 지금 어디선가에서 우리의 모습을 지켜 보시면서 음덕(陰德) 으로 살피시고 계실 것이다. 어버이의 날 누구나 자신의 시원(始源)이 어머니임을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어머니와 가장 즐거웠던 때를 생각해 본다. 7남매를 위하여 진종일 움직이시던 울 엄마의 땀냄새가 몹시 그립다. 나훈아의 '울엄마가 생각이 난다'는 노래소절이 스친다. 아직 감꽃도 피지 않았는데도 '홍시'란 노래가 떠 오르는 것은 어버이날이기 때문이다. 어머니!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요?'' 어버이날에 유독 생각이 나는 어머니시다. 자식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의 의미를 이제사 철들어 깨닫게 되니 세상의 자식은 불효임이 틀림이 없다고 본다. 필자의 습작 노트에 ''자식을 적어도 다섯명은 낳아 보아야만 부모님의 은공을 절반 정도 알 수 있을까 싶다.''라는 말에 방점(傍點)을 찍어 본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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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84] 어버이날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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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83] 옛 5일장의 풍경
- 이경국 칼럼니스트 가난한 시절의 옛 5일장은 볼거리가 무척 많았다. 내고향 풍산 장날은 3일과 8일이다. 사람 냄새를 강하게 풍기는 곳이 시골 장이다. 지금도 장은 서고 있지만 옛날의 정감을 느낄 수는 없다. 백화점이 생겼고 전통장이니 하면서 재래시장도 규모가 엄청나다. 대형마트에는 없는 물건이 없을 정도로 물건이 산적해 있다. 장날은 당연히 생필품을 사는 날이지만 바깥양반은 사돈을 만나 일잔을 나누는 날이기도 하다. 당시 농작물은 물물교환이 주를 이루었다. 牛市場에서는 소가 거래 된다. 소의 슬픈 표정을 어린 나이에도 필자는 충분히 읽을 수있었다. 사슴만 목이 길어 슬픈 짐승이 아니다. 가축으로 키우던 소가 팔려가는 날에는 소도 느낌이 다르다고 한다. 눈물을 흘린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는 주인을 원망하면서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버틴단다. 그러한 면에서 봉화의 다큐 '워낭소리'는 소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해준 감동적인 걸작이다. 시골 장날은 신작로가 온통 행인으로 꽉찬다. 걸어 가는 자, 자전거를 타고 가는 자, 우마를 끄는 사람, 가끔은 리어카도 보인다. 물론 소싯적의 모습들이다. 장날은 좋은 구경거리가 많다. 빨래를 하기 위하여 양잿물을 산다. 가성소다 덩어리는 비료종이에 넣어 짚으로 묶는다. 미국에서 원조받은 비료포대는 중요한 포장지였다. 성냥(안동방언은 다황)도 사고 바깥양반의 라이터 돌도 산다. 기껏 반찬으로는 고등어 한손이면 최고였다. 지금 안동 간고등어는 브랜드화 되어 명품이 되었다. 내륙인 안동은 바다도 없는데 간고등어와 문어는 과히 세계 수준이다. 간고등어는 적절한 시간에 적당한 량의 소금을 뿌리는 것이 노하우다. 그리고 문어는 삶는 과정의 온도를 잘 맞추어서 문어를 집어 넣어야 한다. 호남의 홍어와 안동의 문어는 해산물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고무신은 주로 검정색이 싸다. 거의 검정고무신을 신었다. 좀 더 비싼 흰색을 살 때도 있다. 아버지께서는 흰 고무신을 자랑 하시려고 외가인 예천까지 사십리인 16km를 걸어서 가셨다고 하셨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벗어서 들고 맨발로 걸으셨다니 눈물겨운 일이다. 그 전에는 짚신이 대다수였다. 필자가 돈을 벌고부터 아버지께 최고급 구두를 많이 사서 드렸다. 당대에 짚신에서 최고급 구두를 신게 된 우리나라는 선사이래 가장 빠른 성장을 이룬 나라가 되었다. 저개발국에서 단숨에 선진국에 오르게 되었다. 일본은 선진국에서 중진국으로 미끄러져 내린 상태다. 일인당 GDP도 일본을 앞섰다. 얼마나 배가 아플까? 죽창가는 이제 그만 외쳐야 한다. 마음만 넓게 쓰면 이미 勝日이 된 상태이다. 아무리 독도를 竹島라 우길지라도 그들은 죽도록 헛발질을 하는 꼴일게다. 가슴이 넓은 우리나라는 대마도를 우리꺼라고 우기지 않는다. '나라'란 우리말 도시도 그냥 보고만 있다. 5일장의 거래가 확장이 되어서 세계10위권 무역 강국이 되었다. 지금은 5일장이 많이 위축이 된 상태이다. 그러나 아직도 충분히 옛 추억을 더듬을 수 있는 모습이 남아 있다. 어쩌다가 고향에 가면 풍산장에 들려서 땅콩과 명태포플린 (반찬)은 꼭 산다. 고향 땅콩은 미국의 카터농장이나 중국산에 비하여 감칠맛이 다르다. 소위 약으로 먹는데 얼굴에 빛을 풍기게 한다. 땅콩에 기름기가 많기 때문이다. 농업은 우리민족의 생명줄이었다. 중세유럽에서도 중상주의보다는 중농주의가 우월했다. 순생산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사.농.공.상 順이다. 農者 천하지대본이었다. 풍산장날의 장꾼들의 모습은 얼굴에 주름이 깊다. 농사일에다 자식들 공부에 허리가 휜 까닭이다. 그런데도 요놈들이 부모의 마음을 저버리고 주사파에 홀딱 빠져서 北向再拜를 하고 있으니 이 시대 마지막 보수 세대는 외롭기 짝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사돈을 만나 술이 거나하게 취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고향의 5일장은 정이 있어 좋다. 김주현의 '객주'가 아니더라도 고향 장날은 그 풍속이 일생동안 뇌리에 남아 있을 것이다. 시골장날은 사람 냄새를 풍기며 투박한 사투리는 늘 정겹다. 고향은 어머니가 계셨던 곳으로 어찌 잊힐리가 있다는 말인가?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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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83] 옛 5일장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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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82] 모래알 같은 세상
- 이경국 칼럼니스트 세상이 갈수록 溫情은 매말라만 가고 정이라고는 찾아 보기 쉽지가 않다. 툭하면 법으로만 따지는 살벌하고 매서운 천지로 변하여 버렸다. 참으로 천박(淺薄)한 세상이다. 그 원인의 심연(深淵)에는 특정 세력이 도사리고 있다. 가정조차도 스위트 홈은 커녕 무인도 같은 독거인의 존재처로 변하고 말았다. 가정이 온전치 못하면 가족은 重病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설사 한지붕 아래 산다고 하더라도 대화없이 지내거나 부부가 각방 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그것을 자랑하듯 TV앞에서 떠들어 대고 있다. 정치판은 무법천지를 방불케 한다. 정당 정치는 상대당이 파트너인데도 어찌 된 심판인지 마치 敵으로 여기면서 투쟁 일변도의 다툼뿐이다. 다수를 구실로 마치 수캐가 00자랑 하듯 입법활동을 일사천리로 해 치우고 마는 야당의 독선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처사다. 여당의 책임도 크다. 최소한 국방과 외교는 한 목소리를 내는게 원칙이고 관행인데도 야당이 집권당을 발톱 사이의 떼처럼 여기면서 깔아 뭉게고 있으니 나라의 꼴이 말이 아니다. 정치만이 저급이다. 과거수준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북은 핵으로 온갖 공갈을 치면서 입에 담지 못하는 욕설을 퍼부어도 그저 희죽거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속에서 천불이 난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툭하면 조선시대의 사색파당을 들먹이고 있는데 사실 지금이 그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고 본다. 정당은 그 자체가 선의의 경쟁을 하여야 하고, 국익이 최우선 과제임은 여야 공히 같아야만 할 것이다. 지금 처한 상황이 어떤가? 정당의 구성원이 북에 약점이 잡혀 있어 국가가 구멍가게 취급을 당하여도 입을 봉하고 있으니 국격의 추락여부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6.25에 파병한 우방국을 쉽게 외면하면 국제적인 망신인 것이다. 北에 매달려 혼줄이 빠진 적도 있었다. ''이게 나라냐?''는 막말로 수준까지 추락하고 국격이 추락하고 말았다. 적과 일시 동침이 아니고 아예 본처가 된 듯 보인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북한이 위험요소가 다분한 핵의 위험국임을 천명하고 우방과 협력관계를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도 비핵을 입에서 토해 내면서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당기고 있는 머저리 짓을 감행하고 있다. 뇌가 꼬이어 있거나 아니면 아예 녹아 버렸단 말인가? 특이한 돌연변이가 생겨서 DNA가 광기를 보이는가 보다. 어딘가에 지시를 받고 있는 추종세력들이 안하무인격으로 설치면서 모래 공화국을 만들어 내고 있으니 그 뒤끝을 정리하는 정책수립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닌듯 보인다. 세계는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무역도 편의에 따라 자유무역과 보호 무역 정책을 병행 하면서 실리만을 추구하고 있는 시대다. 나라안에서 다투기만 하고 있으니 기업활동 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고 아우성이다. 정치인은 거품을 무는 입은 발달이 되어 있는데 인문학적 사고나 애국은 편린(片鱗)조차 찾아 보기가 힘든 모습이다. 아마 우리나라 정당사에도 가장 지저분한 黨으로 기록이 남게 될 것이다. 정당의 대표가 돈봉투 사건으로 일이 터졌다. 전과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면서 바톤을 주고 받으며 썪은 냄새를 진동시키고 있다. 이들은 천막당사에 들어갈 자격조차도 없다고 본다. 거적때기를 깔고서 국민을 상대로 읍소(泣訴)하면서 삼고초려 (三顧草慮)를 넘어 '백고초려'를 하여도 새살이 돋아나기 어려운 처지일 것이다. 아마 조선시대였다면 사초에는 '祖.宗.君' 밑에 별도의 칭호를 붙힐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아무래도 썩은 냄새를 풍기는데 이골이 나 있으니 딱 한글자인 '변(便)'으로 쓰지 아닐까 싶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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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82] 모래알 같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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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81] 연꽃 그 신비한 내면
- 이경국 칼럼니스트 연꽃은 그 오묘함에 놀랄 때가 많다. 오죽했으면 연잎밥까지 생겼을까 싶다. 진토(塵土)에서 자라고 있지만 그 뿌리는 淨하며 인체에도 좋다. 연꽃과 우담바라는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다. 물론 개신교는 무화과가 있다. 꽃이 보이지 않는다고 무화과(無花果)란다. 이는 태고때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가 사랑(Adam knew Eve)을 나눈 후 서로를 쳐다 보면서 수치를 느껴 무화과 잎사귀를 엮어서 치부를 가린데서 유래 되었다. 무화과는 꽃이 없는 과일로 알고 있지만 사실 먹는 부분이 꽃인 것이다. 인간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으면 백안시 하는 경향이 있다. 무화과 말린 것은 쫄깃하여 주전부리나 술안주로 최고급이다. 연꽃이 피면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연꽃 축제를 연다. 연꽃은 신비스러움을 가득 간직한 꽃이다. 꽃이 피면서 동시에 열매를 맺는 유일한 식물이다. 그리고 연꽃의 씨앗은 백년을 두어도 썪지 않는다고 한다. 연은 대체로 더러운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나 거기에 물들지 않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정토와 예토 즉, 부처님의 세계와 사바세계를 상징하고 있는 꽃이기도 하다. 사실 인간도 18세 순이일 때가 가장 아름답다. 봉오리의 모습이 사랑스럽지 만개하면 곧 지고 말기 때문이다. 연꽃도 봉오리일 때가 가장 정감이 간다. 인간이 사랑에 빠지는 1차적인 목적은 자기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서란다. 일부일처제가 이상적인 제도임에도 배우자 몰래 바람을 피우는 이중적인 작태가 만연하고 있는 세상이다. 이는 세계인의 공통적인 현상이리니 할말도 없다고 본다. 종교적으로는 간음(姦淫)과 사음(邪淫)을 계율로 정하고 있다. 이는 조화주의 실수(?) 를 탓해야지 수컷인 남자를 범죄자로 모는 것은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긴한다. 남자는 그렇게 생겨져 있는 존재이다. 남자는 외성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미사일과 받침대가 구비되어 언제나 사고(發射)를 칠 소지가 높다. 행위의 결과만으로 혹독하게 비난받는 세상이다. 따라서 이에 따른 교육과 지도가 필요하고 본다. 마약을 들이키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이는 사회적으로 큰 병리현상이다. 주례앞의 선서로 일생을 本妻만 바라 본다는 것은 사실 구조적 모순임을 알고 있어야 한다. 몰래하는 사랑이 오대양 육대주에서 흔히 일어난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동서고금의 인간의 삶의 행태는 결혼ㅡ이혼ㅡ재혼의 전철을 밟는 것이 작금의 비극일지도 모른다. 지고지순한 사랑이나 잉꼬 부부는 사실 생각보다 드물다. 연속극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여 도덕심을 함양시키지 않으면 세상은 더욱 시끄러워 질 것이다. 빙산처럼 수면밑에 머물게 하는 러브 메이킹을 한다고 끝나는 일은 아니라고 본다. 자본주의는 도덕을 멀리하는 세상으로 바뀌어 버렸다. 천민자본주의가 만연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터전은 정토(靜土)인데 바라는 마음은 예토(穢토)이니 연꽃을 보면서 바른 생활에 애착을 지니면 좋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하늘에는 1조개의 별이 있다. 인간은 선과를 남기기 보다는 악업에 의한 惡果를 남기기 쉽기 때문이다. 각자의 根氣에 따라서 별을 선택받을 것이다. 연꽃을 보면서 생활의 자세를 가다듬을 필요가 절실한 세상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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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81] 연꽃 그 신비한 내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