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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국의 대구춘추 151] 타지마할 묘--관광의 비애
    이경국 칼럼니스트   인도의 북부 아그라 지역에 인류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타지마할 묘가 있다. 당연히 인도의 유명관광 명소다. 무굴제국의 5대 황제인 사 자한과 그의 왕후의 무덤이다. 사 자한은 영토확장을 위한 원정길에 부인을 대동하고 다녔던 것이다. 그만큼 사랑을 했으니 무덤을 그렇게도 아름답게 꾸민 것이다. 이는 고려 공민왕이 노국공주를 사랑한 것과 거의 닮았다는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만삭인 문다프 마할 왕비는 막사에서 아기를 낳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무래도 전장의 의료시설은 낙후 되었을 것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서 타지마할 묘를 완공하고 난 후에는 공사에 가담한 인부들의 손목을 다  짤라 버리도록 명령한 시대의 아픔이 있었다.  그 보다 더  아름다운 건축물을 지을까 두려움 때문이었다. 만리장성을 쌓아 놓고 불멸하고자 불로초를 구하게 했던 진시왕도 백성의 아픔을 모르면서 영화를 누리려 한 자이다. 분서갱유 (焚書坑儒)만 하더라도 역사에 영구히 비난받아 마땅하다. 자기가 부인을 사랑했다고 백성에게 죽을 고생을 시키는 작태는 인문학 수준이 낮은 독재자의 전형이다.   이집트의 피라미트도 영생을 기원하는 무덤이다. 건축기술이 불가사의하다. 흑인을 일일 3교대로 공사를 시켰는데 양파를 먹였다는 기록이 있다. 10만명의 인부가 20년 동안 건축하여 완성시킨 피라미드였다. 2.5톤짜리 돌이 230만 개나 필요했으니 상상을 초월한다. 다만 그 안에는 섞지 않는 <히란야>라는 빛을 발하고 있으니 아마 신과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타지마할은 아름다운 대리석의 명품이고 역작이지만 김정숙이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여행삼아 세금을 물쓰듯 하면서 다녀와 인구에 회자(膾炙)되고 있는 모습이 꼴불견이고 역겹다. 무덤은 퇴계선생이나 드골처럼 본봉을 작게 만들어 소박한 정신을 유산으로 남기는 것이 역사의 자랑일 것이다. 무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정신이 중요하다. 인도의 야쇼카 왕은 영토를 통일한 후 전쟁때 사용했던 무기로 쟁기를 만들고 평화를 구가하는 시대를 열었다. 부처님 입멸후 사리 (舍利)를 8나라에 모시게 했는데 이를 회수하여 8만4천 사리탑에 배분하여 모시게 했던 것이다. 한 나라의 사리는 그대로 두었다고 기록에 있다. 청평의 聖地에는 타지마할 묘 못지 않는 아름다운 대리석 궁이 있다. 타 종교를 배척하지 않고 초종교를 근간으로 참부모의 사랑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매장의 풍습이 사라지면서 화장중심으로 바뀌어 간다. 조상의 산소를 가볍게 여기면서 부모의 은공을 소홀히 하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 어머니를 종교로 여기는 마음이 바탕으로 되어 있는 가정은 번창한다는 것이 필자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타지마할에 몸치장을 하고서 싸돌아 다니는 가벼운 행동을 한 철들지 못한 國母의 탈을 쓰긴 하였지만 食母처럼 여기는 세상을 보니 안타까운 나머지 칼럼을 장황하게 써 본 것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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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19
  • [이경국의 대구춘추 150] 제사(祭祀)문화에 대한 소고(小考)
    이경국 칼럼니스트   나라마다 전통이 있고 미풍양속이 있기 마련이다. 시대조류에 밀리어 사라져 가는 風俗이 눈에 띄게 많다. 사실 여간 아쉽지 않다. 가가호호 제사는 방식과 절차가 상이하다고 본다. 간소화 시키는 것은 몰라도 필요없다고 치부하는 것은 당치 않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우선 나라마다 장례의 모습이 다르다. 우리 나라는 儒家의 풍습으로 매장(埋葬)을 많이 하였으나 여러 사유로 지금은 화장 (火葬)을 선호하고 있다. 나라에 따라서 조장(鳥葬), 풍장(風葬), 수장 (水葬)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 그리고 무덤도 다양하다. 우리나라는 왕릉의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피라미트도 능이요. 타지마할도 묘다. 영구불멸을 꿈꾸는 인간은 제정일치(祭政一治)라 하여 제사와 정치를 같게 보았던 것이다. 중국에서는 무리한 제사로 인하여 왕조가 망하기도 하였다. 나라나 개인이나 형편에 따라 제사를 지내어야 한다. 추석때는 아예 해외 관광을 떠나 버리거나 아니면 유원지 콘도에서 구입한 제수로 차례를 지내기도 한다. 근본적으로 孝는 백행의 기본이요, 부모자식은 천륜으로 이어지기에 孝는 종교적으로도 중요하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한다. 십계명에도 신도오계에도 강조하고 있다. 어머니 젖을 3년이나 먹었으면 돌아 가시면 3년상을 치루게 하였다. 시묘살이도 하였으며 그 정성은 대단하였다. 지금은 부모님이 돌아 가시면 당일 탈상에 부의금 배분으로 형제가 다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까마귀는 동물가운데 유일하게 어미의 공을 안다고 한다. 반포지효 (反哺之孝)는 새끼때 어미가 물어다 준 먹이의 공을 잊지 않고서  자라서 어미가 나이들면 새끼 까마귀가 보은을 한다니 감동적인 모습이다. 부모님께 효를 극진히 하거나 산소를 잘 돌보는 가문이 번창하는 경우를 많이 목격한다. 조상이 후손을 돌보는 음덕 (陰德)은 상상을 초월 한다고 필자는 주장하고 싶다. 불효를 하는 자가 떵떵거리는 것은 그나마 전생의 복통장의 잔고를 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잔고가 바닥이 나면 걸뱅이 신세의 노숙자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이다. 인과응보는 무시할 수가 없다고 보며, 선업선과도 무시해서는 안된다. 인연법은 묘하다. 자기 편리대로 지구에서 산다면 곤란하다. 어차피 인간이 지구와 인연을 맺었다면 <고해의 바다>를 헤쳐 나가야 하는 운명에 처하는데 험로역정을 벗어나서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제사를 귀찮게 여긴다면 어느 하늘에서 그런 자에게 복을 내린다는 말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聖人은 혹독한 자기 연마로 인류로부터 추앙받고 있으며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옥토가 아니고 박토(薄土)에서 이루어 낸 것이다. 따라서 생존시에는 효를 다하고 떠나신 후에는 제사를 성의껏 모시는 것이 복을 받는 지름길임을 간과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모든 나라가 조상을 숭상히 여기면서 제사를 잘 모시고 있다. 선진국은 더욱 더하다. 우리나라는 하늘을 믿었던 민족으로 제사를 잘 받들기도 했다. 그리고 세계인의 모든 종교나 의식에는 그 저변에 기복신앙(祈福信仰)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신이란 모름지기 인간을 위한 존재이기 때문에 福과 화(禍)를 동시에 지닌 야누스의 얼굴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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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12
  • [이경국의 대구춘추 149] 간이역(簡易驛)의 애환
    이경국 칼럼니스트   간이역을 보기란 여간 쉽지 않는 세상이다. <간이역>이란 이름은 추억속의 아련하게 남아 있는 고향의 어딘가를 연상케 하는 이름이다. 마치 '기차길옆 오막살이' 나 '언덕위의 초가삼간' 같이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느낌이다. 역장이 없는 곳도 많다고 한다. 스피드 시대에 열차도 속도가 비행기 수준으로 빨라지게 되었다. 소싯적에는 안동에서 중앙선을 타고 종착역인 청량리역에 내리면 시간도 많이 걸렸을 뿐만 아니라 무연탄으로 움직이는 증기열차여서 콧구멍이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죽령재는 4km나 되는 따비굴이다. 가차도 숨이 차는지 기적소리도 요란했다. 지금은 뱃고동 소리도 사라져 버린 시대라 한다. 마을마다 예배당의 종소리를 들어 본 적이 오래 되었을 것이다. 다만 산사의 사찰에서 울리는 종소리만 간혹 들릴 뿐이다. 공해때문이란다. 정서가 메말란 사막에 살고 있는듯 하니 살벌한 세상만 같다. 이웃은 4촌인데 지금은 18촌도 넘을 것이다.   사라져 가는 간이역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곳이 24개나 된다. 필자는  서대문 신촌역사에 있는 간이역을 자주 접하는 편이다. 이는 제136호로 경의선 신촌역사에 옛시절 간이역과 현대식 역이 앞뒤로 공존하고 있어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마치 晩年을 보내고 있는 初老가 까마득한 시절의 첫사랑 연인과 사랑이 희석되어 가족으로 지내고 있는 현재의 아내모습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詩心은 현대판 고급 역에서 일어나기 보다는 작고 낡은 간이역에서 떠 오를 것이다. 흔히 비행기 여행을 문명이라 하고 기차 여행을 문화라고 칭하는데 그 역은 간이역이 아닐까 싶다. 필자의 族親이고 항렬(行列)도 같은 이희국 시인이 <간이역에서(At Halt station)>란 영한시집을 발간하였다. 이 시집은 세계의 20여개 나라의 잡지와 언론에 알려진 50여 편의 시를 싣고 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도 극찬을 하는 추천사를 보내오다. 필자는 藥師 시인인 이희국 시인과 교류를 활발히 하고 있는 편이다. 시에서 섬광(閃光)을 느끼면 시인의 천재성을 엿보게 한다. 문정희 시인을 마냥 좋아하고 있는데 이 시인의 사상의 폭이 어디까지 인지 짐작을 가늠할 수 없는 지경이다. 간이역은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고 철없던 시절의 고향의 디딜방아나 맥향 일렁이는 보리밭을 연상시키는 포근함을 품고 있는 어휘이다. 간이역은 작고 볼품이 없는 규모이긴 하지만 정신문화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민족의 보석같은 곳이다. 조만간 친구와 함께 신촌 간이역에 가서 상념에 빠져 보고싶다. 40년 넘게 서대문구에서 살아 왔으니 신촌 간이역과 안산(鞍山)은 필자의 뇌리에 작은 분실을 차지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로 세계를 제패한 일본의 상술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우리나라는 큰 것만을 추구하는 속성이 있는 민족이다. 나라도 대한민국이다. 한강의 모든 다리는 대교 (Grand bridge)로 부른다. 작은 것은 아예 무시해 버린다. 오를 때 못 본 꽃은 내려 올 때도 보지 못한다. 작다고 무시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간이역이 눈에 보일리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한다.    작은 가시가 목에 걸리고 맹수인 사자가 죽으면 작은 사자충이 갉아 먹는다. 미분의 원리는 무섭게 작용하다. 텅빈 허공의 원리를 중요시하는 이유이다. 팔등신 미인보다 품안에 안기는 작은 미인을 선호하는 남자는 깨친 사람이 아닐까 싶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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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05
  • [이경국의 대구춘추 148]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무루법
    이경국 칼럼니스트   인간의 삶은 洋의 東西를 불문하고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삶이 아름답기 마련이다. 대체로 서양의 기업풍토는 기부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에다 민족자본의 열세로 말미암아  상속중심의 족벌제제로 이루어 온 특색이 있다고 본다. 인류의 성인은 하나같이 남을 위한 길을 걸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스스로 공부하여 깨달았으며, 말은 많이 하였으나 글은 남기지 않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인류를 위하여 가장 큰 보시를 했다고 필자는 주장하고 싶다. 눈에 보이는 물질만이 보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금강경(Diamond-sutra)에 남을 돕더라도 돕는다는 마음조차 없이 도와야 한다는 <무주상보시>가 있다. 금강경을 흔히 <다이아몬드경>이라 칭한다. 다이아몬드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물체이다. 그러나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에 의하여 잘리어진다.'' (Diamond is to be cut by diamond) 사실 금보다 애착을 지니는 다이아 몬드도 실체는 흑연에 불과하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남을 도우려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이를 유루법(有漏法)이라 한다. 그러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도 모르게 하라''는 무루법(無漏법)을 강조하고 싶다. 이는 인간사회의 생색내기가 심하기 때문에 일종의 경고이기도 할 것이다. 자만심없이 자비심으로 보시하길 강조하고 있다. 절에서 보시(布施)를 하거나 예배당에서 헌금(獻金)의 금액을 신도들에게 공표하거나 게시 등 공시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평생을 굶주리면서 큰돈을 모아서 죽으면서 좋은 일에 써달라고 기부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 나고 있다. 우리민족의 선행의 표본이다. 이는 자식은 반듯하게 교육을 시키면 된다는 깨달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매마른 우리사회는 재산으로 형제가 불목하면서 때에 따라선 견원지간으로 변한다. 도대체 돈이란 무엇인가? 이는 인문학적 사고의 결핍에 따른 무지의 소치(所致)로 밖에 더이상 설명할 길이 없다. 다만 모든 신가운데 물신(物神)만이 육안으로 보이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머니가 주머니에 가득하면 할머니도 좋아한다는 우수개 소리도 있다. 인간은 살만하면 바벨탑을 쌓거나 영토확장을 위하여 전쟁을 불사하는 비평화적인 요소가 농후한 동물의 기질이 있다. 윤리와 도덕 바른생활까지 배우고 있지만 지키지 않는 세상이다. 미풍양속은 간데 없고 편가르기에만 목숨을 걸고 있는 세태의 볼쌍사나운 모습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다. 정치가 그러하면 문화의 질이 저급스러워 진다. 하근기(下根氣)의 삶을 영위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천박한 모습이 도처에서 노정되고 있지만 한편  선행을 하는 사회의 분위기가 확산 되어 가고 있어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탁한 카오스의 세계가 서서히 시간이 지나야만 코스모스의 세상으로 변하기 때문에 견디어 내기가 힘들 뿐이라는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오랜 세공을 거쳐야 빛을 발하는데 코리아가 지금 그러한 진통중에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대구저널 필자의 칼럼을 읽으시고 후원을 아끼지 않는 애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양질의 칼럼을 써서 보답을 해야 할텐데 졸필에 머물고 있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조복(造福)한 자는 하늘이 그냥 두지를 않을 것이다. 하늘은 형상은 없지만 바른 길을 안내하기 때문이다. 처절한 삶을 살아 온 우리민족이다. 내면에는 타인을 위한 삶의 길이기도 했다. 비우는 삶의 원천은 이웃을 돕는 일이 선행 되어야 할 것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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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29
  • [이경국의 대구춘추 147] 매미-- 絶叫하듯 울음을 토하다
    이경국 칼럼니스트   매미는 대서무렵에 본격적으로 울어 댄다. 다른 곤충이나 새는 노래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매미는 통곡이나 절규(絶叫)를 한다고 표현해야 될 성 싶다. 암컷을 간절하게 불러 들이는 수컷이 절규하듯 울음을 토해내기 때문이다. 매미는 땅속에서 굼뱅이로 7년을 머물다가 곤충으로 변신하여 삼복지간에 나무 위에서 지내는  모양새가 좋은 곤충이다. 수컷 매미와 암컷 방아개비 그리고 장수 잠자리는 모습도 아름다우며 잘 생긴 곤충이다. 매미가 절규하듯 울음을 토해 내는 것은 수컷이다. 암컷을 만나 짝짖기를 하여 代를 이어 가고 싶은 것이 매미의 본성적 욕망이다. 새벽부터 울어대는 구애의 소리가 시끄럽다고 짜증을 내서는 곤란하다. 인간 세상이 전철 소리 등 워낙 시끄럽다 보니 매미의 절규의 소리도 커진다는 분석이다. 매미는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고 복부 근처의 진동막에서 소리를 내는 것이다. 수컷은 모양새도 작고 초라하게 보인다. 암컷 매미는 소리만 듣고도 수컷 매미의 힘을 안다는 것이다. DNA의 분별력은 대단하다. 인간은 맞선을 보다가 지금은 자유연애로 짝을 이루는 시대이다. 상대의 DNA의 힘을 식별하는 힘은 다른 동물보다 열세로 보여진다. 기껏 얼굴이 예쁘다는 미모에 혹하여 마음을 주었다가 돌아서서 후회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인간이다. 오죽했으면 주례를 보는 목사도 신부에게 성서의 순종에 대한 당부의 말씀을 피하거나 생략하는 시대라고 한다. 하기야 절반이 중도에 하차(이혼)해 버리는 시대이니 이해는 간다. 누구나 매미가 우는 절규의 소리를 이해를 하여야 할 것이다. 찬 바람이 불면 짝을 만나지 못한 수컷 매미는 이슬만 먹다가 생애를 쓸쓸하게  마치고 죽게 되는 것이다. 해마다 마당의 감나무에서 울어 대던 매미는 죽은 채 마당에 떨어진다. 소싯적 여름방학 숙제인 곤충채집 생각도 나지만 짝을 이루지 못한 매미가 너무나 측은하게 느껴진다. 화단에 고이 묻어 주면서 매미의 영혼이 안락하길 빌어 본다. 우주의 대윤회를 살펴 본다면 내세에 한번쯤 필자가 수컷 매미로 태어날지 어떻게 알겠나 싶기도 하다. 부처님의 본생기를 보면  전생 547생을 사셨는데 여러 모습의 몸을 받은 것으로 나와 있다. 모양을 갖춘 생명체로 태어나 짝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치는 것이 의외로 많다. 인간의 사랑이 고귀한 이유이기도 하다. 마음만 먹으면 혼인은 하지 않더라도 사랑은 원없이 나눌수 있는 것은 인간만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매미는 인간처럼 바람을 피우지도 못하니 힘 없는 수컷은 한없이 외롭게 보인다. 제발 암컷이 좀 받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한다. 숫컷을 복수로 받아 들이지 못하는 것이 매미세계의 비극인 것이다.  땅속 굼뱅이로 있을 때는 꿈이 있었을 텐데 물거품이 되어 홀로 고독사하는 수컷 메미를 보면 여간 불쌍하지가 않다. 매미의 울음소리는 암컷을 초청하는 절규의 목소리다. 이를 시끄럽게 여기는 도회의 사람들이 있다면 무지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자연질서는 힘으로 윽박지르게 하지는 않는다. 수컷 매미는 선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짝짓기를 방해하지 않는다. 힘을 가다듬어 짝을 부르기 위하여 울음을 토해 내는 것이다. 손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게 한다는 남자의 약속은 애시당초 거짓말이다. 그러나 숫매미는 정직하다. 죽어서 떨어지는 안타까운 수컷 매미를 올해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眞李산우회에서 뚝섬한강 공원을 걷는데 매미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매미는 더워서도 즐거워서 우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암컷을 가까이 할려는 유일한 욕구발로다. 애처롭기 짝이없다. 어머니가 잃어버린 자식을 찿아 절규하는 모습처럼 한여름의 매미소리늗 필자의 마음을 저미게 한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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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22
  • [이경국의 대구춘추 146] 강화도 전등사 나부상(裸婦像)
    이경국 칼럼니스트   강화도는 무수한 문화재가 숨쉬고 있는 ''두껑없는 박물관''으로 지칭 되고 있다. 얼룩진 역사의 흔적도 많이  있긴 하지만 자랑스러운 기록도 산재해 있는 섬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찰인 전등사의 나부상(裸婦像)에 대하여 써 보고 싶다. 참으로 많이 다녔던 강화도이다. 주로 석모도의 보문사에 가거나 아니면 숯가마나 장어집이다. 그리고 쑥을 뜯으러 아내의 친구 부부와 함께 가기도 했다. 강화쑥은 워낙 좋다. 먼저 이영애 시인의 <전등사 나부 상>을 옮겨 본다. 대웅전 처마아래 벌거벗은 나부 상 / 도편수 주모 사랑 믿는 독에 발등찍혀 그 언약 배신감에 만든 나부상 / 무거운 지붕 떠받혀 너 육신 형벌이로다. / 옷을 벗었으니 부끄러워 어찌 도망가랴 / 이제 교활한 추태 더 이상 못 부릴 터 / 천년만년 고달픔 지고 속죄하며 부처님 말씀 듣고 마음 수양하여라 이 시를 읽으면 처마아래 나부상이 연상되어질 것이다. 절을 짓는 도편수와 주막집 여인이 눈이 맞아서 힘든 사찰을 지으면서 밤에는 여인과 회한(悔恨)을 풀면서 정이 쌓이게 되었다. 사찰을 다 지으면 그림같은 집을 지어서 한 백년 살자고 다짐을 하면서 속삭인다. 돈은 생기는 대로 주모에게 맡겨서 보관하게 했다. 사찰을 다 지어갈 무렵 목수는 휘바람을 불면서 주막을 찾았다. 그런데 왠 일인지 평소 사랑을 나누던 방이 말끔히 정리가 되어 있고 주모는 맡겨둔 돈을 듵고 어디론가 도망을 가 버리고 만 것이다. 가슴에 천불이 나면서 앞이 캄캄한 도편수였다. 하는 수 없이 목수는 사찰의 네귀퉁이에다 나부상(裸婦像)을 만들어서 지붕을 떠 받치게 만들었다. 우선 나상의 몸이니 도망을 갈 수가 없다. 얼마나 배신의 쓰라린 마음이었을까? 그리고 주야로 팔이 떨어져라 떠 받치는 형벌이다. 전등사는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필자는 강화도에 간다면 전등사의 네 귀퉁이의 나부상을 보고 오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일부러 보지 않으면 보일리가 없다. 여성의 가장 큰 고문은 옷을 벗기는 것이다. 태생(胎生)가운데 유일하게 인간만이 옷을 입는다. 인간만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름도 부르기 조차 민망하여 그곳을 치부(恥部)라 한다.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을 때 아담과 하와는 치부를 무화과 잎사귀로 가렸다. 이성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탄다는 것이다. 인간의 염치 (廉恥)를 말한다. 지금 사회는 염치도 없고 법치도 무너지고 말았다. 이들을 몽땅 강화도 전등사로 끌고 가서 나부상을 보게 하면서 교육을 시켰으면 싶다. 나부상은 인간에게 전하는 교훈이 있을 것이다. 연인간에 사랑은 남길 수 없으니 다 주더라도 재물은 남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증시격언에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고 한다. 쏟아져 버리면 자기도 모르게 에그 (egg)라고 외치니 공교롭게도 동서양의 발음이 같은 언어이다. 누드의 생활이 자유의 일종인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은 벗고 살다가 직립을 하면서 옷을 입게 되었다. 의식주(衣食住)의 순이다. 옷을 입지 않고는 다닐 수가 없다. 법이 그러하고 수치를 가려야 하기 때문이다. 벗고 산다면 다른 것은 몰라도 저출산의 해소책인 인구는 증가할 것이다. 덩달아 눈도 밝아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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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춘추
    2024-07-15
  • [이경국의 대구춘추 145] 흡연(吸煙)에 관한 소견
    이경국 칼럼니스트    담배만큼 인구에 많이 회자(膾炙) 되는 기호품은 없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필자는 담배를 아예 배우지 않았으니 끊을 기회조차도 없었다. 담배를 피우다 끊고를 반복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 포유류는 그 종류가 많으나 인긴과 호랑이만 담배를 피운다는 것이다. 사찰의 가장 높은 곳에는 산신각(山神閣, 三聖閣)이 있기 마련이다. 산신과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 어쩌면 호랑이는 옛날 얘기에도 많이 등장을 하고 있으니 담배를 피웠을지 모른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 는 옛날이야기를 들먹일 때 쓴다. 호랑이와 도깨비는 인간의 선악에 따라 징벌을 달리하는 영물이다. 도깨비는 우리나라에만 있다. 담배는 인류가 개발한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아이러니 할 뿐만 아니라 요사스러운 제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전매사업으로 국가가 장려하여 엄청난 수익을 올리면서 담뱃각에는 '건강에 해롭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폐암의 주 원인이 되어 건강보험으로 지원을 한다. 툭하면 담배가 인체에 나쁘다고 금연을 위한다면서 그때마다 값을 올리기도 한다. 병주고 약주고를 거듭하는 것은 담배밖에 없다. 세계적인 애연가는 처칠과 임어당이 있고 우리나라는 공초(空草) 오상순이 유명하다. 그들의 담배 사랑은 과히 우주적이다. 담배는 화재의 원인이 되고, 돈이 들고, 건강에 나쁘며, 폐에는 치명적이고, 간접흡연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주머니에 라이타나 성냥은 여간 거북스럽지 않으며 함부로 피우다가는 벌금도 문다. 금연구역이 자꾸만 늘어나는 추세이다. 추운 겨울에 베란다에 쭈구려 앉아서 가족으로 부터도 외면을 당하면서  흡연을 하는 모습은 정말 초라해 보인다. 동병상련이라고 옆집 흡연자와 신호를 보내고 억지 위안을 삼는다고 하니 이쯤되면 가장의 체면도 말이 아니다. 냄새가 지독하다고 아내로부터 경원당하거나 원시인 취급도 받으며 심지어 키스도 외면을 당하는 처지란다. 만약 흡연을 10년을 하였다면 폐가 까맣다. 원위치 시킬려면 15년을 금연을 해도 되지 않는다. 5장 6부 가운데 심장은 특수근육으로 일생을 쉼없이 움직이는 팔자를 타고난 장기이다. 폐는 가장 먼저 움직여야 호흡을 하면서 살 수가 있는 장기로서 폐암은 사망율도 높다. 이같은 불리함이 많은데도 식후에 한대 피우지 않으면 금시 숨이 넘어 간다고 하니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 스모킹이다. 애연가는 하나같이 누구는 담배를 피웠어도 장수했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런 소리는 이치에 맞지 않다고 본다. 노력한다고 전부 에디슨이 될 수는 없다. 금연한다고 모조리 장수하는 것도 아니다. 장수하는 경우도 사유는 많다고 본다. 금연에 성공한 자는 체중이 불어난다. 이는 담배의 독기가 혀를 마비 시켰다가 원위치 되어 5味를 자극하면서 많이 먹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고 본다. 애연가 曰, ''이 모든 악재가 있는 스모킹 이지만 그래도 난 담배가 좋아서 피운다.'' 여기에 대꾸할 말이 있을까? 인간만이 담배를 피우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옛날 이야기에 불과하다. 오죽했으면 담배를 끊어 버리면 금단현상으로 비틀거릴까? 제발 담배는 피우더라도 꽁초는 함부로 버리지 말았으면 싶다. 꽁초의 무단투기는 결코 자유와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40년이 넘게 마을의 길거리를 청소하고 있는데 꽁초가 없는 날이 하루도 없다. 모양도 가늘어서 이쁘고 색체도 좋은데 함부로 버리는 행위는 얄밉다. 그 정도는 유치원만 나오면 알 수 있을텐데 안타깝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흡연자는 대체로 에티켓이 부족하다고 볼 수박에 없을 것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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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춘추
    2024-07-09
  • [이경국의 대구춘추 144 ] 러브버그(Love-Bug)의 극성
    이경국 칼럼니스트   담벼락에 이상한 벌레가 진을 치고 있어서 의문을 지니고 글을 쓴 적이 있다. 몇 년 전부터 보이기 시작한 벌레가 해마다 그 수가 늘어나고 있다. 외국에서 묻어온 벌레가 아닌지 이름조차 알 수가 없다. 며느리가 벌레 이름이 '러브버그'라 알려 준다. 벌레의 이름이 이쁘다. '사랑벌레' 라고  하는데 거의 모든 녀석들은 交尾를 하고 있는 중이다. 교미하면서 날아 다니거나 벽에 가만히 붙어 있다. 며느리는 집안에 모기만 보아도 시어머니를 불러서 잡게한다. 벌레를 무척이나 무서워 하는 편이다. 그런데 러브버그는 괜찮다고 한다. 벌레는 대체로 습생(濕生)인데 어디서 생기는지 잘 모른다. 보기가 싫어서 빗자루로 잡아 버리는데 작으며 힘도 없다. 소리가 나면 도망을 가는데 그러지도 못한다. 꽁무니가 붙어서 짝짓기를 즐긴다. 짝짓기 하는 짐승을 포수는 겨냥하지 않는다 했다. 2세를 위하여 한참 교미중에 있는 것을 잡으려니 여러 생각이 겹친다. 명색이 佛子가 하찮은 미물이지만 생명을 죽인다는 것은 문제라는 생각에 이른다. 기후가 아열대이고 고온다습하여 번식이 왕성하다고 한다. 중국 남부와 대만 그리고 일본의 일부지역에 서식을 하고 있으니 우리나라가 예외 일리는 없다고 본다. 3일 내내 짝짓기를 하다가 수컷은 교미가 끝나면 바로 죽는다. 암컷은 산란하기 위하여 3일 정도 더 산다고 한다. 모든 수컷은 사랑을 하고 싶어 안달아 하지만 사마귀는 교미가 끝나면 바로 암컷의 먹이가 된다. 육보시로 代를 이어 나가는데 살실성인을 하는 셈이다. 가륵한 모습이다. 러그버그는 합동으로 교미를 하는 곤충은 처음 본다. 代를 잇는 본성이 강한지 아니면 짝짓기의 황홀감(?)에 젖어 있는지 빗자루로 쓸어도 떨어지지 않는디. 교미가 끝나면 수컷은 찬연히 戰死하고 만다. 인간은 나이가 들어도 그 순간에 <죽어도 좋다>고 외치는데 미물도 느낌은 있을텐데 잡으려니 여간 미안하지 않다. 수가 워낙 많아서 F-킬러를 뿌렸더니 마구 날아 오른다. 잡을 수 밖에 없는 입장인데 잡지 말고 그냥 두어 볼 생각이다. 어릴 때 보지 못한 종류의 벌레가 많아졌다. 작은 벌레의 생명을 너무나 많이 죽였다. '러브버그'란 이름이 넉자이니 괜히 사자성어가 연상되어 진다. 어제는 무진 많이 잡았더니 아침에는 몇 마리 밖에 보이지 않는다. 씨가 말라 버린가 보다. 물통에 빠져서 허욱적 거리는 벌레는 어떠한 종류의 곤충이든 건져서 살려 주고 있다. 환경을 깨끗하게 하여 벌레가 생기지 않토록 하는 것이 우선인데 생명력이 워낙 강하니 많이 생겨 나고 있다. 잡아서 없애 버리긴 하지만 사실 여간 미안하지가 않다. 생명을 죽이는 행위는 신도오계의 제1계를 지범하는 행위이다. 설사 익충(益蟲)이라고 하여도 벌레는 징그럽기 짝이 없다. 방아개비나 장수 잠자리는 잘 생긴 곤충이기에 보기에도 좋다. 기왕 러브버그도 種을 잘타고 났으면 빗자루에 의한 숨을 다하지는 않을텐데 말이다. 펄벅의 메뚜기 떼의 습격이 없으란 보장이 없다. 그러나 러브버그는 독이 없는 벌레라니 그나마 다행하다는 생각은 든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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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춘추
    2024-07-01
  • [이경국의 대구춘추 143] 너무나 짧은 닭의 수명
    이경국 칼럼니스트   닭은 가금류(家禽類)이며 오랜 세월을 인간과 함께한 대표적인 조류이다. 아마 개와 더불어 인간과 일찍부터 함께 지내온 동물로 여겨진다. 개는 구석기 시대부터 그리고 닭은 신석기 시대부터 인간과 함께 지낸 동물이다. 닭, 오리, 거위 등이 가금류다. 주로 알과 고기를 인간에 주는 날짐승이다. 꿩은 장끼든 까투리든 野性이 워낙 강하여 가금류로 길을 들일 수 없다고 한다. 십년을 먹이를 주고 보살펴 주어도 문이 열리면 도망을 가 버리는 매정한 놈이 꿩이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라 하여 처가에 오면 장모는 씨암탉을 잡는다.    사위는 성(姓)이 달라 반(半)자식 이라 한다. 지금은 장모를 어머니로 부르고 사위가 온자식 행세를 하는 시대이다. 닭은 12지신 가운데 유일한 조류이다. 문무(文武)를 겸하고 있다. 빨간 벼슬은 文을 상징 하고 날카로운 발톱은 武를 나타낸다. 영특하고 영험있는 눈을 지니고 있어 잔칫날에는 날개가 묶인 채 상위에 오른다. 수탉은 여러 마리의 암탉을 거느린다. 대체로 수컷은 암컷앞에서는 꼬리를 내리는데 장탉만은 그러지 않다. 벼슬이 벼슬관(官)을 상징한다. 교미할 때 수컷이 암컷의 작은 벼슬을 물면 꼼짝 없이 당하고 만다. 한번의 교미로 적어도 21일간 유정란을 産하는게 닭이다. 병아리를 품은 어미닭은 사냥개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뱀과 맞서도 물러서질 않는다. 母性愛라는 무서운 힘은 동물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시골의 닭은 행동반경이 넓다. 바닥에 떨어진 모이도 주어 먹고 곤충도 잡아먹고 날개짓도 하면서 지낸다. 저녁 술시에는 횃대에 올라 잠을 잔다. 밸런스 감각이 탁월하여 자다가 떨어지는 경우는 없다. 인간과 다르게 닭은 눈을 아래에서 위로 감는다. 양계장의 좁은 공간에 가두어져 24시간 백열등을 쪼여서 달걀만을 많이 낳게 한다. 날개짓 한번 해 보지도 못하며 수탉과 사랑한번 해보지 못하고 짧은 생을 마치고 육계(肉鷄)로 인간에게 보답한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잔인하기 짝이 없다. 생명체로 태어나서 사랑도 할 수 없는 양계장의 닭은 불운하다. 무정란을 낳다가 생명을 마감하는 불쌍한 생명체다. 그러나 암탉은 똥집도 닭다리도 아낌없이 인간에게 주고 간다. 아마 이러한  모습이 싫어서 눈을 위로 감아 버리는지 모른다. 암탉은 울지는 않으나 알을 낳고선 소리로 알린다. 수탉이 길게 응답을 한다. 닭의 부창부수같게 보인다. 죽음의 순간이 애처롭다. 목을 쳐서 죽이거나 뜨거운 물에 넣어서 정신을 혼절케 한다. 참으로 잔인하게 죽인다. 목을 비틀어서 죽이기도 한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다. 군시절 YS의 일갈 이었다. 마치 죄지은 인간이 화탕지옥에서 당하듯이 닭은 그렇게 죽는다.   닭의 평균 나이는 81세라고 弄談을 한다. 닭은 구구(9*9)라고  부르면 달려 오기 때문이다. 영계(軟鷄)라고 부르면서 인간의 빗나간 사랑도 닭에 비유하고 조두 (鳥頭) 라면서 비하 하기도 한다. 인간이 잘 났다는 착각을 서슴없이 한다. 닭은 시간을 알리는 새벽의 전도사다. 오랜 세월 새벽잠을 깨우게 하여 농사일을 하게 해 주었다. 대낮에도 장탉은 큰 소리로 울면서 위엄을 과시한다. 좁은 공간에서 사육되는 닭은 햇볕도 못 쬐이고 짧은 생을 살다 간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닭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삼복지간에도 삼계탕을 피하고 있다. 이제 닭에게 집단적인 수난이 닥칠 시즌이다. 삼복지간은 삼계탕이 성황을 이루기 때문이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것은 동물들의 억울한 원혼 때문이란 사실을 필자는 알고 있다. 닭은 주인을 알아 본다. 모이를 먹고 어찌 완전식품인 계란을 産하는지 신비롭다. 그리고 알은 지구와 생긴 모습이 같다. 알속에 흰자와 노른자 그리고 공기주머니가 있다. 병아리의 탄생을 위한 조건인 것이다.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올 때는 줄탁동시(啐啄同時)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전세계의 닭은 비슷하게 생겼으며 울음소리도 거의 같은데 서양에서는 그 울음소리가 <콕코두 둘두>로 들린고 한다.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꼬끼오>로 들리니 한글의 의태어와 의성어는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우리집 병아리 노랑 병아리 엄마보다 더 예쁜 노랑 주둥이] 필자의 초등시절에 발표했던 동요다. 닭은 모이를 쪼아 먹는 모습과 암수의 사랑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리고 크게 울 때와 암탉이 알을 낳고서 장탉에게 알리는 소리도 좋다. 닭은 오랜 세월 인간에게 기여한 것이 기하뇨? 천도재(遷度齋)라도 지내주고 싶은 심정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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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24
  • [이경국의 대구춘추 142] 마중물과 불쏘시개
    이경국 칼럼니스트   현대인은 마중물에 대한 고마움을 잘 모르고 있다. 아예 마중물의 의미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을지 모른다. 지금은 수도꼭지만 틀면 냉온수가 언제라도 나오는 편리한 세상이다. 우물의 물을 버지기로 운반하여 물독에 저장하여 사용하던 기간이 실로 길었다. 따뱅이 위에 올려놓고 양손을 놓고도 걸었던 아낙네 들이었다. 그후에 펌프가 생기기 시작 한 것이다. 펌프는 마중물이 있어야 땅속 지하수를 퍼 올릴 수 있다.  한 바가지만 있으면 물을 댕겨 올릴 수 있다. 이것이 마중물이다. 먼데서 오는 戀人을 마나려고 마중을 나가는 순간을 생각해 본다면 마중물의 반가움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물이 물을 부른다. 지하수이니 엄청 차다. 한여름에 등물을 하면 오장이 오싹 오그라 든다. 더위가 수만리 도망가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냉수에 보리밥을 말아서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을 수 있다면 당시에는 중산층이었다. 우리민족이 수천년을 그렇게 살아 왔다. 가난을 숙명으로 여겼던 역사였다. 지금은 쳐다보지도 못하던 일본을 1인당 GNP로도 완전히 앞서게 되었다. 평균수명이 길어진 것은 쌀밥때문도 아니고 그렇다고 의술에 의한 것도 아니다. 인류가 상하수도를 개발하고 수명이 아주 길게 연장이 되었던 것이다. 물과 연관이 있는 문제이다. 물이 생명의 근원이요 지수화풍의 四大이기도 하다. 그리고 불은 불쏘시개로 집집마다 불씨로 불의 생명을 이어 나갔던 것이다. 불씨를 사라지게 하면 시어머니의 성화가 대단했었다. 집안에는 성주(城主)가 있었으며, 불쏘시게는 며느리에게 애지중지하는 것으로 애간장을 태우기도 했던 것이다. 며느리가 시집살이를 하는 것은 불씨때문이란 말이 있다. 불씨는 잿더미 속에서 그 생명을 유지한다. 인류사에 불을 발명하여 인간이 엄청난 발전을 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생식(生食)에서 화식(火食)을 하면서 맛을 알게 되었다. 맹장은 생식(生食)을 할 때는 소화를 시키는 역할을 했지만 음식을 익혀서 먹게 되면서 그 기능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인체에서 그 기능을 상실한 것은 맹장과 포경 그리고 사랑니가 있다. 그것은 별다른 역할이 없더라도 그대로 두어야 할 흔적들이다. 불은 장작불에서 호롱불 그 뒤에는 등불을 쓰다가 전기로 발전했다. 호롱은 안방과 부억을 동시에 쓰도록 작은 광창(光窓)을 벽에 두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석유를 아끼려는 대단한 지혜로 보이는 것이 광창이다. 이렇게 물과 불은 상극이지만 쌀은 물을 만나서 불을 때면 밥으로 되는 것이다. 물과 불은 상극이지만 상생의 관계다. 어쩌면 부부사이도 그러할 지 모른다. 호랑이가 살던 밀림에는 등(燈)이 중요했다. 등대가 항해의 길잡이가 되듯이 석등(石燈)은 위치를 알려주는  방향등이었다. 연등의 의미는 무한하다. 자등명(自燈明)과 법등명 (法燈명)의 의미를 깨우치고 마중물과 불쏘시개의 뜻을 안다면 지혜의 길로 들어 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기는 밤과 낮의 의미를 없애 버리고 말았다. 天氣와 地氣를 모르고 산다. 뒤바꾸어 사는 사람도 많다. 밤이 대명천지같이 밝다. 쪽박과 대박은 상극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소나무와 아카시아나무와 같다. 상생관계의 인간이 되도록 부단히 신경을 써야 할 때가 지금이다. 同族임을 입에 달고 사는  종북 나부랭이들은 主敵을 그저 편들고  있으니 국민정서가 매말라만 가는 것이다. 그들에게 마중물의 의미가 가슴에 닿을리가 없을 것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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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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