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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91-마지막] 주막(酒幕)에 대한 추억
이경국 칼럼니스트 흔히 주막은 문패도 없고 번지수도 없다고 말한다. 삿갓하나 놓으면 딱 맞을 땅도 주인이 있으면 이름이 있기 마련인데 말이다. 문패는 없을지 모르겠지만 번짓수는 당연히 있다. 소싯적 필자의 시골은 큰밭, 굴밭, 변달밭, 팽나무논 등으로 이름이 있었다. 대체로 주막은 촌부들의 시름을 달래는 사랑방 같은 곳으로 장날에 만나서 거나하게 한잔 하는 곳이다.안주거리는 보잘 것 없어도 시끌벅쩍한 대화로 힘든 농사일의 수고를 잊는 날이었다.지금은 전국적으로 주막은 거의 사라져 버렸는데 경북 예천에 있는 삼강주막(三江酒幕)은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는 명소이다.고향에서 지근에 있는 이 주막은 주소가 예천군 인데 일부(화장실?)는 안동시로 되어 있다니 재미있는 번지다. 숱한 얘기를 지니고 있는 주막으로 유명하며 관광명소이기도 하다.애환이 서려있는 이 주막은 정이 넘치는 곳이기도 하다.주막의 주인은 한글을 전혀 몰랐으나 자기만의 표기로 외상을 관리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客이 그 주막을 이용했을까?주모를 두고 질펀한 농을 건네기도 하고 쌈지주머니에 돈이 없어도 외상이라고 큰소리를 쳤던 인심이 넉넉했던 시절의 모습이 느껴진다.얼큰한 탁주 한 사발에 세상 시름은 사라지고 부러울게 없어진다. 사실 술은 명약이기도 하지만 과하면 독약이나 극약이 되기도 했다. 주막에서 마시는 잔에는 애환이 담겨져 있다. 포장마차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필자도 술이 조금 강한 편에 속한다. 술은 각박한 세상을 일시 잊게 해 주는 마력(魔力)이 있어서 좋다.지난해 장수1위는 술이라고 UN에서 공식 발표를 했다. 깜짝 놀랐다. 부족한듯 마시면 천하제일의 명약이다. 술은 술술 마시더라도 결국 자제력을 잃기 쉽다.젓가락 장단에 조금은 슬픈 트롯 메들리로 정겹게 부르던 < 니나노>가 사라진 세상이다. 그때가 좋긴 했었다. 애환을 달래 주면서 노래하는 여인들의 절박한 신세타령은 눌물짓게도 하였다.주막집 아줌마는 온동리 남정네의 연인이었다.세상을 온통 디지털로 살기에는 너무나 각박 하다. 스마트폰으로 하는 약속보다는 담너머로 신호를 보내면 달빛에 젖어서 눈치를 봐 가면서 나오던 갑순이의 모습이 더욱 정겨웠던 시절이 좋았다. [ 이번 글로 긴 여정의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2020년 9월 1일부터 2025년 5월 26일까지 5여년의 기간에 총 247회의 칼럼을 집필하였습니다. 어줍잖은 제 글을 때로는 열독과 애독으로 아껴 주신 <대구저널>의 모든 애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해외에 계신 많은 작가분들의 향수를 달래어 준다는 얘기는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습니다. 돌이켜 보니 너무나 긴 세월이었습니다. 원고 청탁에 한번도 늦은 적이 없었으니 스스로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구저널의 이현식 대표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正道를 지키는 지역 언론으로 더욱 발전하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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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90] 가슴에 뜨는 남모르는 무지개
이경국 칼럼니스트 무지개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필자는 무지개는 물론이고 쌍무지개도 좋아합니다.한때 <무지개동자>로 부르시던 장박사님은 고인이 되셔서 하와이 가족묘지에 안치되어 있는데 한번 찾아 뵙기가 쉽지가 않습니다.창랑 장택상 총리의 따님이시니 정치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무진 많이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무지개는 '레인보우'이니 마른 하늘에는 생겨날 수는 없습니다. 색깔도 7가지로 육안으로 구분할 수가 있습니다. 쌍무지개는 그 색깔이 무지개와 반대로 나타납니다.무지개의 보이지 않는 색깔의 의미를 알아야만 무지개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봅니다.귀한 것은 스쳐 지나기 마련입니다. 첫사랑이 그러하고 무지개도 그러하다고 봅니다.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일생동안 뇌의 작은 분실에 저장이 되어 가끔씩 씁쓰레한 웃음속에서 떠 오를 것입니다.소싯적에 무지개는 작게 보였는데 지금은 한 눈에 볼 수가 없을 정도로 크기도 합니다. 해마다 무지개도 조금씩 자라는가 봅니다.가수 이용복은 무지개를 볼 수는 없었지만 가슴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눈을 감으면 저 멀리서'' 제목이 <그 얼굴에 햇살을>인데 차라리 <무지개 타고 오네>가 좋을 듯 합니다.아마 맹인가수이니 앞이 보이지는 않지만 얼굴에 햇살을 받고 싶어서 부른 노래가 아닐까 싶습니다.헬렌 캘러는 <3일만 볼 수 있다면>에서 감동적인 것을 남기었습니다. 얼마나 세상의 빛과 그리고 무지개가 보고 싶었겠어요. 눈물이 나는 대목입니다.건강한 모습의 몸을 어머니께 받았는데도 세상에는 불효자 많습니다. 며칠 동안 비가 내리면 무지개는 뜨지 않습니다.소나기가 내리고 쨍하게 태양이 보일 때 무지개가 뜨면 감동적으로 다가 옵니다.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운데 그저 많이 가질려는 욕심이 앞서 너무나 지저분한 모습입니다.소욕지족(少慾知足)의 청빈으로 살아 가면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울 것입니다.어떤 연유로 제게 무지개동자로 부르면서 이쁜 명함도 새겨 주셨는데 그 많은 명함도 간 곳 없이 사라져 버렸으며, 장박사께서는 향년 90세에 떠나 셨습니다.일본 여행을 가서 필자는 크게 호강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의 재벌이 초대를 했는데 동행을 했기 때문 입니다.무지개는 오래 머무르지 않기에 더욱 아름답게 보입니다. 달을 보고 詩作을 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떨어지는 운석(雲石) 에는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비싸기 때문입니다.천민자본주의가 꽃을 피우고 있는 시대이니 눈에 보이는 물신(物神)에 혹(酷)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릅니다.무지개는 소망을 담고 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연인간에 인연이 다하거나 아니면 오해로 인하여 갈라선 처지 일지라도 석삼년까지 기별을 막히게 한다면 너무나 가혹할 것입니다.누군가 무지개를 보면서 마음을 되돌리어 곁으로 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비단구두를 신거나 무지개를 타고 온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아니면 달빛에 젖은 채로 찾아도 마냥 반기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을 것입니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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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89] 보리밭의 추억들
이경국 칼럼니스트 보리밭은 연상되어지는 것들이 무척 많기 마련이다. 물론 농촌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추억이 있을 턱이 없을 것이다. 논에서 경작하는 벼와 밭에서 재배하는 보리는 어렵던 시절이나 지금도 우리민족의 主食으로 삼았던 귀하고도 귀한 식량이다. 과식하여 사우나나 찜질방에서 땀을 빼는 현대인은 배고파 허리가 휜 그때의 세상을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없으니 역사는 강건너 저 편의 일이 되고 말았다. 푸른 보리싹을 훑어서 풀떼기 죽을 써 먹던 시절은 눈물겨운 일이다. 가장 넘기가 힘든 고개는 <깔딱고개>가 아닐 것이다. 바로 <보리고개> 였다. 그러나 지금은 <청보리 축제>로 온통 난리법석을 떠는 세상이 되었다. 가곡 <보리밭>을 눈을 지긋이 감고 들어 보면 소시절의 추억이 금시 곁으로 다가와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축제와 향락에 깊이 빠져들면 근로를 기피하고 더 짜릿한 감각세계를 갈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망국의 조짐이 나타나면 지도자가 필요한데 그들이 주지육림에 빠져 버리면 나라가 망해 버린 경우가 많았다. 인류의 역사는 대체로 그렇게 망했다. 전쟁보다는 향락과 역병으로 소멸이 되었으니 무서운 일이다. 지나친 퍼주기식 포플리즘은 국가가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권력은 이를 암암리에 정책이라면서 백성을 속인다. 우민한 백성은 속으면서 몇푼의 돈으로 그만 깊은 수렁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보리밭을 보면 생각이 많이 난다. 보리피리와 보리의 에이즈인 깜북이 병이 떠 오른다. 여인숙도 귀한 시절엔 보리밭에 숨어서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마루밑에 잠자고 있는 애꿎은 개만 부짓깽이로 주인에게 혼나기도 했던 추억이 스친다. 당시의 개는 개취급을 받았던 때였다. 아버지와 마당에서 도리깨로 보리타작을 할 때면 부자간의 장단은 대단하였다. 보리의 깔끄래기(까끄라기의 방언)는 찬물로 등물을 하여야 했다. 아버지 등물을 많이도 해 드렸고 아버지께서도 저의 등을 밀어 주셨다. 지금은 이런 사랑은 간 곳 없이지고 그저 아버지의 지갑만 넘 보는 못된 사회가 되고 말았다. 유산을 노리는 자녀가 너무나 많은 시대이다. 아! 그립다. 땡볕에서 보리 타작을 하던 추억의 색채는 밀레의 그림을 연상시키게 한다. 아버지께서는 멀리서 어머니와 함께 증손주인 승준이와 승아 그리고 라은이의 자라나는 모습을 보시고 흐뭇해 하고 계실 것이다. 보리타작을 할 무렵에는 보릿짚으로 여치집을 만든다. 한낮이 되면 여치의 울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맥향(麥香)일렁이는 보리밭을 보면서 막연한 청운의 꿈이 크기만 했는데 돌이켜 보면 추억이 남달리 많은 편이었다. 가난으로 찌든 시절의 보리밥의 추억은 가슴이 아픈 기억이지만 지금은 <청보리축제>로 연인들이 모여드는 세상이다. 최빈국에서 최정상의 부유한 나라가 되었는데 어떠한 지도자와 국민이 허리가 휘어지게 일을 했는지는 역사의 교훈으로 남겨져야 할 것이다. 보리의 모습과 벼는 완전히 다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보리는 고개를 바짝 쳐들고 만다. 벼는 따뜻한 계절에 못자리에서 태양을 보면서 자란다. 그러나 보리는 엄동설한의 혹한의 밭에에서 고생을 해야하는 작물이다. 아마 그러한 보상으로 태양을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을까 싶다. 보리밥은 대나무 그릇에 담아서 밥쁘제 (보자기의 방언) 로 덮어서 파리가 앉지 못하게 한다. 냉수에 말아서 풋고추를 찍어서 자그마치 5000년을 견디었던 우리민족의 아픈 역사이기도 하다. 과소비로 휘청거리면 살림은 기울어 지기 마련인데 저축보다는 소비를 엔조이하듯 즐기는 세태이니 걱정이 따른다. 현대인은 건강식이라고 꽁보리밥을 찾기는 하고 있지만 보리에 대한 추억을 모르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보릿고개는 시골 뒷산의 고개가 아니다. 우리 민족의 피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는 미아리고개 같은 <눈물의 고개> 이다. 그러나 이제는 두 고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보릿고개는 축제의 마당이 되었으며, 미아리 고개는 온갖 꽃이 피는 희망의 고개로 변하였다. 보리로는 맥주를 만든다. 쌀로는 쌀막걸리를 만든다. 보리와 쌀의 깊은 의미를 되새겨 보았으면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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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88] 서방질과 계집질
이경국 칼럼니스트 어미(語尾)에 질字가 들어가면 조금은 깔아서 보는 비하적인 느낌이 든다. 사(師, 士)字에 비하여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비속어는 변화가 많이 되었다. 차장은<안내양> 으로 부르는데 무인시대 인지라 안내양을 보기가 쉽지 않다. 숙박하는 곳이 무인이라니 세월의 격세지감을 느낀다. 한 때 주소를 기록하는데 한군데는 틀리게 적는다는 친구의 말에 박장대소 했던 기억이 난다. 고속도로가 생기자 말자 안내양을 보기 위하여 일부러 고속버스를 타 본 사람도 있었다. 스튜디어스와는 육지를 달리는 초고속 버스의 안내양은 그 느낌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식모는 <가정부>로 불러지게 되었다. 처가댁에는 오래 함께 살던 가정부가 있었는데 시집을 보낼 때 아내와 똑 같이 혼수를 해 준 기억이 난다. 나더러 형부라 부르던 마음씨 고운 아가씨가 지금은 연락조차 두절이 된 상태다. 직업에 질字를 붙이면 비하적인 표현이다. 갑질도 기분이 접히는 단어이다. 특히 <서방질과 계집질> 은 아내와 남편이 있지만 외간 다른 짝과 바람을 피운다는 것이다. 님자는 본래 바람을 피우는 존재이다. 종족보존을 빌미로 여기고 있는데 그럴 듯한 핑계에 할 말을 잊어 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여성은 바람 나기가 쉽잖은 일인데 ''홧김에 서방질을 해 버린다''고 한다. 이는 남편이 평소에 애를 태우기 때문에 견디지 못하여 그만 앙값픔을 하기 위하여 즉흥적으로 저질러 버리는 행위가 아닐까 싶다. 대체로 학창시절 가슴에 담아 두었던 동창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한 때 옛 친구를 찾아주는 '동창사이트'가 불티가 나게 인기가 있었다. 이는 꽃뱀에게 당하는 사기를 미연에 방지 하겠다는 믿음이 선행 되기 때문일 것이다. 계집질이나 서방질은 가정의 울타리가 허물어지는 행위다. 따라서 각자의 단속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홧김에 저질러 버리는 행위는 후회가 따르기 마련이다. 어머니께서는 참을 忍字를 세번 생각하라고 당부하셨다. 그리고 객지에서는 ''단도리를 잘하여야 한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이는 노자의 '도덕경'이나 테스형의 ''너 자신을 알라''보다 필자에게 훨씬 더 마음에 와 닿기도 하며, 큰 영향을 주신 어머니셨다. 어머니께서 남긴 명문어록(?)의 말씀이 많으시다고 아내도 몇번이나 얘기를 한다. 금과옥조같은 말씀이셨다. 몇가지 얘를 든다면, 어머니는 키가 작으신 편이었으나 7남매 모두 키가 큰 편이다. 누군가 그러한 것을 말했나 보다. 어머니의 명답으로 샹대를 압도하셨다. 세상에 ''키가 크다고 하늘의 별을 딸 수도 없으며, 키가 작다고 개미한테 코를 물린 사람도 없다''고 하신 것이다. 아무리 별을 따기 위하여 달에 먼저 이른다 하더라도 별을 딸 수가 없을 것이다. 장대가 그렇게 길 수 없다. 닉슨대통령과 등소평이 만나서 등소평의 키가 어깨에도 미치지 못하니 눈치빠른 등소평이 말하기를 ''하늘에서 보면 자기가 더 크다''고 했다. 때로는 한 마디의 위트나 유머로서 상대의 양코 (서양인의 높은 코)를 팍 죽이는 지혜가 필요 하다고 본다. 인간의 자존심은 때에 따라서는 사소한 일에 상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도회로 나가서 돈을 벌어서 귀향하면 '농장을 경영한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사실 농사면 어떻고 농장경영이면 어떻다는 말인가? 일상이 지루하다고 일탈을 해 보고 싶겠지만 正道의 길이 아니라면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게 될 것이다. 성난다고 바위를 차도 안될 것이다. 홧김에 <서방질>도 같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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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87] 여성의 가슴 사이는 좁다
이경국 칼럼니스트 아무리 건장한 여성 일지라도 가슴 사이는 좁다. 이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면서 애기가 한쪽 손으르 다른 젖꼭지를 만지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모유를 먹이는 것이 가장 좋은데 분유의 편리함을 선택하고 있는 세상이다. 인성의 기초는 여기서 허물어 지고 만다. 소젖을 먹이면 고무 젖꼭지와 가슴의 젖 꼭지는 실로 엄청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도 34억 축생 가운데 인간의 産道가 가장 좁기 때문에 아기와 어머니가 교감이 많이 되는 순간이라 한다. 제왕이 하던 재왕절개 수술을 지금은 누구나 하고 있다. 더러 수중 분만으로 통증을 줄이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기는 하다. 무통주사로 분만시 통증을 없애게 하니 출산의 고통이 옛과 다르다. 인류는 출산을 하면서 애기가 죽거나 산모가 죽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시대는 왕비의 생명을 앗아 가기도 했다. 명의도 소용이 없었다. 사실 여성의 저고리는 남자가 도저히 입을 수 없다. 인체는 신의 명품이긴 하지만 여성의 가슴은 단순한 성기능의 유방과 다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자주 고름 입에물고 입만 빵긋하면서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여성은 천사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 설사 여성의 손은 일을 많이 하여 거북등같이 거칠게 보인다 해도 천사의 손 (angel-hand) 으로 손색이 없다고 본다. 모든 여성은 어머니의 모습을 품고 있다. 그렇게 생각해야 평화가 유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History'로 남성으로 대우를 해 주지만 노도가 일고 쓰나미를 일으키는 험한 바다를 여성인 'She'로 표현한 것은 의미가 크다고 본다. 바다는 생명의 모태이다. 천혜의 혜택을 인간에게 줄 뿐만 아니라 3%의 염분으로 부패를 방지 하고 소금은 황금 만큼이나 귀하기 때문이다. 어머니 성품을 닮아서 강물은 바다에 이르면 압록강이니 낙동강이니 다투질 않는다. 어머니는 가슴이 좁지만 세상을 품기에 넓기만 하다. 사랑이 좋아서 세상은 사랑타령을 많이 하고 있지만 필자는 <어머니> (엄마)란 단어를 <사랑> 보다 우위에 두고 싶다. 그리고 모성애를 능가할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의 본성도 무진 강하다. 산불이 나면 꿩은 새끼와 함께 불에 타서 죽는다. 어미는 새끼를 두고서 날아가 버리지 않는다. 이보다 짙은 감동은 어쩌면 인간 사회도 드문 일일 것이다. 도덕, 도의, 바른 생활을 배우고 종교를 믿고 살고 있지만 인간만이 자식을 버린다. 이역만리 해외입양을 시켜버리기도 한다. 미혼모이거나 바리지 않는 출산이면 멀리 보내어 흔적을 지워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인연줄을 끊어 버린다고 죄책감 없이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양심이 없다면 금수(禽獸)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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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86] 밤에만 피는 꽃들
이경국 칼럼니스트 꽃은 거의 낮에 핀다. 태양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며 벌과 나비를 유혹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아예 해바라기는 태양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 키도 가장 큰 편이다. 태양과 더 가까이 하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달빛이 좋아서 밤에만 피는 꽃이 있다. 박꽃과 달맞이 꽃이 대표적이다. 달맞이는 아예 달을 연인처럼 섬기는 모습이다. 이름자체가 '맞이 한다'는 것이다. 박꽃은 역시 초가 지붕위에 피어야 운치가 있어 보인다. 草家가 사라져 버렸으니 제비도 오지 않고 운치있는 박꽃도 볼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흰색은 백설기 색이기도 하며, 어쩌면 춘향의 허벅지도 박꽃같이 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밤에 피는 꽃은 거의 흰색이다. 아마 벌, 나비, 나방의 눈에 쉽게 뜨이게 하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이 아닐까 싶다. 꿀을 취하여 가지만 않는다. 암술과 수술을 중개하여 꽃가루를 전달하여 代를 이어 나가게 도와 준다. 아무리 못생긴 꽃이라드 빠뜨리지 않는다고 하니 감동적이다. 야심한 밤에 피는 꽃은 의외로 많다. 야래향, 선인장, 재스민, 치자나무, 목련, 꽃담배 등이 夜花이다. 흰색이니 알리기도 쉽겠지만 향기도 짖게 풍긴다. 낮에는 꽃이 닫히는 특성이 있다. 특히 야래향(夜來香)은 향기가 짙을 뿐만아니라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애잔한 생각이 들면서 먼저 간 친구가 보고 싶어진다. 주현미가 부른 노래가 압권이다. 나방이나 박쥐도 꽃가루를 옮기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文人은 밤을 좋아하고 밤꽃을 좋아한다. 이제는 달을 보고 시를 쓰지 않는 시대이다. 인간이 달을 정복(?) 하고 부터는 달보다는 떨어지는 운석(隕石)의 가치에 신경을 쓰고 있다. 이태백이 지하에서 통곡(痛哭)을 할지 모를 일이다. 夜花는 흰색이거나 노란색이다. 그리고 자기만의 짙은 향으로 중개를 유인하는 것이다. 주고 받으면서 상생을 통하여 윈윈하는 자연의 조화로운 모습을 보노라면 괜히 숙연해 지면서 경외감이 인다. 조기 대선에는 숱한 비방과 험악한 언어가 등장할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고 역지사지 하라는 배려의 마음은 정치판에서는 아예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로지 권력에만 혈안이 되어 상대를 죽이고 싶은 생각이니 그들은 천상에 가는 것은 애시당초 포기 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파스칼이 갈파한 지상은 꿏이 있어서 아름답다 했다. 천상의 별은 공해로 볼 수 조차 없는 세상이다. 가슴의 사랑조차 고갈이 되어 건조하니 여간 답답지가 않다. 정치인에게는 아예 文.史.哲이 없다. 특히 역사관이 없으니 목전의 이익에만 정신이 쏠려 있는 지경이다. 대통령 후보자가 콩나물 시루의 콩나물처럼 고개를 들이 밀고 있는데 일종의 후보공해다. 흥행으로 관심을 높인다고 하는데 웃기는 일이다. 야심한 밤에 피어나는 꽃을 보면서 선한 기운이 들도록 심성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그들의 급선무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꽃은 지구촌 어디에서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피운다. 열사의 사막에서도 선인장을 꽃피워 전갈과 벗을 하고 있으며, 엄동의 혹한에도 설중매가 피어 인간에게 감동을 전해 주고 있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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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51] 타지마할 묘--관광의 비애
- 이경국 칼럼니스트 인도의 북부 아그라 지역에 인류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타지마할 묘가 있다. 당연히 인도의 유명관광 명소다. 무굴제국의 5대 황제인 사 자한과 그의 왕후의 무덤이다. 사 자한은 영토확장을 위한 원정길에 부인을 대동하고 다녔던 것이다. 그만큼 사랑을 했으니 무덤을 그렇게도 아름답게 꾸민 것이다. 이는 고려 공민왕이 노국공주를 사랑한 것과 거의 닮았다는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만삭인 문다프 마할 왕비는 막사에서 아기를 낳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무래도 전장의 의료시설은 낙후 되었을 것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서 타지마할 묘를 완공하고 난 후에는 공사에 가담한 인부들의 손목을 다 짤라 버리도록 명령한 시대의 아픔이 있었다. 그 보다 더 아름다운 건축물을 지을까 두려움 때문이었다. 만리장성을 쌓아 놓고 불멸하고자 불로초를 구하게 했던 진시왕도 백성의 아픔을 모르면서 영화를 누리려 한 자이다. 분서갱유 (焚書坑儒)만 하더라도 역사에 영구히 비난받아 마땅하다. 자기가 부인을 사랑했다고 백성에게 죽을 고생을 시키는 작태는 인문학 수준이 낮은 독재자의 전형이다. 이집트의 피라미트도 영생을 기원하는 무덤이다. 건축기술이 불가사의하다. 흑인을 일일 3교대로 공사를 시켰는데 양파를 먹였다는 기록이 있다. 10만명의 인부가 20년 동안 건축하여 완성시킨 피라미드였다. 2.5톤짜리 돌이 230만 개나 필요했으니 상상을 초월한다. 다만 그 안에는 섞지 않는 <히란야>라는 빛을 발하고 있으니 아마 신과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타지마할은 아름다운 대리석의 명품이고 역작이지만 김정숙이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여행삼아 세금을 물쓰듯 하면서 다녀와 인구에 회자(膾炙)되고 있는 모습이 꼴불견이고 역겹다. 무덤은 퇴계선생이나 드골처럼 본봉을 작게 만들어 소박한 정신을 유산으로 남기는 것이 역사의 자랑일 것이다. 무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정신이 중요하다. 인도의 야쇼카 왕은 영토를 통일한 후 전쟁때 사용했던 무기로 쟁기를 만들고 평화를 구가하는 시대를 열었다. 부처님 입멸후 사리 (舍利)를 8나라에 모시게 했는데 이를 회수하여 8만4천 사리탑에 배분하여 모시게 했던 것이다. 한 나라의 사리는 그대로 두었다고 기록에 있다. 청평의 聖地에는 타지마할 묘 못지 않는 아름다운 대리석 궁이 있다. 타 종교를 배척하지 않고 초종교를 근간으로 참부모의 사랑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매장의 풍습이 사라지면서 화장중심으로 바뀌어 간다. 조상의 산소를 가볍게 여기면서 부모의 은공을 소홀히 하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 어머니를 종교로 여기는 마음이 바탕으로 되어 있는 가정은 번창한다는 것이 필자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타지마할에 몸치장을 하고서 싸돌아 다니는 가벼운 행동을 한 철들지 못한 國母의 탈을 쓰긴 하였지만 食母처럼 여기는 세상을 보니 안타까운 나머지 칼럼을 장황하게 써 본 것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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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51] 타지마할 묘--관광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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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50] 제사(祭祀)문화에 대한 소고(小考)
- 이경국 칼럼니스트 나라마다 전통이 있고 미풍양속이 있기 마련이다. 시대조류에 밀리어 사라져 가는 風俗이 눈에 띄게 많다. 사실 여간 아쉽지 않다. 가가호호 제사는 방식과 절차가 상이하다고 본다. 간소화 시키는 것은 몰라도 필요없다고 치부하는 것은 당치 않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우선 나라마다 장례의 모습이 다르다. 우리 나라는 儒家의 풍습으로 매장(埋葬)을 많이 하였으나 여러 사유로 지금은 화장 (火葬)을 선호하고 있다. 나라에 따라서 조장(鳥葬), 풍장(風葬), 수장 (水葬)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 그리고 무덤도 다양하다. 우리나라는 왕릉의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피라미트도 능이요. 타지마할도 묘다. 영구불멸을 꿈꾸는 인간은 제정일치(祭政一治)라 하여 제사와 정치를 같게 보았던 것이다. 중국에서는 무리한 제사로 인하여 왕조가 망하기도 하였다. 나라나 개인이나 형편에 따라 제사를 지내어야 한다. 추석때는 아예 해외 관광을 떠나 버리거나 아니면 유원지 콘도에서 구입한 제수로 차례를 지내기도 한다. 근본적으로 孝는 백행의 기본이요, 부모자식은 천륜으로 이어지기에 孝는 종교적으로도 중요하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한다. 십계명에도 신도오계에도 강조하고 있다. 어머니 젖을 3년이나 먹었으면 돌아 가시면 3년상을 치루게 하였다. 시묘살이도 하였으며 그 정성은 대단하였다. 지금은 부모님이 돌아 가시면 당일 탈상에 부의금 배분으로 형제가 다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까마귀는 동물가운데 유일하게 어미의 공을 안다고 한다. 반포지효 (反哺之孝)는 새끼때 어미가 물어다 준 먹이의 공을 잊지 않고서 자라서 어미가 나이들면 새끼 까마귀가 보은을 한다니 감동적인 모습이다. 부모님께 효를 극진히 하거나 산소를 잘 돌보는 가문이 번창하는 경우를 많이 목격한다. 조상이 후손을 돌보는 음덕 (陰德)은 상상을 초월 한다고 필자는 주장하고 싶다. 불효를 하는 자가 떵떵거리는 것은 그나마 전생의 복통장의 잔고를 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잔고가 바닥이 나면 걸뱅이 신세의 노숙자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이다. 인과응보는 무시할 수가 없다고 보며, 선업선과도 무시해서는 안된다. 인연법은 묘하다. 자기 편리대로 지구에서 산다면 곤란하다. 어차피 인간이 지구와 인연을 맺었다면 <고해의 바다>를 헤쳐 나가야 하는 운명에 처하는데 험로역정을 벗어나서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제사를 귀찮게 여긴다면 어느 하늘에서 그런 자에게 복을 내린다는 말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聖人은 혹독한 자기 연마로 인류로부터 추앙받고 있으며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옥토가 아니고 박토(薄土)에서 이루어 낸 것이다. 따라서 생존시에는 효를 다하고 떠나신 후에는 제사를 성의껏 모시는 것이 복을 받는 지름길임을 간과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모든 나라가 조상을 숭상히 여기면서 제사를 잘 모시고 있다. 선진국은 더욱 더하다. 우리나라는 하늘을 믿었던 민족으로 제사를 잘 받들기도 했다. 그리고 세계인의 모든 종교나 의식에는 그 저변에 기복신앙(祈福信仰)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신이란 모름지기 인간을 위한 존재이기 때문에 福과 화(禍)를 동시에 지닌 야누스의 얼굴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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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50] 제사(祭祀)문화에 대한 소고(小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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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49] 간이역(簡易驛)의 애환
- 이경국 칼럼니스트 간이역을 보기란 여간 쉽지 않는 세상이다. <간이역>이란 이름은 추억속의 아련하게 남아 있는 고향의 어딘가를 연상케 하는 이름이다. 마치 '기차길옆 오막살이' 나 '언덕위의 초가삼간' 같이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느낌이다. 역장이 없는 곳도 많다고 한다. 스피드 시대에 열차도 속도가 비행기 수준으로 빨라지게 되었다. 소싯적에는 안동에서 중앙선을 타고 종착역인 청량리역에 내리면 시간도 많이 걸렸을 뿐만 아니라 무연탄으로 움직이는 증기열차여서 콧구멍이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죽령재는 4km나 되는 따비굴이다. 가차도 숨이 차는지 기적소리도 요란했다. 지금은 뱃고동 소리도 사라져 버린 시대라 한다. 마을마다 예배당의 종소리를 들어 본 적이 오래 되었을 것이다. 다만 산사의 사찰에서 울리는 종소리만 간혹 들릴 뿐이다. 공해때문이란다. 정서가 메말란 사막에 살고 있는듯 하니 살벌한 세상만 같다. 이웃은 4촌인데 지금은 18촌도 넘을 것이다. 사라져 가는 간이역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곳이 24개나 된다. 필자는 서대문 신촌역사에 있는 간이역을 자주 접하는 편이다. 이는 제136호로 경의선 신촌역사에 옛시절 간이역과 현대식 역이 앞뒤로 공존하고 있어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마치 晩年을 보내고 있는 初老가 까마득한 시절의 첫사랑 연인과 사랑이 희석되어 가족으로 지내고 있는 현재의 아내모습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詩心은 현대판 고급 역에서 일어나기 보다는 작고 낡은 간이역에서 떠 오를 것이다. 흔히 비행기 여행을 문명이라 하고 기차 여행을 문화라고 칭하는데 그 역은 간이역이 아닐까 싶다. 필자의 族親이고 항렬(行列)도 같은 이희국 시인이 <간이역에서(At Halt station)>란 영한시집을 발간하였다. 이 시집은 세계의 20여개 나라의 잡지와 언론에 알려진 50여 편의 시를 싣고 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도 극찬을 하는 추천사를 보내오다. 필자는 藥師 시인인 이희국 시인과 교류를 활발히 하고 있는 편이다. 시에서 섬광(閃光)을 느끼면 시인의 천재성을 엿보게 한다. 문정희 시인을 마냥 좋아하고 있는데 이 시인의 사상의 폭이 어디까지 인지 짐작을 가늠할 수 없는 지경이다. 간이역은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고 철없던 시절의 고향의 디딜방아나 맥향 일렁이는 보리밭을 연상시키는 포근함을 품고 있는 어휘이다. 간이역은 작고 볼품이 없는 규모이긴 하지만 정신문화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민족의 보석같은 곳이다. 조만간 친구와 함께 신촌 간이역에 가서 상념에 빠져 보고싶다. 40년 넘게 서대문구에서 살아 왔으니 신촌 간이역과 안산(鞍山)은 필자의 뇌리에 작은 분실을 차지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로 세계를 제패한 일본의 상술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우리나라는 큰 것만을 추구하는 속성이 있는 민족이다. 나라도 대한민국이다. 한강의 모든 다리는 대교 (Grand bridge)로 부른다. 작은 것은 아예 무시해 버린다. 오를 때 못 본 꽃은 내려 올 때도 보지 못한다. 작다고 무시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간이역이 눈에 보일리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한다. 작은 가시가 목에 걸리고 맹수인 사자가 죽으면 작은 사자충이 갉아 먹는다. 미분의 원리는 무섭게 작용하다. 텅빈 허공의 원리를 중요시하는 이유이다. 팔등신 미인보다 품안에 안기는 작은 미인을 선호하는 남자는 깨친 사람이 아닐까 싶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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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49] 간이역(簡易驛)의 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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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48]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무루법
- 이경국 칼럼니스트 인간의 삶은 洋의 東西를 불문하고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삶이 아름답기 마련이다. 대체로 서양의 기업풍토는 기부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에다 민족자본의 열세로 말미암아 상속중심의 족벌제제로 이루어 온 특색이 있다고 본다. 인류의 성인은 하나같이 남을 위한 길을 걸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스스로 공부하여 깨달았으며, 말은 많이 하였으나 글은 남기지 않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인류를 위하여 가장 큰 보시를 했다고 필자는 주장하고 싶다. 눈에 보이는 물질만이 보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금강경(Diamond-sutra)에 남을 돕더라도 돕는다는 마음조차 없이 도와야 한다는 <무주상보시>가 있다. 금강경을 흔히 <다이아몬드경>이라 칭한다. 다이아몬드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물체이다. 그러나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에 의하여 잘리어진다.'' (Diamond is to be cut by diamond) 사실 금보다 애착을 지니는 다이아 몬드도 실체는 흑연에 불과하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남을 도우려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이를 유루법(有漏法)이라 한다. 그러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도 모르게 하라''는 무루법(無漏법)을 강조하고 싶다. 이는 인간사회의 생색내기가 심하기 때문에 일종의 경고이기도 할 것이다. 자만심없이 자비심으로 보시하길 강조하고 있다. 절에서 보시(布施)를 하거나 예배당에서 헌금(獻金)의 금액을 신도들에게 공표하거나 게시 등 공시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평생을 굶주리면서 큰돈을 모아서 죽으면서 좋은 일에 써달라고 기부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 나고 있다. 우리민족의 선행의 표본이다. 이는 자식은 반듯하게 교육을 시키면 된다는 깨달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매마른 우리사회는 재산으로 형제가 불목하면서 때에 따라선 견원지간으로 변한다. 도대체 돈이란 무엇인가? 이는 인문학적 사고의 결핍에 따른 무지의 소치(所致)로 밖에 더이상 설명할 길이 없다. 다만 모든 신가운데 물신(物神)만이 육안으로 보이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머니가 주머니에 가득하면 할머니도 좋아한다는 우수개 소리도 있다. 인간은 살만하면 바벨탑을 쌓거나 영토확장을 위하여 전쟁을 불사하는 비평화적인 요소가 농후한 동물의 기질이 있다. 윤리와 도덕 바른생활까지 배우고 있지만 지키지 않는 세상이다. 미풍양속은 간데 없고 편가르기에만 목숨을 걸고 있는 세태의 볼쌍사나운 모습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다. 정치가 그러하면 문화의 질이 저급스러워 진다. 하근기(下根氣)의 삶을 영위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천박한 모습이 도처에서 노정되고 있지만 한편 선행을 하는 사회의 분위기가 확산 되어 가고 있어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탁한 카오스의 세계가 서서히 시간이 지나야만 코스모스의 세상으로 변하기 때문에 견디어 내기가 힘들 뿐이라는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오랜 세공을 거쳐야 빛을 발하는데 코리아가 지금 그러한 진통중에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대구저널 필자의 칼럼을 읽으시고 후원을 아끼지 않는 애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양질의 칼럼을 써서 보답을 해야 할텐데 졸필에 머물고 있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조복(造福)한 자는 하늘이 그냥 두지를 않을 것이다. 하늘은 형상은 없지만 바른 길을 안내하기 때문이다. 처절한 삶을 살아 온 우리민족이다. 내면에는 타인을 위한 삶의 길이기도 했다. 비우는 삶의 원천은 이웃을 돕는 일이 선행 되어야 할 것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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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48]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무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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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47] 매미-- 絶叫하듯 울음을 토하다
- 이경국 칼럼니스트 매미는 대서무렵에 본격적으로 울어 댄다. 다른 곤충이나 새는 노래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매미는 통곡이나 절규(絶叫)를 한다고 표현해야 될 성 싶다. 암컷을 간절하게 불러 들이는 수컷이 절규하듯 울음을 토해내기 때문이다. 매미는 땅속에서 굼뱅이로 7년을 머물다가 곤충으로 변신하여 삼복지간에 나무 위에서 지내는 모양새가 좋은 곤충이다. 수컷 매미와 암컷 방아개비 그리고 장수 잠자리는 모습도 아름다우며 잘 생긴 곤충이다. 매미가 절규하듯 울음을 토해 내는 것은 수컷이다. 암컷을 만나 짝짖기를 하여 代를 이어 가고 싶은 것이 매미의 본성적 욕망이다. 새벽부터 울어대는 구애의 소리가 시끄럽다고 짜증을 내서는 곤란하다. 인간 세상이 전철 소리 등 워낙 시끄럽다 보니 매미의 절규의 소리도 커진다는 분석이다. 매미는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고 복부 근처의 진동막에서 소리를 내는 것이다. 수컷은 모양새도 작고 초라하게 보인다. 암컷 매미는 소리만 듣고도 수컷 매미의 힘을 안다는 것이다. DNA의 분별력은 대단하다. 인간은 맞선을 보다가 지금은 자유연애로 짝을 이루는 시대이다. 상대의 DNA의 힘을 식별하는 힘은 다른 동물보다 열세로 보여진다. 기껏 얼굴이 예쁘다는 미모에 혹하여 마음을 주었다가 돌아서서 후회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인간이다. 오죽했으면 주례를 보는 목사도 신부에게 성서의 순종에 대한 당부의 말씀을 피하거나 생략하는 시대라고 한다. 하기야 절반이 중도에 하차(이혼)해 버리는 시대이니 이해는 간다. 누구나 매미가 우는 절규의 소리를 이해를 하여야 할 것이다. 찬 바람이 불면 짝을 만나지 못한 수컷 매미는 이슬만 먹다가 생애를 쓸쓸하게 마치고 죽게 되는 것이다. 해마다 마당의 감나무에서 울어 대던 매미는 죽은 채 마당에 떨어진다. 소싯적 여름방학 숙제인 곤충채집 생각도 나지만 짝을 이루지 못한 매미가 너무나 측은하게 느껴진다. 화단에 고이 묻어 주면서 매미의 영혼이 안락하길 빌어 본다. 우주의 대윤회를 살펴 본다면 내세에 한번쯤 필자가 수컷 매미로 태어날지 어떻게 알겠나 싶기도 하다. 부처님의 본생기를 보면 전생 547생을 사셨는데 여러 모습의 몸을 받은 것으로 나와 있다. 모양을 갖춘 생명체로 태어나 짝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치는 것이 의외로 많다. 인간의 사랑이 고귀한 이유이기도 하다. 마음만 먹으면 혼인은 하지 않더라도 사랑은 원없이 나눌수 있는 것은 인간만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매미는 인간처럼 바람을 피우지도 못하니 힘 없는 수컷은 한없이 외롭게 보인다. 제발 암컷이 좀 받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한다. 숫컷을 복수로 받아 들이지 못하는 것이 매미세계의 비극인 것이다. 땅속 굼뱅이로 있을 때는 꿈이 있었을 텐데 물거품이 되어 홀로 고독사하는 수컷 메미를 보면 여간 불쌍하지가 않다. 매미의 울음소리는 암컷을 초청하는 절규의 목소리다. 이를 시끄럽게 여기는 도회의 사람들이 있다면 무지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자연질서는 힘으로 윽박지르게 하지는 않는다. 수컷 매미는 선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짝짓기를 방해하지 않는다. 힘을 가다듬어 짝을 부르기 위하여 울음을 토해 내는 것이다. 손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게 한다는 남자의 약속은 애시당초 거짓말이다. 그러나 숫매미는 정직하다. 죽어서 떨어지는 안타까운 수컷 매미를 올해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眞李산우회에서 뚝섬한강 공원을 걷는데 매미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매미는 더워서도 즐거워서 우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암컷을 가까이 할려는 유일한 욕구발로다. 애처롭기 짝이없다. 어머니가 잃어버린 자식을 찿아 절규하는 모습처럼 한여름의 매미소리늗 필자의 마음을 저미게 한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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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47] 매미-- 絶叫하듯 울음을 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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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46] 강화도 전등사 나부상(裸婦像)
- 이경국 칼럼니스트 강화도는 무수한 문화재가 숨쉬고 있는 ''두껑없는 박물관''으로 지칭 되고 있다. 얼룩진 역사의 흔적도 많이 있긴 하지만 자랑스러운 기록도 산재해 있는 섬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찰인 전등사의 나부상(裸婦像)에 대하여 써 보고 싶다. 참으로 많이 다녔던 강화도이다. 주로 석모도의 보문사에 가거나 아니면 숯가마나 장어집이다. 그리고 쑥을 뜯으러 아내의 친구 부부와 함께 가기도 했다. 강화쑥은 워낙 좋다. 먼저 이영애 시인의 <전등사 나부 상>을 옮겨 본다. 대웅전 처마아래 벌거벗은 나부 상 / 도편수 주모 사랑 믿는 독에 발등찍혀 그 언약 배신감에 만든 나부상 / 무거운 지붕 떠받혀 너 육신 형벌이로다. / 옷을 벗었으니 부끄러워 어찌 도망가랴 / 이제 교활한 추태 더 이상 못 부릴 터 / 천년만년 고달픔 지고 속죄하며 부처님 말씀 듣고 마음 수양하여라 이 시를 읽으면 처마아래 나부상이 연상되어질 것이다. 절을 짓는 도편수와 주막집 여인이 눈이 맞아서 힘든 사찰을 지으면서 밤에는 여인과 회한(悔恨)을 풀면서 정이 쌓이게 되었다. 사찰을 다 지으면 그림같은 집을 지어서 한 백년 살자고 다짐을 하면서 속삭인다. 돈은 생기는 대로 주모에게 맡겨서 보관하게 했다. 사찰을 다 지어갈 무렵 목수는 휘바람을 불면서 주막을 찾았다. 그런데 왠 일인지 평소 사랑을 나누던 방이 말끔히 정리가 되어 있고 주모는 맡겨둔 돈을 듵고 어디론가 도망을 가 버리고 만 것이다. 가슴에 천불이 나면서 앞이 캄캄한 도편수였다. 하는 수 없이 목수는 사찰의 네귀퉁이에다 나부상(裸婦像)을 만들어서 지붕을 떠 받치게 만들었다. 우선 나상의 몸이니 도망을 갈 수가 없다. 얼마나 배신의 쓰라린 마음이었을까? 그리고 주야로 팔이 떨어져라 떠 받치는 형벌이다. 전등사는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필자는 강화도에 간다면 전등사의 네 귀퉁이의 나부상을 보고 오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일부러 보지 않으면 보일리가 없다. 여성의 가장 큰 고문은 옷을 벗기는 것이다. 태생(胎生)가운데 유일하게 인간만이 옷을 입는다. 인간만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름도 부르기 조차 민망하여 그곳을 치부(恥部)라 한다.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을 때 아담과 하와는 치부를 무화과 잎사귀로 가렸다. 이성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탄다는 것이다. 인간의 염치 (廉恥)를 말한다. 지금 사회는 염치도 없고 법치도 무너지고 말았다. 이들을 몽땅 강화도 전등사로 끌고 가서 나부상을 보게 하면서 교육을 시켰으면 싶다. 나부상은 인간에게 전하는 교훈이 있을 것이다. 연인간에 사랑은 남길 수 없으니 다 주더라도 재물은 남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증시격언에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고 한다. 쏟아져 버리면 자기도 모르게 에그 (egg)라고 외치니 공교롭게도 동서양의 발음이 같은 언어이다. 누드의 생활이 자유의 일종인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은 벗고 살다가 직립을 하면서 옷을 입게 되었다. 의식주(衣食住)의 순이다. 옷을 입지 않고는 다닐 수가 없다. 법이 그러하고 수치를 가려야 하기 때문이다. 벗고 산다면 다른 것은 몰라도 저출산의 해소책인 인구는 증가할 것이다. 덩달아 눈도 밝아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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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46] 강화도 전등사 나부상(裸婦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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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45] 흡연(吸煙)에 관한 소견
- 이경국 칼럼니스트 담배만큼 인구에 많이 회자(膾炙) 되는 기호품은 없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필자는 담배를 아예 배우지 않았으니 끊을 기회조차도 없었다. 담배를 피우다 끊고를 반복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 포유류는 그 종류가 많으나 인긴과 호랑이만 담배를 피운다는 것이다. 사찰의 가장 높은 곳에는 산신각(山神閣, 三聖閣)이 있기 마련이다. 산신과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 어쩌면 호랑이는 옛날 얘기에도 많이 등장을 하고 있으니 담배를 피웠을지 모른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 는 옛날이야기를 들먹일 때 쓴다. 호랑이와 도깨비는 인간의 선악에 따라 징벌을 달리하는 영물이다. 도깨비는 우리나라에만 있다. 담배는 인류가 개발한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아이러니 할 뿐만 아니라 요사스러운 제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전매사업으로 국가가 장려하여 엄청난 수익을 올리면서 담뱃각에는 '건강에 해롭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폐암의 주 원인이 되어 건강보험으로 지원을 한다. 툭하면 담배가 인체에 나쁘다고 금연을 위한다면서 그때마다 값을 올리기도 한다. 병주고 약주고를 거듭하는 것은 담배밖에 없다. 세계적인 애연가는 처칠과 임어당이 있고 우리나라는 공초(空草) 오상순이 유명하다. 그들의 담배 사랑은 과히 우주적이다. 담배는 화재의 원인이 되고, 돈이 들고, 건강에 나쁘며, 폐에는 치명적이고, 간접흡연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주머니에 라이타나 성냥은 여간 거북스럽지 않으며 함부로 피우다가는 벌금도 문다. 금연구역이 자꾸만 늘어나는 추세이다. 추운 겨울에 베란다에 쭈구려 앉아서 가족으로 부터도 외면을 당하면서 흡연을 하는 모습은 정말 초라해 보인다. 동병상련이라고 옆집 흡연자와 신호를 보내고 억지 위안을 삼는다고 하니 이쯤되면 가장의 체면도 말이 아니다. 냄새가 지독하다고 아내로부터 경원당하거나 원시인 취급도 받으며 심지어 키스도 외면을 당하는 처지란다. 만약 흡연을 10년을 하였다면 폐가 까맣다. 원위치 시킬려면 15년을 금연을 해도 되지 않는다. 5장 6부 가운데 심장은 특수근육으로 일생을 쉼없이 움직이는 팔자를 타고난 장기이다. 폐는 가장 먼저 움직여야 호흡을 하면서 살 수가 있는 장기로서 폐암은 사망율도 높다. 이같은 불리함이 많은데도 식후에 한대 피우지 않으면 금시 숨이 넘어 간다고 하니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 스모킹이다. 애연가는 하나같이 누구는 담배를 피웠어도 장수했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런 소리는 이치에 맞지 않다고 본다. 노력한다고 전부 에디슨이 될 수는 없다. 금연한다고 모조리 장수하는 것도 아니다. 장수하는 경우도 사유는 많다고 본다. 금연에 성공한 자는 체중이 불어난다. 이는 담배의 독기가 혀를 마비 시켰다가 원위치 되어 5味를 자극하면서 많이 먹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고 본다. 애연가 曰, ''이 모든 악재가 있는 스모킹 이지만 그래도 난 담배가 좋아서 피운다.'' 여기에 대꾸할 말이 있을까? 인간만이 담배를 피우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옛날 이야기에 불과하다. 오죽했으면 담배를 끊어 버리면 금단현상으로 비틀거릴까? 제발 담배는 피우더라도 꽁초는 함부로 버리지 말았으면 싶다. 꽁초의 무단투기는 결코 자유와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40년이 넘게 마을의 길거리를 청소하고 있는데 꽁초가 없는 날이 하루도 없다. 모양도 가늘어서 이쁘고 색체도 좋은데 함부로 버리는 행위는 얄밉다. 그 정도는 유치원만 나오면 알 수 있을텐데 안타깝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흡연자는 대체로 에티켓이 부족하다고 볼 수박에 없을 것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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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45] 흡연(吸煙)에 관한 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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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44 ] 러브버그(Love-Bug)의 극성
- 이경국 칼럼니스트 담벼락에 이상한 벌레가 진을 치고 있어서 의문을 지니고 글을 쓴 적이 있다. 몇 년 전부터 보이기 시작한 벌레가 해마다 그 수가 늘어나고 있다. 외국에서 묻어온 벌레가 아닌지 이름조차 알 수가 없다. 며느리가 벌레 이름이 '러브버그'라 알려 준다. 벌레의 이름이 이쁘다. '사랑벌레' 라고 하는데 거의 모든 녀석들은 交尾를 하고 있는 중이다. 교미하면서 날아 다니거나 벽에 가만히 붙어 있다. 며느리는 집안에 모기만 보아도 시어머니를 불러서 잡게한다. 벌레를 무척이나 무서워 하는 편이다. 그런데 러브버그는 괜찮다고 한다. 벌레는 대체로 습생(濕生)인데 어디서 생기는지 잘 모른다. 보기가 싫어서 빗자루로 잡아 버리는데 작으며 힘도 없다. 소리가 나면 도망을 가는데 그러지도 못한다. 꽁무니가 붙어서 짝짓기를 즐긴다. 짝짓기 하는 짐승을 포수는 겨냥하지 않는다 했다. 2세를 위하여 한참 교미중에 있는 것을 잡으려니 여러 생각이 겹친다. 명색이 佛子가 하찮은 미물이지만 생명을 죽인다는 것은 문제라는 생각에 이른다. 기후가 아열대이고 고온다습하여 번식이 왕성하다고 한다. 중국 남부와 대만 그리고 일본의 일부지역에 서식을 하고 있으니 우리나라가 예외 일리는 없다고 본다. 3일 내내 짝짓기를 하다가 수컷은 교미가 끝나면 바로 죽는다. 암컷은 산란하기 위하여 3일 정도 더 산다고 한다. 모든 수컷은 사랑을 하고 싶어 안달아 하지만 사마귀는 교미가 끝나면 바로 암컷의 먹이가 된다. 육보시로 代를 이어 나가는데 살실성인을 하는 셈이다. 가륵한 모습이다. 러그버그는 합동으로 교미를 하는 곤충은 처음 본다. 代를 잇는 본성이 강한지 아니면 짝짓기의 황홀감(?)에 젖어 있는지 빗자루로 쓸어도 떨어지지 않는디. 교미가 끝나면 수컷은 찬연히 戰死하고 만다. 인간은 나이가 들어도 그 순간에 <죽어도 좋다>고 외치는데 미물도 느낌은 있을텐데 잡으려니 여간 미안하지 않다. 수가 워낙 많아서 F-킬러를 뿌렸더니 마구 날아 오른다. 잡을 수 밖에 없는 입장인데 잡지 말고 그냥 두어 볼 생각이다. 어릴 때 보지 못한 종류의 벌레가 많아졌다. 작은 벌레의 생명을 너무나 많이 죽였다. '러브버그'란 이름이 넉자이니 괜히 사자성어가 연상되어 진다. 어제는 무진 많이 잡았더니 아침에는 몇 마리 밖에 보이지 않는다. 씨가 말라 버린가 보다. 물통에 빠져서 허욱적 거리는 벌레는 어떠한 종류의 곤충이든 건져서 살려 주고 있다. 환경을 깨끗하게 하여 벌레가 생기지 않토록 하는 것이 우선인데 생명력이 워낙 강하니 많이 생겨 나고 있다. 잡아서 없애 버리긴 하지만 사실 여간 미안하지가 않다. 생명을 죽이는 행위는 신도오계의 제1계를 지범하는 행위이다. 설사 익충(益蟲)이라고 하여도 벌레는 징그럽기 짝이 없다. 방아개비나 장수 잠자리는 잘 생긴 곤충이기에 보기에도 좋다. 기왕 러브버그도 種을 잘타고 났으면 빗자루에 의한 숨을 다하지는 않을텐데 말이다. 펄벅의 메뚜기 떼의 습격이 없으란 보장이 없다. 그러나 러브버그는 독이 없는 벌레라니 그나마 다행하다는 생각은 든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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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44 ] 러브버그(Love-Bug)의 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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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43] 너무나 짧은 닭의 수명
- 이경국 칼럼니스트 닭은 가금류(家禽類)이며 오랜 세월을 인간과 함께한 대표적인 조류이다. 아마 개와 더불어 인간과 일찍부터 함께 지내온 동물로 여겨진다. 개는 구석기 시대부터 그리고 닭은 신석기 시대부터 인간과 함께 지낸 동물이다. 닭, 오리, 거위 등이 가금류다. 주로 알과 고기를 인간에 주는 날짐승이다. 꿩은 장끼든 까투리든 野性이 워낙 강하여 가금류로 길을 들일 수 없다고 한다. 십년을 먹이를 주고 보살펴 주어도 문이 열리면 도망을 가 버리는 매정한 놈이 꿩이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라 하여 처가에 오면 장모는 씨암탉을 잡는다. 사위는 성(姓)이 달라 반(半)자식 이라 한다. 지금은 장모를 어머니로 부르고 사위가 온자식 행세를 하는 시대이다. 닭은 12지신 가운데 유일한 조류이다. 문무(文武)를 겸하고 있다. 빨간 벼슬은 文을 상징 하고 날카로운 발톱은 武를 나타낸다. 영특하고 영험있는 눈을 지니고 있어 잔칫날에는 날개가 묶인 채 상위에 오른다. 수탉은 여러 마리의 암탉을 거느린다. 대체로 수컷은 암컷앞에서는 꼬리를 내리는데 장탉만은 그러지 않다. 벼슬이 벼슬관(官)을 상징한다. 교미할 때 수컷이 암컷의 작은 벼슬을 물면 꼼짝 없이 당하고 만다. 한번의 교미로 적어도 21일간 유정란을 産하는게 닭이다. 병아리를 품은 어미닭은 사냥개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뱀과 맞서도 물러서질 않는다. 母性愛라는 무서운 힘은 동물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시골의 닭은 행동반경이 넓다. 바닥에 떨어진 모이도 주어 먹고 곤충도 잡아먹고 날개짓도 하면서 지낸다. 저녁 술시에는 횃대에 올라 잠을 잔다. 밸런스 감각이 탁월하여 자다가 떨어지는 경우는 없다. 인간과 다르게 닭은 눈을 아래에서 위로 감는다. 양계장의 좁은 공간에 가두어져 24시간 백열등을 쪼여서 달걀만을 많이 낳게 한다. 날개짓 한번 해 보지도 못하며 수탉과 사랑한번 해보지 못하고 짧은 생을 마치고 육계(肉鷄)로 인간에게 보답한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잔인하기 짝이 없다. 생명체로 태어나서 사랑도 할 수 없는 양계장의 닭은 불운하다. 무정란을 낳다가 생명을 마감하는 불쌍한 생명체다. 그러나 암탉은 똥집도 닭다리도 아낌없이 인간에게 주고 간다. 아마 이러한 모습이 싫어서 눈을 위로 감아 버리는지 모른다. 암탉은 울지는 않으나 알을 낳고선 소리로 알린다. 수탉이 길게 응답을 한다. 닭의 부창부수같게 보인다. 죽음의 순간이 애처롭다. 목을 쳐서 죽이거나 뜨거운 물에 넣어서 정신을 혼절케 한다. 참으로 잔인하게 죽인다. 목을 비틀어서 죽이기도 한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다. 군시절 YS의 일갈 이었다. 마치 죄지은 인간이 화탕지옥에서 당하듯이 닭은 그렇게 죽는다. 닭의 평균 나이는 81세라고 弄談을 한다. 닭은 구구(9*9)라고 부르면 달려 오기 때문이다. 영계(軟鷄)라고 부르면서 인간의 빗나간 사랑도 닭에 비유하고 조두 (鳥頭) 라면서 비하 하기도 한다. 인간이 잘 났다는 착각을 서슴없이 한다. 닭은 시간을 알리는 새벽의 전도사다. 오랜 세월 새벽잠을 깨우게 하여 농사일을 하게 해 주었다. 대낮에도 장탉은 큰 소리로 울면서 위엄을 과시한다. 좁은 공간에서 사육되는 닭은 햇볕도 못 쬐이고 짧은 생을 살다 간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닭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삼복지간에도 삼계탕을 피하고 있다. 이제 닭에게 집단적인 수난이 닥칠 시즌이다. 삼복지간은 삼계탕이 성황을 이루기 때문이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것은 동물들의 억울한 원혼 때문이란 사실을 필자는 알고 있다. 닭은 주인을 알아 본다. 모이를 먹고 어찌 완전식품인 계란을 産하는지 신비롭다. 그리고 알은 지구와 생긴 모습이 같다. 알속에 흰자와 노른자 그리고 공기주머니가 있다. 병아리의 탄생을 위한 조건인 것이다.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올 때는 줄탁동시(啐啄同時)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전세계의 닭은 비슷하게 생겼으며 울음소리도 거의 같은데 서양에서는 그 울음소리가 <콕코두 둘두>로 들린고 한다.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꼬끼오>로 들리니 한글의 의태어와 의성어는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우리집 병아리 노랑 병아리 엄마보다 더 예쁜 노랑 주둥이] 필자의 초등시절에 발표했던 동요다. 닭은 모이를 쪼아 먹는 모습과 암수의 사랑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리고 크게 울 때와 암탉이 알을 낳고서 장탉에게 알리는 소리도 좋다. 닭은 오랜 세월 인간에게 기여한 것이 기하뇨? 천도재(遷度齋)라도 지내주고 싶은 심정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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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43] 너무나 짧은 닭의 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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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42] 마중물과 불쏘시개
- 이경국 칼럼니스트 현대인은 마중물에 대한 고마움을 잘 모르고 있다. 아예 마중물의 의미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을지 모른다. 지금은 수도꼭지만 틀면 냉온수가 언제라도 나오는 편리한 세상이다. 우물의 물을 버지기로 운반하여 물독에 저장하여 사용하던 기간이 실로 길었다. 따뱅이 위에 올려놓고 양손을 놓고도 걸었던 아낙네 들이었다. 그후에 펌프가 생기기 시작 한 것이다. 펌프는 마중물이 있어야 땅속 지하수를 퍼 올릴 수 있다. 한 바가지만 있으면 물을 댕겨 올릴 수 있다. 이것이 마중물이다. 먼데서 오는 戀人을 마나려고 마중을 나가는 순간을 생각해 본다면 마중물의 반가움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물이 물을 부른다. 지하수이니 엄청 차다. 한여름에 등물을 하면 오장이 오싹 오그라 든다. 더위가 수만리 도망가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냉수에 보리밥을 말아서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을 수 있다면 당시에는 중산층이었다. 우리민족이 수천년을 그렇게 살아 왔다. 가난을 숙명으로 여겼던 역사였다. 지금은 쳐다보지도 못하던 일본을 1인당 GNP로도 완전히 앞서게 되었다. 평균수명이 길어진 것은 쌀밥때문도 아니고 그렇다고 의술에 의한 것도 아니다. 인류가 상하수도를 개발하고 수명이 아주 길게 연장이 되었던 것이다. 물과 연관이 있는 문제이다. 물이 생명의 근원이요 지수화풍의 四大이기도 하다. 그리고 불은 불쏘시개로 집집마다 불씨로 불의 생명을 이어 나갔던 것이다. 불씨를 사라지게 하면 시어머니의 성화가 대단했었다. 집안에는 성주(城主)가 있었으며, 불쏘시게는 며느리에게 애지중지하는 것으로 애간장을 태우기도 했던 것이다. 며느리가 시집살이를 하는 것은 불씨때문이란 말이 있다. 불씨는 잿더미 속에서 그 생명을 유지한다. 인류사에 불을 발명하여 인간이 엄청난 발전을 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생식(生食)에서 화식(火食)을 하면서 맛을 알게 되었다. 맹장은 생식(生食)을 할 때는 소화를 시키는 역할을 했지만 음식을 익혀서 먹게 되면서 그 기능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인체에서 그 기능을 상실한 것은 맹장과 포경 그리고 사랑니가 있다. 그것은 별다른 역할이 없더라도 그대로 두어야 할 흔적들이다. 불은 장작불에서 호롱불 그 뒤에는 등불을 쓰다가 전기로 발전했다. 호롱은 안방과 부억을 동시에 쓰도록 작은 광창(光窓)을 벽에 두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석유를 아끼려는 대단한 지혜로 보이는 것이 광창이다. 이렇게 물과 불은 상극이지만 쌀은 물을 만나서 불을 때면 밥으로 되는 것이다. 물과 불은 상극이지만 상생의 관계다. 어쩌면 부부사이도 그러할 지 모른다. 호랑이가 살던 밀림에는 등(燈)이 중요했다. 등대가 항해의 길잡이가 되듯이 석등(石燈)은 위치를 알려주는 방향등이었다. 연등의 의미는 무한하다. 자등명(自燈明)과 법등명 (法燈명)의 의미를 깨우치고 마중물과 불쏘시개의 뜻을 안다면 지혜의 길로 들어 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기는 밤과 낮의 의미를 없애 버리고 말았다. 天氣와 地氣를 모르고 산다. 뒤바꾸어 사는 사람도 많다. 밤이 대명천지같이 밝다. 쪽박과 대박은 상극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소나무와 아카시아나무와 같다. 상생관계의 인간이 되도록 부단히 신경을 써야 할 때가 지금이다. 同族임을 입에 달고 사는 종북 나부랭이들은 主敵을 그저 편들고 있으니 국민정서가 매말라만 가는 것이다. 그들에게 마중물의 의미가 가슴에 닿을리가 없을 것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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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42] 마중물과 불쏘시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