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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91-마지막] 주막(酒幕)에 대한 추억
이경국 칼럼니스트 흔히 주막은 문패도 없고 번지수도 없다고 말한다. 삿갓하나 놓으면 딱 맞을 땅도 주인이 있으면 이름이 있기 마련인데 말이다. 문패는 없을지 모르겠지만 번짓수는 당연히 있다. 소싯적 필자의 시골은 큰밭, 굴밭, 변달밭, 팽나무논 등으로 이름이 있었다. 대체로 주막은 촌부들의 시름을 달래는 사랑방 같은 곳으로 장날에 만나서 거나하게 한잔 하는 곳이다.안주거리는 보잘 것 없어도 시끌벅쩍한 대화로 힘든 농사일의 수고를 잊는 날이었다.지금은 전국적으로 주막은 거의 사라져 버렸는데 경북 예천에 있는 삼강주막(三江酒幕)은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는 명소이다.고향에서 지근에 있는 이 주막은 주소가 예천군 인데 일부(화장실?)는 안동시로 되어 있다니 재미있는 번지다. 숱한 얘기를 지니고 있는 주막으로 유명하며 관광명소이기도 하다.애환이 서려있는 이 주막은 정이 넘치는 곳이기도 하다.주막의 주인은 한글을 전혀 몰랐으나 자기만의 표기로 외상을 관리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客이 그 주막을 이용했을까?주모를 두고 질펀한 농을 건네기도 하고 쌈지주머니에 돈이 없어도 외상이라고 큰소리를 쳤던 인심이 넉넉했던 시절의 모습이 느껴진다.얼큰한 탁주 한 사발에 세상 시름은 사라지고 부러울게 없어진다. 사실 술은 명약이기도 하지만 과하면 독약이나 극약이 되기도 했다. 주막에서 마시는 잔에는 애환이 담겨져 있다. 포장마차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필자도 술이 조금 강한 편에 속한다. 술은 각박한 세상을 일시 잊게 해 주는 마력(魔力)이 있어서 좋다.지난해 장수1위는 술이라고 UN에서 공식 발표를 했다. 깜짝 놀랐다. 부족한듯 마시면 천하제일의 명약이다. 술은 술술 마시더라도 결국 자제력을 잃기 쉽다.젓가락 장단에 조금은 슬픈 트롯 메들리로 정겹게 부르던 < 니나노>가 사라진 세상이다. 그때가 좋긴 했었다. 애환을 달래 주면서 노래하는 여인들의 절박한 신세타령은 눌물짓게도 하였다.주막집 아줌마는 온동리 남정네의 연인이었다.세상을 온통 디지털로 살기에는 너무나 각박 하다. 스마트폰으로 하는 약속보다는 담너머로 신호를 보내면 달빛에 젖어서 눈치를 봐 가면서 나오던 갑순이의 모습이 더욱 정겨웠던 시절이 좋았다. [ 이번 글로 긴 여정의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2020년 9월 1일부터 2025년 5월 26일까지 5여년의 기간에 총 247회의 칼럼을 집필하였습니다. 어줍잖은 제 글을 때로는 열독과 애독으로 아껴 주신 <대구저널>의 모든 애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해외에 계신 많은 작가분들의 향수를 달래어 준다는 얘기는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습니다. 돌이켜 보니 너무나 긴 세월이었습니다. 원고 청탁에 한번도 늦은 적이 없었으니 스스로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구저널의 이현식 대표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正道를 지키는 지역 언론으로 더욱 발전하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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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90] 가슴에 뜨는 남모르는 무지개
이경국 칼럼니스트 무지개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필자는 무지개는 물론이고 쌍무지개도 좋아합니다.한때 <무지개동자>로 부르시던 장박사님은 고인이 되셔서 하와이 가족묘지에 안치되어 있는데 한번 찾아 뵙기가 쉽지가 않습니다.창랑 장택상 총리의 따님이시니 정치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무진 많이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무지개는 '레인보우'이니 마른 하늘에는 생겨날 수는 없습니다. 색깔도 7가지로 육안으로 구분할 수가 있습니다. 쌍무지개는 그 색깔이 무지개와 반대로 나타납니다.무지개의 보이지 않는 색깔의 의미를 알아야만 무지개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봅니다.귀한 것은 스쳐 지나기 마련입니다. 첫사랑이 그러하고 무지개도 그러하다고 봅니다.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일생동안 뇌의 작은 분실에 저장이 되어 가끔씩 씁쓰레한 웃음속에서 떠 오를 것입니다.소싯적에 무지개는 작게 보였는데 지금은 한 눈에 볼 수가 없을 정도로 크기도 합니다. 해마다 무지개도 조금씩 자라는가 봅니다.가수 이용복은 무지개를 볼 수는 없었지만 가슴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눈을 감으면 저 멀리서'' 제목이 <그 얼굴에 햇살을>인데 차라리 <무지개 타고 오네>가 좋을 듯 합니다.아마 맹인가수이니 앞이 보이지는 않지만 얼굴에 햇살을 받고 싶어서 부른 노래가 아닐까 싶습니다.헬렌 캘러는 <3일만 볼 수 있다면>에서 감동적인 것을 남기었습니다. 얼마나 세상의 빛과 그리고 무지개가 보고 싶었겠어요. 눈물이 나는 대목입니다.건강한 모습의 몸을 어머니께 받았는데도 세상에는 불효자 많습니다. 며칠 동안 비가 내리면 무지개는 뜨지 않습니다.소나기가 내리고 쨍하게 태양이 보일 때 무지개가 뜨면 감동적으로 다가 옵니다.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운데 그저 많이 가질려는 욕심이 앞서 너무나 지저분한 모습입니다.소욕지족(少慾知足)의 청빈으로 살아 가면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울 것입니다.어떤 연유로 제게 무지개동자로 부르면서 이쁜 명함도 새겨 주셨는데 그 많은 명함도 간 곳 없이 사라져 버렸으며, 장박사께서는 향년 90세에 떠나 셨습니다.일본 여행을 가서 필자는 크게 호강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의 재벌이 초대를 했는데 동행을 했기 때문 입니다.무지개는 오래 머무르지 않기에 더욱 아름답게 보입니다. 달을 보고 詩作을 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떨어지는 운석(雲石) 에는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비싸기 때문입니다.천민자본주의가 꽃을 피우고 있는 시대이니 눈에 보이는 물신(物神)에 혹(酷)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릅니다.무지개는 소망을 담고 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연인간에 인연이 다하거나 아니면 오해로 인하여 갈라선 처지 일지라도 석삼년까지 기별을 막히게 한다면 너무나 가혹할 것입니다.누군가 무지개를 보면서 마음을 되돌리어 곁으로 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비단구두를 신거나 무지개를 타고 온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아니면 달빛에 젖은 채로 찾아도 마냥 반기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을 것입니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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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89] 보리밭의 추억들
이경국 칼럼니스트 보리밭은 연상되어지는 것들이 무척 많기 마련이다. 물론 농촌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추억이 있을 턱이 없을 것이다. 논에서 경작하는 벼와 밭에서 재배하는 보리는 어렵던 시절이나 지금도 우리민족의 主食으로 삼았던 귀하고도 귀한 식량이다. 과식하여 사우나나 찜질방에서 땀을 빼는 현대인은 배고파 허리가 휜 그때의 세상을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없으니 역사는 강건너 저 편의 일이 되고 말았다. 푸른 보리싹을 훑어서 풀떼기 죽을 써 먹던 시절은 눈물겨운 일이다. 가장 넘기가 힘든 고개는 <깔딱고개>가 아닐 것이다. 바로 <보리고개> 였다. 그러나 지금은 <청보리 축제>로 온통 난리법석을 떠는 세상이 되었다. 가곡 <보리밭>을 눈을 지긋이 감고 들어 보면 소시절의 추억이 금시 곁으로 다가와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축제와 향락에 깊이 빠져들면 근로를 기피하고 더 짜릿한 감각세계를 갈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망국의 조짐이 나타나면 지도자가 필요한데 그들이 주지육림에 빠져 버리면 나라가 망해 버린 경우가 많았다. 인류의 역사는 대체로 그렇게 망했다. 전쟁보다는 향락과 역병으로 소멸이 되었으니 무서운 일이다. 지나친 퍼주기식 포플리즘은 국가가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권력은 이를 암암리에 정책이라면서 백성을 속인다. 우민한 백성은 속으면서 몇푼의 돈으로 그만 깊은 수렁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보리밭을 보면 생각이 많이 난다. 보리피리와 보리의 에이즈인 깜북이 병이 떠 오른다. 여인숙도 귀한 시절엔 보리밭에 숨어서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마루밑에 잠자고 있는 애꿎은 개만 부짓깽이로 주인에게 혼나기도 했던 추억이 스친다. 당시의 개는 개취급을 받았던 때였다. 아버지와 마당에서 도리깨로 보리타작을 할 때면 부자간의 장단은 대단하였다. 보리의 깔끄래기(까끄라기의 방언)는 찬물로 등물을 하여야 했다. 아버지 등물을 많이도 해 드렸고 아버지께서도 저의 등을 밀어 주셨다. 지금은 이런 사랑은 간 곳 없이지고 그저 아버지의 지갑만 넘 보는 못된 사회가 되고 말았다. 유산을 노리는 자녀가 너무나 많은 시대이다. 아! 그립다. 땡볕에서 보리 타작을 하던 추억의 색채는 밀레의 그림을 연상시키게 한다. 아버지께서는 멀리서 어머니와 함께 증손주인 승준이와 승아 그리고 라은이의 자라나는 모습을 보시고 흐뭇해 하고 계실 것이다. 보리타작을 할 무렵에는 보릿짚으로 여치집을 만든다. 한낮이 되면 여치의 울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맥향(麥香)일렁이는 보리밭을 보면서 막연한 청운의 꿈이 크기만 했는데 돌이켜 보면 추억이 남달리 많은 편이었다. 가난으로 찌든 시절의 보리밥의 추억은 가슴이 아픈 기억이지만 지금은 <청보리축제>로 연인들이 모여드는 세상이다. 최빈국에서 최정상의 부유한 나라가 되었는데 어떠한 지도자와 국민이 허리가 휘어지게 일을 했는지는 역사의 교훈으로 남겨져야 할 것이다. 보리의 모습과 벼는 완전히 다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보리는 고개를 바짝 쳐들고 만다. 벼는 따뜻한 계절에 못자리에서 태양을 보면서 자란다. 그러나 보리는 엄동설한의 혹한의 밭에에서 고생을 해야하는 작물이다. 아마 그러한 보상으로 태양을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을까 싶다. 보리밥은 대나무 그릇에 담아서 밥쁘제 (보자기의 방언) 로 덮어서 파리가 앉지 못하게 한다. 냉수에 말아서 풋고추를 찍어서 자그마치 5000년을 견디었던 우리민족의 아픈 역사이기도 하다. 과소비로 휘청거리면 살림은 기울어 지기 마련인데 저축보다는 소비를 엔조이하듯 즐기는 세태이니 걱정이 따른다. 현대인은 건강식이라고 꽁보리밥을 찾기는 하고 있지만 보리에 대한 추억을 모르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보릿고개는 시골 뒷산의 고개가 아니다. 우리 민족의 피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는 미아리고개 같은 <눈물의 고개> 이다. 그러나 이제는 두 고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보릿고개는 축제의 마당이 되었으며, 미아리 고개는 온갖 꽃이 피는 희망의 고개로 변하였다. 보리로는 맥주를 만든다. 쌀로는 쌀막걸리를 만든다. 보리와 쌀의 깊은 의미를 되새겨 보았으면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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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88] 서방질과 계집질
이경국 칼럼니스트 어미(語尾)에 질字가 들어가면 조금은 깔아서 보는 비하적인 느낌이 든다. 사(師, 士)字에 비하여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비속어는 변화가 많이 되었다. 차장은<안내양> 으로 부르는데 무인시대 인지라 안내양을 보기가 쉽지 않다. 숙박하는 곳이 무인이라니 세월의 격세지감을 느낀다. 한 때 주소를 기록하는데 한군데는 틀리게 적는다는 친구의 말에 박장대소 했던 기억이 난다. 고속도로가 생기자 말자 안내양을 보기 위하여 일부러 고속버스를 타 본 사람도 있었다. 스튜디어스와는 육지를 달리는 초고속 버스의 안내양은 그 느낌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식모는 <가정부>로 불러지게 되었다. 처가댁에는 오래 함께 살던 가정부가 있었는데 시집을 보낼 때 아내와 똑 같이 혼수를 해 준 기억이 난다. 나더러 형부라 부르던 마음씨 고운 아가씨가 지금은 연락조차 두절이 된 상태다. 직업에 질字를 붙이면 비하적인 표현이다. 갑질도 기분이 접히는 단어이다. 특히 <서방질과 계집질> 은 아내와 남편이 있지만 외간 다른 짝과 바람을 피운다는 것이다. 님자는 본래 바람을 피우는 존재이다. 종족보존을 빌미로 여기고 있는데 그럴 듯한 핑계에 할 말을 잊어 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여성은 바람 나기가 쉽잖은 일인데 ''홧김에 서방질을 해 버린다''고 한다. 이는 남편이 평소에 애를 태우기 때문에 견디지 못하여 그만 앙값픔을 하기 위하여 즉흥적으로 저질러 버리는 행위가 아닐까 싶다. 대체로 학창시절 가슴에 담아 두었던 동창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한 때 옛 친구를 찾아주는 '동창사이트'가 불티가 나게 인기가 있었다. 이는 꽃뱀에게 당하는 사기를 미연에 방지 하겠다는 믿음이 선행 되기 때문일 것이다. 계집질이나 서방질은 가정의 울타리가 허물어지는 행위다. 따라서 각자의 단속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홧김에 저질러 버리는 행위는 후회가 따르기 마련이다. 어머니께서는 참을 忍字를 세번 생각하라고 당부하셨다. 그리고 객지에서는 ''단도리를 잘하여야 한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이는 노자의 '도덕경'이나 테스형의 ''너 자신을 알라''보다 필자에게 훨씬 더 마음에 와 닿기도 하며, 큰 영향을 주신 어머니셨다. 어머니께서 남긴 명문어록(?)의 말씀이 많으시다고 아내도 몇번이나 얘기를 한다. 금과옥조같은 말씀이셨다. 몇가지 얘를 든다면, 어머니는 키가 작으신 편이었으나 7남매 모두 키가 큰 편이다. 누군가 그러한 것을 말했나 보다. 어머니의 명답으로 샹대를 압도하셨다. 세상에 ''키가 크다고 하늘의 별을 딸 수도 없으며, 키가 작다고 개미한테 코를 물린 사람도 없다''고 하신 것이다. 아무리 별을 따기 위하여 달에 먼저 이른다 하더라도 별을 딸 수가 없을 것이다. 장대가 그렇게 길 수 없다. 닉슨대통령과 등소평이 만나서 등소평의 키가 어깨에도 미치지 못하니 눈치빠른 등소평이 말하기를 ''하늘에서 보면 자기가 더 크다''고 했다. 때로는 한 마디의 위트나 유머로서 상대의 양코 (서양인의 높은 코)를 팍 죽이는 지혜가 필요 하다고 본다. 인간의 자존심은 때에 따라서는 사소한 일에 상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도회로 나가서 돈을 벌어서 귀향하면 '농장을 경영한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사실 농사면 어떻고 농장경영이면 어떻다는 말인가? 일상이 지루하다고 일탈을 해 보고 싶겠지만 正道의 길이 아니라면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게 될 것이다. 성난다고 바위를 차도 안될 것이다. 홧김에 <서방질>도 같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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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87] 여성의 가슴 사이는 좁다
이경국 칼럼니스트 아무리 건장한 여성 일지라도 가슴 사이는 좁다. 이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면서 애기가 한쪽 손으르 다른 젖꼭지를 만지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모유를 먹이는 것이 가장 좋은데 분유의 편리함을 선택하고 있는 세상이다. 인성의 기초는 여기서 허물어 지고 만다. 소젖을 먹이면 고무 젖꼭지와 가슴의 젖 꼭지는 실로 엄청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도 34억 축생 가운데 인간의 産道가 가장 좁기 때문에 아기와 어머니가 교감이 많이 되는 순간이라 한다. 제왕이 하던 재왕절개 수술을 지금은 누구나 하고 있다. 더러 수중 분만으로 통증을 줄이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기는 하다. 무통주사로 분만시 통증을 없애게 하니 출산의 고통이 옛과 다르다. 인류는 출산을 하면서 애기가 죽거나 산모가 죽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시대는 왕비의 생명을 앗아 가기도 했다. 명의도 소용이 없었다. 사실 여성의 저고리는 남자가 도저히 입을 수 없다. 인체는 신의 명품이긴 하지만 여성의 가슴은 단순한 성기능의 유방과 다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자주 고름 입에물고 입만 빵긋하면서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여성은 천사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 설사 여성의 손은 일을 많이 하여 거북등같이 거칠게 보인다 해도 천사의 손 (angel-hand) 으로 손색이 없다고 본다. 모든 여성은 어머니의 모습을 품고 있다. 그렇게 생각해야 평화가 유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History'로 남성으로 대우를 해 주지만 노도가 일고 쓰나미를 일으키는 험한 바다를 여성인 'She'로 표현한 것은 의미가 크다고 본다. 바다는 생명의 모태이다. 천혜의 혜택을 인간에게 줄 뿐만 아니라 3%의 염분으로 부패를 방지 하고 소금은 황금 만큼이나 귀하기 때문이다. 어머니 성품을 닮아서 강물은 바다에 이르면 압록강이니 낙동강이니 다투질 않는다. 어머니는 가슴이 좁지만 세상을 품기에 넓기만 하다. 사랑이 좋아서 세상은 사랑타령을 많이 하고 있지만 필자는 <어머니> (엄마)란 단어를 <사랑> 보다 우위에 두고 싶다. 그리고 모성애를 능가할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의 본성도 무진 강하다. 산불이 나면 꿩은 새끼와 함께 불에 타서 죽는다. 어미는 새끼를 두고서 날아가 버리지 않는다. 이보다 짙은 감동은 어쩌면 인간 사회도 드문 일일 것이다. 도덕, 도의, 바른 생활을 배우고 종교를 믿고 살고 있지만 인간만이 자식을 버린다. 이역만리 해외입양을 시켜버리기도 한다. 미혼모이거나 바리지 않는 출산이면 멀리 보내어 흔적을 지워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인연줄을 끊어 버린다고 죄책감 없이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양심이 없다면 금수(禽獸)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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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86] 밤에만 피는 꽃들
이경국 칼럼니스트 꽃은 거의 낮에 핀다. 태양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며 벌과 나비를 유혹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아예 해바라기는 태양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 키도 가장 큰 편이다. 태양과 더 가까이 하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달빛이 좋아서 밤에만 피는 꽃이 있다. 박꽃과 달맞이 꽃이 대표적이다. 달맞이는 아예 달을 연인처럼 섬기는 모습이다. 이름자체가 '맞이 한다'는 것이다. 박꽃은 역시 초가 지붕위에 피어야 운치가 있어 보인다. 草家가 사라져 버렸으니 제비도 오지 않고 운치있는 박꽃도 볼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흰색은 백설기 색이기도 하며, 어쩌면 춘향의 허벅지도 박꽃같이 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밤에 피는 꽃은 거의 흰색이다. 아마 벌, 나비, 나방의 눈에 쉽게 뜨이게 하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이 아닐까 싶다. 꿀을 취하여 가지만 않는다. 암술과 수술을 중개하여 꽃가루를 전달하여 代를 이어 나가게 도와 준다. 아무리 못생긴 꽃이라드 빠뜨리지 않는다고 하니 감동적이다. 야심한 밤에 피는 꽃은 의외로 많다. 야래향, 선인장, 재스민, 치자나무, 목련, 꽃담배 등이 夜花이다. 흰색이니 알리기도 쉽겠지만 향기도 짖게 풍긴다. 낮에는 꽃이 닫히는 특성이 있다. 특히 야래향(夜來香)은 향기가 짙을 뿐만아니라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애잔한 생각이 들면서 먼저 간 친구가 보고 싶어진다. 주현미가 부른 노래가 압권이다. 나방이나 박쥐도 꽃가루를 옮기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文人은 밤을 좋아하고 밤꽃을 좋아한다. 이제는 달을 보고 시를 쓰지 않는 시대이다. 인간이 달을 정복(?) 하고 부터는 달보다는 떨어지는 운석(隕石)의 가치에 신경을 쓰고 있다. 이태백이 지하에서 통곡(痛哭)을 할지 모를 일이다. 夜花는 흰색이거나 노란색이다. 그리고 자기만의 짙은 향으로 중개를 유인하는 것이다. 주고 받으면서 상생을 통하여 윈윈하는 자연의 조화로운 모습을 보노라면 괜히 숙연해 지면서 경외감이 인다. 조기 대선에는 숱한 비방과 험악한 언어가 등장할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고 역지사지 하라는 배려의 마음은 정치판에서는 아예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로지 권력에만 혈안이 되어 상대를 죽이고 싶은 생각이니 그들은 천상에 가는 것은 애시당초 포기 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파스칼이 갈파한 지상은 꿏이 있어서 아름답다 했다. 천상의 별은 공해로 볼 수 조차 없는 세상이다. 가슴의 사랑조차 고갈이 되어 건조하니 여간 답답지가 않다. 정치인에게는 아예 文.史.哲이 없다. 특히 역사관이 없으니 목전의 이익에만 정신이 쏠려 있는 지경이다. 대통령 후보자가 콩나물 시루의 콩나물처럼 고개를 들이 밀고 있는데 일종의 후보공해다. 흥행으로 관심을 높인다고 하는데 웃기는 일이다. 야심한 밤에 피어나는 꽃을 보면서 선한 기운이 들도록 심성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그들의 급선무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꽃은 지구촌 어디에서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피운다. 열사의 사막에서도 선인장을 꽃피워 전갈과 벗을 하고 있으며, 엄동의 혹한에도 설중매가 피어 인간에게 감동을 전해 주고 있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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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31] 꽃향기 보다 짙은 풀냄새
- 이경국 칼럼니스트 식물의 전체를 놓고 본다면 역시 꽃이 가장 화려하면서 짙은 향기도 풍긴다. 벌과 나비를 유인할려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면서 짙은 향내까지 발산을 한다. 번식을 하기 위한 절박함일 것이며, 또한 代를 이어 나가려는 몸부름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마치 꽃이 인간을 위해 꽃을 피우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기 십상이다. 코를 자극하는 냄새는 꽃마다 다르다. 그러나 풀냄새의 그윽함은 꽃향기 못지 않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이는 소싯적 농촌에서 자랐던 기억을 생각하면 풀냄새가 아련히 그대로 스친다. 삿갓하나 놓으면 딱 맞을 마당에 자라나는 풀냄새를 잊지 않고 지내고 있으니 이는 무척 다행한 일이 아닐 수없다. 이름이 없는 풀을 그냥 잡초라 한다. 야생화가 각광을 받기 시작하면서 잡초도 관심을 지니게 되었다. 잡초는 번식력이 강하다. 논밭뚝이나 언덕은 잡초가 지켜 주기에 그 혜택은 실로 크다고 본다. 인간이 고마움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굽은 나무가 산을 지켜내고 있다''는 이치와 같다. 인간사회도 같다. 미인은 박명이다. 손을 많이 탄다는 의미이다. 신경을 과하게 쓰면 단명한다. 천재는 요절하기 쉽다. 적응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머리를 믿고 노력이 부족하며 인간관계가 서투르기 마련이다. 자연의 조화는 실로 대단하다. 호미로 잡초를 캐내어 뿌리를 햇볕에 말리어야 되는데 비라도 내리면 집초는 소생을 한다. 질긴 생명력에 혀를 내두르게 한다. 안개꽃처럼 잡초는 무더기로 꽃을 피우기도 한다. 그렇게 하여야만 작은 벌을 유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식물도 살 궁리는 다 하고 있는 것이다. 작다고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면 곤란하다. 맛으로는 홍어가 미각의 최정수이듯 풀냄새를 제대로 알아야 자연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풀의 매력에 푹 빠져 보고 싶다. 어쩌면 이름없는 온갖 잡초들이 지구를 지키는 파수꾼일지 모른다. 서로 얽히어서 홍수에 떠 내려가는 흙을 보호해 주고 있다. 법정스님의 잔잔한 속삭임이 가슴을 적시게 한다. 오두막에 가는 길옆의 풀을 베어 내면서 ''풀아! 미안하다. 여기는 너희들이 있을 인연이 아닌가 보다.'' 이렇게 대화를 하고 베어 낸다는 것이다. 생명의 존귀함을 깨친다 는 것은 인간의 고귀한 사랑의 감정이 없다면 불가능할 것이다. 과일과 풀은 냄새가 다르다. 어쩌면 인공향수보다 더 끌리는 힘이 있다고 본다. 다만 동물세계에서 인간은 이성간 體臭가 가장 좋다고 한다. 이는 서로 극진한 사랑이 있을 때 얘기다. 어느 한쪽이 戀情이 멀어지면 당연히 군둥냄새가 풍길 것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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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31] 꽃향기 보다 짙은 풀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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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30] 제눈에 딱인 안경은ᆢ
- 이경국 칼럼니스트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가 우주의 주인공이자 살아가는 길도 각자 다르기 마련이다. 이는 세상에 미인만 살고 있다면 결코 행복하지 않는 이치와 같을 것이다. 경쟁하면서 치장을 하고 가꾸는데 미적인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안경의 도수가 같다고 하더라도 남의 안경은 어색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흔히 눈에 꽁깍지가 씌이면 박색도 미인으로 보이며 얼굴이 얽어도 보조개로 보인다고 한다. 콩깍지를 벗겨 버리니 더 아름답다고 하면 방법이 없을 것이다. 인간은 물욕이 강할 뿐만 아니라 집착 또한 끈질기다. 이성간에도 상생관계의 인연이어야 소위 필이 통한다는 것이다. 미스코리아 출신을 본처로 삼더라도 생각보다 그렇게 좋지 않다는 결론이다. 우선 미인박명이고 또 손을 탈까 싶어서 늘 심리가 불안하다고 한다. 남자는 대체로 어느 정도는 의심을 지닌다고 하는데 도를 넘으면 의처증이 발병한다. 그리고 8등신 미인일 지라도 밤살이 때 품에 쏙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다. 옛말에 여자는 품는 맛이 있어야 좋다고 했다. 듣고 보니 그럴듯 하다. 美人은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면 되지 않을까 싶긴하다. 양귀비, 크레오파트라, 황진이는 고전미인이라 엉덩이가 컷다고 한다. 多産이 美의 기준인 시대의 미인상이다. 지금은 영상매체 때문에 얼굴이 조막 만 하여야 소위 화면빨을 잘 받는다고 야단들이다. 입에 당기는 대로 실컷 즐기는 시대이다. 찌는 살을 감당하지 못하여 별짓을 다 한다. 남자는 퇴직을 하고 나면 갈 곳이 없다. 퇴직때까지 직장에서 지낸 세월에 눈치가 9단이다. 모른척 하지만 아내의 눈치는 제대로 살핀다는 얘기다. 살은 찌우기도 쉽지 않지만 빼기는 더 어렵다고 한다. 혹자는 숯가마에서 땀을 빼는 여자를 보고 험담을 하는데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여성은 미가 생명이다. 피부가 아릅답다는 것이 최상의 찬사다. 그러나 남자는 정력에 좋다고 하면 사족을 못 쓴다. 목숨을 걸다 싶이 한다. 그들의 가장 설득력이 있는 말은 '종족번식' 이라고 한다. 할아버지가 종족번식의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될텐데 말이다. 깃털이 다른 새끼리 사랑하는 것을 본 적은 없다. 유유상종이다. 인간도 조건이 비슷한 사람끼리 통한다. 끼리끼리 모여 살기 마련이며 부부도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서 닮아 가면서 산다. 제 눈에 안경이다. 짚신도 짝이 있고 사람도 상대가 있다. 주위에 이러한 부류의 부부를 보면 닭살이 돋는다. 닭은 날개가 강하여 닭살도 큰 편이다. 가금류 가운데 오리와 닭은 속담도 많고 배울점도 많다. 얼굴에 흉터가 보조개로 보인다면 이는 베스트 합궁이 아닐까 싶다. 천생연분을 찾아야지 미를 추구하다 보면 낭패당하기 십상일 것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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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30] 제눈에 딱인 안경은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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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29] 가슴에 핀 감자꽃 추억
- 이경국 칼럼니스트 감자는 구황작물 (救荒作物)로 4대 식량식물(쌀, 밀, 옥수수, 감자)의 하나이다. 옥수수와 감자는 강원도의 힘을 나타내기도 한다. 소시절에 감자를 캐는 날은 괜히 기분이 들뜨곤 했다. 감자는 흰감자, 자주감자 그리고 분홍감자가 있다. 자주감자에는 자주꽃이 핀다. 흰감자에 분홍꽃이 필리는 없다. 꽃따라 감자의 색깔이 같다. 꽃과 열매는 서로 내통하고 있나 보다. 감자는 눈이 여러개가 있다. 눈을 돌려 내어서 심어야 싹이 나는 것이다. 식물에 눈이 있는 것은 감자가 유일할지 모른다. 감자의 눈은 보는 눈처럼 생기긴 했다. 식량대용으로 감자를 많이 먹었다. 그냥 삶아서 먹거나 이겨서 스푼으로 먹어도 좋다. 그러나 구워서 먹으면 맛이 일품이다. 콩서리 먹듯 입이 시커멍스가 된다. 누나와 서로 쳐다보면서 웃는다. 살짝 태우면 감자의 진미를 느낄 수 있다. 시골의 정지 (부엌)에서 구운 감자의 맛은 캠핑가서 구워먹는 것보다 더 정겹다는 생각이 든다. 정지에서 의자에 반듯하게 앉아서 감자를 굽지 않는다. 쪼그리고 앉아서 감자가 잘 익기를 연신 부지깽이로 뒤적이는데 기다림의 시간은 길게만 느껴졌다. 고구마는 썪으면 쓸모가 없지만 감자는 요긴하게 쓸 수가 있는 채소류이다. 감자떡의 원료가 된다. 고교시절의 눈부신 여고생의 깃은 감자가루로 풀 (가닥꾸리)을 맥여서 다려서 입는다. 멀리서도 얼굴이 희게 보이며 자주색 가방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늘 궁금 했었다. 여고시절의 자주색 가방은 시의 한 귀절마냥 뇌리에 남아 있다. 돌이켜 보면 그 당시가 천상의 시절이었다. 당시 주인집의 딸도 지금은 중년을 넘어 初老의 할미가 되어 있으니 인생은 아무리 별것 아니라 하지만 슬픔을 머금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아무리 좋아했던 사이라도 남의 아내가 되어 세상을 살아 온 것이다. 감자를 함께 구워먹던 소싯적 추억이 아련하게 떠 오를 뿐이다. 비내린 뒤 쌍무지개는 아니었지만 무지개가 사라지듯 청춘도 세월에 앗기고 말아 어떨 때는 향수에 젖어 눈물이 맺힌다. 작은 감자는 옹가지에 담아서 발로 비비면 껍질이 벗겨진다. 못살던 시절의 감자는 귀한 한끼의 식사로 충분하였다. 설탕이 없던 시절에는 사카린이나 소금을 찍어서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분홍감자는 색이 이쁘다. 아마 핑크빛 사랑때문이 아닐까 싶다. 감자는 껍질을 벗기지 않고 삶아서 먹어도 맛이 좋다. 껍질을 벗기는 동안에는 먹고 싶은 것을 잠시 참아야 한다. 뜨거워서 이쪽저쪽 손을 움직여야만 했다. 자주감자는 분이 많아서 맛은 좋으나 더러 아린 맛이 나기도 했다.감자 (감저, 甘藷)는 한자로는 감저이다. 감자탕에는 사실 감자가 몇조각 뿐이다. 순 돼지뼈 뿐이데 이름은 <감자탕> 이다. 돼지감자는 스스로 자란다. 가축인 개와 돼지라는 이름은 좋지 않는데 몽땅 써 먹는다. 개살구, 개떡, 개차반은 물론 욕도 많다. 감자를 소재로한 글은 많다. 권창순 시인의 ''감자''를 소개해 본다. [ 배달후 며칠만인가 / 종이상자를 열어보니 / 두고 온 산골이 그리운지 / 농부가 그리운지 / 서로 부등켜안고 / 눈마다 눈물로 싹을 틔웠구나 ] 곡식은 농부의 발자욱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감지도 농부가 그리위 싹을 틔웠는데 시인의 눈에는 눈물로 보였나 보다. 이렇게 모진 고통을 감내하고 생겨진 감자가 인스턴트 식품때문에 외면을 당하고 있는 시대이다. 주말이나 휴일에 가족이 모여서 감자나 고구마 파티를 열면서 소싯적 얘기를 들려주면 좋으련만 애초에 모이지를 않고 모래알 처럼 각자 사는 세상이니 걱정이 되기는 한다. 감자꽃의 색깔이 세종류이니 올해는 화단에 감자를 심어서 꽃이 피면 글과 함께 팬여러분께 보낼 생각이다. 물론 손주들과 함께 감자얘기로 꽃피울 날을 기대해 본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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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29] 가슴에 핀 감자꽃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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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28] 고향은 늘 그리운 곳
- 이경국 칼럼니스트 고향은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그립다고 했다. 외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향수에 젖어 얼마나 외롭게 지내면서 살까? 고향을 떠나 도회지에서 산 기간이 훨씬 더 길어도 고향은 늘 그립기 마련이다. ''고향땅이 여기서 몇리나 되나?'' 이제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고향도 가기도 쉬울 것이며, 모습 또한 많이 달라져 버리고 말았다. 도회를 닮아져 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고향을 생각하는 習을 쌓아 나가야 할 것이다. 경쟁이 극심한 시대이니 마음이 자꾸만 사악해져 가고 있다. 고향을 생각하는 선한 마음으로 감싸야 된다는 의미이다. 그향은 어머니 품에서 말을 배운 곳이다. 아무리 오랜 기간을 객지에서 살았다고 해도 어머니께 배운 사투리는 그대로 쓰는 경향이 있다. 고향은 추억이 많은 곳이다. 따뜻한 추억은 고향으로부터 나오기 마련이다. 고향이 수몰이 되어 외로워하는 실향민이 주위에 많다. 안동댐과 임하댐이 생긴 탓이다. 흔적없이 사라진 고향이 물속에 잠겨 버렸으니 얼마나 가슴이 저밀까? 그들이 애써 고향을 그리워 하는 詩나 에세이를 읽으면 여간 가슴이 아리지 않다. 서울에서 살아온 기간이 고향에서 살았던 기간보다 두배도 넘었는데도 꿈은 고향에 관한 것 뿐이다. 남산 타워나 청계천은 꿈에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삽작에서 기다리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꿈속에서 자주 보인다. 고향보다 더 정겨운 곳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聖人은 고향에 가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 할 것이다. 오죽하였으면 고향 까마귀만 보아도 반갑다고 했을까? 연어는 머나먼 거리인데도 고향(?)을 찾아가기 위하여 몸부림을 친다. 그리고 그곳에서 몸을 푼다. 산란을 하고 숨을 거둔다. '타향은 싫어 고향이 좋아'란 노래 가사도 있다. 아무리 정이 들어도 타향이 더 좋을리가 있을까..... 지지리 못살던 고향에서 농사일을 하다가 도회에서 성공하여 고향으로 돌아오면 그때는 '농장을 경영한다'는 말이 있다. 부모님곁에 음택(陰宅)을 마련해 두었는데 아내보다 먼저 떠나게 되면 아무래도 1000도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 갈 것만 같다. 그렇다고 아내보다 더 오래 살고 싶지는 않다. 일평생 밥을 한번도 지어 보질 않은 잼뱅이인데 자신이 없다. 고향과 타향이 불이(不異)가 아닐진데 왜 그런지 고향이 좋다. 내 고향 풍산은 평야다. 벼농사와 무배추가 유명하다. 풍산김치는 인기가 좋다. 그리고 고향 율리(栗里) 출신은 모두 객지에서 잘 살고 있다. 지난해 친구들과 식사를 하면서 밤실은 풍수지리로 보아도 좋다고 서로 공감을 한 적이 있었다. 고향은 살던 집과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스며져 있어 생긱만 하여도 눈시울이 붉어 진다. 필자의 고향은 남쪽 바다는 아니지만 어제처럼 고향이 생각속에 남아 있다. 일기를 일찍부터 썼기에 소싯적 기억이 작은 뇌의 분실에 저장이 되어 있어 가끔씩 꺼내어 글을 쓰고 있다. 어려서는 도회지를 동경했었는데 지금은 고향이 그립기만 하다. 그러하다. 고향은 머나먼 남쪽 하늘아래 있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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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28] 고향은 늘 그리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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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27] 신비의 바다 이야기
- 이경국 칼럼니스트 내륙지방 출신이라 늘 바다를 동경하면서 자랐다. 바다를 처음 접해 본 것이 중학 3학년 때 보이스카웃 단장으로 포항에 갔을 때였다. 조선중기 사상가인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은 이보다 훨씬 더 늦은 나이에 바다를 처음 보고서 경이로움을 글로서 남긴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바다를 단순히 여름한철 바캉스를 즐기거나 고기를 건져 올리는 곳으로만 생각하고 있다면 곤란하다. 바다는 자그마치 지구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비도 바다에 거의 다 내린다. 바다는 또 쉼 없이 움직인다. 힘이 들어서 거품을 뿜어내지는 않을 것이다. 밀물과 썰물이 서로 주고 받으며 파도를 일으켜 낸다. 밀물과 썰물이 아무도 모르게 연민을 느껴 어쩌면 사랑하면서 거품을 남기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파도가 철석철석하는 소리는 누구나 좋아한다. 그리움이 지나쳐 거품으로 그 흔적을 남긴다는 생각이 들면 경외의 마음이 일어난다. 작은 물고기는 어디서 서로 짝을 지어서 새끼를 낳아 代를 이어 나가는지 본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포유류인 고래는 어떻게 염분이 3%나 되는 바다에서 살아가는지 신비롭다. 필자는 바다에서 살던 고래가 육지에서 살다가 다시 바다로 간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바다는 그 속이 어머니 품속같다. 폭풍이 일고 거센 파도가 일지만 바다는 여성인 She로 표현함은 대단한 발상이다. 이는 모든 것을 품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원시인은 하늘은 경배하였고 바다를 동경을 하였을 것이다. 바다는 끝없이 나아가면 낭떨어지라고 소시절에 필자는 원시인처럼 생각을 했다. 그 넓으면서 고마운 바다를 인간이 더렵혀서 지금 바다가 신음을 토해 내고 있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것도 중병상태이다. 소금기가 있는 바닷속에서 기형 물고기가 생긴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지구촌이 쓰레기를 줄이는 노력을 게을리 할 경우 후손들은 호흡이 가쁜 일상이 되고 말 것이다. 바다는 생명의 모태이다. 바다가 신음을 토하면 지구는 통증을 호소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쓰레기 줄이는 일은 인류의 숙제가 되었는데 이는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면서 무리하게 개발한 결과이다. 과소비가 남긴 당연한 부메랑이기도 하다. 냉정하리만치 쓸쓸한 바닷가는 여름한철 몸살을 하리만치 붐빈다. 아침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는다. 만선으로 항구를 찾아 들어오는 어부의 모습은 행복으로 가득차 있다. 필자는 <노인과 바다>를 좋아한다. 그것을 <어르신과 바다>라고 한다고 공경심이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소설의 제목에 감칠맛이 그만 사라져 버리고 만다. 노인이 이렇게 푸대접을 받는 시대는 없었다. 독거노인이 들끓고 있거나 요양원에서 생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晩年의 삶은 고독하기 짝이 없다고 본다. 토인비가 예찬한 우리나라의 대가족제도는 이제는 홀로사는 처연(凄然)한 세상으로 변하고 말았다. 3代가 함께 살고 있는 필자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행하면 가능한데 모두 핑계가 많다. 바다는 인간으로 본다면 낮은대로 임하거나 하심(下心)과 상통하는 포용의 大海임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가난했지만 대대로 자녀를 많이 둔 나라였다. 어찌하여 출산율이 세계에서 꼴찌인 나라로 전락하였으며, 이혼율 또한 창피스럽게도 1위인지 그 요인을 충분히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육지를 아름답게 유지하지 못하는 나라는 바다도 제대로 관리 해 낼 수 없다고 본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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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27] 신비의 바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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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26 ] 온양민속박물관
- 이경국 칼럼니스트 실로 오랜만에 다시 찾은 온양민속박물관이다. 안동 출신이신 김원대(2000년 작고)님께서 1978년 설립한 박물관 분위기가 마치 고향에 온 느낌이다. 춘당춘색이 고금동이 아니라 마치 상전벽해의 모습임을 느끼게 하다. 청년 때 본 모습과 장년인 지금 보는 박물관의 모습은 판이하게 다르다. 조만간 다시 찾아가 볼 요량이다. 晩年에 보는 모습은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소시절을 연상하는 모습은 향수를 자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순환발전을 하고 있긴 하지만 때로는 그대로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우선 온양은 따뜻한 곳이다. 마음도 안온하다. 지명에 溫字가 있으면 거의 온천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그러하다. 온양, 온정, 온혜가 그렇다. 그리고 역이름이 '온양온천역'이다. 애써 '온'천이란 말을 넣고 싶었을 것이다. 온양군청을 옮길 때 부지를 회사에서 매입하여 온양지점을 이전하고 회사의 창고로 활용을 했었다. 회사가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렸는데 그 많은 창고의 물건들은 연기가 되어 그만 色이 空으로 변해 버렸는지 모를 일이다. 전철이 온양까지 운행된다는 것은 다행이다. 마치 원족이라도 가는 기분으로 들뜬다. 도착하자 말자 눈에 크게 뜨이는 '백채김치찌개'에서 점심을 해결하였다. 맛이 일품이다. 식후경이어야 만사가 형통되기 마련이다. 함께한 친구도 만족해 햔다. 온양민속박물관은 경로우대의 혜택을 받아 입장료가 1000원이다. 그간 세금을 낸 공을 높이 평가하여 이렇게 할인혜택을 부여해 주는 복지국가이고 선진국인 우리나라다. 먼저 단장된 주위를 샅샅이 둘러보다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하다. 우리 말고는 넓은 공간에 관람객이 없다. 한산함을 즐기니 더욱 좋다. 인간은 떠들썩한 저자거리를 즐겨 찯지만 정적이 머문 산사의 인경소리에 취하기도 한다. '구정아트센터'는 3층인데 전시품의 다양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구정은 설립자 김원대님의 號이다. 이 건물을 건축한 사람은 세계적 천재 건축가 아타미 준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다. 가족과 함께 한번은 꼭 다녀 가길 권해 본다. 소싯적 모습이 떠 올라 필자는 황홀지경에 빠져 드는 기분이다. '농자천하지대본'이란 큰 글씨를 보고 혼절지경으로 몰린 기분이다. 5천년 역사의 가난이었지만 삶의 터전이 農事였다. 천수답이니 순전히 하늘에 의지한다. 70여년 전부터 탈농업이 이루어진 나라이다. 경제성장은 말달리듯 숨가쁘게 뛰었다. 최빈국에서 선진국까지 짚신에서 고급 구두를 신은 기적의 자랑스러운 민족의 저력을 '빨리빨리'란 신조어를 세계시장에 전시하면서 이루어 낸 것이었다. 나열하기 조차 많은 박물관의 농촌 모습들이 필자의 마음을 녹였다.세계의 유명박물관을 거의 관람해 보았지만 내 마음을 감동으로 적신 곳은 온양민속박물관이 유일하다. 외국의 대형박물관은 약소국을 침탈하여 갖다 전시한 문화재가 즐비하다. 약탈은 미개한 모습이지 문화와는 거리가 멀다고 본다. 소싯적 모습이 떠 오르면서 정신없이 바라 본 모습이 필자에겐 과히 충격적이었다. 역시 문화가 있어야 선진국임을 느낀 관람이었다. 그러하다. 문명이 비행기 여행이라면 문화는 기차여행이다. 특히 간이역은 아련한 추억이 깃든 곳이다. 빠른 KTX여행 보다는 느림의 미학을 일깨워 주는 완행이 더 좋다. 기찻길옆 오막살이는 보이지도 않는다. 철로 주변의 애들도 보이지 않는 세상이다. 등잔의 호롱불에 광목천 기저귀로 7~8 남매를 키웠는데 샹들리에 밝은 불 아래서도 아이를 낳지 않는 세상이다. 가슴이 망가진다는 이유로 남편의 손을 기피한다는 탤런트도 있다는 세상이니 그 가슴을 어디에 쓸려는지 묻고싶다. 야박한 세상이다. 다시 찾고 싶은 박물관이다. 올해는 박물관을 두 군데나 관람을 하였다. 특히 모형물이 어찌 그렇게 선남자 선여자로 잘 표현을 했는지 넋을 잃고 바라 보았다. 서설이 퍼 붓는 오후에 관람을 마치고 상경하였다. 체증이 내려간 듯 뻥뚤린 오늘의 민속박물관 관람은 오랜기간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해동이 되어 꽃향기가 진동할 쯤에는 손자 승준(4학년)이와 함께 관람할 생각이다. 명가이드로 승준이가 일생동안 할비와의 추억이 될 수 있게 해설을 할 생각이다. 온양민속박물관! 고향같은 분위기라서 소싯적 생각에 넋을 잃은 관람이었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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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26 ] 온양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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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25] 동물의 잠자는 모습들
- 이경국 칼럼니스트 모든 동물은 잠을 자기 마련이다. 장수시대라고 세상이 시끄럽지만 인간은 일평생 20년을 잠으로 보내고 있다고 한다. 깨어 있는 시간동안 치열하게 움직인다면 잠자는 시간은 평온하다. 때로는 악몽을 시달릴 때도 있을 것이다. 잠은 60조 세포가 쉬는 시간이다. 심장은 움직여야 하고 코는 교대로 숨을 쉬어야 하지만 다른 일체의 장기는 잠자는 시간에 쉬기 마련이다. 인간만큼 마음놓고 수면을 취하는 동물은 없다고 한다. 사자만이 무리를 이루어 걱정없이 잔다고 한다. 동물의 왕이니 위용이 대단하다. 다른 모든 동물은 먹이사슬구조에 희생을 당하기에 깊은 잠에 빠질 수가 없다. 기린은 목도 길고 키도 크지만 선채로 잠시 잠을 자는데 무거운 머리를 어깨에 걸치고 짧게 잔다. 기린은 유일하게 달리는 것과 뒷발질이 무기이다. 누워서 잠을 잔다면 맹수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것이다. 키가 커서 일어 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사자는 동물의 왕임에 틀림이 없다. 수컷이 크게 울면 세랭게티의 모든 동물들은 초죽음 상태로 위축이 되는 것이다. 암컷이 사냥을 하면 수컷이 실컷 먹은 뒤에 암컷이 먹는다. 그리고 수컷 대장은 무리의 암컷과 교미를 수도없이 여러번 한다. 힘이 빠지면 다른 수컷의 공격을 받아 무리에서 쫒기어 난다. 한번도 사냥 경험이 없으니 굶어서 비참하게 말로를 장식한다. 호의호식하면서 숱한 암컷과 즐긴 댓가가 너무나 가혹하다. 인간으로 치면 晩年이 비참하다. 사자는 죽으면 맹독류도 시체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제 몸에서 생긴 사자충이 말끔히 치운다고 하니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하다. 마음놓고 잠자는 동물의 왕도 이러한 비애를 겪어야만 되는 것이다. 조류의 잠자는 모습도 독특하다.대체로 암수 한자웅이 나란히 자면서 경계를 풀지 않는다. 꿩은 지근에 떨어져서 잔다. 장끼가 너무나 화려하여 까투리를 보호하러는 생존전략 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동물은 먹고 교미하고 잠을 잔다. 눈을 뜨고 자거나 눕지도 못하고 서서 자야 하는 동물이 많다. 인간은 직립을 하면서 힘은 얻었지만 남자는 성기의 뼈가 안타깝게도 물렁뼈로 서서히 변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아마 다른 포유류처럼 거시기에 뼈가 있다면 달리거나 걷기에 여간 불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사 그렇다고 치더라도 무진 아쉬운 대목이 있다. 발기부전으로 가슴태우는 남자들 말이다. 잠자리가 무서우니 밤이 겁이 난다는 남자들이 많다고 한다.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피곤한 상태로 저녁을 먹고 앉아 있는데 아내가 욕실에서 샤워를 한다. 며칠만에 합궁을 하고 싶은 욕구가 충돌질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없는 남편은 ''여보 회사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면서 슬그머니 집을 나와서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혼자 마신다. 이는 남자들의 여간 가슴아픈 애환이 아닐 것이다. 모성애로 이를 보담아 주지 않는다면 섹스리스 부부로 안타까운 晩年을 보낼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지는 것이다. 남자는 밤을 정복해야지 두렵게 생각한다면 이러한 비극이 또 있을까 싶다. 통상 잠자리는 섹스를 의미하는데 잠자는 시간이 형벌같은 남자의 괴로움을 어부인(?)들이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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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25] 동물의 잠자는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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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24] 추억속의 고드름
- 이경국 칼럼니스트 고드름을 생각하면 추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동요 '고드름'은 한편의 시를 연상케 한다. 수정고드름은 너무나 아름답다. 발을 엮어서 각시방 영창에 달아 놓고 싶다. 소싯적에는 공해가 없어서 고드름이 유리알 처럼 맑았다. 초가집 지붕 추녀끝에 달린 고드름은 운치도 좋았다. 폭포가 얼면 마치 고드름이 얼음기둥처럼 보였다. 도회지에서는 고드름 보기가 쉽지 않다. 동심이 사라진 세상이 되어 살벌한 모습으로 변하고 말았다. 눈을 돌리면 세상은 아름답기 짝이 없는데도 감수성이 예민한 중학생이 돌로 여성의원을 가해하는 모습을 보니 누군가 시켰다는 느낌이 순간 들었다. 고드름읕 보고 있으면 동굴속 종유석 생각이 난다. 울진에서 군생활을 할 때 할아버지께서 손자를 보실려고 먼길을 면회오셨다. 갓을 쓰시고 두루마기 차림인 전형적인 안동의 양반차림이셨다. 평해의 월송정과 울진 성류굴을 구경시켜 드렸다. 그때는 잘 몰랐었는데 손자 승준이를 보니 할아버지 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동해의 바다도 보여드리고 한치회도 사드렸다. 여행을 오신듯 대접을 잘 해 드렸다. 현재만이 중요하다고 떠들어 대는 세상이지만 필자는 과거의 추억을 무척 소중히 여기고 있다. 고드름은 물줄기가 거꾸로 얼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삭막하지 않겠다 싶다. 詩語을 잊고 산다면 세상이 건조하여 멋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문고리를 만지면 쩍하고 손이 붙고 말았던 시대의 고드름은 낭만이었다. 엄동설한은 대단한 추위였다. 군불을 지핀 방안은 식구들이 가득했었다. 자연속에서 즐길 수 밖에 도리가 없는 유년시절이었다. 고드름을 따다가 먹었으니 그 추억이 아련하다. 전자게임이 없었으니 사금 파리로 놀았던 시절이 정서적으로 좋았다. 소설에도 나오지만 이웃집 순이와 엄마아빠 하면서 놀 때 유독 오줌누는 모습에 호기심이 많았다. 물론 Pissing과 다른 유아기의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고드름을 따다가 오색으로 물을 들인후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카톡팬에게 보내면 모두가 좋아할 것이다. 고드름 모습에 넋이 앗기어 혼절지경에 이르면 글을 쓰고 싶어진다. 계절마다 고유한 모습이 유혹을 하지만 추녀에 매달린 고드름의 추억을 잊을 수 없다. 초가집이 흘리고 말았으니 추녀가 있을턱도 없고 고드름이 생길턱도 없어져 버린 나의 살던 고향이다. 녹아서 내리거나 어떨 때는 고드름으로 떨어진다. 지금은 초가집은 민속촌에 가야만 겨우 구경을 할 수가 있다. 그립다. 살던 시골의 초가집 추녀끝에 매달린 고드름이...... --고드름 삼행시-- 고-고향을 부르는 추녀끝 고드름 / 드-드높이 날던 하늘의 방패연 / 름-름은 어려워 그냥 름으로.....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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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24] 추억속의 고드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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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22] 사랑을 앗아간 그미가 밉지 않네
- 이경국 칼럼니스트 흔히 연인사이도 어느 순간 戀情이 시들해 버리면 멀어지기 마련일 것입니다. 양쪽이 배추절인 듯 힘이 빠져 버리면 오죽 좋겠어요. 그런데 이유없이 한쪽이 멀어져 버리면 다른 한쪽은 사경을 헤메듯 비틀거릴 것입니다. 사랑은 양편넣기입니다. 짝사랑이나 독사랑은 한편넣기 이기에 외롭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간 쏟아 부었던 사랑을 잃게 되었다고 상대를 밉게 생각하기가 십상일 것입니다. 억울하다는 생각도 한동안 하게 될지 모릅니다. 사랑은 서로가 빠져 들어서 마음의 혼절지경에 이르러야 제대로 된 사랑일 것이며, 마음까지 송두리째 앗기게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주고 받음만을 따지거나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을 한다면 이미 사랑은 괘도를 벗어난 이해 관계가 개입된 거래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낌없이 준다는 생각조차 없이 사랑 하여야 엔드리스 러브일 겁니다. 깊은 사랑에는 저울이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푹 빠져 있을 때의 여운으로 인하여 관계가 조금 시들할 때도 사랑은 유지가 되어 간다고 봅니다. 부부간에는 어느 싯점 권태기가 따르는 이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스피드시대이고 초테크시대라고 하지만 사랑을 짧게 하라는 의미는 아니겠지요. 사랑에도 뜸을 들이지 않으면 깊은 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뜸들이지 않는 밥은 설익고 말죠. 사랑도 그러합니다. 따라서 뜨거울 때 연인끼리 서로 사랑을 많이 훔쳐야만 합니다. 절대적인 사랑에 이르지 못하면 갈등이 파고들 공간이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눈을 크게 뜨고 살피면 부부간에도 새로운 모습이 보이는 이치와 같죠. 보기에 딱하더라도 상대 때문이 아님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대다수 부부간에도 시들하게 사랑을 유지해 오다가 어느 한쪽이 먼저 떠나면 땅을 치면서 후회를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재혼이 성공할 확률은 높지 않습니다. 사랑은 경험이 그다지 중요히지도 않습니다. 서로가 알아 나가는 과정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서로 정을 쌓아 나가는 과정이기에 공유의 공간이 넓을수록 향이 짙게 풍깁니다. 설사 주위에 다른 아름다운 짝이 보이더라도 어느 천년에 깃들여져 편하게 지낼수가 있겠는지 생각을 해 보면 답이 보입니다. 현재는 하늘이 선물한 것입니다. 현재 인연이 닿아 함께하고 있는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복을 부르는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화주는 애초에 하나의 연인에게만 빠지게 했으면 좋겠는데 어찌된 일인지 몰래한 사랑이 빙산의 밑둥치보다 크다는데 문제가 심각하다고 봅니다. 이는 인간이 원시시대 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먼 미래까지도 바람이 잘 날 없이 몰래 사랑은 극성을 부릴지 모르겠습니다. 후천세계는 다르다고 하니 그때도 살아 보고 싶긴 합니다. 사랑의 원초적인 힘이 그렇게 작용하고 있으니 어쩌겠어요. 간음이나 사음은 이를 간파하고 십계명이나 신도오계로 다독이고 있지만 결과는 역부족인 현실입니다. 지켜야 될 소중한 性이 자유를 갈구한 나머지 애꿎은 가정만 탈이 나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아마 내 사랑을 훔쳐간 연인이 밉지를 않고 고운 모습으로 남아서 뇌의 작은 분실에 저장되어 있다면 아름다운 사랑을 했다는 방증입니다. 누구나 몸에 생긴 멍은 세월이 지나면 흔적이 지워질 테지만 마음에 남은 상흔은 저승까지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상처를 남기는 사랑은 해서는 곤란하다는 결론입니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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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22] 사랑을 앗아간 그미가 밉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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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21] 5일장의 아련한 추억
- 이경국 칼럼니스트 대체로 전국에는 5일장이 서고 있다. 도회지야 전통시장과 백화점이 즐비하고 동리마다 마트와 연쇄점이 있다. 그러나 시골에는 5일마다 장이 선다. 김주영의 <객주>는 5년간 신문에 연재가 되었던 대하장편 소설이다. 떠둘이 장돌뱅이의 애환이 정겹게 느껴진다. 시장에는 흥정이 있어 늘 시끄럽다. 고향 안동 풍산장에 어머니를 따라서 다녔던 생각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장날에는 신작로에 장보러 가는 행인들이 줄을 잇는다. 대다수 걸어서 가지만 자전거와 우마차도 더러 있었다. 특별한 볼 일이 없어도 남자들은 드루막을 다려입고 나선다. 사돈을 만나면 얼큰 하게 막걸리를 들면서 노동에 지친 심신을 달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들은 필수품을 사러 간다. 메모를 하지 않아도 잘 챙기셨다. 등잔불을 밝히기 위하여 댓병에 석유부터 산다. 바깥양반의 라이터 돌도 진작 챙긴다. 양잿물은 필수품이다. 빨랫비누가 귀하던 시절 독한 가성소다를 사서 교복을 빨아 주셨다. 어쩌다가 고등어 한 손을 사갖고 오시면 어머니는 한저름도 드실수가 없었다. 이는 아버지의 밥상 에만 오르는 귀한 찬이었다. 지금은 안동간고등어가 세계의 브랜드 상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소싯적 우리의 어머니는 가난에 찌들어 생선은 꿈도 꾸지 못한 시절이었다. 5일장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맺힌다. 이곳 저곳을 다니시며 구경만 하시던 어머니 모습이 눈에 선하다. 돈이 없으셔서 요샛말로 아이쇼핑을 하신 셈이다. 핸드백은 커녕 바지속에 주머니가 있어 용케도 잘 이용을 하셨다. 필자는 그때 작심을 했다. 돈을 벌어서 어머니께서 사시고 싶은 물건은 다 사시게 해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최선을 다하여 어머니께 애를 썼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천하의 불효였다. 대학진학이 어려워지자 꼬박 나흘을 물 한모금 마시지 않고 단식을 했던 것이다. 이재명의 가짜 단식과는 비교도 할 수가 없다. 한창 많이 먹을 시기였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는 4일 째가 되니 작은 밥상을 들고 오셔서 밥을 먹지 않으면 죽겠다고 하시면서 허리띠를 푸시느게 아닌가! 12끼를 먹지 않은 밥상을 들고 나가셨던 어머니셨다. 나흘이 생명의 골든타임을 어머니 께서는 아시고 계셨던 것이다. 그때 어머니품에서 많이도 울었었다. 까짓거 대학이 뭔데.... 세계 4대 성인이 어디 독학을 하였지 스승도 없이 공부를 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하나같이 홀로 연각에 이른 성자들이다. 그때 안동 모교에 계시던 형님께서 장학생을 선발한다고 지원서를 보내주셨다. 예비고사가 생긴 때인지라 성적에 따라서 어느 대학이나 갈수가 있었던 점수이긴 하였다. 형님께서 지난 해에 7남매 중 가장 먼저 어머니곁으로 가셨다. 많이도 눈물을 흘렸다. 중학교 때 하모니카를 선물로 주시어 지금 어떤 곡이든 연주를 잘 하는 편이다. 어머니는 나의 종교이셨다. 둘째 형님은 내 인생의 맨토이셨다. 어머니와 대화도 많이 하였고 사랑도 무척 많이 받았다. 어머니는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좋은 곳에서 우리형제들이 올곧게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시고 계실 것이다. 풍산장 날 태양은 뜨거운데 앙산을 받치시고 가시던 모습이 아련하게 떠 오르면 가슴이 아려온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으시니 풍산장에 가본지가 너무나 오래 되었다. 지난 연말에 안동 신시장에서 친구들와 함께 먹던 국밥맛이 일미였다. 직장에 다닐때는 전국 출장을 많이 다녔다 일행은 안동음식이 짜다고 하면서 실어 했는데 나의 입에는 딱 맞았다. 신토불이를 떠나서 고향은 고유한 냄새가 있다. 연어가 그 먼 길을 찾아가는 것도 강물의 냄새를 알기 때문이다. 고향의 힘은 위대하다. 평생 객지생활을 하고 있지만 역시 고향은 뿌리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5일장의 아련한 추억을 생각하면 늘 어머니 모습이 떠 오른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박약회 운영위원(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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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의 대구춘추 121] 5일장의 아련한 추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