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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태의 미술칼럼 1] 일상의 감각이 예술이 되는 순간

박종태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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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6.03.15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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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태 작가

 

 < 숟가락을 고르는 안목으로 미술을 본다면― 일상의 감각이 예술이 되는 순간 >

 

주말 오후, 큰마음을 먹고 미술관을 찾는다. 전시장 문을 여는 순간 우리는 묘한 긴장감을 느낀다. 마치 공기압이 높아진 듯 보이지 않는 심리적 압력이 공간을 누르는 듯하다. 

 

정적 속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어딘가 경건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 엄숙한 분위기 뒤편에서 많은 관람객이 느끼는 감정은 사실 당혹감에 가깝다.

 

전시 감상을 한마디로 표현해 보라고 하면 흔히 이런 말이 돌아온다.“어렵다.”“미술을 잘 모르겠다.”  때로는 거액에 낙찰되었다는 비구상 작품 앞에서 “이 정도는 나도 그리겠다”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이는 미술을 ‘공부해서 이해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고정관념과 현대미술의 낯선 형식이 결합하면서 생겨난 거리감 때문이다. 

 

오늘날 갤러리에 전시되는 작품 가운데 상당수는 구체적인 형상을 재현하지 않는 비구상 작품이다. 익숙한 사물의 모습이나 서사를 통해 이해하던 기존의 방식으로는 쉽게 의미를 찾기 어렵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에게 전시장 공간은 낯설고 위압적인 장소가 되기도 한다.

 

여기에 작가의 이름값이나 작품의 낙찰가 같은 외적인 정보가 덧붙으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작품이 감각의 경험이 아니라 가격과 투자 가치의 대상으로 이야기되는 순간, 관람객은 작품과 교감할 기회를 잃고 자연스럽게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다른 영역에서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미적 감각과 분별력을 발휘하며 살아가고 있다. 바로 일상의 디자인과 소비 경험의 영역이다.

 

18~19세기 서구 민속학이 태동하던 시기, 학자들은 다양한 부족 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오지로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전해지는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파푸아뉴기니의 한 부족에게 서구식 숟가락을 보여주었을 때 그들은 그 도구의 용도를 알지 못해 사용법을 설명해 주어야 했다는 기록이다. 그들에게 숟가락은 낯선 물체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숟가락 하나를 고를 때조차 단순한 기능만을 보지 않는다. 금속의 광택, 손에 닿는 마감의 매끄러움, 무게 중심이 주는 안정감, 심지어 브랜드와 제작 국가까지 비교하며 선택한다.

 

스마트폰의 미세한 곡률 차이를 느끼고, 자동차의 차체 라인이 만들어내는 속도감을 읽어내며, 가구의 비례가 공간에 주는 긴장감까지 감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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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태 작가의 작품

 

우리는 이미 일상 속에서 수많은 물건을 경험하며 자신만의 미적 기준과 취향을 형성해 온 감상자들이다. 숟가락 하나를 고르는 행위조차 형태와 질감의 미묘한 차이를 읽어내는 작은 미적 경험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미술 앞에서는 갑자기 자신감을 잃게 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단지 작품 속에 담긴 미세한 조형적 차이를 읽어내는 경험이 아직 충분히 축적되지 않았을 뿐이다.

 

비구상 작품을 볼 때 “무엇을 그렸는가”라는 질문을 잠시 내려놓아 보자. 대신 우리가 숟가락을 고를 때처럼 “어떤 느낌을 주는가”에 집중해 보는 것이다. 

 

캔버스 위에 얹어진 물감의 두께가 만드는 질감, 선과 면이 이루는 비례의 균형, 작품이 전시장 조명과 만나 만들어내는 그림자의 농도 같은 요소들을 천천히 바라보는 것이다.

 

작가의 의도를 완벽히 해석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는 순간, 작품의 형태와 색채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리듬이 서서히 감각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때 전시장 공간을 누르던 위압감은 사라지고 그 자리는 새로운 미적 경험의 즐거움으로 채워진다.

 

결국 미술 감상은 특별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만의 영역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좋다’, ‘편안하다’, ‘멋있다’라는 감각은 이미 훌륭한 미적 자산이다. 제품을 선택하고 공간을 경험하며 쌓인 그 감각은 자연스럽게 각자의 미적 기준이 된다.

 

이제 그 안목을 전시장으로 그대로 옮겨오기만 하면 된다. 가장 좋은 감상은 작가의 정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내 감각이 작품의 어느 지점에서 반응하는지를 발견하는 일이다. 

 

예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매일 식탁에서 무심코 쥐어 드는 숟가락의 곡선 속에도, 그리고 그 곡선을 알아보는 우리의 눈 속에도 이미 예술은 시작되고 있다.

 

 

: :   박종태  미술/조형 작가   : :

 

- 영남대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 영남대 교육대학원 석사, 미술대학원 박사 수료

- 영남대 입체미술 외래교수 역임

- 대한민국미술대전 조각부분 심사위원(2017) 

- 현) 빈조형 대표 / 경북조각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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