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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태의 미술칼럼 2] 본다는 것

박종태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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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6.04.0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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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는 것.

 

우리는 흔히 '본다'는 행위를 외부의 상황과 대상을 사진과 같이 객관적으로 인식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예술의 영역에서 본다는 것은 지극히 능동적인 행위이며, 감상자가 살아온 전 생애의 경험이 반영되는 과정으로의 경험이다. 

 

동일한 현장에서 같은 풍경, 같은 선과 면, 그리고 색을 마주하더라도 저마다 다른 감흥에 젖는 이유는 우리가 물리적인 눈이 아닌, '마음의 눈이 작용하여 작품을 읽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연주의 풍경화를 감상하는 전시장에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작품을 마주한 어린아이의 시선은 캔버스 그려진 잔디 위를 거침없이 뛰어논다. 아이에게 초원은 정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 풀냄새를 맡으며 숨바꼭질을 할 수 있는 역동적인 놀이터이다. 

 

반면, 삶의 무게를 경험한 고령의 신사 분이라면 그가 살아온 인생에 시선이 멈추고 그 초원 위에서 서늘한 바람이나 고요한 고독, 혹은 돌아갈 수 없는 유년의 평화를 읽어낸다. 

 

이처럼 '무엇을 본다는 것'은 각자의 경험이 쌓여있는 인생의 지층을 통해 세상을 재구성하는 일이며, 그 과정에서 풍경은 단순한 객체를 넘어 감상자의 심리적 확장 판이 된다. 

 

프랑스 비평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서술한 <저자의 죽음>은 작품의 의미가 작가의 의도나 배경에 의해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읽고 바라보는 감상자의 해석 속에서 새롭게 생성된다는 개념이다. 

 

동일한 작품이라도 감상자의 경험, 기억, 감정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며, 이로 인해 하나의 작품은 단일한 해석이 아닌 다양한 의미를 지닌 열린 구조가 된다. 

 

이는 작가 중심의 권위를 해체하고, 해석의 주체를 감상자로 이동시키는 사유의 전환을 의미한다. 결국 예술은 작가의 손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의 인식 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완성된다.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작품의 완성은 감상자의 눈 즉 “마음의 눈”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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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여러 차례 전시를 진행하며 마주한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블루 컬러가 중첩되어 조형성을 강조한 작품들을 선보이던 어느 전시회였다. 

 

적막한 화면 속에 깊은 블루만이 가득한 형상 없는 작품 앞에서, 한 관람객이 조용히 눈물을 훔치며 서 있던 뒷모습을 기억한다. 작품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고 어떤 형상도 강요하지 않았건만, 그는 무엇을 통해 작품과 합일된 감정이입을 경험한 것일까.

 

대상을 인식한다는 것은 정답이 정해진 기호를 발견하고 해독하는 과정이 아니다. 만약 작품의 의미가 작가의 의도 안에만 갇혀 있다면, 그 예술은 박제된 유물에 불과한 효용성이 없는 무의미한 것이다. 따라서 인식의 과정은 본래 자유로우며, 감상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리는 다양한 해석은 작품의 예술적 범위를 무한히 넓히는 촉매제가 된다.

 

어떤 이는 추상화의 거친 붓질에서 불안과 분노를 읽고, 어떤 이는 격정적인 생명력으로 미래의 희망을 본다. 이러한 개별적 인식들이 겹겹이 중첩되어 쌓일 때, 작품은 비로소 다층적인 의미를 지닌 '예술적 유기체'로 거듭난다. 

 

결국 작가가 캔버스에 마지막 터치를 마치는 순간은 작품의 종착역이 아니라, 감상자라는 수많은 공동 저자를 만나기 위한 출발역인 셈이다. 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이 자유로운 감성의 충돌과 융합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감상자는 종종 전시회장에서 길을 잃는다.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라는 강박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작품은 감상자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입을 굳게 다문 채, 팔 벌려 조용히 다가서기를 기다리고 있다. 마치 준비된 파티처럼...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전시된 작품들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 행위가 아니라, 자기 자신도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무의식의 심연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길어 올리는 과정이다. 

 

작품은 그 심연으로 내려가기 위한 한 줄기 빛이자 길잡이일 뿐이다. 우리는 작품이라는 거울을 통해 타인의 세계를 엿보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숨겨진 감성의 바다를 발견하고 그 속을 자유롭게 유영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율은 작가의 기술에 대한 감탄이 아니라, 잊고 지냈던 '나의 본질'과 마주했을 때 터져 나오는 영혼의 울림이다. 예술은 우리에게 정답을 제시하는 교과서가 아니라, 우리가 각자의 삶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묻는 질문지여야 한다.

 

예술의 완성은 미술관의 화려한 조명 아래가 아니라, 작품 앞에 선 당신의 고독한 시선 끝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작품을 보며 흘리는 눈물, 미소, 혹은 알 수 없는 불편함까지도 모두 예술의 일부다. 당신의 경험이 풍부할수록, 당신의 시선이 자유로울수록 작품의 세계관은 당신과 함께 성장한다.

 

그러므로 이제 작품 앞에서 "이것이 무엇을 뜻 하는가"를 묻기보다 이것이 내 안의 무엇을 깨우는가를 질문해 보자. 작품이 당신의 심연을 건드리는 그 짧은 찰나, 예술은 비로소 완성되며 당신 또한 그 예술의 일부가 될 것이다. 

 

예술은 멀리 있지 않다. 당신이 보고 느끼는 그 모든 순간이 곧 예술의 정점이다. 눈물을 감추는 관객의 뒷모습이 창작이라는 힘의 원천이 아닌가 생각한다.

 

 

 

: :   박종태  미술/조형 작가   : :

 

- 영남대 조소과 졸업

- 영남대 미술대학원 박사 수료

- 영남대 입체미술 외래교수 역임

- 대한민국미술대전 조각부분 심사위원(2017) 

- 현) 빈조형 대표 경북조각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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